만화리뷰
인간적으로 정이 안가는 인간
만화규장각 2000.01.01
몇 년 전에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게 해주는 인터넷 사이트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상당한 붐이 일어나서, 예전의 추억들을 가지고 즐겁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초등학교 동창이란 철모르던 시절의 친구들이기 때문에 조금은 부끄럽고 흐릿한 기억 속에 서로의 느낌이 남아있다. 문제아로 불리며 반에서 항상 말썽을 부리던 녀석, 여자아이 앞에서는 말도 잘 못할 정도로 수줍어하던 친구, 남들보다 성장기가 일찍 찾아와서 멀대같이 키만 크던 아이... 그때는 아무 것도 모른채 시간 가는줄 모르고 지냈지만, 시간이 흐른 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모두가 즐거운 추억으로 아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몇 년의 공백이 지난 다음, 서로가 다시 만났을 때 변한 모습에 대해 어색한 것은 당연한 것일까? 맨날 티격태격 다투던 그 아이가, 한눈에 반할 정도로 멋지게 변해버렸을 때 어떤 느낌이 날까? 『인간적으로 정이 안가는 인간』에서는 그러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초등학교에서 매일 시끌벅적하게 문제를 일으키던 두 사내녀석과 심술궂게 다투던 계집애 한 명, 그들이 우연히 주인공인 이은조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생기는 이야기들이다. 혈기 넘치는 초등학생인 전혁진과 조종인, 날마다 다투는 이들을 말리느라 반장인 이은조는 스트레스 속에 살아간다. 또한 사소한 문제로 시비를 걸어오는 부반장 유채까지 신경이 쓰이게 만들기도 하는데... 그로부터 3년 10개월 뒤 그들은 같은 학교에서 서로의 변한 모습에 놀라고,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어릴적의 모습을 서로가 발견하게 된다. 『인간적으로 정이 안가는 인간』은 이미라 작가에 있어서 과도기적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느낌상으로는 『늘 푸른 이야기』나 『인어공주를 위하여』와 같은 그림체로 보인다. 이후 작품인 『그대를 위한 가을노래는...』이라던가 『사랑입니까?』에서 보이는 깊은 내용은 잘 느껴지지 않으며, 내용면에 있어서도 단순히 밝고 즐거운 시트콤의 느낌을 주고 있다. 분량이 3권으로 단순해서 그런지 그렇게 깊은 몰입도나 내용면에서의 진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또한 무난하게 진행되는 스토리에서는 조금 무미건조한 느낌이 난다. 등장인물 대부분 유쾌한 기억으로 점철되어 있고, 스토리에 쓰이는 컷들도 개그 위주로 작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듯하다. 너무나 평이하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랄까, 초등학교 동창들이 고교생이 되어 나름대로 작은 이벤트들을 겪어가며 지내는 모습을 보는 재미는 있다. 이미라 팬이라면 한번쯤 보는 것도 재미있을지 모르겠다. 놀랍게도 이미라 작가의 만화 중에서 추남도 나오는 몇 안되는 작품이며, 이 작품에서도 역시 조종인이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사랑입니까?』 이전까지 이미라 작가의 만화에 등장하는 남성상은 몇가지 프로토타입으로 구분되는 듯 하다.) 작품 변신을 시도하기 이전의 모습이 어떠하였는지와, 현재 나온 다른 작품들의 작화를 비교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적으로 정이 안가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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