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소녀신선
지덕재 2018.09.06


<소녀신선>은 다음 웹툰에서 2016년 6월 28일부터 지금까지 연재 중인 작품이다. 주로 작화가로 활동했던 작가 ‘효미’가 스토리 창작도 함께 맡은 첫 번째 작품으로, 현재까지 연재된 분량은 4시즌 83화다. 또한 이 웹툰은 연재를 앞둔 2015년에 이미 공공브랜드 만화 창작 지원 사업에도 선정된 바 있다. 해당 공고에 제시된 조건은 “한국의 고유한 소재를 다룬 만화 제작 및 국내외 배포를 통해 우수한 한국 문화 전파”였고, <소녀신선>은 이 조건에 딱 들어맞는 작품이었다. 한국적인 소재들을 차용하여 아름다운 그림체로 매만졌고, 서사 또한 전통 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캐릭터들의 사연 위에 달콤한 순정만화 코드를 함께 엮어냈기 때문이다.
<소녀신선>은 수능을 3일 앞둔 고등학생 ‘하버들’이 우연히 비현실적인 세계에 발을 들이고 얼떨결에 천 년 내공을 이어받아 신선이 되는 사건에서 시작한다. 우연한 기회에 이세계로 떨어지게 된 하버들의 이야기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정체불명의 구멍으로 빠져 기나긴 ‘낙하’ 끝에 새로운 세계에 당도했다면, <소녀신선>의 하버들 또한 도깨비들에 의해 무릉도원으로 납치되었다가 금지구역 안에 봉인된 술독 안으로 말 그대로 떨어지면서 이무기 ‘꽝철이’와 만난다는 점이 비슷하다.
또 앨리스와 하버들을 이세계로 이끄는 데에 이세계의 생물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도 닮았다. 한 가지 다른 점은 그 환상이 현실에 침투하는지의 여부다. 앨리스는 오직 원더랜드 내에서만 신기한 존재들과 조우하며 여러 여정을 겪지만, <소녀신선>의 하버들은 본인이 만난 기이한 존재들을 선계에서 만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도 맞닥뜨리게 된다는 점이 다르다.
수능 3일 전 실종되었다가 반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그 탓에 수능을 치지 못한 채 스무 살이 되어 버린 차기 신선 하버들의 곁에는 오백 년 동안 술독에 봉인되었던 위험한 이무기 ‘꽝철이’, 신선을 보필하는 푸른 깃털의 ‘청학’과 개들의 왕인 ‘삼목대왕’ 등이 머문다. 여기에다 인간 세상을 고집하는 새 신선에 대한 소문을 듣고 모여드는 각종 영물과 요괴, 연약하고 악한 존재들이 하버들과 친구들 앞에 거침없이 등장한다.
<소녀신선>은 이 친구들을 중심으로 하여 현대 (한국) 사회의 다양한 풍속과 전래동화 및 구전 설화 속에 나오는 기이한 생물들을 자연스럽게 섞어 놓는다. 여우 구슬을 훔친 현대의 학동은 땅을 보고 이치를 깨쳐 부동산 재벌이 되며, 신선의 술잔이 떨어진 개장 직전의 워터파크는 그야말로 술 솟는 샘이 된다. 또 본인의 의지로 재수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하버들의 곁에는 청학과 꽝철이가 따라붙어, 급기야는 재수학원의 청소도구실 안에 아예 상담을 받는 ‘중생구제 사무소’가 차려지기에 이른다.
<소녀신선>에는 여우구슬 설화, 오수의 개, 은혜 갚은 학,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선녀와 나무꾼’이 등장한다. 그리고 각 소재를 하나의 에피소드에 할애하여 이 오래된 이야깃거리를 현대인의 감각에서 새로이 서술하고 있다. 전에, 우리는 이 같은 서사에 한 번도 의문을 가진 적 없이 받아들였다. 전래동화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의 시각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다시 들여다보면, 옛날부터 전해져 왔다고 해서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도 과연 괜찮을까 하는 의문점이 생겨난다. 예를 들어, 선녀의 날개옷을 훔쳐와 숨기고 강제로 결혼한 나무꾼과 그 어머니는 과연 좋기만 한 사람일까?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언제나 자신의 욕망을 가장 많이 대변한다.
그렇기에 주인공이 아니라 변두리에 등장하고, 대상화되는 인물은 사실 스스로 말할 힘이 없는 존재다. 이 같은 의문점을 <소녀신선>에서는 차근히 서사로 풀어 나가면서 어렵지 않게 드러낸다. 작가는 노련한 만화 작법을 통해 부담 없고 가벼운 재미를 안겨주면서도 독자에게 각 에피소드에서 다루는 원작 설화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만들어 준다.

<소녀신선>은 수없이 많은 대립 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버들이 발을 디디는 신비로운 이세계인 ‘무릉도원’과 평범한 대입 입시생 버들이 살고 있는 ‘현실’, 똑같이 영물이지만 감정적이고 호시탐탐 버들에게서 벗어날 궁리만 하는 ‘꽝철이’와 이성적이며 차분하면서 버들을 보필하는 ‘청학’, 그리고 가장 평범하고 현대적인 ‘대입 수험생’이라는 신분과 ‘신선’이라는 고전적이고 이질적인 신분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있는 버들의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소녀신선>의 작품 곳곳에서는 각종 대립 구도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리고 이 중에서 가장 상반된 의미가 결합된 지점은 바로 주인공 하버들의 정체성이자 이 작품의 제목인 ‘소녀신선’이라는 단어다. <소녀신선>은 ‘소녀이면서 신선’이라는 뜻을 지니지만, 반대로 ‘신선이면서 소녀’라는 뜻도 내포한다. 이렇듯 두 층위가 모호하게 얽힌 제목은 이 작품의 정체성과 매력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한편 대단히 전복적이기도 하다. 기존에 우리가 ‘신선’에 대해 갖고 있었던 고정관념을 뒤집어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야기 서두에 등장하는 ‘대갈신선’은 우리가 신선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모습 그대로다. 흰 수염, 흰 도포를 입고 눈썹이 길게 드리운 노인의 모습을 우리는 신선이 아니라고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다. 왜일까? 바로 그 모습이 ‘신선’의 기본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말에서 이미 ‘신선’이라는 단어는 ‘나이가 많이 든 남자 노인’이라는 편견을 갖게 만든다. 여기에 ‘젊은’ 신선이나, ‘여자’인 신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신선이 성별이나 외모에 상관없는 ‘직군’ 내지 ‘신분’이었다면 이 작품의 제목 또한 그냥 ‘신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접두어는 흔히 그 단어에 포함되지 않은 속성을 표현하기 위해 붙으니 말이다.

옛 이야기 속 배경이며, 신선과 영물들이 속한 무릉도원을 두루 상징하는 고전 세계는 찬찬히 뜯어보면 이처럼 억압적이다. 그러나 이런 세계의 안정된 질서 속에 평범한 현대인이자 별다른 힘을 갖추지 않은 발랄한 ‘소녀’ 버들이 뛰어들면서 균열이 생겨난다. 그리고 작품은 고전 설화 속에서 비극적인 결말 안에 갇혔던 소재들을 하나 둘 건져 올린다. 이무기, 오수의 개, 날아가 버린 학 등은 <소녀신선> 안에서 캐릭터로서 다시금 생명력과 기회를 얻는다. 기회란 다름 아닌, 새로운 서사를 써나갈 기회다. 과거의 자신이 어떤 존재였든 현재의 생각과 행동으로 다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나갈 그런 주체성을 회복시켜 주는 마당을 이 작품은 마련해 준다. 그래서 <소녀신선> 속 인물들은 모두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기회를 한 번 더 얻게 된다.
새로운 기회를 얻은 인물 중 가장 괄목할 만한 상대는 ‘꽝철이’다. 하버들과 심상치 않은 감정 노선을 형성하는 이 사랑스러운(?) 짐승남은 경북 청도군에 전해 오는 승천 못한 이무기 설화에서 따온 캐릭터다. 꽝철이는 과거에 많은 사람들을 죽이면서 선계의 술독에 갇혀 이무기 술이 될 위기에 놓였지만, 인간이자 처녀인 하버들이 술독에 빠지게 되어 봉인에서 풀려난다. 꽝철이는 신선이 된 하버들과 새로운 갈등관계를 형성하며 으르렁거리지만, 뒤로 갈수록 기이하게도 하버들과 함께 있을 때 느끼는 편안함과 애착에 얽매이고 전전긍긍하게 된다.

꽝철이가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계기가 차차 드러나면서, 강아지 같은 이무기이자 하버들에게 썸남이 된 꽝철이는 자신이 살던 시기의 수백 년 뒤인 현재에 다시금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한다. 시즌을 거듭한 <소녀신선>은 여러 단서를 통해 후에 닥칠 큰 위기와 만만치 않은 적을 예고하고 있지만, 그에 앞서 플래그를 가득 쌓아 온 두 주인공이 서로에게 향하는 마음을 확신하는 훈훈한 장면 또한 잊지 않았다.
일상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에게 흥미를 자아냈다. 원래 많은 독자들은 현실 세계와 아주 동떨어진 낯선 곳의 이야기보다, 우리 일상 곳곳에서 보이는 가끔 의미를 알 수 없는 작은 현상으로부터 커다란 미스터리와 숨은 사연을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다. <소녀신선>은 독자들의 이러한 흥미를 정공법으로 치고 나가되, 작품 곳곳에 세심하게 다양한 요소를 심어서 독자들이 질리지 않고 작품에 오래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비록 이 같은 인물들의 새로운 서사를 가능케 만드느라 현실관계에서 하버들을 둘러싼 토양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그려지고 있지만(하버들 가족 구성원의 다소 평면적인 묘사 등), 이 작품은 언제까지나 현실을 정교하게 모방한 판타지 작품이다. 그리고 판타지의 핍진성은 언제나 현실을 충실히 들여다보고 고민할 때에 비로소 발생하기 마련이다. 일견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항목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요소 하나하나가 낡은 옛 이야기를 벗어나 새로운 기연으로 다시 엮이는 것. 이 새로운 연결에서 창출된 신선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 그래서 해묵은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것. 그것이 <소녀신선>의 발랄함이 가지는 최대 미덕이다.
만화리뷰
츠즈이 씨와 츠즈이의 나날
이복한솔
2018.12.25
오타쿠 겸 동인녀는 픽션을 진지하게 소비한다. 원작자가 소개하지 않은 부분까지 연구하고 유추해내기를 좋아한다. 특히 두 명 이상의 남성이 참가하는 연애나 성애를 다룬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또 뭐가 있을까? 필자가 아는 것은 많지 않다.
그래픽노블로 다시 태어난 톨스토이의 고전
박근형
2018.12.21
모든 위대한 예술가와 사상가들이 그렇듯 톨스토이의 삶과 사상과 문학 역시 분리될 수없이 밀접했다. 귀족가에서 태어난 톨스토이는 젊을 적 농민의 계몽에 실패한 후 노름과 색욕에 빠졌고, 이는 이상주의, 금욕주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그의 사상과는 괴리가 있는 것이었다. 현실의 욕구와 정신적 이상 사이의 모순에서 찾아오는 정신적 고통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예술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거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예요?”
이선인
2018.12.21
한 가지 질문. 어떠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 그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을까? 만약 그런 경험이 있다면 도대체 어떤 조건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을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조건은 실존하는 무언가가 등장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장소, 내가 아는 인물, 내가 아는 사건이 등장하는 순간 그것의 실재에 대해 어느 정도 신뢰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조건이 될까? 영화에 당신이 아는 장소가 등장하였다고 하여, 그 영화가 지니고 있는 서사를 즉시 사실로 납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물, 배경, 사건이라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실화 기반’을 표방한 작품들마저, 등장 이후에는 인터넷에 실제와의 차이점이 범람한다.
2018년, 웹툰에서 느끼는 공포의 감각
지덕재
2018.12.21
네이버 웹툰은 국내 최대의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웹툰 플랫폼이다. 네이버 웹툰은 2011년부터 매해 릴레이 단편을 선보이고 있다. 2011년 ‘미스테리 단편’으로 시작한 릴레이 단편 시리즈는 2012년 ‘지구가 멸망한다면’, 2013년 ‘전설의 고향’으로 이어지며 2018년에는 ‘재생금지’ 시리즈를 한시적으로 연재했다. 네이버 웹툰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연재된 이 시리즈는 매해 웹툰 팬들과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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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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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6
결말까지 좋았지만 끝났다고 믿고 싶지는 않은 (피포 작) 이복한솔(만화평론가) (이하 \'수염멜빵\'(?)) “소소한 영국풍 어드벤처(?)” 제목과 소개 글을 읽고 마음이 동한 필자는 눈요기를 목적으로 이 작품을 선택했다. 그런데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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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형
2018.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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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과학은 길다 (맹기완 작) 이복한솔(만화평론가)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라는 근사한 문장은 머나먼 미래에도 종종 인용될 것이다. 선대의 업적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그늘을 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