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인생은 짧고 과학은 길다
<야밤의 공대생 만화> (맹기완 작)
이복한솔 2018.07.20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라는 근사한 문장은 머나먼 미래에도 종종 인용될 것이다. 선대의 업적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그늘을 벗어나있다는 자신감을 점잖게 내비치기에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싶다. 더하고 뺄 것이 없으며 기타 등등 모든 면에서 멋지다. 하지만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는 화가들의 뇌에서는 (수학자들이) 형태가 아름다운 등식을 볼 때와 유사한 반응이 나타났다”는 문장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형태가 아름다운 등식’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필자가 과학 분야의 정보를 접할 때 느끼는 거리감은 멀다. “오일러의...... 공식을 보시면 수학에서 가장 중요하고 많이 쓰이는 상수 5가지가 모두 들어있죠. 자연 상수 e, 허수 i, 원주율 π, 1, 그리고 0까지요. 다른 잡것들은 하나도 없고요. 수학 법칙이 이렇게 깔끔하고 아름답게 생겼다는 것이야말로......”라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부터 혀끝까지 굳어버리고 만다. “오일러의 등식을 보는 수학자들의 뇌에서는 아름다운 그림을 볼 때와 유사한 반응이 나타났다”는 표현에는 그래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단어의 순서를 바꾸면 못 알아듣고 쭈뼛거리며 눈치만 보게 된다.

<야밤의 공대생 만화>, 혹은 ‘야공만’은 부담 없이 가볍게 시도하기 좋은 과학사 만화다. 제목에서 예고하는 데로 공학, 수학, 물리학을 연구했던 인물과 관련한 이야기를 많이 소개한다. 조폐국 감사로 활약했기도 했던 뉴턴, “여백이 모자라” 생략(?)되어 있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데 참여한 수학자들, 최초의 프로그래머로 평가받는 에이다 러브레이스 등이 모바일 메신저의 이모티콘 같은 이등신 캐릭터로 등장하여 괜히 친근감을 준다. 전문 지식은 꼭 필요한 만큼만 언급되고, 일화를 소개하는 완급 조절이 확실해서 읽다가 막히는 곳이 없다.
지은이 맹기완은 거두절미하고 재미있는 일화만 턱 소개한 뒤 교훈 같은 넋두리로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만화를 그린다. 해설자 겸 공학도로 작중에 직접 등장하여 까마득한 선배 과학자들이 남긴 말에 토를 달기도 한다. 어릴 때 측정한 IQ가 125라는 이유로 “머리가 나쁘다”며 멘사 가입을 거절한 리처드 파인먼 앞에서 쓰레기봉투에 발을 집어넣는 식이다. 다소 짜증스럽게 읽힐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이 역시 과학자를 소개하는 해설의 일종으로 기능한다. 파인만이 짜증이 날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라는 거다. 그 외 나머지, 해설로 전달하기 어려운 뉘앙스 묘사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유감없이 밈(혹은 짤방, 필수요소, 유행어 등)이 튀어나온다. 야공만은 콜라주 만화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빌려온 이미지가 많다.

밈은 상황을 이해하는 수고를 최소화한다. 두 번 생각할 필요가 없다. 집단이 보유하고 있는 이미지 캐시라고나 할까. 해당 밈을 아는 독자는 독서를 엄청 편하게 할 수 있다. 새로운 이미지에 내포된 정보를 해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가독성을 높이는 전략은 본문에 인용된 밈이 잊히는 것과 동시에 효과가 사그라들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유효하며,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점이다. 연재가 계속된다면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할지 가장 궁금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리즈가 계속되길 바라게 만드는 진짜 매력은 따로 있다.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증명하고, 발전시킨 뒤 그것이 널리 퍼지기까지는 넉넉한 인력과 수고와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엄청난 물리학 이론이라도 실험 물리학자의 검증 없이는 그 가치를 단정할 수 없다. 페르마의 정리도 증명이 끝나기 전에는 제대로 증명된 것이 아니었다. 이론과 기술과 그 외 모든 것의 이면에는 크고 작은 좌절과 시행착오가 있다. 그러나 과학을 소개하는 매체들은 발전에 필요한 수고를 언급하는 것에 인색하다. 특히 교과서와 학습 만화는 어떤 발견이나 발명의 결론과 효용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가 있는 인물들이 거기까지 등반을 했는지 순간이동을 했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독자들은 나름의 속도로 과학을 알아가며 스스로 재미를 붙여볼 기회도, 짬도 없이 시험 문제로 나올 법한 내용만 허겁지겁 주워섬기게 된다. 일부는 그 와중에도 수학이나 과학에 흥미를 갖게 되지만 다른 일부는 각박한 조건에 지쳐 포기하기도 한다. (조건이 얼마나 나쁜지는 “수학포기자”라는 단어만 봐도 알 수 있다. ‘못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현재 상태에 대한 평가이지만, ‘포기한 사람’에는 전망이 담겨있다. 나아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겠다는 태도가 반영되어 있다)
독자는 거인의 어깨를 올려다보는 공학도의 시선을 빌려 과학사를 돌아보게 된다. 논문과 연구를 통해 시공에 구애받지 않고 선대 과학자와 소통하는 전공자의 여유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야공만의 필터를 거치고 나면 제아무리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이라도 SNS 피드에 있을 법한 대학원생이나 교수처럼 느껴진다. 명예와 이권을 두고 다투는 모양, ‘덕후’처럼 학문에 매달리는 모습, 코미디 소재로 쓰여도 이상하지 않을 독특한 언행에 대한 이야기들은 엊그제 일어난 일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멀지 않게 느껴진다. 이 만화를 읽으며 과학과의 거리감을 조금씩 좁히다 보면 자세한 내용을 거들떠볼까, 싶은 여유가 생길지도 모른다. 시험에서 고득점을 얻어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과학을 농담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겨도 된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과학은 대수다. 아주 어렵다. 인생은 짧고, 과학은 길고, 천재는 많다. 그 많은 천재는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 과정과 원리를 이해하려는 작업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도 결국은 사람의 일이라고, 힘들어도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고, 덕분에 세상의 멋진 일들이 가능하지 않았느냐고 야공만은 말한다. 지은이의 세계관에는 전염성이 있어, 가볍고 즐거우면서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 여가를 부탁하기에 좋다.
<야밤의 공대생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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