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힐링’따윈 기대하지 마시길
<마녀> (이가라시 다이스케 작)
이선인 2018.07.16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저작 중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아마도 최근에 영화화 된 <리틀 포레스트>일 것이다. 미묘하게도 이 작품을 일종의 힐링 만화처럼 인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것은 영상화 된 작품들, 특히 모리 준이치의 4부작 영화 <리틀 포레스트>(영화는 <여름과 가을>, <겨울과 봄>으로 2회에 나뉘어 상영되었지만 엔딩 크레딧의 여부를 통해 해당 연작이 4부작임을 알 수 있다.)가 한국에서 소위 ‘힐링 영화’로 인지된 탓이다.


도심의 삶에 지친 청년들은 모리 준이치의 ‘시골로 내려가 음식을 맛있게 먹는’ 영화를 일종의 대리체험으로 인지했고 모리 준이치의 4부작은 ‘힐링 영화’라는 추천에서 단골처럼 기거하게 되었다. 하지만 모리 준이치의 <리틀 포레스트>는 원작에는 존재하지 않던 4계절을 의도적으로 나누고, 최후에는 그 순간들을 재 환기시키는 제의(祭儀)를 통해 순환생태에 대한 인간의 경의를 표하는 작품에 더 가깝다. 그런 면에서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원작보다 더 노동의 강도나 표현이 보강되어있기도 한데 어째선지 ‘힐링 영화’라는 태그가 붙을 때엔 이런 노동의 요소가 쏙 빠져버리는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덕분에 영상화된 일련의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작품에 도래한 사람들은 이 작품에서도 ‘힐링’의 포인트를 찾으려 한다. 물론 이가라시의 텍스트에는 힐링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렇게 판독할 그 어떠한 단서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모리 준이치의 영화 역시 심적인 안위가 목적이 아니었다고 하나, 다이내믹한 노동의 뒤에 가지는 식사의 시간에서 황홀함을 읽기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허나 이가라시의 작품 <리틀 포레스트>에는 그런 종류의 환기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농촌에서 홀로사는 여성의 담백한 시간을 알아보기 힘든 작화로 주구장창 이어나가고 있을 뿐이다. 덕분에 영화만큼의 만족도를 얻지 못했다는 감상들과 어렵지 않게 마주하게 되는데, 이것이 이가라시의 목적이 전혀 다른 곳에 있음을 밝히는 증거이지 않나 싶다.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리틀 포레스트>는 말하자면 에코이즘 판타지이다. 이것을 증명하는 것은 서사보다는 작화의 힘이다. 한때 ‘볼펜으로만 작화를 하는 작가’(정확히는 이번 글에서 다룰 <마녀>가 그렇게 작업되었다.)로도 이름을 날린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작화는 직선과 각면을 최대한 배제하며, 하나의 컷 안에 인물과 사물 그리고 자연을 특별히 구분하려하지 않는다. 모든 선은 완연히 닫혀있을 때도 있지만 자주 완결되지 않아, 그 면들이 상호 계속 이어져만 간다는 착각을 주기도 한다. 특히 배경을 비우는 작은 컷 보다는 양면을 꽉 채우는 강렬한 전면 컷에서 그러한 에너지가 발산된다. 특히 2권 초반의 에피소드인 ‘4월 25일의 두릅’의 이치코가 숲길을 거니는 전면 컷은 그러한 형식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컷 안에서 이치코는 숲과 구분되지 않는다. 우리가 이치코라는 인물을 의식하지 않고 그림을 슬쩍 넘겨본다면, 그 안에 사람이 있었는지도 깜빡 잊을 정도다. 이가라시의 작화 안에서 인간은 자연과 일체화 한다. 이가라시는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자양을 얻는 이야기를 그리나 결코 자연을 정복하려는 야욕을 담지 않는다. 자연과 맞닿은 곳에서 노동하며 그 결과물로 식(食)을 하는 행위는 순환생태의 일부가 됨을 의미한다. 먹는 행위를 통해 체득한 에너지는 육체에 남는 에너지와 잉여 되어 배출되는 양분으로 이분화 되고 이중 후자는 다시 자연에서의 에너지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이가라시는 농촌에서 생활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몸으로 자연의 순환계 내부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던 셈이다. 작중에 얼핏얼핏 고개를 들이미는 도시에서의 생활은 생태적 삶과 즉시 대비되며, 양자를 취사선택이 가능한 것들로 인지시킴으로써 자연주의(naturalism)적인 관점이 아닌 생태주의(ecoism)적 시선을 전면에 노출시킨다. 이가라시에게 있어 자연은 우리가 지켜줘야 할, 보호해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그 안에서 우리의 삶을 다시 구축해야 하는 근원적 터전인 것이다.
<리틀 포레스트>는 친화적이며 상호보완적 자연의 경이를 그린다고 한다면, 그의 다른 작품인 <마녀>는 그 대척점에서 이야기를 구축하게 된다. 이가라시의 <마녀>는 마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고딕 호러 혹은 핍박받는 타자의 서사를 사용하지 않는다. 연작의 첫 문을 여는 작품 ‘스핀들’은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더 친숙한 마녀 - 즉, 카발라 등의 신비주의를 주술의 무기로 다루는 마녀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이 이야기는 한 중동 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이교도라는 이유로 이슬람 커뮤니티로부터 배제당한 영국인 여성 니콜라와 신의 계시를 받아 수도로 향하는 유목민 소녀 시랄을 교차하며 진행한다. 수많은 마도서를 통해 세계의 질서를 깨우친 니콜라는 한때 자신에게 상처를 준 바자르(시장)의 사람들에게 주술을 이용해 복수를 시도하고, 자아낸 실과 방직물로부터 신탁을 받은 시랄은 메시지를 전달해야하는 임무를 가진 채 수도를 방황한다. 결국 니콜라의 복수가 절정에 달할 시점에 나타난 시랄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해 니콜라를 삼켜버린다. 이때, 이가라시는 이 둘의 차이를 ‘언어’의 개념으로 나눈다. 니콜라는 신비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언어화된 비전(秘傳)을 통해 힘을 키워온 마녀이며 그 언어의 힘을 맹신하여 스스로 세상의 모든 진실과 구조를 볼 수 있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문명과 거리를 두고 자연의 흐름 그대로 살아온 시랄은 그보다 더 큰 것, 즉 ‘언어화되지 않은 존재’를 감지하거나 힘을 빌리는 것처럼 묘사된다. 여기서의 언어는 당연하게도 (서구식의) 문명화된 것으로 치환이 가능하다. 말하자면 이 둘의 대립은 자연의 세계와 문명의 세계의 대립이며 문명화의 구조 안에 들어간 이는 언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더 거대한 영성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니콜라는 정복자와 지배자의 영혼을 자신의 모티프처럼 다루는데, 특히 바자르의 지하에 수장되어 있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말하자면 니콜라는 서구적 정복관과 야욕의 화신과도 같은 존재다. 시랄의 힘에 의해 쓰러진 나콜라가 콘스탄티누스의 수장된 시산 옆에 미러 이미지처럼 봉해지는 장면은 이러한 니콜라의 면면을 확고히 비춘다.
이후의 에피소드들에서는 ‘스핀들’의 니콜라처럼 기존 인식의 마녀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강대국에 의해 처절하게 짓밟히는 밀림의 이야기를 그리거나(‘쿠아푸루’), 문명과 언어에 속박될 수 밖에 없는 영성인 종교계를 마녀와 대립시킴으로써 생태여성주의(ecofeminism)의 관점까지 영역을 뻗히며(‘페트라 게니탈릭스’) 문명체계와 자연의 영성이 대립한다는 구성은 지속적으로 유지한다. 다만 마지막 에피소드인 ‘노래를 훔친 자’만은 현대 일본을 배경으로 삼으며 일견 다른 톤을 가져간다. 물론 문명사회에서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유일성을 깨달아야 하며, 그를 위해서는 언어가 통용되지 않는 세계를 인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담아 기존 이가라시의 세계관의 연장으로써 기능하고 있다. 특히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신비한 여성 치타루는 주인공 히나타의 이름을 의미소로써 해체해 그것이 일종의 축복임을 설파하는데, 이는 언어적 기표가 영성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이야기의 확장이다. 또한 히나타가 자신의 유일성을 인지하는 곳이 육지와 분리된 무인도라는 것 또한 이가라시가 문명사회의 공허함에 대한 대안으로 자연을 상정하고 있다고 여겨지게 만든다.
이런 면에서 <마녀>가 문명과 대립되는 자연의 영성을 그리고는 있으나, 결국 대안으로써의 삶으로 탈문명적 방법을 제안하는 면에서 이 작품은 <리틀 포레스트>와 맞닿아있다. 그렇기에 작화를 통해 생태주의적 자아를 표출하는 방식은 여전히 동일하거나 혹은 훨씬 더 진화되어있다. 볼펜으로만 그린 것으로 유명한 <마녀>의 그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는 선들은 모든 사물들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리고 있으며 <리틀 포레스트>의 숲길 씬과 마찬가지로 전면으로 뻗어나가는 자연의 위력을 묘사할 때 그 위용이 과시된다. 다만 <리틀 포레스트>의 전면 컷에서는 인간이 자연에 묻어있음을 통해 안락함이 전달되나, <마녀>의 전면컷은 인간의 위용을 상대적으로 위축되게 그리는 경향이 늘어난다. 특히 ‘스핀들’에서 니콜라를 삼키는 수많은 눈들을 묘사한 광경은 아름다움과 경이와 경외와 공포가 동시에 느껴지며, ‘쿠아푸루’에서 수많은 숲의 정령들이 나타나고 특수부대원들의 목이 떨어져나가는 연속적인 컷에서는 서늘한 감상까지 받게 된다. 말하자면 이가라시는 동일한 방식의 작화 위에 다른 서사를 올림으로써, 형식이 전달하려하는 감정을 완전히 뒤집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두 작품을 떨어뜨려 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두 작품을 하나로 합쳤을 때에 비로소 이가라시 다이스케가 가진 에코이스트로써의 자아가 명확해진다.
<리틀 포레스트>를 지나 <마녀>를 완성한 ‘에코이스트’ 이가라시 다이스케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자연은 언제나 그곳에 있으며, 우리가 그 안에 들어가길 원한다면 보답없이 문을 열어준다.(<리틀 포레스트>)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대상화하거나 정복하려들 때에는 가장 공포스러운 방식으로 대항하려 할 것이다.(<마녀>) 자연은 우리를 품어주기만 하는 무한한 선의가 아니며, 또한 우리가 지켜주겠다고 대상화할 수 있는 작은 존재도 아니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그저 문을 열어 달라 요청하고 조용히 그 안에 들어가 귀를 기울이며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다시금 <리틀 포레스트>로 되돌아가 보자. 우리는 왜 이 작품의 자연이 우리를 품어주길, 도회에서의 우리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어주길 바라고 있었을까? 결국 답은 <마녀>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힐링의 도구’라는 개념은 전적으로 언어화된 대상화의 결과물이다. 이가라시는 <마녀>를 통해, 이러한 선택의 결과는 언제나 어떤 종류의 파멸로 이어져 갈 것임을 강조한다. 만약 <리틀 포레스트>로 마음의 짐이 덜어지지 못했던 독자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마녀>의 일독을 권하겠다. 물론 이 두 작품을 다시 읽는다고 하여 당장 언어의 세계로부터 분리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회복의 장소를 다시 설정하는 데에 도움을 받을 것이다. 이가라시는 말하고 있다. 자연은 그런 곳이 아니라고.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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