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박근형 2018.06.25

<파워리뷰>

역사의 각주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비망록> (조 사코 작)

 

박근형(만화평론가)

 

“역사에선 각주를 빼도 그만이다. … 역사는 꽉 차있으니까. 미주알고주알 다 담을 수 없다. 새 사건이 입에 들어오면, 지나간 일은 꿀꺽 삼킨다.”

 

<팔레스타인>의 작가 조 사코는 다시 팔레스타인에 와있다. 그의 머리 위로는 이스라엘 헬기 조종사가 순찰 중이고, 같은 방 안에서는 팔레스타인 무장대원이 권총을 점검하고 있다. 한 이스라엘 군인과 한 팔레스타인 무장대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라는 오래된 역사서에 달려도 그만, 달리지 않아도 그만인 각주다.

 

조 사코는 세계의 분쟁지역을 누비며 그런 각주들을 밝히고 모으는 만화가 이자 언론인이다. 그의 작품들은 미국 도서출판 대상, 윌 아이스너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은 2010년 그래픽 노블로서는 최초로 ‘진실을 말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리덴아워상 도서부문을 수상하였다.

그는 <저널리즘>에 수록된 작가 인터뷰에서 “저널리즘이란 무엇이 진실인지에 대해 정직한 평가에 도달하려는 노력”이라고 정의했다. 그의 언론에 대한 신념은 그가 기자의 올바른 공식으로 인용한 <인디펜던트>지 기자 로버트 피스크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나는 기자들에게 중립적이고 편파적이지 않은 자세를 유지하되, 고통 받는 자의 편에 서라고 말해준다.”

 

다시 사코의 작품으로 회귀해본다. <팔레스타인>에서는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당대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에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 팔레스타인의 칸 유니스, 라파에서 일어난 참사를 다루었다. 1956년 11월 일어난 칸 유니스 학살과 라파 학살은 약 400명이 살해된 비극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사코는 오래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건에 대해 파헤치는 것 역시 의미가 있는 일이라 믿는다. 그는 <저널리즘>에서 “발언 기회를 얻을 기회가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 포커스를 맞춘다고 밝혔다. 사코의 노력으로 역사에서 잊혀 가던 칸 유니스·라파 학살은 마침내 침묵을 깰 수 있었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에서 사코는 학살 사건에 대한 취재 과정 자체와 목격자·생존자들의 기억을 이미지로 재현함으로써 반인륜적인 전쟁범죄에 대해 고발했다. 타인의 고통을 시각적으로 재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전쟁, 재앙, 학살, 범죄 등, 타인의 비극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요한 문제 중 하나는 우리가 그것을 ‘모른다’는 데 있다. 재현의 불가능성은 고통의 주체와 발화의 주체의 괴리에서 오는 윤리적 딜레마다. 그러므로 재현 불가능한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아이러니, 그것을 말하는 방식이 작가의 재현에 대한 윤리적 태도일 것이다.

 

 


 

사코는 재현의 불가능성에 대해 연출과 구성의 면에서 현재와 과거, 나와 타자의 ‘거리’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사코의 코믹스에서는 취재진(사코와 가이드들, 혹은 동료들)과 취재 과정이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취재 과정을 작중 표현한 것은 두 가지 효과를 가져왔다. 하나는 그려낸 기억의 이미지에 설득력을 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으로 독자에게 생존자-작가-독자라는 주체 간의 물리적 거리를 인식하게 하여 참사의 기억이란 접근할 수 없는 대상임을 확신케 하는 것이다.

 

또한 사코는 인터뷰 시에 대상자에게 상황, 배경, 인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요청하였다. 그들은 당시 상황을 직접 재연하여 행동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그들이 행동을 재현하는 현재의 컷과 실제 행동 당시의 과거 컷은 나란히 놓인다. 예를 들면 3컷을 현재-과거-현재로 배치하는 식이다. 생존자들은 당시로 이입하고, 몸짓이 그때 그 순간을 지금으로 불러오면서 참사의 기억은 현재를 압도한다. 그렇게 분리되어있던 시공간이 중첩하면서 독자는 현재의 세계를 보다 분명하게 인식하게 된다.

‘거리두기’의 또 다른 일환으로 사코는 절제된 컷 연출로 감정 과잉을 경계한다. 클로즈업은 드물게 사용되며, 컷은 대개 균등하고 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컷 모양도 대부분 직사각형이다. 이러한 연출은 충격적인 사건과의 괴리를 일으킨다.

 

 


 

‘거리두기’의 방식에서 발생하는 괴리에서 독자는 순간적인 감각이나 정념이 아닌 의미를 생산한다. 타인의 삶에 대한 사고와 의미의 재생산, 그것이 사코의 재현에 대한 노력이 지향하는 바가 아닐까.

 

칸 유니스·라파 학살은 증거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거나 접근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사코의 취재에서 증언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참사로부터 약 반세기라는 세월이 흘렀고, 생존자들의 경험을 증명할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에 증언은 검증이 필요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손실되거나 왜곡된다는 점이었다. 사코는 이 문제점까지도 그려내면서 중요한 사실을 시사했다. 정황의 여러 요소들은 기억에서 변형되고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증언의 핵심은 사실뿐 아니라 진실에도 있다. 같은 사건에 대해서 증언이 다른 경우도 있었지만,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1956년 11월 3일 칸 유니스에서만 이스라엘 군에 의해 275명이 죽었다. 이것은 진실이다. 우리는 타인의 내면에는 닿을 수 없지만 진실에 닿으려는 노력은 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은 사코의 그러한 윤리적 신념의 결정체다.

 

사코가 라파 사건 취재의 중심지였던 씨 스트리트를 떠나며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의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1956년 라파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총격과 곤봉에 위협받으며 씨 스트리트를 달려갔다. 택시 안에서 그는 마지막 증언자를 회상한다. 어렵사리 만난 마지막 증언자는 이야기를 이어나가길 힘겨워 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사코는 증언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고 그를 달래려 하는데, 생존자의 손자는 조부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할아버지, 마음을 단단히 하세요. 감정 말고 머리로 말해야 해요. 기억해보세요. ”

 

사코는 순간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는 이 사건을 취재하고 분석하며 참사의 순간에 있었던 당사자들보다 더 사건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했던 것이다. 일정한 심리적 거리를 가지고 증언자들을 만나오던 사코(정확히는 사코 캐릭터)는 이 장면에서 가장 진솔한 감정을 드러낸다.

그리고 3인칭의 시점, 혹은 작가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던 만화는 작가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1인칭 시점으로 전환된다. 1956년. 이스라엘 군인이 라파 사내들을 학교로 소집하고, 알 수 없는 ‘나’도 가족과 동네 사람들을 따라 씨 스트리트로 나선다. 독자는 그가 누군지 알 수 없지만, 사실은 알고 있다.

 

작중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사코에게 물었다. 당신이라면 어떻겠어요? 우리를 좋아하나요? 나는 어쩌면 좋나? 사코가 답하는 장면은 없다. 딱 한 번, 사코의 취재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아슈라프에게는 답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사코는 제대로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실제로 답을 했을지 모르겠으나, 사코는 그리지 않았다. 사코의 여정을 따라 독자들은 사코와 같은 것을 보았다. 대답이 그려지지 않은 질문은 답을 상상하게 한다. 상상하려면 이입해야 한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은 그렇게 제언하고 있다. 이제 답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2018년은 이스라엘 건국 70주년이자 팔레스타인 나크바(Nakba, 재앙의 날) 70주년이다. 2018년 6월 19일. 미국은 유엔 인권이사회(UNHRC)에서 탈퇴했다. 세계 난민의 날(6월 21일)을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 인권탄압국들이 이사회에 가담해있고 앞으로도 이사국으로 선출될 것이라는 점과, 이사회의 반미주의· 반이스라엘 주의가 미국의 탈퇴 사유였다.

5월 14일은 이스라엘 독립기념일이었다. 미국은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였다. 이를 계기로 가자 지구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격렬한 항의 시위가 일어나 이스라엘군이 강경 진압에 나섰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시민 최소 58명이 목숨을 잃고 2,771명이 다쳤다.

3월 30일은 땅의 날이었다. 이 날을 기념하여 가자 지구에서는 매주 금요일 ‘위대한 귀환’ 행진 시위가 열리고 있다. 이스라엘은 총격 등 무력 진압으로 대응했다. 3월 30일부터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인 13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스라엘 측 사상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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