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2018 신인만화평론가 공모전 수상작> 그들이 얼굴을 찾을 때까지 : <그해 봄>에 부치는 글 (그해 봄 리뷰)
(대상 / 자유평론)
한기호 2019.01.03



고백하자면 이 글은 절대 평론이 아니다. 또 고백하자면 이 글의 제목은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C.S.루이스의 소설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를 패러디한 것이다. 하나 더 고백하자면 <그해 봄>이 다루는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여덟 명의 목숨이 사라지던 해에 나는 같은 반 여자애를 좋아하던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얼굴은 그 사람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지표이다. 어떤 이는 손으로, 또 어떤 이는 뒷모습으로 그 사람을 읽는다고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얼굴이다. 첫인상이 중요하다거나 첫눈에 반한다는 것도 모두 얼굴이 기본이 된 상태에서 나온 표현들이다. 얼굴이 그 사람 자체의 표상이기에 박인환은 그의 시 <얼굴>에서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라고 노래했다. 얼굴을 잊는다는 것은 곧 남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상이 그러함에도 왜 박건웅 작가는 그의 작품 <그해 봄>에서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지워버린 것일까? 이 글은 그 이유를 추측해보는 글이다. 

가장 먼저 예상해볼 수 있는 이유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그들의 얼굴을 모른다. 또한 작가는 그 가족들의 얼굴도 모른다(인터뷰한 사람은 제외하고). 심지어 작가는 그들을 강제로 끌고 간 인물들과 그 주변 인간들의 얼굴 역시 모른다. 작가가 아무리 만화가라고 할지라도 이 만화는 이미 사실에 기초한 작품이니 인물의 얼굴 또한 사실에 기초해서 그려야 할 것이다. 다른 시사만화나 위인만화 등이 그러하듯이.

그런데 정작 실제 인물을 모르고서 그들의 얼굴을 함부로 추정해서 그리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이나 먼저 떠난 사람 모두에게 미안한 일일 것이다. 비록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했다고는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그분들은 만난 적이 없다. 그분들은 어느 날 갑자기 끌려가 이해할 수 없는 재판(이것은 재판이라고 정의해서는 안 된다.) 끝에 형장에서 사라진 분들이다. 그러니 당사자의 얼굴을 모르는 상태에서 주변 인물들만을 섬세하게 그리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얼굴을 그리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 추측은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 이미 해당 사건 관련 신문 기사 등이 인용된 부분을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간단하게 인터넷 검색만 해도 당시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여덟 분의 모습은 흑백사진으로 선명하게 잘 나와 있다. 그러니 그들의 얼굴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지 않았다는 예상은 잘못된 추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작가는 얼굴을 그리지 않는 것이 일종의 예의라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겠다.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예의, 살아남은 가족들의 고통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함이었다고 추측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오래전부터 동방예의지국임을 자부하는 나라이다. 그런 나라의 국민으로서 다른 사람의 죽음을 소재로 만화를 그린다는 행위 자체는 매우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만화를 보면 돌아가신 분들의 고통이 재판 당시 얼핏 목격한 모습이나 사후 어렵게 확인한 시신의 상태를 통해 유추할 때 무척이나 끔찍해서 상상하기도 무서운 것들이었다. 그런 고통을 당하고 급격하게 처형을 당한 분들의 얼굴을 그린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한 남겨진 가족들의 고통 역시 상상할 수 없이 큰 것이어서 무슨 설명을 덧붙일 수가 없는 상황이다. 평생을 연좌제의 굴레에 묶여 삶 자체를 송두리째 빼앗겨버린 유가족의 고통을 생각해보면 과연 그분들의 얼굴을 그리는 일이 올바른 것일까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추측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만화는 돌아가신 분들과 그 가족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그리지 않기 때문이다. 억지로 끌고 간 사람들, 고문을 한 사람들, 재판을 한 사람들, 남은 가족들마저 끝까지 감시한 사람들, 현재도 살아있는 어떤 권력들. 도무지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고 보기 어려운 그런 존재들. 그런 자들의 얼굴조차 그리지 않은 것을 보면 이것이 굳이 예의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다시 추측해보자면 작가는 일종의 교육적 차원에서 얼굴을 그리지 않은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는 <그해 봄>을 통해 어떤 위대한 업적을 세운 영웅이 아니라 간첩으로 몰려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진 여덟 사람의 이야기를 만화로 만난다. 이 사건은 국가 차원에서 활발하게 홍보한 사건도 아니며 교육적 의의를 부여해 학교에서 수시로 가르친 역사도 아니다. 우리 현대사에서 간첩 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학교와 언론과 각종 회합을 통해 강제적으로 주입을 받던 일종의 반공 교육의 이력을 돌아볼 때 이처럼 규모가 큰 사건에 대한 교육적 침묵은 매우 의아한 것이다. 한두 사람의 간첩만 잡혀도 온갖 강연회와 영상 홍보와 웅변대회까지 잇달아 전개되던 것이 그 시대의 교육적 풍토였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해서는 마치 모든 사회가 공동으로 암묵적 합의를 한 것처럼 조용했다. 게다가 한때 나라의 최고 권력자였다가 지금은 불행하게도 영어의 몸이 되신 어떤 분께서는 이 사건을 두고 ‘두 개의 서로 다른 판결이 있다’는 식으로 발언하여 다수 국민들의 공분을 샀을 뿐 아니라 역사교육의 필요성을 몸소 알리기도 한 적이 있다. 그러니 이런 중요한 사건을 만화로 그림으로써 그 교육적 의미를 돌아보고 우리 사회에서 어느덧 사라져가는 반공 교육의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지 추측해본다.

그러나 이 역시 적절한 추측이 되지는 못한다. 교육적 차원에서 얼굴을 그리지 않을 것이라면 돌아가신 분들이나 유가족들의 얼굴은 그리지 않는다 할지라도 잡아가고 판결한 사람들의 얼굴은 명확히 그려야 할 것이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혹은 그 반대로 반공 이념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적 차원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여덟 명의 얼굴은 선명하게 그려야 마땅할 것이기 때문이다. 얼굴을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교육적 의도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그러한 생각의 마지막에 오면 이 만화에서 작가가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그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작가는 이 만화의 얼굴들을 그리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는 아마 그 많은 얼굴들을 그리지 못했을 것이다. 

얼굴을 그리지 못한 이유 첫째는 부끄러움 때문이다. 그 부끄러움은 한 개인으로서 이런 중대한 사건에 대해 무지했던 자기비판에서부터 우리 사회 전체가 이 슬픈 현대사에 대해 줄곧 외면해오고 있었다는 공적인 것까지 포함한다. 우리는 너무 몰랐다. 모르면서도 알려고 굳이 애쓰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알면서도 짐짓 외면해왔다. 오래 묵은 과거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고통스런 이웃의 외침에 침묵해왔다. 내가 직접 피해를 입는 일이 아닌 이상 굳이 다른 사람들의 일에 간섭할 필요가 없다는 천박한 이기주의는 우리 주변 곳곳에 남아있다. 그것은 종종 뉴스에 나오는 위대한 유물에 오물로 남겨진 천박한 낙서처럼 우리 현대사의 곳곳에 부끄러운 흔적으로 새겨져있다. 침묵이 정의가 아니라는 것, 몰랐다는 것이 변호가 되지 못한다는 것. 그런 것들에 대한 총체적 부끄러움의 표상이 작가의 책무처럼 떠올라 차마 얼굴을 그리지 못했을 것이다. 

불분명한 사상과 사유 방식을 기준으로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선과 악으로 함부로 양분해버린 이 사회의 기묘한 분리주의에 대해 이제 우리는 좀 더 구체적으로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 시대에 내가 주체가 아니었기에, 그 시대는 이미 지나갔기에, 그 시절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기에 부득이한 일이었다는 식의 핑계는 역사를 살아가는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시대에 대한 공동의 책임을 안고 살아야 한다. 그러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경우라면 최소한의 부끄러움이라도 가져야만 한다. 

얼굴을 그리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감히 추측하건대 차마 그릴 수 없어서였을 것이다. 이 참담한 사건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하지만 용기만 가지고 만화를 그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흔히 만화는 가벼운 오락물로 취급을 받을 뿐 묵직한 주제를 담아내는 장르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만화가 지나치게 무거워지면 작가나 독자 모두에게 부담이 크다. 문장으로 기술되는 것의 무게감을 그림과 함께 담보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 사건을 만화로 그렸다. 쉽지 않은 결단이었으리라.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는 일은 옳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그 억압이 아무런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를 생각하자. 그 억압이 한 개인의 권력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상황을 생각하자. 그 억압이 사욕을 위해 구축된 거짓의 틀 안에 이루어진 것임을 생각하자. 그 억압이 한 개인의 목숨을 강압적으로 빼앗는 것임을 생각하자. 그 죽음이 개인에 머물지 않고 숱하게 많은 남겨진 목숨들과 오래도록 연결된 것이었음을 생각하자. 

어떤 중요한 이유나 근거를 댄다고 해도 이 사건은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오죽하면 그들이 처형된 날을 사법 역사상 암흑의 날로 정했을 것인지에 생각이 이르면 가슴이 먹먹해온다. 우리가 현재 함께 숨 쉬고 살아가는 시대에 일어난 이 부끄러운 역사를 기록하는 일, 그것을 다른 장르가 아닌 만화로 그려내는 일이란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다. 차마 그릴 수 없는 것을 그려야만 하는 처절한 순간들을 작가는 얼굴 없는 그림으로 대체한 것이리라. 그래서 독자로서는 이 작가의 전작이었던 <짐승의 시간>에서 충격적인 고문 장면 묘사를 대신했던 그 흰 여백을 <그해 봄>의 곳곳에서 마주하는 심리적 무게감이 크다. 이 작품의 얼굴을 그리지 않은 작가의 의도를 비트겐슈타인의 표현으로 대신하면 다음과 같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고백하기로 하자. 나는 <그해 봄>을 사서 책꽂이에 꽂아두고 한동안 펼쳐보지 못했다. 떠나간 분들과 남은 가족들, 그리고 역사 앞에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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