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2018 신인만화평론가 공모전 수상작>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보낸 내 친구, 마로를 기억한다는 것 (내친구 마로 리뷰)
(우수상 / 지정평론)
김산율 2019.01.03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말 ‘작별상봉(作別相逢)’


작별이란 무엇인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짐을 의미한다.
상봉이란 무엇인가? 서로 만남을 의미한다.

공교롭게도 국어사전에서 ‘작별’과 ‘상봉’은 반대어로 규정한다. 작별과 상봉은 그 현장의 완성된 결과이다. 작별이면 헤어짐으로서, 상봉이면 만남으로서 행위가 종결된다. 두 단어는 함께 쓸 수 없는 조합이다. 작별상봉이란 말이 실제로 쓰이는 현장이 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장에서다. 이산가족은 헤어지는 당일 작별상봉을 한다. 부모와 형제, 남편과 부인, 형제와 자매들이 수 십 년 만에 만나고서 2박3일 후 헤어지기 위해 만나는 행사가 작별상봉이다. 천륜으로 얽힌 가족들이 ‘헤어짐’을 온몸으로 거부하지만 이념과 체제는 허락하지 않는다. 가족 간 작별은 육체적 죽음으로만 가능하지만 작별상봉은 사회적 죽음을 선고하여 작별을 고하게 한 후, 상봉을 붙여 선심을 쓴다. 하지만 이런 현실 앞에 북녘의 칠순 아들은 구순의 남녘 아버지에게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요! 그래야 또 만나지”처럼 성심을 다한 다짐으로 마음만은 결코 지지 않는다.

작별상봉을 위해 ‘내 친구 마로’와 함께 떠나는 여정 
작품의 주인공 예빈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며 할머니와 단 둘이 산다. 운동회에 참여할 부모님이 안 계신 것이 원망스러운 예빈이는 운동회 연습에 참가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예빈이가 어릴 때 병으로 돌아가셨고, 딸 바보라고 불리던 아버지는 예빈이의 일곱 살 생일 날 눈 길 교통사고로 눈을 감았다. 아빠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생각하는 예빈이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성장했고 아웃사이더적인 행동으로 친구 관계 역시 살얼음판이다. 아버지를 잃은 날 당일 아빠의 귀가를 종용한 자신 때문에 교통사고를 당한 것으로 자책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책망하는 예빈이는 집 담벼락에 낙서를 하며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표출한다. 이 때 나타난 친구가 바로 ‘마로’다. 마로는 덩치 큰 사자 같기도 하고, 곰 같기도 한 상상 속의 친구이다. 

예빈이는 마로와 신기한 만남을 통해 자신을 바꾸어간다. 마로와 함께하는 신비한 놀이는 예빈이가 그 동안 자신 안에 갇혀 펼쳐보지 못한 유년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만끽하게 한다. ‘시간의 페이지’는 마로가 가진 특별한 능력으로 여행자가 해당 시간의 페이지를 넘기면 그 시대로 가서 30분간 머물 수 있다. 예빈이는 시간의 페이지로 공룡시대에도 가고, 아버지의 어린 시절과 조우하고, 부모님의 결혼에도 큰 역할을 한다. 현실에 부재한 부모님과 만나는 과정에서 예빈이의 자아와 자존감은 성장한다. 

어느 날 마로는 방마다 여러 시공간이 뒤섞여 있는 ‘모험의 집’을 가져온다. 예빈이는 그 집에서 다른 차원에서 아빠와 살고 있는 어린 예빈이를 만난다. 시간의 페이지 활용법이 익숙해진 예빈이는 고심 끝에 아빠를 살리기 위해 사건 당일로 돌아간다. 하지만 시간의 페이지의 법칙은 현재를 바꿀 수 없다. 과거를 바꾼다고 현재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다. 즉, 아빠는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그럼에도 예빈이는 다른 차원 속 예빈이가 아빠와 함께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간 모험을 감행한다. 예빈이의 용기와 노력으로 다른 차원의 일곱 살 예빈이는 무사히 귀가한 아빠의 생일 축하를 받는다. 예빈이도 일곱 살의 자신에게 생일축하를 전한다. 아빠를 살리고 돌아온 예빈이는 할머니와 같이 운동회에 참여하고 마로는 새로운 친구를 찾아 떠나며 작품은 마무리 된다. 

“내가 사는 세상은 바뀐 게 없을지 몰라도 나는 뭔가 달라진 것 같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만든 것이다.”라는 책 제목처럼 아빠를 구하고 온 예빈이는 어제의 예빈이가 아니다. 첫째, 결심이다.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던 아빠의 죽음을 스스로의 힘으로 다른 차원에서나마 정상으로 돌려놓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하지만 실수의 결과를 바로잡기 위한 행동을 결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둘째, 용기이다. 시간의 페이지에서 30분이 지나면 ‘경계인’들이라 불리는 집단에 의해 영원히 갇히게 된다. 아빠를 구하는 과정의 위험성을 알고도 무릅쓴 용기는 대단하다. 김훈 작가는 ‘불자동차’란 글에서 “인간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고, 인간만이 인간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인간만이 인간을 위로 할 수 있다.”라고 썼다. 보통 부모가 자식의 안위를 위해 투신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예빈의 행동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큰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친구이다. 어린 시절 성장 발달과정에서 매우 큰 부분은 친구관계다. 예빈이는 마로를 만나기 전 친구가 없었다. 예빈이의 첫 친구 ‘동희’는 유년 시절의 아픔을 ‘무아’라는 상상의 친구를 만나 잘 이겨낸 경험을 가지고 있다. ‘동희’는 그 경험을 예빈이와 나누려 하지만 쉽지 않다. 예빈이가 아빠를 구하러 가서 시간의 페이지에 갇혔을 때 ‘동희’ 역시 위험한 그 곳에 가서 손을 길게 뻗어 예빈이를 구해온다. 지금껏 친구에게 도움 받아 본 기억이 없는 예빈이는 이 일을 계기로 ‘동희’를 친구로 받아들인다. 

현실로 돌아온 예빈이는 이제 부모님의 부재가 부끄럽거나 원망스럽지 않고, 친구의 마음과 행동을 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것은 학교와 마을 사람 모두가 함께하는 운동회에서 남들과 다르지 않게 ‘평범’하게 어울림으로서 완성된다. ‘결심’, ‘용기’, ‘친구’라는 보석들을 마음에 담게 된 예빈이는 비로서 자신을 아름답게 가꿀 준비가 된 것이다. ‘결심’으로 자신을 다스리며, ‘용기’는 마음의 다짐이다. 그리고 ‘친구’라는 삶을 함께 할 공동체적 가치를 체득하게 된다.

성장하기 위해 헤어져야 하는 ‘내 친구 마로’ 
“만나면 너무 슬플까봐 겁이 난다.” 예빈이가 아빠를 그리워하며 한 말이다. 아마 작별상봉장에 가는 길의 이산가족들 역시 그런 생각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렇게 비인도적 행사장에서 다시 만나 인사와 안부를 나누는 것은 필연적 인간애이다. 예빈이는 마로를 만나 아버지와 아름다운 작별상봉을 했다. 작품 속에서 예빈이와 마로 사이에 작별상봉은 없었다. 어쩌면 이제 더 이상 예빈이에게 마로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인사도 없이 떠난 마로를 보며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 등장하는 ‘빙봉’이 연상된다. 빙봉은 ‘기쁨이’와 함께 탄 수레에서 스스로 뛰어내림으로서 기쁨이를 탈출시키는 대 성공하지만 기쁨이와 작별인사를 나누지 못한 채 떠나게 된다.

삶에 있어 유년기와의 작별은 매우 역사적이고 숭고한 과정이다. 우리 모두에게 ‘마로’가 존재했을 것이고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작별의 시기에 나타났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마로가 등장했을 때 예빈이는 처음 본 낯선 괴물로 인식했지만 마을 어른들은 마로를 익숙하게 대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아이들은 마로가 찾아오면 몸과 마음에 큰 요동을 일으킨다. 유년기의 추억과 기억을 온전하게 저장하고 새로운 청년기의 마음을 열어젖히기 위한 태동이다. 어른들과 사회는 아이들의 자아가 커가는 과정에서 마로가 찾아 온 것에 대해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 

철이 들며 사라져버린 우리들의 잃어버린 유년기를 비추는 거울
어쩌면 우리는 너무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보듬어 안아야할 어린이들까지 경쟁의 링 안으로 올려놓은 뒤 어른들의 기준을 적용하고 재단해왔던 것을 아닐까. 철부지 아이들의 철없음은 흠이 아니다. 철이 든다는 것은 세상 속에 동화되는 것이고, 마로는 내 친구의 철없음이 혹여 해가 될까 그 지점을 아무도 모르게 지워준 것은 아닐까.

<내 친구 마로>가 주는 작품의 파생적 가치는 예빈이의 성장을 독자들도 함께 지켜보며 성숙해진다는 점이다. 또 아이의 성장과정에 맞춘 어른들의 마음가짐, 더 나아가 우리 공동체의 인식을 전환하는 담론을 제공한다. 김홍모 작가는 ‘유년기의 삶과 생각, 사회화의 과정은 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진심어린 묘사로서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을 전해준다. ‘어린이 창작 출판 만화 시장’은 매우 협소하지만 장르의 가치는 엄중하다. 이 작품은 전 2권 모두 재쇄 이상을 찍어 작품성뿐 아니라 대중성, 상업성을 인정받아 시장 내 장르의 영역을 공고히 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예빈이가 보여주었듯 우리들의 유년기 기억 중 일부가 어떤 이유에서 사라졌는지 살펴봤다. 그 때가 생각나지 않지만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선 앞에 나 혼자 외로이 서 있지 않았음을 확인 한 것으로 큰 위안이 된다. 나도 예빈이처럼 ‘결심’하고 ‘용기’내고 ‘친구’와 함께 극복했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이제 그 기억을 되살려 내 삶에 다시 채워 넣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 친구 ‘마로’를 기억하는 길일 것이다.
<내 친구 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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