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2018 신인만화평론가 공모전 수상작> 엄마 냄새가 생각나서 눈물이 나는 어른들의 반성문 (아이들은 즐겁다 리뷰)
(우수상 / 자유평론)
김산율 2019.01.03



예전에는 맞고,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 시절의 공간과 기억들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어쩐지 가슴이 저릿해오는 소년이 있을 것이라 짐작해봅니다. … 중략 … 이 책을 본 후 혹여나 독자들의 마음에 ‘다이’가 그러한 소년 중의 하나로 기억된다면 창작자로서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일 것입니다.” 작가의 말 중

그것은 노스탤지어((Nostalgia)다. 그리움이다. 어른이 되어 맞닥뜨린 가혹한 현실의 도피처는 어린 시절이다. 돌이켜보면 예전의 아이들은 밖에서 놀았다. 밖에서 자연스럽게 친구를 만나 놀이를 익히고, 사회를 배웠다. 자연스럽게 동네 형, 언니들이 아이들의 보호자 역할을 맡았고, 시간이 흐르면 어린 아이들이 누나와 오빠가 된다. <아이들이 즐겁다>의 배경은 1990년대 저녁이 되면 엄마들의 ‘밥 먹어라’의 외침이 동네에서 메아리치던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이다. 

작품의 주인공 ‘다이’는 엄마가 중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어 혼자 밥을 먹어야 한다. ‘밥 먹어라’는커녕 저녁상을 기대할 처지가 아니다. 밤늦게 그리고 새벽처럼 일을 나가는 아빠는 얼굴 보기도 힘들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다이의 가장 중요한 일과는 엄마를 보러 병원에 가는 것이다. 다이의 가정은 집이 아니라 엄마의 병실 속 작은 침대가 전부이다. 자신이 겪은 일들과 친구관계, 속 깊은 이야기들을 엄마의 품속에서 털어놓고 나오는 것이 가족 간 유일한 정서적 소통이다. 

다이는 왼손잡이다. 다이의 상상대로 밖에서 신나게 친구들과 놀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가 찌개를 끓이고 있고 엄마의 다리를 안고 뺨을 부비적거린 후 퇴근한 아빠와 오순도순 저녁밥을 먹고 이불을 펴고 함께 자는 환경이었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작품 속 왼손잡이는 가정교육이 방임된 상징물이기도 하다. 다이는 글을 가르쳐주는 사람 없었음에도 혼자 깨우치고 받아쓰기, 수학 시험마다 100점을 받을 정도로 혼자인 생활을 꿋꿋이 버텨 나가고 있다. 

아이들의 슬픔을 연료로 태우며 달리던 시대, 텅 빈 운동장 정글짐에 혼자 올라서 있는 아이들
“세상의 때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순수한 원래의 나. 만약에 그 순수했던 내가 가장 이상적인 환경에서 자랐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본 적 있어? … 중략 … 사람들이 와서 나에게 상처 주고 나를 구기고 발로 차고 그러면 내 모습이 일그러지잖아. 그러면 나는 자꾸만 펴는 거야. 나의 진짜 모습이 구겨지지 않게. 다른 사람들이 망가뜨린 모습대로 살지 않게. 원래 내가 되었어야 할 모습으로.” <좋아하면 울리는-천계영> 중에서

아이들이 즐거운 이유는 과거나 현재, 미래에나 스스로 뭔가를 해본 첫 기억의 장면들, 즉 설렘이 있기 때문이다. 생애처음으로 자신의 의지와 이유로 버스를 타보고, 무언가를 사먹고, 자신들의 아지트도 꾸며보는 그런 과정에서 분명하게 겪은 시행착오들은 인생의 페이지에 앞장에 쌓을 것이다, 친구와 싸우고, 친구를 따라 무리지어 누군가를 헐뜯고, 친구와 함께 물건을 훔치는 불안했던 순간들은 본문에 적기보다 부록에 넣고 싶을 것이다, 어린 시절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사귀고, 헤어지는 과정 등 모든 것이 아름답진 않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우리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순간들이었고 전부였다. 

다이의 삶이 기구함에는 다이의 일상을 구기는 어른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정형편, 가족관계를 이유로 아이들에게 참 많은 차별과 멸시가 자행된 폭력적 시절이 있었다. “아이도 예쁜 짓을 해야 사랑 받을 수 있다”는 작품 속 이야기처럼 아이들의 존재만으로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한 미성숙의 시대가 존재했다. 

다이는 그런 순간들을 홀로 맞이한다. <아이들은 즐겁다> 단행본 앞표지를 보면 다이가 텅 빈 운동장 정글짐 제일 높은 곳에 위태롭게 한쪽 속을 잡고 앉아있는 모습이다. 다이는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위기가정’으로 보호를 받아야 할 상황이다. 당시에 우리는 무지했다. 부모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초등학교 1학년의 일상은 그야말로 시한폭탄이다. 학교에 지각하고, 급식비가 밀리고, 입 냄새가 나고, 머릿니가 생겨도 다이를 챙겨 줄 사람은 집 안에 없다. 이럴 때 마다 작가는 흑백만화임에도 다이의 얼굴에 붉은 칠을 함으로써 우리들의 유년기 기억을 노골적으로 소환한다. 

좀 더 시선을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로 이동해본다. 틀린 문제 한 개당 매를 맞아야 하는 안경이, 반장이 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현이, 그림을 잘 그리지만 가난해서 꿈을 접어야 하는 유진이, 깡패 형의 도움을 받으면 정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민호, 다이를 좋아하는 부잣집 딸 시아, 그리고 동네에 한 명씩 있었던 방치된 아이 원숭이… 앞서 다이가 겪었던 사고들, 그리고 동네에서 함께 자랐던 그 아이들은 분명 우리가 어렸을 때 목격했던 낯익은 모습이자 풍경이었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존재의 이름
상처받은 어린 영혼의 유일한 안식처는 엄마이다. 엄마 역시 세상 하나뿐인 자신의 분신만이 병마와 싸우는 이유이다. 그래서 다이와 엄마는 병실에서 서로 헌신적으로 사랑한다. 다이의 재잘거림은 엄마에게 유일한 진통제이며 다이에게 엄마의 말은 성전이다. 엄마 말을 안 들으면 곧 엄마가 죽을 것 이라는 공포가 찾아온다. 매일 혼자 차려 먹는 끼니보다 엄마 병원 밥이 더 맛있는 다이는 엄마가 밥을 잘 먹어야 엄마가 오래 살 수 있는 대답에 누구보다 맛있게 식사를 한다. 그리고 엄마를 보러 병원에 가는 것은 다이의 하루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의식이다. 

다이의 슬픔은 엄마의 부재에 기인한다. 다이는 엄마의 병색이 나빠지는 것이 자신이 엄마를 보러오지 않거나, 늦게 온 것들이 쌓여서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엄마가 치료 때문에 병실을 비우면 다이는 엄마 베개의 체취만으로 위로를 받지만 엄마는 현실에서 해줄 것이 없다. 엄마는 아들로부터 소개받은 첫 친구 민호에게 다이와 사이좋게 지내달라는 부탁정도가 다이를 위한 행동의 한계이다. 다이와 민호가 문병을 마치고 정답게 병실을 떠나는 그림자 뒤로 엄마가 칠흑(漆黑)의 어둠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작품연출의 백미이자 중요한 복선이다.

어느 날 다이가 있는 교실로 아빠가 헐레벌떡 찾아왔다. 다이는 알고 있다. 친구 유진이도 학교로 누가 찾아왔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빠와 함께 간 곳은 역시 엄마의 병실, 의료진은 마음의 준비를 하라했지만 엄마는 다행히 깨어났다. 그 동안 다이의 무서움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치료경과는 차도가 없다. 
작품 속 다이의 아빠는 작품 초반 가정을 등한시 하지만 천진하고 아름다운 아이 ‘다이’에 감화되어 부모의 모습으로 성장한다. 아이들은 돌봄과 보살핌이 필요함을 깨닫고 밖에서 오랜 시간 집을 비워야 하는 일 보다 다이 곁에서 일할 수 있는 열쇠기술을 배운다. 아이의 알림장을 꼼꼼히 확인하고 소풍 준비도 착실히 마련해준다. 단짝 친구 민호와 놀이공원도 같이 가면서 이제 다이도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어색하지 않고 즐겁다. 

엄마라는 숭고한 이름에게 바치는 반성문
어느덧 시간이 흘렀다. 다이가 처음으로 탄 택시는 아빠와 함께 황급히 엄마의 병원으로 향하는 길이다. 결국 엄마는 숨을 거뒀다. 아빠는 나직이 “끝났다 끝났어.”를 내뱉는다. 그 동안 짓눌렸던 회한이다. 다이는 아빠와 함께 엄마의 장례절차를 함께 한다. 얼굴에 백지가 덮인 조용하고 차가운 엄마 곁에서 엄마의 볼에 뽀뽀를 한 후, “다이는 엄마를 사랑해”를 말하며 둘 만의 작별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엄마가 다이에게 남긴 편지, “다이를 위해 엄마가 쓴 동화” 한 편, 동화작가가 꿈이었던 엄마가 다이만 세상에 홀로 두고 가는 길에 쓴 유작이자 삶의 지침서 ‘슬픔의 나무’

망자는 ‘슬픔의 나무’에 걸려있는 사연을 택해 현재보다 나은 생을 선택할 수 있다. 엄마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다시 한 번 더 선택한다. “매일 부서질 것만 같이 아팠던 몸의 고통보다도, 그 예쁜 아이를 몇 번 안아보지도 못한 것이 저에게는 더한 설움이었습니다. 다이야, 사랑해” 엄마는 다시 그 길을 걸어간다. 이윽고 엄마는 혼령이 되어 장례식장에 돌아와 다이를 꼭 안아주는 장면으로 작품은 대단원의 끝을 맺는다.

<아이들은 즐겁다>는 작가의 데뷔작이자 네이버 웹툰 연재작품으로 도전 만화-베스트도전-정식연재의 정식 데뷔루트를 따랐다. 작품은 독자들이 쉽게 몰입되도록 작화 적으로 ‘카툰화’ 장치를 전략적으로 사용한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인물과 배경의 묘사가 매우 단순화되어 독자들은 모두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로 대입되어 공감성과 환기성이 배가 된다. 특히 과거의 출판만화 시스템 보다 현재의 웹툰 시스템에 적합했던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만화 생태계적으로 큰 발견이자 수확이다. 원작자 ‘허5파6’은 이 후 <여중생A>를 발표하여 부천만화대상에 입상하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스타작가로 발돋움했다. 

코끝을 시큰하게 하는 엄마 냄새, 그 시절 슬플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위하여
우리는 다이의 엄마가 슬플 수밖에 없는 아이를 보듬기 위해 무저갱의 고통 속으로 다시 돌아간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다이 아빠가 가정으로 돌아 온 이유를 복기해야 한다. 아이들은 일상을 차곡차곡 모아 성장한다. 아이들은 사회와 어른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삼키면서 자란다. 그 중에 너무 뜨거워 삼키려 해도 삼킬 수 없는 응어리는 가정에서 연소되어 소화해야 한다. 아이들의 즐거움은 우리의 책무임을 작품은 말하고 있다.

지금도 생각난다. 화창한 햇빛이 드리워진 엄마의 화장대에 놓여있던 화장품들, 구체적으로 뭐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화장거울 앞에서만 지긋이 올라오던 엄마 화장품 향기, 그 아래 서랍장을 양 손으로 열어보면 옷들이 정갈하게 개어진 틈으로 나오는 나프탈렌 냄새. 그리고 엄마의 이불 속에 숨어들어 엄마냄새 속에서 낮잠을 자던 기억. 그때의 친구들과 내 생애의 첫 추억들, 남에게 말 할 수 없는 부끄럽고 창피한 기억, 왠지 모르지만 자신에게 화가 났던 이유들… 엄마냄새와 함께 찾아온 가슴 저릿한 소년이 바로 나였음을 확인한다.
<아이들은 즐겁다 (흐릿하지만 섬세한 유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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