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2018 신인만화평론가 공모전 수상작> 소외된 자의 무대 '소년의 마음' (소년의 마음 리뷰)
(우수상 / 지정평론 우수상)
임재환 2019.01.03

"나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 없이 오랜 시간을 홀로 지내왔다."
-생텍쥐페리 작, 「어린왕자」에서-

누구나 마음 속에는 그늘이 있다. ‘소년의 마음’의 무대는 과거 작가가 기억하고 있는 두 개의 방을 가진 작은 아파트이다. 어린 남동생이 외로이 차지한 거실은 연출 효과를 위하여 흔한 쇼파와 텔레비전 등 생활오브제는 생략되었다. 소복이 작가가 작품 후기에 동생과 같은 어둠을 지닌 아이와 어른에게 가만히 다가가 건네는 이야기라고 밝혔듯이 이 작품은 한 소년의 마음 속 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관성을 지키며 조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연출이기도 하지만, 거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의 무대적 활용과 극중 캐릭터의 순차적 등장은 만화연출에 있어 연극적 요소를 차용했다는 점에서 참신하고 실험적인 작품이다.

두 개의 방문과 항시 열려있는 거실 창문만이 외부 공간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이다. 외부로 항상 열려있는 거실 창문은 소년을 위로하고 놀아주는 상상의 동물들이 등장하고 퇴장하는 출입구이기도 하다. 독자는 한 소년의 마음 속 이야기를 들여다 보기위해 책 표지의 창을 열어 반응한다. 작가는 표지에 네모난 구멍을 실제로 뚫어내어 창을 뜻하는 적극적 의미작용의 파라텍스트로 책을 구성하였다. 

소복이 작가의 <소년의 마음>은 주인공이 누나들, 부모님, 할머니 그리고 독립적인 토토와 만나서 나누는 대화와 소년의 심리적 독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년의 실존적 방황과 소속감 찾기는 가족 관계의 일상적인 문화를 반영한다. 두 개의 굳게 닫힌 방문은 소년이 속하지 못한 집단을 뜻하며, 거실이라는 공간은 서사적ㆍ공간적으로 가족과 관계를 잇는 공간이다. 거실은 일종의 중립지역으로 누나들 사이의 갈등과 부모님 사이의 불화로 인한 이탈자와 소년이 연대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거실에는 관계의 흔적이 남는다. 누나들과 인형역할 놀이극에서 고정적 젠더 관념의 성역할 차이에 의해 소년과 누나들 간의 갈등이 야기되고 미미의 드레스가 흔적으로 남게된다. 이는 남아와 여아의 놀이의 선호방식 차이에 의한 사회적 고립감의 표현이다. 아버지가 던져 부서뜨린 전화기의 수화기는 가정 불화의 흔적으로 남게된다. 이러한 갈등의 흔적은 엄마의 청소를 통한 신경증적 불안의 해소로 이내 제거되는데, 기계는 무차별적으로 소년의 정신적 해방구이자 주술적 도구였던 색연필과 색종이마저 사정없이 집어삼켜 버린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소년은 엄마에게 존재의 가치를 묻는다. “엄마, 어차피 다 죽는데 나를 왜 낳았어?” 이미 소년 자아의 존재에 대한 의미는 소년 스스로 부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못된다. 이는 왜 고독한 자신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조물주에 대한 항변이며, 권력이란 관념에 답을 구하는 철학적 질문이다. 가정 내 권력자인 엄마도 그에 대한 답을 쉽게 할 수 없었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존재가 질서 내에 머물지 않고 행한 하극상이자, 생각조차 못한 즉흥적 대사였기 때문에 답을 잇지 못했다. 의식적이지 못한 사고는 폭력적이기 쉽다.

독자가 지면 위에서 바라보는 것은 현실과 허구 사이의 회색지대에 이식된 발췌들이거나 기성품들을 몽타주한 것들이다. 자립적 이질성을 강조한 형이상학적 동물들로 에워싸인 채 고정적인 실존주의적 상황에서 흑백의 스케치가 대조를 이룬다. 텍스트와 이미지의 다양한 상호작용은 과거를 현재화하고 초시간적인 공간과 현재를 오가는 등 작가의 추억과 환상을 미학적으로 형상화한다.

이 작품에서 미적 조형요소와 시각적 표현을 살펴보자면 작가의 기억 속 과거의 모습은 연필과 펜화로 묘화된 잿빛의 무채색으로 표현되어있다. 이에 반해, 소년의 외로웠던 추억을 위안하려는 작가의 상상과 환상은 생동감 있는 컬러로 채색되어 ‘환상과 유추’, ‘실재와 기억’을 구분한다. 과거의 지나온 사실적 추억은 바뀔 수 없지만, 소년을 위로하는 작가의 환상은 현재의 것이기에 생생하다. 색은 과거의 추억과 현실의 상상이라는 두 개의 층위를 구분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처럼 창작과 인생은 별개의 것인지도 모른다.

밤은 소년에게 죽음과 닮아있는 존재이다. 바라지 않아도 오는 죽음처럼, 밤도 거부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다. 자신이 공간을 통제할 수 없는 중립지대에 살아가는 소년에게 삶은 타자화되고, 선택은 종속적이지만, 죽음이 특별히 두려운 이유는 관계(소속감과 애정)의 단절 때문이다. 죽음은 소년에게 긍정적 애정을 준 할머니와의 관계를 단절시켰다. 소년에게 죽음과 밤은 그토록 닮아있었다. 밤의 미적 표현은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패러디 하여 소년의 심리적 위축과 긴장감을 표현하였다.

△ 게르니카(파블로 피카소)


△ 소년의 마음(소복이)


작가는 클리셰를 피하기 위해 과감한 변형을 시도한 '형상'을 통해 추상적인 객체를 만들어 냈다. 상투적인 이미지에 얽매이지 낳고 허구적 대상의 실재를 우리의 관념 속에 생생하게 만든다. 동생이 ‘말을 말처럼, 소를 소처럼’ 그렸다는 작가의 파편적 기억은 환영적 상상력의 재료들이 되었다.


소년의 심리묘사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상상 속 동물들과의 만남을 위한 주술적 행위에 상응한다. 각각의 동물들은 별개의 목적성을 둔다. 심심하면 그리는 소, 죽음이 무서우면 그리는 말, 밤이 무서우면 그리는 새, 새를 그렸음에도 밤이 사라지지 않으면 그리는 물고기는 서로 연관성 없이 나열되는 듯 하다가 주인공 심리 기저의 바다 속 여행을 통해 유기적으로 합쳐지는 구조를 보인다. 뒤집힌 책상을 타고 ‘바다’로 떠나가는 장면은 미국 초창기 신문만화 ‘리틀 네모Little Nemo’의 한 장면과 형식적 표현에서 닮아있다.

△ 리틀 네모(윈저 맥케이)


△ 소년의 마음(소복이)

소년의 내면심리를 상징한 바다에서 할머니는 아주 수영을 잘한다. 그만큼 누구보다도 소년의 마음을 알아주고 인정해줬던 할머니라는 존재적 의미의 은유적 표현이다. 소년은 할머니와의 실존적 대화를 통해 기억한다면 항상 함께 할 수 있다는 깨달음과 위로를 얻고, 죽음이 미처 끊어내지 못한 할머니와 심리적 작별을 나눈다.

이후로 소년은 주체적 행위를 통해 관계를 재설정한다. 누나와 엄마의 방을 찾아 잠이 든 누나들과 머리를 맞대며 소속감과 안도감을 느끼고, 안방을 찾아 울다가 지쳐 잠이 든 엄마를 위로하는 아이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소년은 조용히 창문으로 다가가 베개를 딛고 올라선다. 주인공은 독자를 등지고 선 채, 무대의 밖을 마 주한다. 주인공이 바라 본 무대의 밖은 새벽녘 어스름 속에서 신비롭게 헤엄치며 어딘가로 떠나가는 물고기가 있다. 온통 불이 꺼진 채 늘어선 아파트 건물들은 도시의 맥락 속에 존재하는 오브제일 뿐이다.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그 창을 통해 소년은 드디어 작가와 마주한다. ‘나 여기 있다고, 잘 지내고 있다’고 소년은 작가에게 안부 인사를 건낸다. 마지막 손인사는 소년의 동행자였던 독자에게 건내는 인사이기도 하다. 작은 ‘창’에서 시작된 소년의 마음으로의 여행은 다시 그렇게 창에서의 손인사로 끝을 맺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소속감과 외부로부터의 인정을 추구하며 이를 통해 인생의 목적을 갖게 된다. 극중 소년은 가족이라는 미시적 사회체계 속에서 외롭고 고독했다. 그러나 작품으로 승화된 소년의 외로움은 다른 이에게 나 또한 외로웠다며 위로할 수 있는 미학적 힘을 가지게 되었다. 책을 덮으며 생텍쥐페리의「어린왕자」에 나오는 어느 소외된 자의 독백이 떠오른다. 

“사람들 속에서 지내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야.”
<소년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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