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2018 신인만화평론가 공모전 수상작> 경쟁 vs 상생 (쌉니다 천리마마트 리뷰)
(가작 / 자유평론)
김재훈 2019.01.03



최근 웹툰계에 재연재의 바람이 불고 있다. 네이버 웹툰은 독자들이 선정한 7개의 완결 웹툰을 각각 월요일~일요일마다 배치하였고 다음 웹툰 또한 5개의 완결 작품을 다시 선보였다. 아직 역사가 깊지 않은 웹툰 시장에서 벌써 과거의 명작들을 그대로 다시 선보인다는 것은 이를 뛰어넘는 신작들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그래도 세월이 지나서 다시 만나는 작품들은 첫 연재 때와는 다른 신선한 느낌을 준다. 아마 우리 모두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형할인마트는 여러 가지 의미로 친숙한 공간이다. 쇼핑, 식사, 문화생활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편리한 시설임과 동시에 갑질과 골목상권 침체의 주범으로 뉴스에 오르락내리락하기 일쑤이다. 그런 만큼 대형할인마트를 무대로 제작된 작품들도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영화 <카트>나 웹툰 <송곳>이 있다. 두 작품은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완성도가 매우 뛰어난 명작이다. 하지만 ‘대중적인가’라는 질문에는 쉽게 동의하지 못하겠다. 천만 영화가 반드시 명작은 아니듯 명작이 반드시 흥행하는 것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흥행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재미란 무엇인가. 만화가는 아니지만, 게임 개발자인 제시 셸은 재미를 이렇게 정의한다. “재미란 놀라움이 있는 즐거움이다”라고. 맞는 말이다. 재미는 놀라움이 필수다. 생각지도 못한 반전, 빵 터지는 개그, 숨 막히는 전개, 흥미로운 내용 등 장르와 주제를 떠나서 독자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할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카트>, <송곳> 두 작품은 ‘대중적인 재미’가 없다. 진지한 사회비판 만화에 대중적인 재미를 원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작품의 성격은 좀 다르지만 <미생>이 사회적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을 보면 대중적인 재미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어도 홍보가 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 아닌가. 작가인 최규석이 연재 플랫폼으로 네이버를 고른 이유로 더 많은 사람이 보길 희망해서라는 말을 하였는데 내용의 무게를 조금 덜고 대중성을 확보했다면 <송곳> 센세이션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사실 대형할인마트를 무대로 한 작품이 하나 더 있다. 위 두 작품처럼 직접적인 사회비판은 아니지만 강력한 김규삼 작가의 <쌉니다 천리마마트>다. 2010년부터 13년까지 연재하였고 독자들의 앙코르 요청에 2017년 재연재를 시작해 최근 다시 완결되었다. <쌉니다 천리마마트>가 앙코르 요청을 받을 만큼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김규삼 작가 특유의 유머 감각 속에 녹여낸 사회풍자의 영향이 크다. 작가의 전작인 <입시명문사립 정글고등학교>는 사립학교라는 무대에서 우리나라 입시시스템과 청소년 문제를 다루었다면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범위를 넓혀 어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천리마마트에서 벌어지는 만화이기에 가능한 뜬금없는 상황들은 웃음을 유발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메시지들은 사뭇 진지하다. 

주인공 문석구는 평범하다. 남들이 하니까 대학에 가서 남들이 하니까 스펙을 쌓고 졸업 후에도 남들이 하니까 취업 준비를 했다. 하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청년 실업 시대!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문석구가 취업에 성공하기란 만만치 않다. 여기서 그는 ‘왜?’라는 의문을 가진다. 수천만 원을 쓰며 정답이라고 생각해서 달려왔는데 문석구에겐 불합격이라는 결과만 돌아온다. 그러던 그는 뉴스에서 훌륭하신 분의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을 듣고 이력서를 넣던 중 한 대기업 유통회사 즉, 천리마마트에 취업한다. 입사 한 달 이곳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퇴사하려고 했지만 문석구 위로 정직원 3명이 사표를 내며 졸지에 점장이 되고 만다. 현실에서도 흔하다면 흔한 이 상황에서 또 한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바로 대마 그룹의 중역에서 천리마마트로 좌천당한 정복동 이사다. 사소한 원한이라도 반드시 갚는 성격을 가진 정복동은 천리마마트를 망하게 해서 자신을 쫓아낸 본사에 복수할 계획을 세운다.

계획은 단순하다. 다른 마트들과는 반대로 미친 짓을 하는 것이다. 동네 불량배, 무능한 뮤지션, 원시 부족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아르바이트를 200명 뽑아서 10만 알바양병설 만드는가 하면 정복동이 코스프레를 하고 직접 뛰어다니며 손님들과 술래잡기를 벌인다. 이런 기상천외한 일이 가능한 것은 수익성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수익 창출이다.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저비용 고효율이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협력업체를 향한 갑질, 소비자기만, 노동 착취 등의 문제가 나타난다. 즉, 기업의 수익을 위해 사람은 뒷전으로 밀린다는 말이다. 하지만 천리마마트는 수익을 포기하니 자연스레 사람 중심의 경영이 된다. 사회적 약자들을 채용하고 소비자들에겐 싸고 질 좋은 상품들을 제공하며 협력업체들에겐 파트너로서 공정한 기회와 대우를 제공한다. 수익 창출이 1번 가치인 다른 마트들이 볼 때 천리마마트가 하는 행동 말 그대로 미친 짓이다. 그러나 이 미친 짓을 본 사람들은 일반적인 할인마트와는 다른 행보를 보여주는 천리마마트에 열광하고 천리마마트 물품 구매 운동을 펼친다. 불매운동은 많이 보았지만, 구매 운동이라니 생소하지 않은가. 그 덕분에 매출은 수직상승하고 국가로부터 지원금을 받으며 본사의 골칫거리였던 천리마마트가 오히려 본사의 적극적인 푸쉬를 받는 계열사가 되고 상대적으로 사회의 이단아였던 직원들은 자신들의 잠재력을 발견해준 정복동에게 고맙다며 감사를 전한다. 

정복동은 본사에 있을 당시 구조조정을 통해 1700여 명의 직원을 해고했는데 편파적이라는 논란이 없도록 자신의 최측근마저 포함할 정도로 유능하고 냉정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해고당한 이들의 가정을 파괴했다는 죄책감에 상당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아마 정복동이 보통 마트처럼 천리마마트를 운영하였어도 눈부신 실적을 올렸을 것이다. 그런데 의도치는 않았지만, 마트를 망하게 하려고 했던 계획들이 오히려 매출을 높이고 직원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을 보며 남을 짓밟고 올라서는 경쟁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본사에 대한 복수보다는 착한 경영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문석구 또한 처음 정복동 이사가 천리마마트로 좌천당했을 때는 그를 보좌하는 젊은 와룡, 제갈량으로 활약해서 본사로 갈 생각을 하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회초년생이었다. 그러다가 정복동을 제거하려는 본사의 권영구에게 자신의 스파이가 될 것을 제안받고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 정복동과 권영구 사이에서 저울질 아닌 저울질을 한다. 권영구와 정복동은 각각 경쟁과 상생을 나타내는 인물이다. 그런 두 사람 중 문석구는 정복동, 즉 상생의 길을 선택한다. 그도 처음에는 다른 할인매장 점장들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정복동과 만나면서 상생 경영의 효과를 두 눈으로 목격했고 경쟁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던 야심 찬 젊은이 문석구는 상생과 협력을 아는 리더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동상이몽을 꿈꾸던 정복동과 문석구의 기상천외한 행동이 자신들은 물론이고, 크게는 지역사회를 바꾼 것이다.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사회비판도 훌륭하지만 탁월한 개그로 대중성을 확보한 작품이다. 정복동은 천리마마트에 부임한 후 직원들에게 상감마마 티셔츠를 입고 근무하게 하여 ‘손님은 왕이다’라는 기존 관념을 ‘직원이 왕이다’라는 새로운 관념으로 바꾸어 버린다. 첫 연재 시기인 2010년에도 정말 획기적이라는 말들이 많았지만 대부분 유머로서 웃어넘겼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바생들 사이에서는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는 티셔츠가 유행하고 기업의 고객만족센터에서도 상담사의 직원, 자녀들의 목소리를 녹음해 통화 대기 시간에 들려줌으로써 상담사 또한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라는 것을 알리는 등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이 실제 사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언젠가 천리마마트가 보여준 ‘소비자와 기업 간 상생의 가치’ 아래에서 온종일 서 있는 카운터 직원들을 위해 누울 수 있는 온돌 카운터나 어린이날 기념 할인 행사 대신 직원들이 가족들과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휴무를 통해 ‘진짜 어린이날 선물’을 주는 대형마트들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조심스럽게 희망해본다.



<쌉니다 천리마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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