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2018년, 웹툰에서 느끼는 공포의 감각
(‘재생금지’ 시리즈)
지덕재 (만화평론가) 2018.12.21



네이버 웹툰은 국내 최대의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웹툰 플랫폼이다. 네이버 웹툰은 2011년부터 매해 릴레이 단편을 선보이고 있다. 2011년 ‘미스테리 단편’으로 시작한 릴레이 단편 시리즈는 2012년 ‘지구가 멸망한다면’, 2013년 ‘전설의 고향’으로 이어지며 2018년에는 ‘재생금지’ 시리즈를 한시적으로 연재했다. 네이버 웹툰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연재된 이 시리즈는 매해 웹툰 팬들과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2011년 ‘미스테리 단편’에서 단연 가장 화제를 모은 작품은 <옥수역 귀신>이었다. 작가 호랑을 스타로 만든 이 작품은 실재하는 3호선 옥수역을 배경으로 일종의 도시괴담 같은 줄거리로 진행되었으나, 웹툰에서 잘 쓰이지 않던 3D 효과를 활용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적인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공포의 감각을 생생하게 일깨워 순식간에 입소문을 탔다.

작가 호랑은 같은 해 <봉천동 귀신>에서 마찬가지로 3D 플래시 효과를 한 번 더 활용해 재미를 봤다. 많은 네티즌들이 생소한 공포 효과에 열광했으며, 호랑은 네이버의 릴레이 단편에 등장하는 단골 작가로 활동했다.

호랑의 이러한 시도는 한국 웹툰의 역사에 있어서 기억할만한 순간이 되었다. 잡지나 단행본 등 종이책을 매체로 발전해 온 만화는 2000년대 이후 강풀과 강도하의 등장으로 변화를 맞이했다. 종이책을 토대로 컷 분할 위주로 내용을 전개하는 방식이 스크롤 형태로 변하였으며, 양영순의 <1001>은 스크롤이 보여주는 만화의 미학을 극치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2018년, 네이버 웹툰의 ‘재생금지’ 시리즈는 한국 웹툰의 또 다른 시도로 읽어야 할 것이다. 일종의 납량특집 시리즈로서 8월 5일부터 9월 2일까지 연재된 이 시리즈는 ‘재생금지’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주로 영상 기기와 관련된 공포를 다루었다. 

‘재생금지’가 그려내는 공포는 기본적으로 인터넷 개인 방송이나 카메라 플래시, 직캠 등 소재에서 기인한다. 웹툰 뿐만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에서 영상 기기를 소재로 도시괴담 류의 공포담은 자주 등장했지만, ‘재생금지’ 시리즈는 전통적인 영상 기기인 TV나 카메라 외에 AI 스피커 같은 첨단 기기도 이야깃거리로 삼았다. 그러나 ‘재생금지’ 시리즈는 소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지금까지 간헐적으로 시도되던 다양한 형태적 실험을 통해 공포의 감각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한 예로, ‘재생금지’ 시리즈의 9~10화인 <누리, 넌 누구니>(그림 QTT, 스토리 홍재혜)는 대중에서 익숙한 공포담에 AI 스피커라는 요소를 활용해 변주했다. 혹시 ‘삐에로 괴담’을 기억하는가? 어린 딸을 둔 어머니는 우연히 들른 인형가게에서 삐에로 인형을 발견, 딸의 간청에 못 이겨 사 주게 된다. 한사코 인형 판매를 거절하던 가게 주인은 어머니에게 ‘아무도 없을 때 절대 딸과 인형을 단둘이 두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어느 날 어머니는 가게 주인의 경고를 잊고 집에 딸과 인형만을 둔 채 외출하게 된다. 그리고 뒤늦게 경고를 떠올려 황급히 귀가한 어머니는 딸이 인형에게 잡아먹힌 모습을 보게 되고, 경악한 어머니의 귓가에 인형이 ‘또 둘이 남았네’라고 속삭인다는 이야기다.

<누리, 넌 누구니>는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이 괴담을 모티프로 한 공포물을 선보였다. 삐에로 인형 대신 AI 스피커 ‘누리’가 등장하는 이 작품은 후반부에 증강현실을 접목했다. 공포물의 필수적이 요소인 반전을 플롯과 작화뿐 아니라, AR 방식으로 구현해 충격을 극대화한 것이다. 

네이버 미스테리 단편 시리즈의 스타인 작가 호랑 역시 <손가락 귀신>으로 이번 시리즈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호랑은 <누리, 넌 누구니>에 등장한 AR 기법과 그의 장기인 플래시 효과를 더불어 활용했다. 주차장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마치 네티즌에게서 제보를 받은 것 같은 평범한 도시괴담의 시각적인 효과를 AR 방식으로 구현한 것이다. 그리고 AR 기법으로 받은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플래시 효과를 시간차로 보여주며 읽는 이들에게 심리적인 반전을 안겼다. 웹툰을 포함한 종래의 공포물이 전통적으로 플롯을 통해 반전의 충격을 극대화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손가락 귀신>은 시각적인 효과 그 자체가 반전이 될 수 있다는 웹툰 문법을 만들어냈다. 


이번 ‘재생금지’ 시리즈는 최근 PC 대신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감상하는 환경을 토대로 전통적인 웹툰의 스크롤 전개 방식에 다양한 기술적 변주를 접목했다. 스마트폰은 종이책이나 TV 및 스크린, PC 화면 등 보는 이의 시야를 압도하는 기존의 매체와 다르다. 고작해야 6~7인치 정도의 작은 화면을 손 위에 올려두고 감상하는 스마트폰 웹툰은 다른 영상 매체에 비해 집중력이 쉽게 떨어지는 매체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종이책보다 생생하고 스크린보다 능동적이며 브라운관보다 신체와 더 가깝다. ‘재생금지’ 시리즈는 이런 태생을 십분 활용했다. 불과 10~20센티미터의 간격을 두고 손가락으로 화면을 밀어 내리는 데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한편 증강현실을 이용해 강력한 ‘한 방’을 날린 것이다.

‘재생금지’ 시리즈의 이러한 시도는 과연 성공일까? 결과를 논하기에는 ‘재생금지’ 시리즈가 안고 있는 한계가 너무 크다. 한시적인 연재물인 데다 시리즈를 맡은 작가들의 개성도 중구난방이기 때문에 이번 시도를 평가하기에는 다소 어렵다. ‘재생금지’ 시리즈는 결과가 아닌 시도에 가까우며, 다만 우리는 이 시도가 앞으로 2018년을 지나 2019년과 그 이후에 어떤 모습으로 진화하게 될지 기대할 뿐이다.
<2018 재생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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