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츠즈이 씨와 츠즈이의 나날
<동인녀 츠즈이씨> (츠즈이 작)
이복한솔 (만화평론가) 2018.12.25



오타쿠 겸 동인녀는 픽션을 진지하게 소비한다. 원작자가 소개하지 않은 부분까지 연구하고 유추해내기를 좋아한다. 특히 두 명 이상의 남성이 참가하는 연애나 성애를 다룬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또 뭐가 있을까? 필자가 아는 것은 많지 않다.

이 글에서는 그들이 즐기는 콘텐츠가 어떤 것인지 다루지 않는다. 특정 개인이 오타쿠/동인녀가 된 자초지종을 논하거나 짐작하지 않는다. 츠즈이 씨는 오타쿠 겸 동인녀로서 자각한 시기와 자아가 형성된 시기가 겹친다고 말한다. 둘을 떼어 놓고 생각하기 힘들다는 뉘앙스다. 본인이 그렇다고 밝혔고, 필자는 관련된 내용이나 문화를 자세히 모르니 이어지는 내용에는 한계가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동인녀 츠즈이씨>는 ‘코믹 에세이'로 분류되는 작품이지만, 작중 등장인물들은 ‘그림일기'라고 부른다. 과연 작가가 소개하는 삽화들은 일기처럼 꾸밈없는 매력으로 이목을 끈다. 작중의 츠즈이 씨는 대학과 구직 활동을 거친 젊은 노동자인 동시에 오타쿠 겸 동인녀이다. 꼼짝없이 월요일마다 출근해야 하는 신세지만, 주간 만화 잡지 ‘점프’가 있어 그날이 기다려진다는 낙천적인 인물이다. 그는 여가를 매우 충실하게 즐긴다. 동인녀 동지와 함께 특정 콘텐츠에 대한 감상과 의견 공유하기, 피규어의 그림자를 크게 만들면 인간의 그림자처럼 보인다는 점에 착안한 그림자 놀이, 좋아하는 인물의 얼굴을 인쇄하여 옷걸이에 붙인 뒤 다리에 옷걸이를 끼우고 윗몸 일으키기 (가면에 코가 닿을 듯 가까워지는 순간을 즐긴다) 등 기발한 활동이 그의 작품에 등장한다.

이러한 취미가 삶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데도 츠즈이 씨는 그것을 철저하게 숨기고 산다. 자취방에 손님이 오면 피규어 등의 수집품을 감추고, 직장 동료가 휴일에 무얼 했느냐고 물으면 집에 있었다고 얼버무린다. 그는 가까운 친구는 물론 가족들에게도 자기가 동인녀 겸 오타쿠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취미 생활이 “굳이 밝힐 일도 아니”라고 말하지만, 기실 ‘밝힐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세상의 기준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 츠즈이 씨와 취미를 공유하는 오카자키 씨에 따르면 그들에게 취미 활동은 “구원을 받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다. 한데 그것을 남모르게 감추고 살아야 하는 일상은 고달프다.


츠즈이 씨의 일상에서는 행복한 환상과 타인으로 가득한 현실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긴장이 감돈다. 그와 동지들은 환상을 강화하는 농담과 놀이로 이러한 긴장을 완화하려 든다. 현실 속 문제나 상황에 대한 결론을 환상에서 끌어내며 본질을 등한시하거나 해결을 미룬다: 어느 날 미팅에 다녀온 M양은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던 남성이 있었다고 말한다. 츠즈이 씨가 이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자, M양은 “귀여운 남자는 …… 다들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지 않느냐”는 (아마도) 동인녀식 농담으로 대꾸한다.

M양의 대답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츠즈이 씨와 M양 모두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하고 있으면서 환상에 기꺼이 속아 넘어가는 알쏭달쏭한 태도이다. (츠즈이 씨 본인도 취미와 놀이에 임하며 기꺼이 속아 넘어가는 동료들의 진지한 태도에 놀라기 일쑤다. 이는 작가 츠즈이의 지시를 받은 츠즈이 씨가 독자를 대변하는 차원에서 행하는 계산된 리액션일 수도 있지만, 의도야 어떻든 어느 정도 독자를 대변하게 된다는 점에서 결과는 같다) “동인녀로써 긍정해야 하는지 친구로서 따끔하게 혼을 내야 하는지 어린 저는 어느 길이 옳은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고 능청을 떠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이 에피소드는 어디까지가 농담인지 통 구분이 어렵다. “이상할 정도로 삶이 즐겁다”는 그림일기의 등장인물 츠즈이 씨와 냉정한 시선으로 그것을 작성하는 작가 츠즈이 모두가 시치미를 뚝 떼고 독자가 농담 진담 구분할 여지를 별로 주지 않는다.

츠즈이는 능글맞기도 하거니와 재주가 썩 좋다. 작가 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균형 감각을 유지하기가 픽션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작가가 자신을 객관화하는 능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소재가 되는 경험 일부를 과장하고 왜곡하고 생략했다는 것을 독자에게 들키게 된다. 머펫에게 실 자국이 없는 것처럼 작가가 실제 사건의 어느 부분을 다듬었는지 교묘하게 감추어야만 독자의 몰입을 끌어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사건을 계속 소개해야 하는데, 에피소드 형태로 꾸준히 소개할 수 있을 만큼 인생이 재미있기는 어렵다. 남다른 경험이나 바탕이 있다고 해도 세상 어딘가에는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결국은 비슷비슷한 삶에서 주제에 알맞은 장면을 끄집어내고, 또 다듬는 능력에 이야기의 재미가 좌우되는데, 츠즈이는 실패하는 법이 거의 없는 듯하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유자재로 시선을 조정하는 츠즈이의 능력 덕분에 츠즈이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최소한의 품위를 잃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에는 무시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서글픈 구석이 있다.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숨기는 사람 특유의 소심하고 방어적인 태도뿐만이 아니다. 그들이 환상에 무엇을 위탁하고 있기에 그렇게 열심히 지키려고 하는지 궁금하다. 죄의식, 열등감, 환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허무함 따위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1권의 후기에 나오는 츠즈이 씨와 오카자키 씨가 오타쿠 겸 동인녀로 사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고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동인녀 츠즈이씨>가 지금의 제목이 붙기 전에는 후보가 몇 가지 있었던 모양이다. 동인녀가 등에 죄, 벌, 혹은 무언가를 지고 다녀야 하는 존재라는 뜻의 “내 십자가”나, 애니메이션 <요괴 인간>에 나오는 대사인 “빨리 인간이 되고 싶다” 등을 제목으로 고려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성인이 되어 직장에 다니고, 취미를 즐기고, 가끔 교외나 해외로 여행을 다녀오는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 가능한 성인이 본인의 무엇이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설령 부족하다고 해도 “귀여운 남자는 다른 남자와……” 같은 실없는 소리를 할 정도는 아닐 텐데) 문외한은 알 길이 없다.
<동인녀 츠즈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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