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안녕(安寧)’한 풍경에 가닿기 위한 어떤 상상력
<안녕 커뮤니티> (다드래기 작)
지덕재 2019.01.22



2016년 12월부터 레진코믹스에 연재되고 있었던 다드래기 작가의 웹툰 <안녕 커뮤니티>가 곧 완결을 맞이한다. (마지막 화가 2019년 2월 3일자로 등록) 웹툰 <안녕 커뮤니티>는 재개발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청암시 청암진구 문안동 12통과 13통, 14통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일상을 잔잔하게 포착한 드라마다.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나이는 45년생에서 55년생 사이로 대개 환갑을 넘겨, 지방 중소도시의 높은 노령인구 비율을 연상시킨다. 아주 오래 전부터 한 동네에서 좋든 싫든 이웃으로 살아왔기에 거주민 간에 서로의 사정을 모르는 이는 드물며, 각자의 새 소식 또한 빠르게 화젯거리가 된다. 이는 이웃의 얼굴이 잠시 보이지 않더라도 ‘어련히’ 잘 지내고 있으리라는 속단을 내리게 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문안동 재개발로 12통에 들어선 아파트 ‘세이프빌’에서 홀아비로 살고 있는 방덕수 씨(49년생)는 어느 날 자신이 세놓은 사진관 건물에 살던 박 사장의 시신을 수습하게 된다. 한동안 보이지 않아 딸네 집에 갔으리라고 여겼던 박 사장이 방 안에서 사망한 채, 동네 주민들의 방문으로 발견된 것이다. 마침 덕수 씨가 며느리 안젤라의 도움을 받아 새로 구입한 스마트폰의 사용법을 익히며 주위에 새삼 연락을 돌리던 중 일어난 일이었다. 하도 가까웠기에 박 사장의 전화번호조차 제대로 묻지 않았던 덕수 씨는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며 뜨거운 눈물을 쏟는다. 그리고 다음 날, 그는 ‘문안동 안녕 연락망’ 표를 만들고 자신이 아는 동네 주민들에게 모두 가입을 권한다. 매일 아침 순서대로 전화를 걸어, 각자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고 지병 상태 등 안부를 묻는 모임이 이날 꾸려진다. 좌장을 맡은 덕수 씨는 앞으로도 모임을 점차 키워나가자고 제안한다. 이렇게 서로의 안녕을 묻는 커뮤니티가 탄생한다.

재미있게도 각 개인의 생사 여부를 묻는 간단한 일과는 문안동 주민들의 일상에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온다. 첫 포문을 연 이는 세이프빌 708호에 거주하던 ‘교감선생님 부부’ 중 아내인 김경욱 씨(49년생)다. 덕수 씨가 문안동 안녕 연락망에 부부 각자의 번호를 올리려 하자, 남편 장형팔 씨(45년생)가 이를 거절한다. ‘늘 붙어 다니기에 따로 쓸 필요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퇴직한 교감선생님인 형팔 씨는 지나치게 가부장적이고 남아선호사상이 심하여 어린 장손만을 귀히 여기고 손녀들에게는 무관심하다. 형팔 씨의 큰아들 가족조차 딸을 임신한 사실을 숨긴다. 손자를 편애하고 아들만 키워냈던 가족의 아픔이 들춰진 순간, 경욱 씨는 가방을 싸서 집을 나온다. 바로 옆 동 아파트에 위치한 자신들 집에 가자는 큰아들 가족의 청을 거절한 경욱 씨는 마을의 분식집인 ‘세봉김밥’ 사장님 신세봉 씨(53년생)에게 잠시 신세를 지기로 한다. 그리고 곧 연락망에는 경욱 씨의 연락처가 따로 등록된다. 그리고 경욱 씨는 롤링스톤즈의 을 들으며 홀로 자유로운 일상을 만끽한다.

노년 여성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던 어떤 특징들은 <안녕 커뮤니티> 안에서 하나하나 인물의 고유한 특성이 된다. 그리고 이들 노년 여성의 존재를 ‘할머니’라는 가정 내 역할로만 환원해 왔던 뿌리 깊은 편견을 독자 스스로 깰 수 있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작품 내에서 이와 궤를 같이 하는 또 다른 인물로는 14통 판자촌 쪽방에서 혼자 사는 정분례 씨(50년생)가 있다. 바이크를 타며 폐지를 주우러 다니고 아픈 강아지 ‘마리’를 키우는 분례 씨는 사실 공과대학을 졸업했던 1세대 여학생으로, 쪽방에서도 몰래 전기를 끌어다 컴퓨터를 쓰고 게임 ‘공대’까지 뛰는 노익장이다. 그를 몰래 짝사랑하는 자전거 가게 노총각 김춘복 씨(53년생)의 연락망 가입 제안에 분례 씨는 14통 판잣집에 사는 사람들 모두를 가입시켜 달라고 제안한다. 덕수 씨가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자 분례 씨는 곧바로 자기가 갖고 있던 구형 태블릿을 아는 전파상 후배에게 가져가 수리한다. 그리고 스마트폰과 휴대폰으로 구축된 연락망에 입회하여, 쪽방촌 사람들에게도 ‘문안’이라는 사적 복지가 닿을 수 있게 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또, 노인뿐 아니라 한국사회 구성원 중 소수(마이너리티) 집단인 외국인 이주민과 성소수자도 <안녕 커뮤니티>에서는 허투루 다루어지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덕수 씨의 작은 며느리 안젤라(86년생) 씨는 필리핀 사람으로, 조선업에 종사하느라 울산에 가 있는 남편 동철 씨의 몫까지 홀로 두 자녀를 키우며 살고 있다. 안젤라 씨는 능숙하지 않은 한국어 구사로 그 의식까지 단정되는 캐릭터가 아니다. 그는 며느리와 어머니와 아내로 살아가고 있지만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들 이상으로 스스로의 고유성을 지닌 캐릭터다. 문안동에서 부동산 일을 돌보고 있는 공인중개사 허보경 씨(55년생)는 공인중개사 일을 함께 하며 동거도 하고 있는 동년배 오영남 씨(55년생)과 연인 관계에 있다. 보경 씨와 영남 씨는 역으로 자신들 나이대 여성에게 흔히 부여되는 편견 뒤에 숨은 채 문안동에서 ‘친구’로 살아가고 있다. 작품이 끝날 때까지 이들의 관계가 주위에 알려지는 일은 없지만, 독자들은 보경 씨와 영남 씨를 보며 나이든 레즈비언 연인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후에 영남 씨가 투병 생활을 하게 되자 서류에 오르지 않은 ‘가족’인 보경 씨가 겪는 고충은 아직까지 동반자보호법조차 제정되지 않은 경직된 한국 사회의 모습을 자연스레 상기시킨다.


<안녕 커뮤니티>에서는 이렇듯 다양한 인물상을 등장시켜, 국가가 제공하고 사회구성원이 상상하는 ‘가족’의 범주를 확장시킨다. 서로 안부를 묻는 이들 연락망에 소속된 이들은 함께 살아가는 노년 부부뿐만 아니라 배우자와 사별, 또는 혼인하지 않고 홀로 살아온(또는 살고자 하는) 독거노인도 포함되어 있다. 개별 단위로 존재하는 이들, 사회복지와 응급구조가 때맞춰 미치지 못할지도 모르는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풀뿌리처럼 조직을 만들어 서로 연결된다. 연령대를 막론하고 급증하는 1인 가구의 형태로도 납득할 수 있는 안전망 속에 놓일 수 있다는 사실은 개인이 안심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되어 준다. 작품 속에서 문안동 안녕 연락망은 선한 의지로 조직된 사적 조직이자 자경단인 셈이다.

물론, 작품을 읽을 때 이 같은 인물의 구성과 행동이 일견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실제로 <안녕 커뮤니티>에 등장하는 노년 인물은 거칠게 분류하면 입체적인 개성이 두드러지는 노인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전형성(대개 부정적인)을 지닌 노인으로 나뉜다. 물론 전자 인물들에게서 한국 노인의 익숙한 특징을 발견하기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주요 인물의 사고방식과 이들이 내리는 결정은 쉽게 도달하기는 힘든 미덕의 경지에 있다. 작품의 또 다른 주제인 ‘젠트리피케이션’이 펼쳐지는 문안동 상황을 살펴보면 더더욱 그렇다. 돈을 우선으로 생각하여 작전 부동산 업자의 도시 계획안에 응하는 지주와, 가능한 선한 방향으로 돈을 쓰고자 하는 또 다른 자본가의 모습은 작품 내 후자와 전자 인물군의 강한 대비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작품 속 인물들이 지닌 이상적이고도 ‘비현실적인’ 미덕에 대한 의심을 잠시 해보게도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녕 커뮤니티>가 지닌 가치는 이 같은 인물들이 말하고 움직이는 것 자체를 작품 내에서 목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함께 어울리며 거울처럼 서로의 행동에 반응하고, 기대에 부응한다. 혼자 움츠러들어 있다가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며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변화하게 된다. 작은 사회에서 시작되는 조그마한 변화가 바람직한 방향으로만 일어날 수 있다면 어떨까? 작품은 이와 같은 상상력에서 출발한 것처럼 보인다. 의미와 관계로 새로이 엮인 공동체에 대한 작가의 사려 깊은 시선은 완독 후에도 긴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독자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해서도 좋은 방향으로 향하는 상상을 조금쯤은 해볼 수 있게끔 만들어 준다. 사람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듯, 작품과 현실 또한 결국 어느 정도는 상응하게 되기 마련이다. 끈질기고 튼튼한 상상력은 끝내 어떤 형태로든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잊지 않고, 놓지 않으며 계속 살아가고, 삶이 끝난 후 돌아가는 순간까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작품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녕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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