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좁은 방을 나서며
<좁은방>, (김홍모 작)
박근형 (만화평론가) 2019.01.22



통제와 교화의 수단으로써의 감옥은 사회 유지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그러나 시대적 환경에 따라 개인성을 말소하고, 자유를 구속시킬 수 있는 합법적인 수단으로써의 전체주의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신체와 사고의 부자유가 강요되는 곳, 작가 김홍모는 그 좁은 방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좁은방>을 발표했다. 그는 다수의 어린이 만화를 그렸을 뿐 아니라, <빨간약>, <내가 살던 용산>, <떠날 수 없는 사람들>과 같은 르포 만화에도 참여하였다. <좁은방>은 지금은 없어진 웹툰 플랫폼 <어른>에서 2015-2016년 연재되었고, 2018년 2월 보리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었다.
87년 6월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지만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9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90년대의 학생운동은 80년대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였는데, <좁은방>이 90년대의 학생운동을 소재로 다룸으로써 그에 대해 재고할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1997년, 문민정부 말기, 홍익대 총학생회 부총학생회장 용민은 학교에서 숨어지내며 시위에 참여하던 중, 경찰의 기습으로 체포된다. 3수 끝에 어렵게 들어간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용민은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게 된 것을 계기로 강의실 대신 거리로 뛰어들었다. 결국 그는 영등포 구치소에 수감되지만, 이미 수배명령까지 내려 고된 생활을 해오던 용민에게 세 끼 밥 다 먹여주는 구치소는 그다지 두려울 것이 없다. 그는 강력 누범방으로 배치받는데, 1부(1-7화)에서는 용민의 같은 방 사람들에 대한 소개와 구치소의 일상 에피소드가 주를 이룬다. 구치소 생활에 적응되어갈 때쯤 용민은 같은 학교 총학생회 집행위원장인 창준이 수감된 것과, 한총련 투쟁국장 김준배 열사가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감옥 내 투쟁을 이어가게 된다.

감옥 내 투쟁은 성공하지만 용민은 1심에서 실형 4년을 선고받는다. 용민은 원인을 구치소 내 시위와 1심 최후진술 때 거침없는 발언을 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그럼에도 용민은 항고심에서 다시 한번 분노를 쏟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 재판 직전 노태우·전두환 사면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19세기 러시아 시인인 네크라소프의 풍자시 <신문열람실>의 한 구절이다. 상술한 항소이유서 말미에 인용되어 널리 알려졌다. 용민에게는 매우 중요한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부르짖은 것은, 그가 조국과 민주주의를 일신의 영달보다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용민이 울부짖으며 경찰들에게 제지당하는 장면은(시간상으로는 최후진술 후에 나와야 할 장면임에도) 동지들의 분신과 함께 배치되어 더 극적인 효과를 자아낸다.

정권이 바뀐 영향인지 용민은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다. 용민의 집행유예 선고는 개인의 일이 아닌, 함께 운동한 많은 사람들의 승리와 같은 상징성을 지닌다. 판사가 판결문을 읽은 뒤, 다음 컷에서 용민 혼자의 얼굴이 등장하지만, 그다음 컷에서는 용민 뒤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용민이 처음 수감될 때는 어두운 밤에 홀로 구치소로 들어가지만, 퇴소할 때는 밝은 하늘 아래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용민은 퇴소 직전 사복을 입고 교도관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교도관은 작품 내에서는 구치소와 함께 부정한 권력의 일부를 상징하는 장치로 기능하였다. 그랬던 그와 용민이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는 유일한 컷이다. 감히 형식적이 아닌, 진정한 민주주의가 구현될 미래에 대한 용민과 작가의 희망이라 읽어본다.

역사는 기억의 재생산을 통해 현대와 미래에 의미를 부여한다. <좁은방>은 예술작품의 소재로는 드물었던 90년대 학생운동을 길어올림으로써 현재와 과거를 돌아보게끔 한다. 그래서 교도소를 벗어난 용민은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독자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 아닐까. 오늘날의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나는 학창시절 동안 학생회 선거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90년대에 태어났으나, 90년대 학생 운동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졸고를 적는 것이 부끄러웠으나, 그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며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기억하는 일에 한 걸음 보탠다. 우리가 마주하기 위해서는 과거에서 다가옴과 함께, 지금에서 다가가려는 노력 또한 필요할 것이기에.



<좁은방>
작품 정보 보기
  
만화리뷰
[우수만화리뷰] 2010년대 한국 격투만화의 방향을 묻다, ‘격기 3반’
성상민
2019.07.15
전세계 어디서나 고르게 사랑받는 만화 장르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격투’가 아닐까.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도 다양한 액션 장면을 넣으며 관객의 이목을 집중하듯, 만화 역시 비슷한 전략을 통해 독자들을 유혹했다. 미국 만화의 양대산맥인 마블 코믹스와 DC 코믹스의 수많은 히어로 만화도 큰 틀에서는 화려한 싸움 장면이 곁들여진 ‘격투’ 만화이며, 과거 일본 만화에서 높은 인기를 받았던 ‘드래곤볼’, ‘유유백서’, ‘세인트 세이야’ 같은 작품도 복잡한 설정이나 인물 사이의 관계 대신 끊임없이 강력한 적과 만나며 싸우는 쾌감에 초점을 맞췄다. 이러한 연출과 전략은 2010년대 인기를 얻고 있는 ‘원피스’,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같은 작품 역시 동일하다.
[우수만화리뷰] 좋아하는 사람이 다가오면 울리는 알람 <좋아하면 울리는>
이윤진
2019.07.09
“지금 당신의 반경 10m 안에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처럼 누군가의 좋아하는 마음을 알려주는 어플이 있다면 당신은 사용하겠는가? 내 남자친구나 여자친구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면? 반경 10m 안에 좋아하는 사람이 들어오면 알림이 울리는 신비한 어플, '좋알람‘을 소재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여주인공 조조의 이야기다.
[신간만화소개] 여성국극 웹툰 <정년이>
심지하
2019.07.08
'여성국극'이라는 신선한 소재와 탄탄한 그림체, 매력적인 캐릭터가 맛깔나게 버무려진 웹툰이 찾아왔다. 1950년대 후반 한국을 배경으로 한 웹툰, <정년이>를 소개한다.
[우수만화리뷰] <우두커니>,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박희정
2019.06.25
우두커니, 라고 말하면 어쩐지 누군가의 뒷모습이나 옆모습이 떠오른다. ‘넋이 나간 듯이 가만히 있는 모양새’를 한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려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쓸쓸하고 어딘가 부서진 듯한 상태의 누군가와 마주 앉기를 두려워하는 내 무의식이 만들어낸 의식일지 모르겠다. ‘넋이 나간 듯’한 상태라는 건 소통의 불가능성을 연상시킨다. 웹툰 <우두커니>(다음, 완결)에서 딸이 아버지의 치매 가능성을 최초로 인식하는 순간은 이렇게 표현된다.
[신간만화소개] '9'라는 숫자가 주는 미숙함 <아홉수 우리들>
송은설
2019.06.24
29살과 마주한 세 명의 우리들에게는 고민이 있다. "나는 맞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우수만화리뷰] 반지하에 사는 '희노애락', <반지하셋방>
조경숙
2019.06.21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개봉하자마자 뜨거운 감자가 됐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난의 재현, 특히 반지하에 대한 묘사는 반지하에 거주했던 사람들에게 가난의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로써 작동했다. 한겨레에서는 영화 <기생충>을 보고 난 뒤 반지하의 경험을 소환한 일화들을 정리하여 기사로 내기도 했다. 이 기사에서 회상하는 반지하방은 '꿉꿉하고' '귀찮고 피곤'했던 일상과 '비참'한 감정으로 표현됐다.
[우수만화리뷰] 남자주인공이 없는 그녀의 성장물 <유미의 세포들>
심지하
2019.06.18
네이버에서 2015년 4월부터 연재되어 꾸준한 순위권을 유지하는 이동건 작가의 장수 웹툰인 <유미의 세포들>은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개최한 2018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만화부문, 대통령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 해 선정됐던 작품들이 대부분 '여성 주인공'이 중요한 작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위에 인용한 대사는 의미심장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신간만화소개] 불면증 그와 책을 읽으며 사람을 재우는 그녀의 이야기 '속삭이는 e로맨스'
황지혜
2019.06.17
드라마와 소설, 노래, 웹툰 등에서 언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의 주제 중 하나가 로맨스이다. 서로 다른 사연을 갖고 있는 남녀가 만나 사랑 속으로 빠지기까지 다양한 사연들이 그들에게 존재한다. 로맨스는 주인공들의 마음이 이어지기 전까지 지켜보는 독자의 마음을 간지럽히곤 한다. 물론 최근에는 한국 웹툰시장에 일상툰, 역사툰 등 장르가 다양하게 확대되며 로맨스의 비중이 예전에 비해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직 많은 작품에 로맨스가 등장한다. 로맨스가 주가 되든 부가 되든 말이다.
[우수만화리뷰] 모든 세대를 위한 무협 '아비무쌍'
최준혁
2019.06.13
무협 장르의 역사는 깊다. 사람들은 중국 사마천의 <사기>에 실린 ‘자객열전’이나 당나라 시기의 전기소설 ‘규염객전’을 원조로 보기도 한다. 어디에 기원이 있든 무협 장르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적 세계관과 가치관, 무술과 협의를 버무려 숙성되어 온 역사 깊은 장르임에 틀림없다.
[우수만화리뷰] '부활남', 한국만 어벤저스 '슈퍼스트링'을 보여준다
전종찬
2019.06.11
슈퍼슈트링 프로젝트는 아시아판 ‘어벤저스’라고 불리는 국내 히어로 유니버스이다. 현재 ‘부활남’, ‘테러맨’, ‘아일랜드’, ‘신암행어사’, ‘신석기녀’ 등 13종의 작품이 슈퍼스트링 유니버스에 속해있다. 슈퍼스트링 전용관에서는 이 세계관에 등장하는 히어로들을 인류의 재난에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차원을 넘어온 능력자, 슈퍼스트링으로 소개한다.
[신간만화소개] 대통령 아들을 사칭하다, 실제 사건 모티브 '귀인'
최선아
2019.06.10
1957년 대한민국에는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다. 바로 ‘가짜 이강석 사건’이다. 이 사건은 이승만 대통령의 아들 이강석을 사칭한 강성병을 모티브로 한다. 당시 아직 민주주의와 대통령에 익숙하지 않았던 국민들은 대통령을 이전 시대의 왕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때문에 대통령의 양자 이강석은 소위 ‘프린스 리’라 불리며 대단한 권세를 갖고 있었다. 강성병은 이러한 이강석을 사칭해 경주 공무원들을 농락하고 극진한 접대를 받았다.
[우수만화리뷰] 상처를 직면하다, <27-10>
최선아
2019.06.05
아픔 같은 것은 부정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이를 숨기기 급급했다. 오랜 기간 정신병은 부정적인 것으로 다뤄왔고 보통과 다른 것은 없어져야 할 것으로 취급당했다. 이런 사회 환경에서 가정 내 폭력은 어쩌면 너무 흔한 것이었고 다른 의미로 쉬쉬하고 숨겨야 할 치부에 해당했다. 여기에 성적인 폭력이 결합하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조선시대 후기부터 시작된 그릇된 유교 문화의 영향인지 사회는 ‘순결’이라는 어렴풋한 것에 집착했고 성적인 폭력에서 피해자를 오히려 ‘범죄자’와 동일하게 취급하려 했다.
[신간만화추천] 부동산 불패신화를 지키기 위한 지독한 몸부림, '위대한 방옥숙'
김미림
2019.06.05
사전적으로 부동산(不動産)은 움직여 옮길 수 없는 재산, 토지나 건물, 수목 따위를 지칭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이란 부의 축적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이 갖는 의미란 꽤 각별하다.
[우수만화리뷰] 전통적 소재의 절묘한 조화, <바리공주>
최선아
2019.05.29
[신간만화소개] 교내 유일 스터디그룹의 피튀기는 생존기, <스터디그룹>
김슬기
2019.05.28
과연 주인공은 공부를 하고 싶은 건지 의문이 드는 웹툰. 주인공은 과연 4년제 대학에 갈 수 있을까 궁금해지는 웹툰.
[우수만화리뷰] 여성의 시선에서 임신과 출산을 바라본다, ‘아기낳는 만화’
성상민
2019.05.27
[우수만화리뷰] 한국형 사신 판타지의 정수가 여기에, '둥굴레차!'
이국화
2019.05.23
주작, 청룡, 백호, 현무. 누구에게나 익숙한 사신의 이름이다. 종이책 만화 세대에서 더 넘어간 현재의 웹툰들 또한 사신 모티브를 여럿 차용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인데, 그 중에서도 뛰어난 상상력으로 이 소재를 깊이, 그리고 자세히 사용하여 빚어낸 ‘둥굴레차!’는 개중 독보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신간만화소개] 살림에 찌든 고교생 주부! 그의 감춰진 일상은? <나홀로 주부>
김슬기
2019.05.21
공부만 하기도 벅찬 고등학생이 주부의 역할을 하는 주인공. 우리 집에도 주인공이 살아줬으면 하게 되는(?) 웹툰.
[우수만화리뷰] 어른들을 위한 전래동화, <빙탕후루>
최선아
2019.05.20
우리가 겪어온 이야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전래동화이다. '옛날옛적에...'로 시작해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수많은 이야기는 우리가 글을 모르던 시절부터 경험해 온 이야기 오락의 원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과함께’로 잘 알려진 주호민 작가가 그림을, 장희 작가가 글을 맡은 웹툰 ‘빙탕후루’는 우리가 어린 시절 들으며 자라난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를 다룬다.
[우수만화리뷰] 웃음과 귀여움의 힘, ‘푸들과 Dog거중’
이국화
2019.05.17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가 전국의 30% 가까이를 차지한다는 현재, 가파르게 상승 중인 반려동물 연관산업 규모만큼이나 우리는 다양한 반려동물 만화에도 익숙해졌다. 반려동물 사육마릿수가 앞으로도 꾸준히 증가하여 2027년에는 1320만 마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니 아마 앞으로도 반려동물을 소재로 한 웹툰들은 공감을 더 얻으면 얻었지 절대로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