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이 좋은 걸 어떻게 전달할까? - 인생론 vs. 자기계발 vs. 코믹 에세이
<우리 집엔 아무 것도 없어> (유미리 마이 작)
이복한솔 (만화평론가) 2019.01.22



야마시타 히데코가 만든 조어 ‘단샤리(断捨離)’는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생활의 조화를 꾀하는 삶의 방식과 실천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관리할 물건이 적으면 가사 부담이 줄어들고, 이로써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편, 사사키 후미오 등은 '단샤리'를 불필요한 물건을 (잔뜩) 버리는 행위를 뜻하는 동사로 사용한다. 적게 소유하고 정리정돈에 마음을 쓰는 삶의 방식은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를 따로 사용한다. 용어를 사용하는 방식은 각기 다르지만, 그들은 강연, 인터넷, 출판 등을 매개로 단샤리/미니멀리즘을 알렸다. 이외에도 블로그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깨끗한 집과 살림을 소개하고 정리정돈을 주제로 콘텐츠를 내놓는 이들이 속속 등장했다. 비슷한 움직임은 서양에서도 있어 관련된 내용의 블로그나 다큐멘터리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물건이 적으면 청소가 쉽고, 필요한 물건을 찾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며, 유사시에 필요한 물건을 빠르게 찾을 수 있고, 이삿짐이 적어 비용이 절약되는 등 생활이 전반적으로 쾌적해진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유루리 마이의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를 필두로 한 일련의 ‘아무것도 없는’ 시리즈 역시 앞서 소개한 콘텐츠와 주제가 같다. 집안 살림을 극단적으로 줄이면 삶의 부담이 적고 쾌적하다, 언제 누구를 초대하든 남부끄럽지 않은 집이 자랑스럽다는 내용이 시리즈 전체에서 반복된다.


<버림의 행복론>을 비롯한 야마시타의 저작들은 단샤리가 삶과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며 추상적인 설명에 집중한다. 사사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는 종이접기 교재를 연상시키는 미니멀리스트 매뉴얼에 가깝다. 유루리의 작품은 한국의 일상툰과 비교할 수 있는 코믹 에세이(혹은 에세이 만화)다. 그들이 소개하는 정리정돈 방법은 모두 비슷하다. 관련 콘텐츠에서 소개하는 요령을 생활에 적용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다른 것과 비슷한 내용을 읽게 된다. 그러나 유루리의 코믹 에세이에는 조금 더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

유루리는 단샤리나 미니멀리즘처럼 다른 분야에서 빌려온 개념이나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단샤리’는 요가의 행법을 빌려와 변형시킨 말이고, ‘미니멀리즘’은 원래 단순함을 강조하는 문화 및 예술 사조를 일컫는 말이다.) 그는 청소와 정리정돈이 자신의 취미라고 말하면서 그것이 가사 노동 이상의 다른 무엇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정리정돈의 장점을 강조하기 위해 다양한 비유를 만들거나 유명인의 사례를 인용하는 다른 콘텐츠와 달리 그의 작품은 그가 추구하는 삶과 일치하는 담백함을 자랑한다.


그는 “버리기 마녀(혹은 버리기 변태)”를 자칭하며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시선을 의식한다. 깨끗하고 단정하다 못해 일면 “살풍경”한 자신의 집을 당신도 좋아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틈틈이 상기한다. 만화에 직접 등장하는 작가가 약간의 자기 비하를 섞어 방어적으로 주장을 전달하는 태도에는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같은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어떤 방식이 독자에게 더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가를 따져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때로는 이론과 방법을 먼저 소개하기보다 구체적인 예시와 자질구레한 디테일을 소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유루리의 코믹 에세이는 그 예시의 하나로, 이야기의 힘을 새삼 돌이켜보게 만든다.

유루리 마이는 결혼 전까지 외할머니 하츠코, 어머니 후미,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하츠코의 집에서 살았다. 마이 이외에는 인간과 고양이 모두 정리정돈에 관심이 없었으며, 특히 하츠코는 물건을 정리하거나 버리는 것에 대한 반발이 심했다.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굉장히 엄해서 마이는 물론 후미조차 하츠코를 함부로 거스르지 못했다. 하츠코는 후미와 마이에게 “여긴 내 집”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권력을 휘둘렀다. 때문에 하츠코가 건강하던 시기의 유루리 가는 늘 지저분했으며, 마이는 십대 중후반부터 이것이 불만이었다. 집안을 치우자고 하츠코와 후미를 설득하기도 했지만 거의 매번 실패했다. 


시간이 흐르자 하츠코에게 쏠려있던 가장으로서의 권력이 마이에게 넘어간다. 하츠코는 마이가 열살 전후였을 때 은퇴하고, 이후 몸과 마음이 쇠하여 치매 판정을 받는다. 마이는 대학 졸업 후 취직, 20대 중반에 츠토무와 약혼한다. 그 와중에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고, 유루리 가는 살림과 주택을 절반 이상 잃는다. 이후 츠토무는 유루리 세 모녀에게 새 집을 짓고 다 함께 살 것을 제안한다. 이 때부터 마이는 하츠코와 후미를 설득하여 집을 자신이 원하는 공간으로 꾸밀 수 있게 된다. 물론 마이가 이전까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츠토무의 제안으로 새로 지은 집은 ‘하츠코의 집’이 아니며, 하츠코는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 이야기는 집안과 살림 구석구석을 물리적으로 관리함으로써 공간과 물건을 심리적으로도 장악하게 되는 과정에서 비롯하는 정리정돈의 즐거움과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권력 이동 전후 확연히 달라진 집안의 모습과 오랜 시간 끝에 가정에서 주도권을 잡은 저자의 해방감이 동시에 전달된다. 유루리 가의 권력 이동을 관심 있게 지켜본 독자라면 깨끗한 집이 주는 청량감을 한결 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아무 것도 없다시피 한 집이 좋다는 유루리의 주장은 굳이 다른 비유나 사례 없이 이야기 자체만으로 자연스럽게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 집엔 아무 것도 없어>는 경험담이 지니는 매력이 큰 만큼 시리즈로써의 짜임새와 완급이 아쉽다. 1권은 지저분한 집에서 자란 청소년기, 결혼, 새 집이 ‘아무 것도 없는 집'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꽉 담겨있다. 그러나 이어지는 2권과 3권은 다소 심심해진다. 2권에서는 물건을 버리는 구체적인 요령을 다루고, 이후 3권에서는 이미 지니고 있는 살림을 여러가지 방식으로 활용 하는 방법을 다룬다. 이 같은 내용은 실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독자가 1권에서 경험하고, 다음 권에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할 법한 재미는 아니다. 후속이라기 보다는 부록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생활툰, 아니 코믹 에세이인 만큼 작가의 경험에 작품의 재미가 어느 정도 좌우 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기획단계에서 서사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조금 더 깊이 고민했다면 좋을 뻔했다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작품 속 사건이 거의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2권 이후의 ‘아무 것도 없는’ 시리즈를 다른 코믹 에세이/에세이 만화와 비교하는 것은 부당할지도 모르겠다. (모든 일이 다 벌어지고 난 뒤에 작성된 아라카와 히로무의 <백성귀족>, 아즈마 히데오의 <실종 일기> 등) 그렇다 하더라도, 온갖 생활툰에 익숙한 독자로써 2권과 3권을 덮고 입맛을 다시게 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 (버리기 마녀의 심플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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