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슬램덩크 (SLAM DUNK)
만화규장각 2000.01.01
아직도 끝나지 않은 농구만화의 전설 좋든 싫든 우리는 『슬램덩크』라는 일본만화가 한국만화에 끼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슬램덩크』를 「소년점프」에 연재를 시작하던 1990년 당시 일본에서 농구만화는 매우 위험한 시도였다. 스포츠만화의 주류는 역시 야구만화였다. 게다가 농구는 인기 스포츠가 아니었다.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농구전력은 미약했고 사람들은 농구에 무관심했다. 그러나 이미 『슬램덩크』 이전에 농구선수로 코트에 섰던 경험을 살려 ‘조단처럼’이란 고교 농구만화를 단편으로 시도한 바 있었던 이노우에는 농구만화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슬램덩크』를 그리기 시작했고 독자들은 이노우에의 선택을 따랐다. 스포츠만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농구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슬램덩크』는 우선 신선했다. 그리고 그 신선함 위에 몇 가지 성공 요인이 양념으로 더해지면서 『슬램덩크』의 인기는 당시 이미 절정에 올라있던 『드래곤 볼』의 명성을 능가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슬램덩크』의 인기는 예견되어 있었다. ‘희한한 농구만화’의 정체가 해적판으로 확인되었고 1992년부터 「소년챔프」를 통해 정식으로 연재가 시작되면서 『슬램덩크』의 인기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더욱이 NBA와 국내 프로농구의 인기가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났다. 『슬램덩크』는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 『슬램덩크』이후 숱한 농구만화가 등장했던 것도 한국만화에서 『슬램덩크』가 차지했던 영향력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슬램덩크』가 이처럼 엄청난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슬램덩크』가 재미있는 만화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한 번 손에 들면 쉽게 책을 내려놓을 수 없는 마력이 숨어 있는 만화가 바로 『슬램덩크』이다. 많은 성공 요인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슬램덩크』는 캐릭터 창조에서 성공했다는 점이 절대적이다. 주인공 강백호는 지금까지 스포츠만화를 통해 만나왔던 주인공의 전형에서 벗어나 있는 괴짜이다. 싸움꾼에다 공부도 못하고, 여학생들에게 딱지나 맞고 다니는 말썽꾸러기 강백호는 농구를 전혀 모르지만 오직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농구공을 잡게 된다. 그러나 동기야 어디에 있든 일단 농구를 시작한 후로는 무서운 집중력으로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강백호의 모습은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며 『슬램덩크』의 중심이 된다. 사리분별을 제대로 못하기 일쑤이고 경기중에 위원석 책상에 올라가 상대를 무찌르겠다고 큰 소리 치는 엉뚱함은 여전하지만 경기력 향상을 위해 하루 6백개의 골밑 특훈과 2만개의 중거리 슛 특훈을 마다하지 않는 성실함도 있다. 그러나 정작 『슬램덩크』가 캐릭터 창조에 성공한 만화라는 명예를 얻게 되는 것은 다양한 개성과 매력을 지닌 수많은 캐릭터들의 출현 때문이다. 북산의 베스트5인 서태웅, 채치수, 정대만, 윤대협의 카리스마는 말할 것도 없고 북산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능남의 윤대협, 상양의 김수겸, 산왕의 정우성 등도 모두 강백호 못지 않은 카리스마로 작품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들은 농구에 관한 한 모두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인물들로 농구에 몰두 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당위성을 내세워 순간순간 투지를 불태우며 농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슬램덩크』가 캐릭터 창조에 성공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전개되는 상황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뚜렷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의 각오와 파이팅이 이처럼 뛰어난 만화가 재미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슬램덩크』가 작품의 초반부터 농구를 강조하는 대신 학원액션로맨스의 색채를 띠었다는 점도 인기몰이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그런 이유 말고도 스포츠 만화로서 성공할 수밖에 없는 보다 직접적인 요인이 있다. 우선 『슬램덩크』는 농구 경험이 전혀 없는 주인공이 최고의 농구 선수로 성장해 간다는 입지전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시련, 도전, 노력, 성공이라는 수순을 밟아 가는 소년만화의 인기 패턴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연 돋보인다. 강백호의 북산고가 힘겹게 지역 예선을 통과하고 전국대회까지 출전하는 과정에서 점점 힘든 상대를 만나고 경기 기량이 향상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작품의 스케일과 에너지가 점진적으로 커지고 강해지는 구도를 갖고 있다는 점이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 시켰다.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더 이상의 디테일하고 정확할 수 없을 만큼의 탁월한 경기 장면 묘사이다. 이것은 스포츠 만화로서 『슬램덩크』가 갖는 가장 큰 힘이다. 경기 장면과 상황 전개는 코트 밖에서의 단순한 관찰 만으론 결코 묘사할 수 없는 사실적인 것이다. 그것은 작가 자신이 숨가쁘게 코트를 누볐던 경험이 충분히 반영된 결과였다. 안들어 간 프리드로우를 리바운드로 잡아내 살리고 그것이 절묘한 패스로 이어져 득점과 연결시키는 등의 화려한 농구 기술, 숨가쁜 승부가 벌어지는 코트 안에서 선수들이 순간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절박한 심리 묘사,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마다 펼쳐지는 적절하고도 과감한 벤치의 작전 전개. 이런 것들은 모두 작가 자신이 코트에서 체득할 수 있었던 최고의 수확이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슬램덩크』의 상황전개와 장면들은 사실적이고 박진감 넘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슬램덩크』는 역시 만화였다. 24점이나 벌어졌던 점수 차를 극복하고 종료 직전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는 설정은 여느 만화가 그렇듯이 드라마틱하기 이를 데 없다. 『슬램덩크』의 또 다른 미덕 가운데 하나는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의 여지를 남겨 두고 적절한 선에서 멈추었다는 것이다. 북산은 산왕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2회전을 통과하지만 3회전에서 패배하여 탈락한다. 북산이 전국대회에서 승승장구하여 더 큰 대회를 기대했던 독자들에겐 아쉬움이 남지만 그 덕분에 『슬램덩크』는 영원히 독자들 가슴속에 현재 진행형의 만화로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 부상을 딛고 일어서 더욱 큰 선수로 성장할 강백호와 대표선수가 된 서태웅의 화려한 플레이가 여전히 독자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기 때문이다.
<슬램덩크 (SLAM D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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