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대한민국에는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다. 바로 ‘가짜 이강석 사건’이다. 이 사건은 이승만 대통령의 아들 이강석을 사칭한 강성병을 모티브로 한다. 당시 아직 민주주의와 대통령에 익숙하지 않았던 국민들은 대통령을 이전 시대의 왕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때문에 대통령의 양자 이강석은 소위 ‘프린스 리’라 불리며 대단한 권세를 갖고 있었다. 강성병은 이러한 이강석을 사칭해 경주 공무원들을 농락하고 극진한 접대를 받았다.

웹툰 ‘귀인’은 ‘가짜 이강석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 물론 두 사건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웹툰 ‘귀인’의 가짜 이강석인 양춘식은 좀더 권력지향적이며 목적지향적인 캐릭터이다. 양춘식은 오랜 식민지 생활과 전쟁으로 경제가 파탄난 해방 한국에서 어떻게든 성공하기 위해 애쓴다. 그는 소매치기와 사기를 일삼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칭하며 이득을 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반에 드러나는 양춘식의 모습은 평범하다. 그는 성공하기 위해 대학에 가고 싶어하고 연인과 함께 있고 싶어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의 작은 희망을 도와주지 않는다. 합격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간 서울. 전화와 달리 합격자 명단에 춘식의 이름은 없고 아버지의 ‘우골탑’인 등록금은 홀랑 사기를 당한다. 거기에 더해 평생을 약속한 여자친구 세옥은 아비의 노름값 대신 부잣집 노인에게 집 두채값을 받고 팔려가기 직전이다. 노력이 보답으로 돌아오지 않는 세상에서 양춘식은 어떻게 해야했던걸까?

이강석과 닮은 얼굴을 내세워 이강석의 권세를 업고자 한 양춘식. 그의 선택이 극단적일망정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우리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범법자 사기꾼을 통해 보는 비틀어진 세상이 ‘귀인’이 보여주는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만화 도입부에서 양춘식은 자신을 이강석이라고 믿고 아부와 뇌물을 바친 사람들을 ‘시국적인 간신배’라 칭한다. 권력 앞에서 우스워지는 것은 ‘시국적인 악질범’이라고 불리는 양춘식뿐 아니라 ‘시국적인 간신배’들도 마찬가지였다.

범법자로 법정에 서서 오히려 정치인들을 꾸짖는 양춘식. 만화의 도입부는 마치 한 편의 영화 같다. 실제로 스토리를 맡은 정연식 작가는 영화감독이기도 한만큼 캐릭터의 강렬한 욕망과 극적인 구조를 겹합시켜 ‘가짜 이강석 사건’을 어떻게 자아낼지 기대할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