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우수만화리뷰] 반지하에 사는 '희노애락', <반지하셋방>
조경숙 2019.06.21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개봉하자마자 뜨거운 감자가 됐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난의 재현, 특히 반지하에 대한 묘사는 반지하에 거주했던 사람들에게 가난의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로써 작동했다. 한겨레에서는 영화 <기생충>을 보고 난 뒤 반지하의 경험을 소환한 일화들을 정리하여 기사로 내기도 했다. 이 기사에서 회상하는 반지하방은 '꿉꿉하고' '귀찮고 피곤'했던 일상과 '비참'한 감정으로 표현됐다.


반지하에 대해 얽혀있는 사람들의 기억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만화 《마당씨의 식탁》에서 반지하는 탈출하고 싶은 장소로 그려진다. 주인공 마당씨는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반지하에서 벗어나, 햇빛이 쨍쨍 비치는 1층 가옥의 텃밭에서 작물을 일구며 즐거워한다. 반면 웹툰 <반지하셋방>에서 반지하는 자매들이 처음으로 독립을 일구게 된 소중한 장소로 재현된다.
<반지하 셋방>은 제목 그대로 '반지하'에서 동거하는 자매를 그린 일상툰이다. 세 언니의 맏언니인 현정은 어린 시절부터 청각장애를 지닌 어머니의 부업을 도맡아 했다. 유년 시절엔 부업을 했고, 십 대엔 알바를 하면서 정작 자신의 커리어를 살릴 기회를 놓쳐버린 탓에 현정은 웹디자인 학원으로 디자인을 배우고 동생 현진이 일하는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게 된다.


이들의 일상은 소소하게 행복하며 따뜻하다. 현정은 동생과 함께 출퇴근을 같이하는 길에 간혹 마주하는 토스트 가게에서 토스트를 먹는 것을 '이벤트 던전이 열렸다'고 표현하며, 이벤트를 내심 기다리고 맞이하면 행복해한다. 또한 현정은 퇴근길 지하철에서 종착역을 놓칠 뻔한 자신을 흔들어 깨워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자신도 그렇게 따뜻한 선행을 베풀겠다고 마음먹는다.

현진이 연어를 먹어보지 않았다기에 현정은 마침 마트에서 세일하는 연어를 한 팩 사와 단촛물에 직접 초밥을 만들어 먹이기도 하고(이 과정에 엄마와 요리 배틀을 벌이기도 한다) 함께 만족스러운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세 시간 토론을 하기도 하는 이 자매들의 일상은 밝고 명랑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에는 자매를 둘러싸고 있는 부당한 현실적 조건들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십 대 때부터 부업과 알바를 전전하다 마땅한 커리어를 못 쌓은 현정의 배경부터, 야근해도 야근 수당을 일절 지급하지 않는 부당한 노동환경까지 - 자매를 둘러싼 현실 속에선 자매의 성과가 정당한 보상으로 지급되지 않는다. 현정과 현진이 근무하는 회사는 시시때때로 월급이 밀리고, 거기에 사장은 부당한 사적 업무까지 직원들에게 지시한다. 나중에 사장은 현정과 현진을 강제해고하는데, 이 과정에서 퇴직금 문제 등 다른 일들이 덮치면서 기나긴 싸움으로 이어진다. 퇴직금을 두고 회사와 공방을 벌인 끝에 현정과 현진은 퇴직금을 받아내지만, 이후에 다른 회사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이번에는 공장 일용직으로 나선다. 공장이라면 쉽게 취업하리라 생각했던 당초 기대와 달리, 공장도 정규직 자리는 거의 나오지 않아 이들 자매는 일용직으로 여러 곳을 전전하게 된다.

웹툰 <반지하셋방>은, 반지하에 사는 '비참함'이 아니라 반지하에 사는 '희노애락'을 그린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그렇지만 분명히 선그어야 할 것은, 이 웹툰이 말하는게 비단 '안빈낙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웹툰 <반지하셋방>는 주인공뿐 아니라 주변 사람의 존엄을 지켜내면서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의 부당함과 부조리에 대해 어떻게 조명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웹툰은 무엇보다도 어떤 일상은 그것을 투명하게 공유하는 것 자체가 정치이고, 계급비판이며,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솟구치는 에너지와 활기 그 자체임을 말한다. <기생충>을 보며 괜스레 마음 상한 사람이 있다면, 이번에는 이 웹툰 <반지하셋방>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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