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우수만화리뷰] <우두커니>,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박희정 2019.06.25



우두커니(심우도, 다음웹툰) /박희정

우두커니, 라고 말하면 어쩐지 누군가의 뒷모습이나 옆모습이 떠오른다. ‘넋이 나간 듯이 가만히 있는 모양새’를 한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려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쓸쓸하고 어딘가 부서진 듯한 상태의 누군가와 마주 앉기를 두려워하는 내 무의식이 만들어낸 의식일지 모르겠다. ‘넋이 나간 듯’한 상태라는 건 소통의 불가능성을 연상시킨다. 웹툰 <우두커니>(다음, 완결)에서 딸이 아버지의 치매 가능성을 최초로 인식하는 순간은 이렇게 표현된다. 


“아버지의 얼굴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치매를 가장 두려운 병으로 꼽는 이유는 그것이 ‘자기’를 상실시킨다는 데 있다.
이 말의 뜻을 ‘아버지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버지는 그저 성격이 변한 것이 아니다. 그의 뇌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서 소통을 위해 우리가 맺어왔던 사회적 약속도 깨어진다. 평소라면 그저 자연스러울 모든 일이 아버지에게는 의심과 불안의 이유가 되어버린다. 생명은 붙어있지만 내가 아닌 내가 되어버린다는 것. 그리고 그 변화로 인해 내가 맺어온 모든 관계가 부서질 수 있다는 사실은 의식을 가진 누구에게나 공포로 다가올 것이다. 

급속한 고령화로 우리나라의 치매 인구는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중앙치매센터가 발표한 공식적인 치매 환자 수는 76만 4천 명이다. 그리고 2024년이면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여러 서사 장르에 치매는 종종 등장한다. 만화에서 치매는 오카노 유이치의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와 같은 작품도 있긴 하지만 그리 잘 다루어지는 소재가 아니었다. <우두커니>는 그런 점에서 특별하다. 그러나 <우두커니>가 주목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단순히 잘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이야기되어야 할 가치를 지닌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나 아렌트는 이야기(storytelling)야말로 한 사건을 가장 주의 깊게 다룰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말한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사건을 기존의 인식틀에 갇히지 않고, 그 사건이 가진 본질을 인식하도록 우리의 감각을 일깨워주는 것이 이야기의 힘이라는 것이다. <우두커니>는 이야기의 힘에 대한 아렌트의 설명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텍스트이다.
이 작품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치매 노인과 함께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들려준다. 이 작품은 작가 ‘심우도’의 자기 서사이다. 심우도는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이야기를 쓰는 심흥아와 그림을 그리는 우영민의 성을 따서 만들어진 필명이다. 이 부부는 아내의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는데, 안산에서 청주로 이사한 첫날 밤 아흔에 가까운 아버지에게 이상한 변화가 생겼음을 감지한다. 급격히 달라진 낯선 삶에 대처하려 애쓰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기로 한다. 

아내는 결혼 전부터 혼자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는데, 그 이유에 대해 자기가 자식 중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작가의 현실에서는 더 구체적인 맥락들이 있을 것이다) 아내는 아버지에게 받은 사랑의 기억이 있기에 이 고통을 견딜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자기를 사랑하고 아끼던 사람이 자기를 말도 되지 않은 이유로 헐뜯고 공격하는 것은, 사랑의 기억이 있기에 더 아픈 것이 된다. 그가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이기에 그가 나를 향해 던지는 말 역시 나에게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병’으로 인한 것임을, 나의 책임이 아님을 의식적으로 인지하려고 노력하더라도 말이다. 차라리 남이었다면 감정의 피로는 덜했을지 모른다. 


작가는 자기 안의 모순된 감정, 불안과 화, 슬픔과 절망에 대해서 감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것을 날 것 그대로 던지지도 않는다. 자신들에게 벌어진 사건을 최대한 그대로 수용하고 그것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가면서 그들은 삶의 존엄성을 지켜나간다. 이 만화가 담담한 어조로 관조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연출적 장치라기보다는 ‘심우도’가 삶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이러한 방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삶을 새롭게 직조하는 힘은 거대한 일을 성취해내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작게 ‘버티는’ 힘이 쌓여 만들어진다. 그래서 <우두커니>의 이야기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오로지 절망만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을 독자에게 준다. 그렇게 우리는 마주하기 망설였던 얼굴을 찬찬히 마주하며, 그 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용기를 내게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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