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도레미 하우스
만화규장각 2000.01.01
다카하시 루미꼬 원작의 『도레미하우스[원제 메존 일각]』은 있어서 일본 러브코미디 만화의 여러 가지 원래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작품으로 보인다. 서민계급의 재수-삼류대학생이라는 남자주인공의 설정이라든가,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이라든가, 여주인공으로 미모의 과부가 설정되어있다거나 하는 점이 우선 그렇다. 사실 20대 초반의 열등생이 미모의 여자들에게 둘러쌓여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하며 어정쩡한 삼각관계의 심리적 과정을 벌이는 것은 여성독자를 대상으로 한 순정만화에 대립하여 남성독자를 대상으로 큰 공감대를 자극하는 러브코미디의 전형적인 인물설정이다. 이작품의 주인공 고다이 역시 마찬가지로 시골에서 올라온 열등생이지만 순수한 감정을 가진 그는 낡아빠진 아파트에 하숙하면서 그 관리인 쿄꼬를 향해 연정을 불태우다가 장장 15권만에 결혼에 성공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다른 비슷한 설정의 작품들과 구분되는 것은 작가의 탁월한 구성력과 함께 도레미하우스라는 공간에 다른 여러 개성있는 인물들을 위치시켜서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으면서 다채롭도록 이끄는데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한편으로 러브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동경 변두리의 서민생활문화를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낡은 아파트에 동거하는 인물들을 살펴보면 훤히 비치는 속옷만 입고 나 다니기 일쑤인 술집 여급 아께미, 직업이나 나이등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엿보기광 요쯔야, 가난한 샐러리맨 가정인 켄따로네 식구들등이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함께 어울려 술마시는 것을 몹시 좋아한다는 것과, 가난하기 때문에 그런지 자기것과 남의 것을 별로 구분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주로 베푸는 쪽보다는 남의 것을 아무렇지 않게 즐기는 쪽) 타국인인 필자로서 일본의 서민이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보편적인 관점에서 볼 때 동경같은 거대한 도시의 살풍경하고 조직적인 이미지와는 정 반대의 느낌인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어떻게 보면 ‘변태’라는 평판을 얻을 정도로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기 일쑤이고, 무례할 정도로 남의 일에 끼어들고 있는데, 이것은 혹 작가가 의도한 바, 도시생활의 고립감에 대한 반작용일 수도 있겠다. 낡은 아파트라는 설정 역시 마찬가지 맥락에서 볼 수 있는데 땅값이 비싼 동경에서 웬만한 아파트는 재개발하기 마련인 상황이지만 작가는 아마도 차고 두꺼운 콘크리트가 아니라 (요쯔야가 벽을 뚫을 정도로) 얇고 따뜻한 나무아파트를 그리워하고 있는 듯 하다. 아무튼 이러한 마치 섬과도 같은 특별한 공간에서 그들은 그야말로 일상생활을 생생히 보여준다. 봄,여름, 가을, 겨울을 번갈아 가며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이 작품내에서 알차게 차근차근 흘러간다. 해마다 쿄꼬는 전 남편의 기일날 무덤에 가고,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신년을 보내고, 여름휴가를 보내고, 생일을 맞는다. 처음에 재수생이던 고다이는 학교에 들어가고 진급하고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한다. 중학생이던 이꾸꼬는 고등학생이 되고, 교생선생님인 고다이를 쫓아다니던 야가미는 여대생이 된다. 에필로그에서 전해준 대로 작중 커플들은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된다.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의 대소길흉인생사의 작고 큰 사건들을 무리없이 ‘보여주고있는’것이다. 시간적으로도 그렇지만 풍속에서도 사태는 마찬가지여서 여름엔 방울을 달고 수박을 먹고 겨울엔 떡국을 먹고 고다쯔에 발을 집어넣고 신년엔 절에 가고 하는 그들의 서민문화와 풍속을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우리는 작품속에서 일본 홈스테이 경험을 하는것처럼 일본서민문화의 생생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현실만큼 재미있고 다채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굳이 논픽션이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얼마나 현실의 풍부함을 잘 담아내고 있느냐는 문제에서 성공했기에 이 작품이 15권의 기나긴 이야기로도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는 것일 것이다.
<도레미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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