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신간만화소개] 여성국극 웹툰 <정년이>
심지하 2019.07.08

'여성국극'이라는 신선한 소재와 탄탄한 그림체, 매력적인 캐릭터가 맛깔나게 버무려진 웹툰이 찾아왔다. 1950년대 후반 한국을 배경으로 한 웹툰, <정년이>를 소개한다.




1. 여성국극
먼저 '여성국극'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연극도 창극도 아닌 '여성국극'은 1948년 국악원에서 여성들만이 떨어져 나와 조직한 여성 국악 동호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박녹주를 대표로 하여 김소희, 박귀희, 임춘앵, 정유색, 김경희 등 30여 명이 조직한 여성국악동호회는 1948년 10월에 「옥중화 獄中花」로 시공관에서 창립공연을 했다.

△ 임춘앵은 실제로 당대 유명했던 여성 창극인 중 하나였다

모든 배역을 여성들이 맡는다는 점에서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단과 비슷하나 안타깝게도 다라카즈카 가극단과 달리 여성국극은 1950년대 말엽부터 쇠퇴 조짐을 보이다 1960년도 초에 급격히 몰락하였다고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

지금은 쇠퇴해버렸지만 당시 인기는 현대의 아이돌 문화에 버금갔다고 한다. 배우들을 쫓아다니는 팬들은 물론 돈을 모아 배우와 가상의 결혼식을 올리는 팬도 있었다고 하니 그 인기와 애정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웹툰 곳곳에서 보이는 탄탄한 자료조사는 생소할 수 있는 '여성국극'에 대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준다. 물론 위에 썼듯 여성국극은 1950년대 말엽부터 쇠퇴 조짐을 보였던 만큼 주인공의 미래는 마냥 탄탄대로로 밝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작가는 독자들에게 정년이의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 (웹툰에 언급된 에피소드는 실화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2.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여성 캐릭터
작가의 탄탄한 자료조사는 소재에만 그치지 않는다. <정년이>의 주인공인 <윤정년>은 목포 출신 소녀로, 1~2화의 배경은 전라도 목포이며 정년이는 서울에 상경한 뒤에도 계속 '야물딱지게'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

△ 윤정년의 당찬 포부

미디어에서 종종 언급되긴 했지만 주류 언어로 쓰이진 않았던 전라도 사투리. 그런 사투리를 가감 없이 쓰는 '여성' 주인공의 모습은 색다른 매력을 뽐낸다. 사투리 화자라 해도 작품 내에서 특정 지역의 사투리를 쓰기 위해서는 심도 깊은 준비가 필요할 텐데, 이에 관해 <정년이>의 스토리를 맡은 서리에 작가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여성국극의 영원한 왕자로 불리는 임춘앵 역시 전라도 출신이다. 여성국극에 도전하려는 주인공이라면 소리에 어느 정도 재능과 자신감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럼 당연히 전라도 출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라도 토박이 집안 출신에 20년 동안 전라도에서 자란 이에게 2년째 검수를 받아가면서까지 사투리 고증에 힘쓰는 그는 “첫 화가 올라오고 나서 전라도 사투리의 등장에 놀라고 감격하는 독자들을 여럿 보고 씁쓸하면서도 잘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도 말한다. (출처: [위근우의 리플레이] 배제됐던 목소리가 돌아왔다 "우리가 지금 여기 있지라")

기사 원문에도 나와 있듯, 전라도 사투리는 편견과 혐오로 얼룩져 가려진 언어 중 하나였다. 웹툰이라고 해서 다르진 않다. 지방 사람들을 대하는 편견 어린 연출로 비난을 받은 웹툰도 있지 않았던가. 그런 점에서 <정년이>는 지방 사람들을 희화화하지 않으면서 해당 지역 사람들이 불편해하지 않을 만큼 어색하지 않게 전라도 사투리 특유의 맛깔남을 잘 표현해 호평받고 있다.

3. 탄탄한 그림체


<정년이>의 덧글창을 보면 유독 그림에 대한 칭찬이 많다. 화려하거나 복잡한 그림은 절대 아니지만 탄탄한 인체와 깔끔한 배경이 돋보이는 <정년이>. 시대상이 엿보이는 건물과 복장들도 그렇지만, 과하게 여성의 신체를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깔끔한 선으로 맵시 있게 각 캐릭터의 개성을 표현한 점이 좋다는 평이 많았다. 또한 연극과 창극의 장단점을 버무린 '여성국극'을 웹툰이라는 지면에 묘사하기에 적합한 그림체라는 평도 다수다. 시각적인 매체인 웹툰에서 소리를 표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거기에 춤과 무용이 들어간다면? 만화나 웹툰 중 노래나 춤과 관련된 작품이 드문 이유이다. 그러나 <정년이> 는 이를 해낸다. 아직 본격적인 무대 묘사는 나오지 않았으나 쨍한 여름 하늘 아래 노래하는 정년이의 모습은 청량감을 느끼게 한다. 실내에서 방자 연기를 보여주는 영서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뜨거움은 또 다르다. 목포항의 쨍한 하늘과 노을 진 시장의 모습이 주는 느낌. 흑백 만화에는 흑백 만화만의 맛이 있고, 컬러 웹툰에는 컬러만의 맛이 있다면 <정년이>는 풀컬러 웹툰이 줄 수 있는 색의 아름다움을 잘 살려낸 웹툰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여름, 노을 진 시장의 정경


4. 다채로운 여성 캐릭터
<정년이>는 사실 '여성국극'이라는 소재가 독특할 뿐 서사 구조는 주로 왕도 물이라 불리는 소년만화에서 자주 보이는 구조이다. 재능은 있지만 주목받지 못한 캐릭터가 큰 세계로 나가 조력자를 만나고, 라이벌과 대결하고, 걸림돌에 걸려 넘어질지언정 결국 일어나 역경과 고난을 딛고 영웅이 되는 것. 영웅을 명창으로 바꾸면 그럴듯하지 않나? 다만 여기서 다른 점이 있다면 대부분 왕도물이란 소년들의 이야기였으며 소녀들은 주인공의 곁다리이거나, 주인공의 성공을 증명해줄 트로피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정년이>의 주인공인 정년이는 여자다. 정년이를 발견하는 것도, 정년이를 끌어 올려주는 것도, 도와주는 것도, 정년이의 라이벌이 되는 것도 모두 여자다. <정년이>의 세계관에 남자가 없는 것 아니냐고? 물론 아니다. 1950년대 후반 한국에 남자가 없을 리가. 그러나 모든 배역을 여성이 해내는 여성국극이니만큼 주인공과 라이벌이 모두 여자인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주체적으로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다양하고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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