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우수만화리뷰] 2010년대 한국 격투만화의 방향을 묻다, ‘격기 3반’
성상민 2019.07.15


전세계 어디서나 고르게 사랑받는 만화 장르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격투’가 아닐까.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도 다양한 액션 장면을 넣으며 관객의 이목을 집중하듯, 만화 역시 비슷한 전략을 통해 독자들을 유혹했다. 미국 만화의 양대산맥인 마블 코믹스와 DC 코믹스의 수많은 히어로 만화도 큰 틀에서는 화려한 싸움 장면이 곁들여진 ‘격투’ 만화이며, 과거 일본 만화에서 높은 인기를 받았던 ‘드래곤볼’, ‘유유백서’, ‘세인트 세이야’ 같은 작품도 복잡한 설정이나 인물 사이의 관계 대신 끊임없이 강력한 적과 만나며 싸우는 쾌감에 초점을 맞췄다. 이러한 연출과 전략은 2010년대 인기를 얻고 있는 ‘원피스’,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같은 작품 역시 동일하다.



한국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앞서 언급했던 일본의 격투만화를 비롯하여 ‘비바! 블루스’나 ‘상남2인조’, ‘GTO’, ‘크로우즈’ 같이 학교를 무대로 고등학생들의 싸움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이에 영향을 받는 동시에 한국적인 변용을 거친 임재원의 ‘짱’, 조운학의 ‘니나잘해’, 박산하의 ‘진짜 사나이’ 등의 작품이 1990년대 등장해 인기를 모았다. 물론 격투만화를 즐기는 것이 순탄치는 않았다. 일본, 미국을 비롯한 어느 나라나 만화는 어린 아이들의 전유물로 보는 시선이 강했고, 등장인물 간의 격투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은 폭력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특히 한국은 1990년대 당시 청소년 인권이 미약했으며, 만화에 대한 인식도 더욱 좋지 않았기에 격투만화는 쉽게 ‘불량만화’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격투 장면이 지니는 쾌감을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짱’은 1996년부터 2014년까지 약 18년 동안 연재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이렇게 액션을 강조한 격투만화가 사랑받는 경향은 2010년대 웹툰이 대세가 된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박용제의 ‘갓 오브 하이스쿨’, 최병열의 ‘최강전설 강해효’ 등의 작품이 10-20대 사이에서 화제가 된다. 그러나 이들 작품이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작품에 대한 평가는 이전보다도 좋지 않다. 특히 이미 1990년대 ‘삐따기’, ‘핫도그’와 같은 학교 격투물을 그렸던 최병열의 ‘최강전설 강해효’의 경우 이전 학교 격투물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평이 지속적으로 속출한다. 지속적으로 주인공과 동료들이 더욱 강한 상대를 만나 싸우는 모습에서 통쾌하고 짜릿한 감각을 받을지는 몰라도, 이를 메꿔주는 서사나 연출의 부재는 점차 혹평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6년부터 대원씨아이의 만화잡지 ‘코믹 챔프’에서 첫 연재를 시작해, 2017년부터는 네이버 웹툰에서도 동시 연재 중인 이학 작가의 ‘격기 3반’은 한국의 격투만화가 새롭게 지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 설정만 보면 이전의 학교를 무대로 한 격투만화와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격투가가 세계 최정상의 스포츠인 세계’라는 세계관 설정을 토대로, ‘격투기 양성 특별반’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주인공들이 마음껏 주먹을 휘둘러도 문제가 없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주인공 ‘주지태’는 사라진 자신의 여동생을 찾고, 여동생을 자신의 입맛대로 키우기 위해 끌고 간 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 격투가의 길로 뛰어들었다는 설정을 지닌다. 세세한 설정이나 심리 묘사가 아무리 평면적일지라도, 복수와 여동생 구출이라는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들어도 인기를 얻는게 이상하지 않은 설정들이다.


하지만 ‘격기 3반’은 세부적인 연출과 서사 전개의 측면에서 한국은 물론, 일본의 격투만화와 비교해도 점차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심리를 단순한 도구로 취급하는 대신, 작중에서 살아 숨쉬는 하나의 존재로써 대하며 이들과의 관계와 감정을 깊게 묘사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격투기가 중심인 학교라는 설정일지라도 이들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매순간을 함께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대다수의 작품에서는 쉽게 무시되거나 지나치는 설정이지만, 작가는 이러한 특성을 놓치지 않았다. 작품의 메인은 분명 등장인물들과 새롭게 나오는 강자와의 대결이지만, 대결과 대결 사이, 다시 대결을 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맥락 위에 놓여 있는지를 간과하지 않는다.

여기에 여성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도 주목할 지점이다. 대다수의 격투만화에서 여성 캐릭터는 아무리 주연일지라도 조연과 같은 취급을 넘어서기 어렵다. 마치 ‘드래곤볼’에서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여성 캐릭터는 ‘인조인간 18호’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 안에서 ‘부르마’나 ‘치치’는 아무리 주인공이어도, 결코 주인공과 동료들과는 동등하게 취급받기 어려웠다. 물론 여성 캐릭터가 직접적으로 싸우는 격투만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바타 요쿠사루로의 ‘에어마스터’나 호리코시 코헤이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에서는 주인공으로 여성 캐릭터가 활약하며 강자들과 치열한 싸움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이들 작품의 경우에도 전자의 경우에는 주인공의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꾼 것을 빼면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평면적이며, 후자 역시 분명 싸울 수 있는 여성 주인공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가 맡는 역할이나 활동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격기 3반’은 캐릭터의 성별을 다양하게 배치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캐릭터들을 허투루 낭비하는 대신 각자 지니고 있는 과거와 특성, 관계와 심리를 적절히 배치하는 방식으로 기존 격투 만화의 한계를 넘어서려 한다. 작중에 등장하는 여성 격투가인 ‘여은솔’이나 ‘마리아 다카스코스’는 자신이 지닌 격투 능력에 걸맞는 근육을 지닌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렇다고 단순히 ‘서비스씬’을 위해 낭비되는 것도, 주변으로 밀려나는 것도 아닌 ‘격기반’이라는 작중의 공간을 무대로 주인공과 교류하며 함께 성장하고 나아가는 모습을 그려낸다.

이러한 특성이 처음 작품이 연재될 때부터 확립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기존의 격투만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혹평이 만만치 않았으며, 전면적인 수정과 변신을 거쳐 새롭게 다듬은 결과물이 바로 지금 ‘격기 3반’의 모습이다. 비록 처음부터 완벽한 결과물을 선보였던 것은 아니지만, 작중 주인공의 모습처럼 목표를 위해 계속 성찰하고 고민하며 실천하는 과정을 거치며 작품을 더욱 나은 모습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치 격투가 단순히 적을 상대하는 것을 넘어 자기 자신을 수련하는 하나의 실천인 것처럼, 작가 역시 작품을 그리며 한 단계 나아간 셈이다. 그렇게 ‘격기 3반’은 한국 격투만화가 나아갈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스스로 입증하고, 다시 이를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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