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우수만화리뷰] 연의 편지
박희정 2019.07.19

2018년 8월 네이버 웹툰 여름특선으로 연재되었던 10편의 짧은 이야기다. 시골의 한 중학교를 배경으로 마법과 같은 환상적인 요소를 가미해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 맺는 법에 관해 따스하게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화풍과 유려한 연출로 연재 당시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으며, 최근 단행본으로도 발간되었다. 


왕따 당하던 친구를 도우려다 왕따가 된 ‘이소리’는 전학을 간다. 낯선 학교에서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위축된 소리는 우연히 자신의 책상에서 누가 보내온 건지 알 수 없는 편지를 발견한다. 전학생인 소리에게 환영 인사를 건네며, 학교 곳곳과 반 친구들, 선생님들에 대한 친절하고 세심한 설명으로 채워진 편지였다. 첫 번째 편지에서 준 단서를 따라 두 번째 편지를 찾아낸 소리는 편지를 쓴 사람이 ‘정호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는 소리가 앉는 자리의 원래 주인이었고, 지금은 전학했다고 알려져 있다. 

<연의 편지>는 그렇게 소리가 호연이 남겨둔 열 통의 편지를 하나씩 찾아 나가는 여정으로 구성된다. 이 여정은 크게 두 가지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편지를 하나씩 찾아 나가면서 소리는 호연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된다. 이것은 호연이 소리를 위해 편지를 놓아둔 이유를 알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소리는 호연의 편지를 따라가며 낯선 학교의 곳곳을 탐험하고,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왕따 경험으로 인해 부서졌던 소리의 세상이 새롭게 복원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이름’은 주제를 풀어가는 핵심적인 장치다. 호연의 네 번째 편지는 학교 경비 기사의 이름을 아는 사람을 위해 준비되었다. ‘김순이’라는 이름의 기사는 학교에서 자신의 이름을 정확히 불러준 소리에게 편지를 내어주며 “이름으로 불릴 일은 정말 없”다고 말한다. 호연은 특이한 아이였고, “정말 그 앤 이름을 잘 외운다니까”라고도 말한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나와 다른 존재를 ‘의미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관계는 이름을 아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름을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서도 우리의 관계는 달라진다. (이 작품의 제목은 왜 호연의 편지가 아닌, 연의 편지인 걸까) 학교 선생님의 이름은 알아도, 학교 구석구석을 보살피고 지켜주는 존재인 경비기사 김순이와 같은 이들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그들이 학교사회에서 중요한 구성원으로 여겨지지 않는 현실에서 기인한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다 여겨지지 않는 이들을 보통 사람들은 눈여겨보지 않는다. 그런데 호연은 그런 존재들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다. 

심지어 그는 학교에서 기르는 토끼들이 가진 개성도 고스란히 눈치챌 수 있는 섬세한 눈을 가졌다. 그 다정함의 힘은 ‘마법’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으로 비유된다. <연의 편지>에서 마법은 현실을 변형시키는 강력한 힘이 아니라, 현실을 한 꺼풀 들어 올려 발견하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다정히 대하는 것. 그것이 ‘아름다움’을 발견할 자격이며, 또한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이름을 삭제하는 세계는 곧 ‘왕따’를 만들어 내는 세계다. 이름을 살려내는 호연의 세계는 왕따를 만들어 내는 세계에 대한 저항이다. 그런데 저항에는 이해만이 아니라, 결단이 필요하다. <연의 편지>에서 소리는 결단을 요구하는 큰 사건을 두 번 겪는다. 한번은 왕따를 당하는 친구의 곁에 설 것인가, 말 것인가. 그리고 두 번째는 한 남학생의 불법적인 시험지 유출행위를 밝힐 것인가, 말 것인가. 첫 번째 갈림길 앞에서 소리는 고민 없이 정의로운 길을 택한다. 그 결과 소리는 박해받는 자의 위치로 떨어진다. 두 번째 갈림길 앞에서 소리는 어떤 길을 택했을까. 이 지점에서 <연의 편지>는 중요한 시사점 하나를 던진다. 누군가의 용기는 언젠가 또 다른 용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 용기를 낸 자의 곁에 서는 또 다른 용기들이 필요하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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