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신간만화소개] 사랑의 힘으로 문제를 직시하는 성장이야기 <방 안의 코끼리>
임하빈 2019.07.22

코끼리가 방 안에 들어있는 장면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불편해진다. 덩치 큰 코끼리가 작은 방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습이라니. 우리는 분명 심각한 문제임에도 애써 모른척하는 상황을 ‘방 안의 코끼리’라고 표현한다. 너무나 확연히 보이는 문제인데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상태. 그런 이야기가 꼭 들어맞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방 안의 코끼리>의 주인공 한여름이다.





자고로 재미있는 이야기란 공감 가는 인물이 흥미로운 사건에 휘말리며 이런 저런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에피소드들로 구성되기 마련이다. 과장된 사건과 인물로 지면을 채워도 모자랄텐데 인물 중 누구도 사건에 휘말리지 않는 재미없는 이야기를 그리는 만화가라니. 그녀가 인생을 대하는 자세가 투영되기라도 한 걸까?

수더분한 외모에 조용한 성격. 사교성 없고, 사회 경험도 없는 자타공인 아웃사이더. 삼수와 휴학으로 스물 여덟에도 여전히 학교에 남아 졸업작품을 준비하는데 그마저도 순탄치 않다. 그런 그녀도 역시 순정만화의 주인공 카드를 쥐고 있는데, 학교 내 유명한 꽃미남 이사랑과 둘도 없는 친구인 것.



그런데 이 남자의 행태가 조금 이상하다. 친구 사이라고 하기엔 과한 애정행각과 관심으로 여름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일상을 한 시도 가만히 두지 않는 것. 덕분에 여름은 8년째 일방적인 짝사랑 중이다. 그런데 이 눈치 없는 남자는 매번 여자친구가 바뀌고, 심지어는 자기 데이트에 늘 여름이를 데려가는 것이다. 이쯤 되면 사랑에게 여름은 나 갖긴 싫고 남 주긴 아까워 관리하는 물고기인 듯하다. 그럼에도 늘 사랑의 주변에만 머물러 인생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여름. 마치 방 안의 코끼리를 애써 무시하는 행색이다.



덕분에 늘 중간에 낀 새우가 되어 친구인지 엄마인지 모를 노릇을 8년째 하고 있는 여름. 주변인의 자리에만 머무는 그녀의 일상에 알록달록 다채로운 사나이가 등장한다. 그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진정한 남주인 걸까? 어딜 가도 어떤 식으로든 엮이는 그와 여름. 정말 운명인 건지 이름도 사랑이다. 그런데, 연하남이라고? 연하남인데 돈도 많고 착하고 잘생겼다니? 비현실적이라서 더욱 빠져드는 설정이 아닐 수가 없다.



이 이야기는 스스로가 인생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인물이 주변 사람들과 사건들을 통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어쩌면 진부할지도 모르지만 절대로 질리지 않는 베이직 아이템 같은 매력을 가졌다. 따스한 그림체는 잠시나마 느리고 차분하게 스크린을 내려갈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줄 것.

치열한 삼각관계 속에서 성장해가는 한여름의 행보. 그녀는 과연 방 안의 코끼리를 밖으로 내보낼 수 있을까? 스스로를 위로하듯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켜본다면, 어느새 한 마음으로 여름의 사랑을 응원하고 있을 웹툰, <방 안의 코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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