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우수만화리뷰] 왕 그리고 황제 – 비극적 역사 앞에 선 왕
최선아 2019.07.30



대다수의 국민들은 근대사를 경험하지 못했다. 과자를 주던 이웃집 일본인도 많은 농민의 땅을 빼앗은 토지조사사업도, 민족을 가른 6˙25 전쟁도 이미 옛이야기이다. 그러나 근대사의 비극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있다. 사람들은 일본의 망언에 여전히 분노하고 나아가 적극적인 불매운동으로 행동한다.

비극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비극의 원인에 대해 함께 말하곤 한다. 어떻게 하면 그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지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다. 다음웹툰에서 연재하는 <왕 그리고 황제>는 고종과 태종의 영혼이 바뀐다는 발칙한 상상력에서 시작한다.

고종은 혼란스러운 대외 상황 속에서 근대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다. 요즘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당시 한양은 다양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1884년 우정국이 설치됐고 1885년에는 전신을 설치했다. 1900년대 초반 이미 한양에는 전차가 다니고 있었다.1)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청나라와 일본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자연스레 고종의 업적도 낮게 평가됐고 여러 도서와 매체에서 고종은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에 휘둘리는 나약한 왕으로 묘사되곤 했다.

태종은 조선의 제3대 왕으로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위에 올랐다. 왕이 된 후 태종은 왕권 강화에 힘썼다. 수도를 한양으로 이전하고 공신 인척을 축출했으며 호패법과 신문고를 설치했다. 태종은 조선에서 드물게 강력한 왕권을 가진 왕이었다. 가장 위대한 왕으로 꼽히는 세종의 업적도 태종이 다져놓은 기반 아래 가능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왕의 영혼이 바뀌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태종은 왕 취급을 받지 못하는 고종의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쓴다. 언론을 교묘하게 조작하고 강력한 개화 정치를 펼쳐나간다. 고종은 가장 위대한 왕, 세종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애쓴다.

<왕 그리고 황제>는 역사를 잘 몰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역사를 공부하면서 본다면 더 재밌게 만화를 즐길 수 있다. 복잡한 내용에 간결한 그림체가 만화의 몰입도를 높인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 대체역사물은 어떻게 생각하면 바꿀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자기 위안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에 대해 계속 생각하는 것이 부정적인가? ‘만약’이 단순히 자기위안에서 끝나지 않고 자기반성에까지 이어진다면 이는 오히려 긍정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사는 특별하다. 우리는 아직 일제 강점기의 잔재 속에 살고 있으며 민족은 분열됐다. 100년이 더 지난 일제강점기에 대해 여태 제대로 된 사과조차 듣지 못했다. 근대사는 여전히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살아있는 역사이다. 근대역사를 되짚어보고 다시 생각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왕 그리고 황제>를 읽어볼 이유가 있다.

주)

1) 1902년 조선을 방문은 이탈리아 외교관 카를로 로제티는 당시 조선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서울에 도착한 여행자들이 가장 놀라워하는 것은 전차가 완벽하게 관리되고 있으며, 그 전차들이 서울 근교의 성곽 밖에 이르기까지 주요 간선도로를 통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한국인(Corea e Coreani)>, 카를로 로제티(Carlo Rossetti), 1994, 3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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