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우수만화리뷰] 가담항설, '안다'는 것의 의미
박희정 2019.08.16



가담항설
박희정



가담항설은 강력한 힘을 가진 지배자 ‘신룡’의 잔혹함을 충격적으로 드러내며 시작한다. 신룡은 ‘완벽한 신’을 갈망한 인간들에 의해서 탄생했다. 그의 천명은 그가 정한 것이 아니었으며 그는 한 번도 의문을 품어본 적 없는 채로 그 목적에 충실한 삶을 산다. 그러나 권력 유지에 불안을 느낀 선대 왕은 신룡을 죽이고자 계획을 세웠고 가장 먼저 신룡을 지키는 사군자 중 신룡을 부활시킬 힘을 지닌 춘매를 죽인다. 신룡은 ‘감정의 집합체’인 춘매를 잃고 삶의 목적도 욕망도 잃어버린 채 죽은 것과 진배없는 삶을 살게 된다. 


그 고통 속에서 신룡을 지배한 것은 분노 이전에 불안이었다. 나는 죽을 수 있는 존재이며, 권력을 욕망하는 인간들이 나를 또 죽이러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만든 불안. 그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신룡은 저항의 싹을 봉쇄하는 압도적인 공포로 인간을 통제하고자 한다. 인간을 침묵하게 하고 저항의 의지를 부숨으로써 지배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니 저항이 침묵을 깨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은 당연하다. 침묵을 깬다는 것은 그저 소리 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지배자에게 포획된 언어를 해방해 새로운 의미를 찾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로서 존재와 세상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가담항설의 세계에서 언어가 활용되는 방식은, 그러한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이 세계에서 힘은 그가 가진 학식의 깊이를 바탕으로 한다. 누구라도 말의 뜻을 이해하고 글로 쓰면 그 뜻에 해당하는 힘을 쓸 수 있다. 이해가 깊어지면 글로 적는 행위 없이도 바로 대상에 ‘각인’을 새겨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강할 강(强)을 새긴 무기는 단단해지고 날카로울 예(銳)를 새긴 칼은 베는 힘이 세진다. 이 힘은 무엇을 파괴하는 속성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회복할 복(復)을 새기면 부서진 사물 또는 다치거나 훼손된 몸을 되돌릴 수 있다. 무엇을 가두거나(방어결계) 사람의 눈을 속이는 허상을 만드는 힘(허상결계)도 있다. 이것은 언어를 통해 삶을 형상화할 수 있을 때 갖게 되는 영향력에 관한 유비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타인을 상처를 입힐 수도 있고, 반대로 치유할 수도 있다. 언어는 세상을 이해하고 감각하는 우리의 인식 또한 지배한다. 

가담항설은 욕망, 마음, 의지, 감정 같은 ‘지식 외’의 요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애하는데, 이것은 ‘안다’는 것의 의미를 우리에게 되묻는다. 신룡의 이성을 지키는 ‘지성’인 추국은 ‘감정의 집합체’인 춘매의 죽음 이후 “더 이상 전부를 알 수 없는 몸”이 되었다고 고통스러워한다. 춘매는 ‘인애’를 상징하며, 가담항설은 원칙과 지성과 신의가 인애를 갖출 때만이 인간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성과 감정이 분리된 것이며 이성의 우위를 말하는 세계관과는 뚜렷이 다르다. 


한편 지성을 추동하는 것은 ‘알고자 하는 욕망’이다. 욕망은 어떤 때 생겨나며, 욕망의 추구는 어떨 때 강력해지는가. 결핍을 인지할 때이다. 그리고 그 결핍을 ‘내가 욕망할 수 있다’고 스스로 받아들일 때이다. 세도가이자 권모술수에 능한 이갑연의 오른팔 암주는 의술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쌓고도 한동안 각인을 새길 수 없었다. 두려움에 떨면서 세상의 요구에 순응하는 동안에도 암주에게 욕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을 욕망의 주체로 인식할 수 없었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혹은 원할 수 있는지를 탐색해보기 전에 그의 생각은 이미 특정한 형태로 모양 지어졌다. 그것이 바로 권력의 작용이다. 

‘여자 장사’ 홍화의 각성은 앎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를 제시한다. 홍화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부당한 이유로 발생한 상실의 고통이다. 상실의 책임은 외부에 있고 삶의 목적은 행복에서 복수로 대체되었다. 상처에 사로잡힌 홍화는 그 목적 이외의 다른 욕망을 들여다보기 두려워한다. 다시 혼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직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홍화는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홍화가 그 두려움을 넘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는 자신 안에 늘 존재해왔던 ‘용기’를 인식한다. 

가담항설이 펼치는 욕망과 마음에 관한 이야기는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구성되는가, 무엇이 우리의 인식을 가리고 있는가를 묻는다. 이것은 나를 안다는 것의 어려움에 대한 말이기도 하다. 자기 부정을 강요당하는 이들이 자기를 아는 것은 더 어렵다. 그러나 가담항설은 ‘사회의 버림받은 자’들에게 그러한 현실을 뛰어넘을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담항설에는 그 ‘버림받은 자’들이 새롭게 자신을 인식하고 바꾸어내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가담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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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탈코르셋의 목소리가 뜨거웠던 해였다. 메이크업을 선보이던 뷰티 유튜버들이 맨얼굴로 탈코를 잇따라 선언하고, 탈코르셋을 주제로 한 만화 <탈코일기>가 무려 2억원의 펀딩을 경신하면서 그에 질세라 2019년에는 메이크업, 성형수술, 다이어트 등에 관한 만화가 대형 포털에도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꾸밈노동을 멈추자는 목소리가 전방위에 외쳐질 때, 꾸밈은 꾸밀 자유에 의한 것이라는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게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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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2019.11.05
좀비 콘텐츠로 최초의 대중적 성공을 거둔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9) 이후 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그 사이 좀비물은 좀비를 단순히 ‘산 자’와 ‘죽은 자’로 구분하는 공포물에서 벗어나 다양한 스펙트럼의 세계관과 장르로 진화해왔다. 범람하는 좀비물 홍수 속에서 또 하나의 물방울이 된 웹툰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이하 <좀비딸>)이 앞서 나온 수많은 좀비물과 다른 차별점이 있을지 의심부터 하게 하는 대목이다.
<2019 만화평론 공모(기성부문) 수상작 : 가작(지정평론)> 나비의 꿈: 중력을 거스르는 낭만의 날갯짓
정병욱
2019.11.05
좋은 작품은 작가가 그 모든 것을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제목에 이미 내용과 긴밀하게 연결된 다중 의미와 관점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조지훈의 시 「승무」 속 첫 번째 연과 마지막 연을 맺는 구절을 제목으로 빌려온 웹툰 <나빌레라>가 그렇다. 승무를 추는 승려의 모습을 묘사한 '나비로다.'라는 뜻의 우리말이 우아하게 담긴 이 시구 '나빌레라'에는, 그것이 '나비일까?' 의심하는 조심스러운 추측과 '나비로구나!' 깨닫는 확신이 공존한다.
<2019 만화평론 공모(기성부문) 수상작 : 가작(자유평론)> 심해수, 바다라는 유기적 소우주 생태계의 재건
임재환
2019.11.05
노미영 작화, 이경탁 스토리의 <심해수>는 2018년 3월부터 월간 투믹스에 연재되고 있는 웹툰으로 파괴된 지구 생태계 속에서 살아남은 인류와 인류를 생기적 목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심해수의 종간(種間) 대립을 그린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작품이다. 인간이 모든 만물을 지배하고 통제하던 시대가 끝난 미래세계에 인간은 심연의 심해수 공격에 위협받고 살아가는 차상위 먹이사슬 단계로 강등되었다.
<2019 만화평론 공모(기성부문) 수상작 : 가작(지정평론)> 통합예술에 관한 비평적 과제를 던진 풍자만화 <아티스트>
임재환
2019.11.05
마영신 작가의 웹툰 <아티스트(2019)>는 자본주의 사회의 예술가들을 다룬 현실적 리포트로 문화예술계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문화권력’의 폭력성에 대한 풍자만화이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제도 안에서 아티스트들이 갖는 사회적 지위와 여러 양상을 작품의 소재로 활용하고 자본적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며 갈등하는 이 시대 예술인들의 행태를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작품 전개의 기승전결에 따른 극중 인물의 설정과 캐릭터의 성격창조를 통하여 사회적 부정과 문화예술계의 비리를 파헤친 풍자성과 해학성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2019 만화평론 공모(기성부문) 수상작 : 가작(자유평론)> ‘엄마’, 욕망하는 여자
백건우
2019.11.05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분명 누군가의 ‘엄마들’이지만, ‘엄마’는 이들의 정체성이 아니다. 이들의 자식들은 이미 장성해서 자신의 삶을 살고 있거나, 남편과 이혼(또는 사별)해서 따로 살고 있는 여성들이다. ‘엄마’와 ‘어머니’는 같은 기혼 여성 가운데 자식을 둔 여성을 지칭하지만, 의미는 다르다. 마영신 작가는 왜 ‘어머니’여야 할 자신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친구들을 ‘엄마들’이라고 했을까.
<2019 만화평론 공모(기성부문) 수상작 : 가작(지정평론)> 룸펜 프롤레타리아, 욕망의 리얼리즘
백건우
2019.11.05
개인의 욕망이 어떻게 발현하는가를 들여다보면, 좁게는 개인을 둘러싼 좁은 영역에서 발생하는 낮은 차원에서 사회의 구조를 아우르는 거대한 관계망까지 영향을 끼치는 폭넓은 스펙트럼이 있다. 권력을 추구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사회적 욕망을 추구하는 것과 개인의 욕망이 일치할 때, 그것을 ‘사회적 성공’과 ‘개인의 입신양명’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