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우수만화리뷰] 땀, 삶, 그리고 벽 - <까대기>가 던진 질문
한기호 2019.10.07





좋은 만화에는 여운이 있다. 그것은 뚜렷한 감정의 잔해이거나 격렬한 고통의 상처 같기도 하다. 그리고 때로는 진한 사람의 냄새이거나 향긋한 풀 냄새와도 같다. <까대기>는 책을 덮는 순간 흠뻑 젖어드는 땀의 여운이 있는 만화이다. 더불어 몇 가지 질문이 맴도는 만화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 대한 뛰어난 감상들이 이미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글을 쓰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 질문을 공유해야겠다는 느낌. 땀과 삶과 벽에 대하여.

 

<까대기>는 택배 노동자인 주인공이 자신의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마치 철근노동자 시인 김해화 님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현실성이 있다. 주인공 ‘이바다’는 만화를 그리기 위해 포항에서 서울로 올라와 택배 노동 현장에서 일을 한다. 그는 온전히 몸으로 돈을 벌어가며 서울생활을 버티고 시간을 만들어 만화를 그린다. 그에게 노동은 삶이며 자신의 꿈으로 가는 긴 통로이다. 택배 작업을 위해 도착한 화물 트럭에서 짐을 내리는 ‘까대기’가 현재 그의 생계수단이다. 만화는 그가 어떻게 그 일을 하게 되었는지, 그가 일을 하는 과정은 어떠한지, 그가 일을 하며 만난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단정한 그림으로 정갈하게 그려내고 있다. 만화를 보는 내내 ‘이바다’와 그 주변인물들이 흘리는 땀이 손안에 문득문득 느껴져 손바닥을 문질러가며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까대기>를 읽으면서 독자들은 이러한 질문과 만나게 된다.


첫째, 지금 우리가 흘리는 ‘땀’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그에 따라 언어 역시 변하게 마련이다. 무리를 지어 다니던 화적 떼를 일컫는 말이었던 ‘불한당(不汗黨)’이라는 단어는 남을 괴롭히는 일을 일삼는 파렴치한 인간들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 ‘불한당’이라는 단어는 ‘땀을 흘리지 않는 무리’를 의미한다. 땀 흘려 일하지 않고 남의 것을 빼앗는 자들이 곧 불한당이라는 뜻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는 정직하게 땀을 흘려 일하는 것에 가치를 두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땀을 흘려 일하는 것, 정직하게 땀을 흘리는 일을 해야 하는 것으로 믿었다. 그러니 자신은 땀을 흘리지 않으면서 남의 것을 빼앗는 무리들이야말로 강도요 불한당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여서 자신이 정직하게 땀을 흘리지 않고 부당한 이익을 취하거나 자신이 가진 힘을 부당하게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 인간들을 우리 사회는 가장 큰 혐오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이바다’를 비롯한 택배 노동자들이 힘겹게 흘리는 땀을 보면서 독자들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지금 나는 땀을 흘려 일하고 있는가? 지금 내가 흘리는 땀은 정직한 땀인가? 또한 ‘이바다’의 땀을 제대로 읽는 독자들은 사회를 향해 동일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지금 당신들은 땀 흘려 일하고 있는가? 지금 당신들이 흘리는 땀은 정직한 땀인가? 이 사회는 정직한 땀에 대하여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가? 우리 사회에서 혹시 불한당 같은 자들이 정직한 땀을 흘리는 사람들을 부당하게 착취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는가? 따라서 부당한 땀으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이들에게 이 만화는 얼마든지 불편할 것이다. 마땅히 불편해야만 한다.


둘째, 우리의 삶은 올바른 삶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바다’는 자신이 원하는 만화를 그리기 위해 편안한 부모의 품을 벗어나 힘겨운 도시생활을 선택한다. 그리고 자신의 시간과 몸을 최대한 활용하여 정당한 노동을 하며 얻어낸 시간에 만화를 그린다. 그의 건강한 삶의 태도와 시각은 그가 만나는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이바다’ 주변에서는 독자들이 노동 현장에서 흔히 마주칠 것이라고 예상하는 거세고 험악한 말이나 몸싸움이나 불결함 등을 찾을 수가 없다. 그가 만나는 택배 노동자들은 각기 저마다의 안타까운 사연을 안고 노동현장을 따뜻하게 일구는 사람들이다. 노동현장을 부당한 곳으로 만드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노동자 자신들이 아니다. 노동현장의 모습들은 모두 그의 그림처럼 단정하고 정갈하다. 마치 잘 포장된 택배 상자처럼 삶의 현장은 반듯하고 단정한 구성을 하고 있다.


그래서 <까대기>의 독자들은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금 나의 삶은 얼마나 반듯하고 정갈한가? 나는 이 택배 상자들처럼 잘 포장된 정갈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반듯하게 그려진 선들은 독자들과 사회를 향한 안정적인 질문을 쉼 없이 던진다. 지금 나는, 우리는, 이 사회는 반듯하고 올바른 길을 정갈하게 만들고 움직여가고 있는가?


셋째, <까대기>의 마지막 장면이 던지는 질문이다. 택배 화물을 싣고 온 트럭의 문이 열리면 주인공이 ‘까대기’해야 할 짐들이 벽처럼 쌓여있다. 그는 그곳에서 그 벽을 ‘깐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벽을 깐다고. 지금 내 앞에 있는 벽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누구에게는 그것이 ‘진학’이나 ‘취업’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결혼’일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하루의 ‘삶’ 자체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우리는 모두 저마다 자기 앞에 벽처럼 막고 서 있는 짐을 내려야만 한다. 그 벽을 모두 내리면 약간의 길이 보일 것이다. 그 길을 비집고 들어갔을 때 또 어떤 벽이 어떤 부담감으로 나를 막아서고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저마다 자기 앞의 벽을 깐다.


자기 앞의 생을 뜨겁게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땀 흘려 자신의 벽을 까다보면 그 벽 사이에 작은 길이라도 보일 것이다. 그 뒤에 어떤 벽이 또 우리를 막아선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벽을 자신의 땀으로 정직하게 깔 뿐이다. 다만 한 가지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 앞에 서 있는 저 벽들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필요하다는 점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벽, 지금 우리 사회에 쌓인 벽들은 어떤 것인가? 우리 앞에 선 벽들은 모두 <까대기>가 그려낸 택배 상자들처럼 온전하고 반듯한 성격의 벽들인가? 그렇지 않으면 불편부당한 불한당들의 벽인가? 어찌 되었든 우리는 그 벽들을 모두 함께 까야 하는 ‘까대기’의 일선에 낡은 장갑 하나만 낀 채 우뚝 서 있다.


대중문화로서의 만화 역시 자신만의 예술성을 담보한 작품이다. 사소한 한 컷의 그림에서도 사회성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 만화가 가진 커다란 장점이다. 그렇게 볼 때 한 편의 만화가 함의하고 있는 사회성 역시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는 한 편의 만화를 보며 개인적 재미를 넘어서 이와 같은 사회적 질문들을 동시에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까대기>를 만난 이후의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계속 던져야만 한다. 나는 지금 정직한 땀을 흘리고 있는가? 당신이 지금 흘리는 땀은 정직하고 바른 것인가? 나는 올바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당신은 곧고 바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이 사회는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 정직한 땀을 흘리는 이들에게 곧고 단정한 길을 열어주고 있는가? 지금 내 앞에 벽처럼 쌓인 짐들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 앞에 쌓인 벽들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합당한 성격의 벽인가? 그 벽들은 올바른 짐인가? 나는 내 앞에 쌓인 벽을 열심히 까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우리들의 앞에 쌓인 벽들을 올바른 방식으로 함께 ‘까대기’ 하는 사회인가? 지금 우리 앞에는 어떤 벽들이 쌓여있는가? 우리는 우리 앞에 쌓인 벽을 까기 위해 어떤 땀을 흘리고 있는가? 얼마나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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