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2019 만화평론 공모(기성부문) 수상작 : 가작(자유평론)> <좀비딸>, 장르 전형의 빈 틈을 노리는 초장르적 침투성에 관하여
(평론작품 : 좀비 딸 (이윤창 작))
정병욱 2019.11.05


좀비 콘텐츠로 최초의 대중적 성공을 거둔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9) 이후 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그 사이 좀비물은 좀비를 단순히 ‘산 자’와 ‘죽은 자’로 구분하는 공포물에서 벗어나 다양한 스펙트럼의 세계관과 장르로 진화해왔다. 범람하는 좀비물 홍수 속에서 또 하나의 물방울이 된 웹툰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이하 <좀비딸>)이 앞서 나온 수많은 좀비물과 다른 차별점이 있을지 의심부터 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좀비딸>은 우리가 좀비물에 대해 “이미 너무 잘 안다.”는 익숙함 이면의 빈틈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그것을 즐기는 새로운 관점을 낳는다.

위선의 틈을 침투하다
<좀비딸>은 주인공 ‘이정환’이 정체불명의 좀비 바이러스 사태로부터 멀쩡히 살아남은 인류 사회 속에서 좀비가 된 딸 ‘이수아’를 몰래 키운다는 내용이다. 과거 가장 흔한 좀비영화 포맷은 좀비들이 창궐한 바깥 세상의 공격을 스스로 차단하고 고립된 주요 인물들이 하나, 둘 죽게 되는 형태였다. 안전한 ‘안’과 위험한 ‘밖’으로 구분한 이 같은 공간적 이분법은 위협의 존재가 좀비가 아닌 경우(대표작으로 소설 『안개』(1980), 만화 <진격의 거인>(2009))에도 마찬가지로 이어졌다. 반대로 <좀비딸>의 공간적 특성은 ‘좀비’라는 위험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려는 세상으로부터 좀비를 보호하는 장소로 재정립된다. 정환이 좀비를 보호하려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그가 바로 자신의 딸이기 때문. 좀비 바이러스의 위험으로부터 세상을 지키겠다는 대의가 아닌, 거꾸로 좀비를 박멸하려는 세상으로부터 좀비가 된 딸 수아를 죽이지 않고 지키겠다는 이기적인 선택이 주인공의 명분이 된다는 점부터 <좀비딸>은 다소 이상하다. 그리고 솔직하다.
많은 좀비물이 알면서도 핵심 서사에서 배제하는 중요한 사실은, 좀비가 변화 직전까지 누군가의 사랑하는 가족이자, 애인이고, 친구였다는 ‘과거’다. 좀비물에 등장하는 대다수 인물들은 좀비로 변해버린 이의 죽음을 일찍 받아들이면 들일수록 생존 가능성이 커진다. 좀비의 생사나 과거에 얽매인 캐릭터는 주변 인물로서 줄거리에서 조기 퇴장하게 되거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기 마련이다. 이와 같은 설정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자연히 좀비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지켜낸 주인공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좀비로 상징화된 타자에 대한 위험 요소를 적극적으로 제거한다. 나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과 전 인류를 지킨다는 명분이다. 하지만 <좀비딸>에서 독자의 관점은 바뀔 수밖에 없다. 주인공과 그의 가족이 좀비 바이러스의 희생자로서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위협 대상이자 제거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나와 주변의 위험을 무릅써서라도, 자기 딸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정환의 굳은 의지는 마치 세상의 안전을 위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만이 정답인 양 묘사하는 클리셰의 위선을 비판한다.

윤리의 틈을 침투하다
<좀비딸>의 전개가 크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앞서 강풀의 웹툰 <당신의 모든 순간>(2010)은 그동안 다른 작품들이 대놓고 다루지 않았던 좀비로 변해버린 사람과 변하지 않은 사람 간의 관계에 주목했다. 동시에 생산성이 거세된 좀비 사태 이후의 일상을 다룸으로써 좀비로부터의 생존 밖의 생존 문제도 함께 건드렸다. 모래인간의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2012)는 고민의 여지를 좀 더 확장했다. 좀비 바이러스 치료제의 개발 이후에도 ‘치료대상자’와 ‘치료받지 못할 대상자’로 좀비들을 구분했고, 좀비로 변했지만 치료대상이 되지 못한 주변인을 사람으로서 죽게 할 것인지, 좀비로서 몰래 살아남게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그렸다. <좀비딸>의 고민 역시 존재에 대한 것에서 출발해 그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로 나아간다.
좀비의 개념과 형태는 그것의 탄생 이래 다양하게 변화되어 왔다. 초기에는 영화 장르에서 다양한 분화를 보였다. 오래전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영화 속 좀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물리적으로 신선한 좀비 형태와 움직임은 영화 <28일 후>(28 Days Later)나 <월드워 Z>(World War Z)와 같은 작품에서, 주제 측면에서는 <웜 바디스>(Warm Bodies) 등의 작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였다. 말하자면 과거 영화의 전통 좀비는 지능이 낮고 인간과 공존할 수 없는 근대적인 좀비이고, 요즘 작품의 좀비는 더 나은 지능을 갖추고, 인간과 공존할 수도 있는 21세기형 좀비이다. 후자는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유동적으로 존재한다. 일종의 유체로서의 좀비는 바우만(Zygmunt Bauman)의 말마따다 액체화된 후기 근대 사회나 사람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었다. 하지만 위선의 틈을 파고들어 살아남은 <좀비딸> 속 수아의 모습은 근대 좀비와 분명히 다르다. 오히려 먹고자 하는 욕구에 충실한 전통 좀비에 가깝다. 다른 점이 있다면, 무조건 '식육'에만 충실한 것이 아니라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살고자 하는 '본능'을 갖춘 야생 짐승과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단지 내 선택에 의해 누군가를 죽고 살리는 차원을 넘어서, 해당 존재를 다시금 규정하고 그에 대한 마땅한 행동 양식을 다시금 고민하게 하는 본작의 긴 여정은 좀비물 세계관의 윤리관 자체를 다시금 고민하게 한다. “그들은 더는 사람이 아니”(7화)라는 대통령의 선언과 실제로 가족이 아니라는 확증은 이 작품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수아를 살리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평범하게 키우려는 정환의 선택을 무조건 무모하고 잘못된 것으로 여겼던 독자들은 도리어 그와 같은 노력에 따라 점차 변화하는 수아의 모습을 보며 혼란을 느낀다.

진지함의 틈을 침투하다
작품 설정을 현실로 고스란히 옮긴다면 정환이 윤리적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좀비딸>은 '개그'와 '일상'이라는 장르 및 소재 비틀기를 통해 무거운 세계관과 철학적인 주제를 우회하고 시종일관 희극의 색채를 유지한다. 24시간 지속하는 생존 위협으로 인해 일상이 제거된 다른 좀비물과 달리 본작은 오로지 평범한 하루를 영위하려는 노력과 현실 밀착형 소재가 스토리의 핵심을 이룬다. 굵직한 위기의 순간들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이는 도리어 매번 싱거운 결말을 맞이하고, 절대 심각한 수준까지 치닫지 않는다. 국가 재앙 수준의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수아는 성인 남성인 아버지나 다른 인물들에게 손쉽게 제압되거나, 작은 체구의 할머니 '김밤순', 고양이 '애용이'도 힘으로 이기지 못한다. 드물게 결정적인 위기가 발생해도 우연한 행운이 뒤따르거나 수아가 의외성을 보임으로써 사건이 해결된다. 도입부 이후 좀비의 피 튀기는 인간 살육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좀비 장르에는 이미 많은 개그물이 존재한다. 이들은 대체로 좀비화된 세계를 희화함으로써 좀비에 의한 희생과 거꾸로 좀비를 사냥하는 행위를 웃음거리로 만든다. 이는 좀비 개그물 특유의 문학적 허용이지만, 일부 비장르팬에게는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잔인한 유머이기도 할 터. <좀비딸>은 다행히 설정상 수아가 작품 내 유일한 좀비로서 더는 유혈 낭자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 '내 딸이 세상에 하나 남은 마지막 좀비라면?'이라는 작품을 대표하는 대외적 슬로건은 비극성을 강화하는 극적 도구가 아닌 도리어 세계관의 위험성을 완화하는 안전장치다.
다양하게 등장하는 다른 작품의 노골적인 패러디 장면도 작품의 무게감을 낮추는 데 한몫한다. 정환의 친구 '동배'에게 공격을 가하는 13화 속 좀비 감염자 및 그의 강아지는 <포켓몬스터>의 주인공 '지우'와 '피카츄'를 패러디한 것이며, 16화의 동배 회상 속 수의사는 MCU 영화에 종종 카메오로 등장했던 마블엔터테인먼트의 전 명예회장 스탠 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 마을 이장이 무기로 쓰는 골프채 ‘3번 아이언’은 영화 <빈집>(2004)에서 사용된 폭력의 수단이기도 하다. 작품 밖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차용해 변용을 가하는 서사극 기법은 독자의 몰입을 방해해 이 작품이 외적으로 약점이 될 수 있는 윤리 차원의 고민으로부터 한 걸음 벗어난다.

일상의 틈을 침투하다
장르물은 장르 독자의 몰입을 유도하기에 용이하고 그 문법과 미학이 뚜렷해 설정이나 내러티브 구성이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명확한 장르성 탓에 누구나 가볍게 소비하기는 힘들다는 단점도 있다. 이는 인터넷만 된다면 스마트폰 및 각종 미디어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쉽게 즐길 수 있는 웹툰 자체의 속성과 대치된다.
<좀비딸>은 좀비물의 익숙하고도 특수한 속성을 비틀어 장르 팬의 관심을 사로잡는 초장르성을 띤다. 동시에 그 이야기를 집, 학교, 농촌 등 평범한 배경 속 무겁지 않은 일상에 녹여내는 장르적 일탈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를 통해 작품의 독자층은 비장르 팬의 범주까지 확장되며, 좀비 이야기의 범주는 일상의 틈까지 침투하게 된다.
<좀비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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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5
2018년은 탈코르셋의 목소리가 뜨거웠던 해였다. 메이크업을 선보이던 뷰티 유튜버들이 맨얼굴로 탈코를 잇따라 선언하고, 탈코르셋을 주제로 한 만화 <탈코일기>가 무려 2억원의 펀딩을 경신하면서 그에 질세라 2019년에는 메이크업, 성형수술, 다이어트 등에 관한 만화가 대형 포털에도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꾸밈노동을 멈추자는 목소리가 전방위에 외쳐질 때, 꾸밈은 꾸밀 자유에 의한 것이라는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게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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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2019.11.05
좋은 작품은 작가가 그 모든 것을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제목에 이미 내용과 긴밀하게 연결된 다중 의미와 관점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조지훈의 시 「승무」 속 첫 번째 연과 마지막 연을 맺는 구절을 제목으로 빌려온 웹툰 <나빌레라>가 그렇다. 승무를 추는 승려의 모습을 묘사한 '나비로다.'라는 뜻의 우리말이 우아하게 담긴 이 시구 '나빌레라'에는, 그것이 '나비일까?' 의심하는 조심스러운 추측과 '나비로구나!' 깨닫는 확신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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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환
201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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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만화평론 공모(기성부문) 수상작 : 가작(지정평론)> 통합예술에 관한 비평적 과제를 던진 풍자만화 <아티스트>
임재환
2019.11.05
마영신 작가의 웹툰 <아티스트(2019)>는 자본주의 사회의 예술가들을 다룬 현실적 리포트로 문화예술계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문화권력’의 폭력성에 대한 풍자만화이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제도 안에서 아티스트들이 갖는 사회적 지위와 여러 양상을 작품의 소재로 활용하고 자본적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며 갈등하는 이 시대 예술인들의 행태를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작품 전개의 기승전결에 따른 극중 인물의 설정과 캐릭터의 성격창조를 통하여 사회적 부정과 문화예술계의 비리를 파헤친 풍자성과 해학성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