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2019 만화평론 공모(기성부문) 수상작 : 우수상(지정평론)> 생활툰의 진화, 보편인류로서의 독자를 찾아내다
(평론작품 : 아기 낳는 만화 (쇼쇼 작))
이재민 2019.11.05


최근 몇년간 가장 주목할만한 생활툰은 단연 <아기 낳는 만화>다. 하지만 <아기 낳는 만화>의 등장을 이해하려면 생활툰의 등장과 역사에 대한 흐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존 출판만화 시장과 웹툰 시장을 가장 명확하게 구분하는 장르가 바로 생활툰이기 때문이다. 1998년에는 스노우캣(권윤주)의 <스노우캣>, 2001년에는 ‘성게군’으로 유명한 정철연의 <마린블루스>, 2002년에는 <파페포포>와 같은 작품들이 카페 등 커뮤니티에 연재되며 많은 공감을 얻었다. 이후 다음웹툰과 네이버웹툰을 대표하는 작가들 역시 인터넷 상에서 인기를 얻었던 <일쌍다반사>의 강풀과 <마음의 소리>의 조석과 같은, 생활툰을 기반으로 한 개그 만화를 그리던 작가들이었다. 작가 본인이 화자로 등장해 일상 속의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전하는 개그만화와 일상 속의 감동을 전하는 소위 ‘에세이툰’은 블로그, 게시판을 가리지 않고 흔히 보이는 모니터 속 풍경이었다. 만화 시장에서 비주류로 평가받던 자기고백적 서사가 생활툰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주류 만화로 소비되기 시작한 셈이다. 그리고 모니터가 다시 스마트폰으로 바뀌는 동안, 웹툰 시장은 천지개벽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큰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웹툰의 중심에 있던 생활툰 역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생활툰: 하위문화에서 대중문화로, 다시 내밀한 경험으로
소위 ‘인터넷 문화의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2000년대 중반은 대중문화와 서브컬쳐로 취급받던 인터넷 문화가 뒤섞이던 시기였다. ‘짤방’이라는 말이 처음 생겨났고, 디씨인사이드의 ‘스타크래프트 갤러리’에서 유행했던 ‘~삼’체가 지상파 방송으로까지 진출했다. 이런 양상은 웹툰에도 나타나는데, 2000년대 후반에는 워니의 <골방환상곡>에 등장했던 ‘엄친아’와 <마음의 소리>에 등장한 ‘차도남’이 전국적인 유행어가 되었다. 이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두 웹툰과 더불어 이말년의 <이말년씨리즈> 역시 ‘와장창’, ‘그래야 내 손님답지’같은 짤방으로 큰 인기를 얻고 인터넷 커뮤니티의 단골 손님이 됐다. 당시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였던 디씨인사이드는 웹툰 작가들의 등용문과 같은 곳이었다. 이말년, 기안84, 주호민 등이 디씨인사이드 카툰연재갤러리에서 처음 작품을 시작했다. 인터넷 문화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웹툰이 인터넷 문화의 주류 콘텐츠로 자리잡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독자뿐 아니라 작가들 역시 인터넷 문화의 소비자이자 생산자로 참여할 수 있었고, 주간연재로 독자와 작가간에 지속적인 교류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런 작가와 독자의 소통이라는 웹툰의 상호성은 특히 생활툰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효과를 낳는다. 작가가 화자로 등장해 직접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생활툰에서는 ‘작품보다 유명한 작가’를 낳게 되는데, 지금의 소위 ‘인플루언서’의 초기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연재를 하지 않더라도 이모티콘, 캐릭터상품 등으로 자신의 캐릭터인 ‘낢’과 ‘나이스진’을 활용한 사업을 꾸준히 선보이는 서나래와 김진이 대표적이다.

2000년대 후반, 생활툰은 ‘청년’들이 직접 이야기를 전하는 창구의 역할을 하게 된다. 당시 인터넷 문화를 관통하는 한 단어는 ‘잉여’였다. 자기비하는 서나래의 <낢이 사는 이야기>는 “아침에 일어나면 열 두시, 내 방은 예전부터 쓰레기. 낢 가족이 살아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라고 작품을 소개하고, 김진의 <나이스진타임>에서 작가는 자신을 ‘씻기 싫어하고, 서른이 다 되었지만 부모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미성숙한 존재로 소개한다. 청년세대의 취업난과 스펙쌓기로 대표되는 치열한 경쟁에 2008년 금융위기가 겹치며 가속화된 청년문제의 당사자들은 스스로를 ‘잉여’라고 불렀다. <낢이 사는 이야기>와 <나이스진타임>은 당시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관통하던 ‘잉여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88만원 세대’ 담론은 청년 세대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고, 청년세대는 거기에 반박하기보다 무기력함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인터넷 문화를 형성했다. 빈부격차와 부와 가난의 대물림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했던 88만원 세대는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하기보다 현재의 삶에 충실한 라이프스타일로 2010년대를 열었다. 스마트폰 시대 이전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과 초기 소셜미디어의 등장, 그리고 2011년 저가항공 해외항로 취항등이 본격화되면서 서나래(낢)의 네팔 여행기를 그린 <나는 어디에 있는 거니>, 서나래, 김진, 필냉이가 함께 연재한 몽골 여행기 <한 살이라도 어릴 때>와 같은 작품들이 당시 트렌드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하위문화였던 웹툰이 본격적으로 주류문화와 호응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그러나 세계 시장에서 2014년 스마트폰이 PC 보급률을 역전1) 한 이후 개인화된 미디어 소비가 더욱 촉진되면서 작품의 다양성이 크게 증가했다. 동시에 영화, 드라마 등으로 웹툰의 미디어믹스가 본격화되면서 미디어믹스가 어려운 생활툰은 다시 수요가 줄어든다. 때문에 생활툰 작가들은 보다 전문적이거나 특별한 경험을 토대로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보편적인 생활을 그려 ‘인플루언서’가 된 작가의 대표주자가 서나래와 김진이라면, 이런 소위 ‘전문분야 생활툰’ 작품으로는 마일로의 <여탕보고서>와 <극한 견주>, 결혼정보와 이후 생활을 다룬 김환타의 <유부녀의 탄생>과 불친절의 <500만원으로 결혼하기>등이 있다. 이들 웹툰들은 ‘생활’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묶이지만, 동시에 누구나 경험하기는 힘든 에피소드, 또는 보편적인 내용을 잘 정리하고 경험자의 입장에서 전달하고 있다. 웹툰의 역사와 함께 시작한 생활툰은 이제 단순히 일상의 통찰이나 개그를 넘어 일종의 전문지식을 다루는 웹툰으로 진화하고 있다.

여성적 글쓰기, 그리고 생활툰
이처럼 웹툰은 진화했지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나 정보를 담고 있는 생활툰의 작가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전면에 드러내기보다 ‘도시 거주자’를 전면에 내세우는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2015년을 전후로 한 페미니즘의 ‘페미니즘 리부트’2) 이전 작품들에서 이 지점이 도드라진다. 거꾸로 말하면,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생활툰이 본격적인 변화를 겪었다는 이야기다. 자신이 겪은 가정폭력을 고백하는 이야기로 주목받은 <단지>가 연재된 것이 2015년 여름이다. 뿐만 아니라 2015년 이후 여성 작가의 생활툰에서는 ‘여성으로서의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2015년 이전부터 연재를 계속하고 있는 난다의 <어쿠스틱 라이프>를 통해 보면 이런 변화가 도드라진다. 작가가 본인을 화자로 등장시키는 생활툰에서, 이전의 작품들과 달리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전면에 드러내기 시작한 변화의 끝에 쇼쇼의 <아기 낳는 만화>가 등장했다.

<아기 낳는 만화>는 보편적인 대중을 상정해 ‘도시 거주자’로서의 화자인 작가의 삶을 그리던 생활툰이 보다 전문적인 소재를 다루기 시작한 시기와 페미니즘 리부트가 맞물리면서 ‘여성으로서의 삶’을 사유하면서 여성으로서 화자가 겪은 삶을 풀어내는 생활툰 중 하나다. 프랑스 철학자 엘렌 식수(Hélène Cixous)는 “여성적 글쓰기”라는 개념을 정의하면서 이를 ‘여성의 경험을 통한 글쓰기로 탈 이분법적, 비결정적인 스타일’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식수는 답이 정해져있는 ‘올바른’ 구성법, 선형적인 추론을 요구하던 기존 체계와 달리 ‘여성의 경험’을 기술하며 이전에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쇼쇼는 <아기 낳는 만화>에서 난임이었던 자신이 시술을 위해 병원을 찾은 일부터 시작해 임신, 출산까지 전 과정을 작품을 통해 공유한다. 임신과 출산을 계획하고 있던 사람에게조차 직접 겪기 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정보들이 밀려드는 과정과 그로 인한 혼란을 그리는 작품이다. 작가는 작품에서 의학적 사실과 증상에 대한 진단은 전문가인 의사들에게 맡기라고 말한다. 대신, 작품을 통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임신 당사자, 즉 여성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잘 알지 못했던 임신의 과정, 그리고 출산까지 여성의 경험을 직접 전함으로써 여성의 경험이 실재함을 증명한다.

새로운 독자의 출현: 보편적 인류로서의 여성
흔히 임신은 신성한 경험으로 여겨졌다. 자애로운 어머니가 온화한 미소로 불러오는 배를 쓰다듬는 장면과 같이 대중매체에서 임산부가 그려지는 모습은 말하자면 모성이라는 신앙의 표본이다. 그러나 <아기 낳는 만화>에서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함으로써 신성한 모성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임신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던 작가는 아이를 낳기 전부터 경력 단절, 프리랜서인 자신이 육아를 전부 맡게 될 것이라는 부담에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자연임신이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에 “생기면 어쩔 수 없다”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정말 자연임신이 되어버린 작가에게 임신이란 10대때는 ‘대단한 것’, 20대에는 ‘왠지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안드레아 드워킨(1946-2005)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독립적인 인격체가 아니라 국가, 민족, 가족 등 남성 중심적 공동체의 유지, 계승을 위해 사용되는 출산의 도구(‘애 낳는 기계’)”라고 주장3) 한다. 또한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복종하며 자식을 낳아 대를 이어주는 수단”4) 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면서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졌고, 이에 따라 가부장제의 남성성과 여성성이 흐릿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가부장적 권력은 유지되고 있으며, 우리는 이로 인한 여성에 대한 통제와 억압이 ‘자연인’으로 존재하는 여성과 공존하는 일종의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

현재의 과도기는 보편적인 교육이 활성화되어 14~19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낮아지고, 고등학교 진학율이 높아지면서 보편교육을 받은 첫번째 세대의 자녀들이 사회활동을 하는 현재 시기와 맞물린다. 1973년도에는 14-19세 여성의 40.7%가 경제활동에 참여했지만, 1988년이 되면 19.2%까지 낮아지는데5), 고등학교 진학율은 1985년 88.2%, 1990년에는 95%에 달한다. 당시 유행했던 순정만화의 독자들이 등장하면서 1980년대 처음 등장했던 ‘여성 독자’의 자녀 세대가 20대~30대가 된 지금, 새로운 독자가 나타났다. ‘여성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만화의 독자, 나아가 여성의 경험을 보편적인 인간의 경험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된 독자들이 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보편적 인류로서의 여성이 등장한 것이다.

그 당사자인 쇼쇼가 그린 <아기 낳는 만화>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고민이 노동자-자연인으로서 스스로를 인식했을 때 나타나는 문제라는 점은 그런 의미에서 타당하다. 현대 사회에서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개인이 임신을 했을 때 겪는 일을 가장 먼저 등장시킨 작가는, 여성의 경험을 전면에 등장시킴으로써 자신이 신성한 존재, 또는 출산의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작가는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다가 “애 낳을 때”가 되었다며 기차를 타고 통근해야 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리고, 정작 임신을 하게 되자 계약이 종료되어 일을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다. 2000년대 후반 생활툰에서 여성의 경험을 부각시키지 않음으로써 보편성을 드러냈다면, <아기 낳는 만화>는 여성의 경험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프리랜서-계약직-비정규직이라는 계층과 더불어 임신한 여성이라는 존재를 노동시장에서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 작가는 토로한다. 이처럼 오히려 자신의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드러냄으로써, <아기 낳는 만화>의 쇼쇼는 보편적인 존재로서의 자신을 증명한다.

생활툰을 통해 공론장으로 나온 가려진 경험
생활툰은 ‘공감’을 기반으로 한 장르다. 때문에 작가의 경험은 ‘특수한 경험’이 아니다. 이건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2016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여성 고용률에 따르면 20대 후반이 69.5%로 가장 높지만 30대 후반은 56.5%로 가장 낮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이런 연령대별 변화를 보이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뿐이다. 뿐만 아니라 2016년 기혼 취업자 558만여명 중 일을 그만둔 259만명 중에 임신, 출산, 육아, 결혼이 원인인 경우가 190만여명으로 약 73%에 달했다. 20대 후반~30대 초중반에 임신과 출산으로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출생률의 원인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을 지목하는 황당한 경우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일하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출생률이 떨어진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는가 하면, 행정자치부의 2016년 ‘대한민국 출산 지도’는 발표와 동시에 큰 비난을 받고 서비스를 중단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는 출산을 결심한 후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여러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지 3개월, 작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임신 후의 신체적, 정신적 변화와 자신의 경험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기록하고 말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지금껏 개인의 경험으로, 또는 소수의 특수한 경우로 여겨지던 임신 여성의 경험이 네이버웹툰이라는 거대 플랫폼을 통해 공론장으로 나왔다는 점은 주목할만 하다. 그동안 가려졌던 경험이 월 방문자만 2천만명이 넘는 플랫폼에 등장할 수 있었던 건, <아기 낳는 만화>가 인터넷 문화와 시류를 함께하는 생활툰이기 때문이다.

거대 담론이 중심을 이루는 공론장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이 모두의 경험이 될 수 있는 공론장으로서 네이버웹툰의 댓글이 기능한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젊은 층이 주로 이용하는 네이버웹툰의 특성상 임신에 대한 정보, 개인의 감상과 임산부로서 본인이 느꼈던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공론장에 나왔다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동시에 <아기 낳는 만화>에서 그리는 임신으로 인한 호르몬 변화로 피부에 여드름이 많이 생기거나, 피로를 쉽게 느끼고 집중력이 떨어져 일은 물론 여행준비, 고속버스 탑승이나 비행기 탑승도 하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유화 작업을 그만두어야 했던 실질적인 문제들이 ‘생활’로 그려지는 모습은 당사자가 아니면 알기 힘든 사실에 대한 정보로서, 동시에 ‘신성한’ 임신의 실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으로 그려진다. 교육용 다큐멘터리나 르포가 아닌 일상생활을 그리는 생활툰이기 때문에 가능한 묘사는 임산부인 작가 본인의 시각을 거쳐 재해석되며, 작품을 통해 사회에서 순식간에 이질적인 존재가 된 자신을 관찰한 결과로 자신을 그려 공론장에 앉힌다.

그런데도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보편적 경험’이 아니라 ‘개인적 경험’임을 강조한다. 서나래가 <낢이 사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후기에서 말했다시피, 웹툰 작가에게, 특히 여성 생활툰 작가에게 주어지는 도덕적 잣대는 “어마어마하게” 높다. 보편적인 인간임을 상정하고 만화를 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기에 따라오지 못하는 일종의 문화지체현상이 벌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작가 자신이 ‘개인의 경험’임을 상정했기 때문에, 작품을 본 독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사회에 어떤 것이 필요한지 논쟁한다. 이 작품은 정답이 없는 ‘여성적 글쓰기’의 방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개인의 경험들이 모여 구체적인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구심점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여기에 인터넷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웹툰, 그 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인터넷 문화와 호응해온 생활툰이라는 점이 <아기 낳는 만화>가 단순히 임산부의 존재를 말하는 것을 넘어 생존과 삶을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단순히 낮은 출생률이라는 지표만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임신의 경험을 통해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임산부에 대한 몰이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정비되어있는 제도와 보완이 필요한 부분, 아직 따라오지 못한 사회적 인식을 꼼꼼하게 경험을 통해 짚어낸다.

때문에 <아기 낳는 만화>는 단순히 임신이라는 개인에게 발생한 큰 사건을 단편적으로 그린 만화에서 그치지 않는다. 생활툰은 2000년대 중후반 ‘잉여’임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던 젊은 세대의 장르였다. 이후 웹툰이 성장하면서 보다 세분화, 일종의 전문성을 띈 생활툰이 등장했고, 작가 본인이 화자로 등장하는 장점과 2015년 이후 페미니즘 리부트가 결합되면서 ‘여성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여성적 글쓰기에 적합한 장르로 재탄생해 작가가 ‘사회 속의 개인’을 발견하고, 본인이 속한 사회가 개인-특히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경험을 통해 고발하는 장르가 되었다. 민서영의 <썅년의 미학>이나 곤의 <예민보스 이리나>같은 작품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주류 문화’와 가장 활발하게 호응하는 웹툰은 이제 영화, 드라마 등의 미디어믹스를 위한 원천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만화 자체만으로 파급효과를 만들어내는 경우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영상화를 염두에 두면 만화적 상상력이 오히려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각에선 장르 편중화를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애초에 일상생활을 주제로 한 생활툰은 일상의 다양한 주제를 파고들며 질적으로 한단계 성장했다.

생활툰은 서나래가 <낢이사는 이야기> 후기에서 풀어냈다시피 ‘생활’ 자체를 평가받아야 하는 위험을 가진 장르기도 하다. 오히려 이 때문에 작가는 작품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풀어내면서 이것이 ‘개인의 경험’임을 강조했고, 덕분에 더 많은 경험들이 댓글과 커뮤니티 게시글 뿐 아니라 신문6), 뉴스7) 등에서 임신의 경험을 나누고 보다 정확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되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출산=성스럽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선형 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사고의 범위를 확장하고 출산을 경험하는 여성 개인의 입장에서 현재 마련된 제도와 우리의 인식체계를 다시 점검할 수 있도록 했다. 새로운 독자 뿐 아니라 그 독자와 감수성을 공유하는 작가들이 직접 그려내는 만화인 생활툰은 보다 광범위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젠더이슈를 다룰 때 여성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주요한 도구로 진화했다. 생활툰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면서도, 사회적 자아와 보편인류로서의 자신에 대한 탐구를 놓치지 않는 <아기 낳는 만화>는 이런 생활툰의 진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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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5년 모바일 트렌드 전망”, KT 경제경영연구소, 2015. 1. 14
2) “페미니즘 리부트”, 손희정, 나무연필, 2017
3) “월경(越境) 하는 지식의 모험자들”, 정희진, 한길사, 2003, p 382
4) “중국여성운동사(상)”, 박지훈, 한국여성개발원, 1991, p 9
5) “경제활동인구연보”,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 2019
6) “출산 고통 너무 생생? 알아야 공감-고민하죠” 웹툰 ‘아기 낳는 만화’ 쇼쇼 작가“, 동아일보, 2018. 6. 1 A22면
7) “오로·침덧·배뭉침…들어봤나요? 임신의 실체를 ①”, KBS, 2019. 4. 14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179799&ref=A
<아기낳는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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