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2019 만화평론 공모(기성부문) 수상작 : 우수상(자유평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 그 자체로 아름다운
(평론작품 : 연의 편지 (조현아 작))
유원준 2019.11.05


지극히 일상적인 어느 날, 주인공인 소리는 학교 폭력(동급생에 대한 왕따 문제)에 맞서게 된다. 옳은 일이라 여기고 나서게 되었지만 어느새 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만 소리. 심지어 자신이 편들어 준 폭력의 희생자였던 지민까지 전학을 가게 되어 버린 지금, 소리는 원래 살던 곳인 아빠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본 작품은 여느 웹툰과 마찬가지로 최근 사회 문제로 불거진 청소년들의 학교 폭력을 모티브로 삼는다. 그러나 해당 주제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새롭게 전학을 간 학교에서 마주하게 될 한 장의 편지를 통해 소리와 독자들을 아름다운 추억의 시간과 장소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지브리 스튜디오(STUDIO GHIBLI)와 아다치 미츠루(Adachi Mitsuru)의 작품을 떠올리게 만드는 아름다운 그림체와 순수한 스토리의 이 작품은 잊고 지내던 자신의 인연들을 그리고 그러한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추억의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전학 이후 이전 학교에서의 아픔을 떠올릴 때 즈음, 겉봉에 ‘안녕’이라고 적혀있는 편지를 책상 밑에서 발견하게 된 주인공 소리. 주변을 두리번거려 보지만 편지를 보낸 이를 찾을 수는 없다.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오히려 경계하는 시선 속에서 마주한 이 다정한 인사말은 어느덧 주인공의 닫힌 마음을 열게 만든다. 편지의 내용은 학교 지도와 반 친구들에 대한 소개 그리고 두 번째 편지에 대한 단서 뿐. 그러나 두 번째 편지를 찾으러 도서관으로 가는 발걸음에 벌써부터 소리는 희망과 설레임을 담아내게 된다. 이윽고 마주한 송신자인 호연이라는 이름, 소리는 도서관의 대출 카드에 적혀있는 호연의 이름을 곰씹어보지만 반 친구들 이름에서도 또는 자신의 기억에서도 찾을 수 없는 이름임을 알게 된다. 이쯤 되면 독자들 또한 호연이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되는데, 작가는 아주 자연스럽게 작품의 장르를 귀여운 추리물로 변경하여 독자들의 동참을 이끌어낸다. 현재의 편지에 적혀있는 다음 편지의 단서, 각 편지의 내용은 소리와 독자들에게 학교와 주변 시설들 그리고 작품의 주요한 인물들과 조우하게 만드는 훌륭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어느새 수수께끼를 풀어내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은 다음 편지와 편지를 보낸 호연을 갈망하게 된다. 
세 번째 편지에서 일곱 번째 편지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은 소리와 함께 작품의 배경이 되는 청량 중학교의 공간들과 주변 인물들 그리고 소리의 학교 친구들을 함께 만나게 된다. 이 중 세 번째와 네 번째 편지를 통해 만나게 되는 (박)동순은 호연의 편지를 함께 추적하는 친구이자 동료가 되는데, 동순은 다른 친구(승규)를 통해 받은 상처를 호연과의 관계로서 치유했던 인물이다. 아무 말 없이 떠나버린 호연에 대하여 일종의 배신감을 가지고 있던 중 자신에게 남긴 호연의 편지를 보며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소리에 대한 연대감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편지에서는 프랜시스 버넷(Frances Hodgson Burnett)의 <비밀의 화원 The Secret Garden>과 유사한 이야기 및 공간 구성과 더불어 마치 인상주의 화가인 모네(Claude Monet)의 명작 <수련 Waterlilies>에서 차용한 듯한 연못 풍경이 펼쳐지는데 독자들은 아름다운 동화 속 풍경에서 진실에 한걸음씩 다가가게 된다. 
마냥 아름답고 흥미진진하게만 느껴졌던 이야기는 여덟 번째 편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과거 동순에게 트라우마를 제공했던 승규와의 사건을 통해 갈등 구조에 도달한다. 소리는 승규가 미리 숨겨놓은 유출된 시험지를 여덟 번째 편지가 놓여 있어야 할 소각로에서 찾게 되고 승규는 자신이 숨겨놓은 시험지를 대신하여 호연의 여덟 번째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 작품이 더욱 흥미롭게 느껴지는 순간이 바로 이러한 부분인데, 편지를 찾아가는 추리의 과정을 탄탄하게 만든 구성력이나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하는 작화력 만이 아닌 작품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편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이다.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종의 트라우마를 갖게 된 소리와 동순은 편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잃어버린 자신을 찾고 더 나아가 두려워하던 친구들과의 관계를 회복해간다. 
승규와의 사건으로 유실된 (승규가 태워버린) 여덟 번째 편지에서 이들의 추적이 마감될 무렵, 동순은 결국 편지의 순서가 자신과 호연이 만난 장소들을 역행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즉 아홉 번째 편지를 찾는 단서는 이전의 편지에 적혀있는 문구가 아닌 자신과 호연의 만남의 연 속에 주어져 있던 것임을 말이다. 여기에서 이 작품의 제목이 <연의 편지>임을 상기해보면 결국 우리가 찾고자 하는 ‘연’이라는 인물은 극 중의 호연이라는 직접적 대상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임을 추측할 수 있다. (작가는 후기를 통해 ‘연의 편지’가 ‘緣의 便紙’ 임을 밝힌다.) 또한 작가는 ‘인연’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중의적 의미를 이야기의 구조 속에서 풀어낸다. 아홉 번째 편지를 확인한 동순은 호연이 외국으로 이민을 간 것이 아닌 수술을 받으러 떠난 것이며 마지막 열 번째 편지의 장소가 (소리가 감기로 입원해있는) 청산병원 소아과 옥상정원임을 알려준다. 이 지점에서 <연의 편지>는 일종의 반전과 같은 스토리의 전복을 꾀한다. 즉, 호연이 남긴 편지가 익명의 전학생을 향한 것이 아닌 어린 시절 소리에게 받은 작은 호의에 보답하기 위한 회신이었다는 점이다. 작가는 ‘인연’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다른 의미, 즉 ‘원인과 결과(인과 연)’의 의미로서 어린 시절 소리가 호연에게 남긴 책상 밑의 메시지가 다시 전학생이 되어 돌아온 소리를 향한 호연의 편지였음을 보여준다. (단행본에 수록되어 있는 ‘추신’을 보면 이러한 부분이 보다 명확해진다)
독자들은 드디어 진실의 순간에 가까이 다가서게 되었다. 그러나 비밀이 풀려감에도 불구하고 왠지 이 작품은 마지막 화를 확인하는 손길을 주저하게 만든다. 작품 속 소리와 동욱처럼 호연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야기의 마지막이 슬픈 결말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그러한 주저함의 정체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렇듯 설레는 작품이 끝나간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운 까닭이기도 하다. 열 번째 편지에 들어있는 것은 녹우역으로 가는 기차표 2장. 떨리는 마음을 뒤로 한 채 기차에 오르는 소리와 동순은 종착역에 도착하기 전까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드디어 기차가 도착하고 작품은 독자들에게 지금까지의 호연에 대한 갈망과 그리움, 안타까움과 고마움을 담아 클라이막스가 되는 마지막 장면(동순과 소리가 호연에게 달려가 끌어안는 장면)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연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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