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우수만화리뷰] 당신이 찾던 그 여고 이야기 <이대로 멈출 순 없다>
심지하 2019.11.08





어지간한 범죄물 저리가라 하는 청소년 액션 학원물은 참 많았다. 학부모들도 싫어하고 선생님들도 싫어하지만 청소년들이 열광했던 학원물들. 학교 폭력 미화, 일진 미화, 폭력 조장, 비 도덕적, 비 윤리적……말도 탈도 많았지만 시대를 풍미했던 학원물들은 지금도 건재하다. 일진이 주인공인 작품들은 출판만화에서 웹툰까지 늘 순위권에 있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학생 캐릭터의 모습도, 학교의 모습도 하나 둘 변해간다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주인공이 모두 남자라는 것이다.


물론 여자 '캐릭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언제나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작품 한 구석에 숨어있던 여고생들. 거친 욕설이나 폭력을 행사한다 한들 '남자' 학생보단 못했던, 그럴 힘도 분량도 스토리도 없던 여성 캐릭터들. 이들이 모두 여기에 모였다. <이대로 멈출 순 없다>


공모전 당선작인 <이대로 멈출 순 없다>는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걸 전연령 플랫폼에서 연재해도 되는거야?'라는 걱정이 들 만큼 (실제로도 웹툰 초반에 그런 덧글들이 있었다) 폭력적이며 비도덕적인 장면이 있다. 우리 애가 따라할 까 걱정되고, 학교 폭력을 조장할까 걱정되고, 일진들을 미화하고 왕따를 조성할까봐 무서워지는 그런 작품이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다만 여학생들의 '학교 폭력'을 다룬 작품이라면 이전에도 분명 다양하게 존재해왔다. 특히 금남 구역인 '여학교' 내부의 폐쇠성, 학생 간 위계질서와 교묘한 폭력성을 다룬 작품들은 예전부터 분명 존재해왔다. 소설, 만화, 영화, 웹툰까지. 그러나 유달리 <이대로 멈출 순 없다>에 쏟아지는 우려는 결이 다른 것 같다.


"내 여고생이 이럴 리 없어!" 

"여성 캐릭터는 이래야만 해!"


"내 여고생이 이럴 리 없어!"라는 걱정때문일까. 혹은 "여성 캐릭터는 이래야만 해!" 라는 우려심 때문일까. 도덕적이지도 않고, 여자들끼리 서로 연대하며 돕지도 않고, 남부끄러운 욕설과 온갖 탈선 활동을 일삼으며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그런 여고생 캐릭터는 여성 인권을 후퇴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깔끔한 선과 어딘지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흑백 톤, 과하지 않은 데포르메와 미성년자를 향한 끈적한 성적 대상화는 보이지 않는 (그러나, 돌직구로 던져지는 대사들의 향연) 캐릭터 디자인, 시원시원한 액션들은 왜 남성향에서 그런 '무쌍난무' 작품들이 유행했는지를 새삼스레 깨닫게 해준다. 이게 몸에 좋지 않다는 건 아는데,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마냥 옳지 않다는 건 알겠는데. 재밌잖아!


그렇다. 실제로 본다면 분명 8시 뉴스 사회란에서 볼법한 에피소드들. 요즘에도 저런 애들이 있나? 세상이 참 말세다, 말세. 라며 혀를 찰 일들이 컷 안에서 벌어질 때 사람들은 열광한다. 적당히 현실적이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기에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비하며 시원한 해방감을 느낀다. 이 작품은 그러한 점에서 참 재미난 작품이다. 누가 봐도 건강한 작품은 아닐 지 모른다. 여자애들이, 죄다 미성년자인데 교복입고 주먹질하고 성희롱하고 담배피고 쌍욕한다니까? 라고 한다면 문제긴 하다. 19세로 해야하는 거 아니야? 라는 의견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주는 특유의 카타르시스만큼은 모두 인정해줬으면 싶다. 이렇게 시끄러울 만큼 제멋대로인 미성년 여성들이 나와 떠드는 작품은 드무니까. 마냥 보호받지도, 그렇다고 제 한몸을 책임지지도 못하는 가장 어정쩡한 고등학생이란 시기를 질풍노도로 보내는 청춘들을 지켜보는 즐거움이란.




사설이 참 길어졌다. 이 작품은 곳곳에 다양한 패러디를 배치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정리한 트위터 계정이 있으니 팬이라면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그런 패러디를 몰라도 충분한 재미를 보장하는 작품이다. 작품 내용을 볼까. 주인공인 배소연은 믿었던 친구들에게 배신당하고 정문동의 돼지우리로 유명한 정문여상으로 전학가게 된다. 친구들과 함께 나섰던 일이 어느새 친구들을 협박하여 혼자 벌인 폭력사태가 되어 혼자 모든 일을 뒤집어 쓰게 된 것인데.


더럽고 끔찍한 화장실, 후진 학교 시설, 무례하다 못해 막나가는 반 아이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소연의 신경줄을 단박에 와작낸 김민주. 이후로도 배소연의 시련은 계속된다. 급식실 식탁 위에서 춤을 추던 댄스 동아리 친구들과 시비를 트다 결국 급식실이 모두 개판, 아니 싸움판이 된다거나, 급식도 매점도 실패해 주린 배를 잡고 과자 자판기에서 뽑아 먹은 빵때문에 배탈이 난다거나, 그러다 급똥을 위해 3학년 화장실을 이용했다가……다음 내용은 만화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작품을 향한 우려와 달리 작가는 누구도 미화하지 않는다. 단지 보여줄 뿐이다. 여기에 이런 쓰레기가 있다! 라고. 다 비슷비슷한 애들이라고.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그저 보여주는 것 뿐이다. 물론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이 여성 캐릭터라서, 배경이 여고라서 지금까지 남성 캐릭터로는 지나쳤던 문제들을 여기서 굳이 한번 더 짚는 건 또다른 문제가 될 것 같다. 물론 과도한 폭력성과 온갖 범죄행위가 등장하는 작품임은 부정하지 않는다. 교복을 입고, 비청소년으로 명시된 캐릭터들이 담배를 뻑뻑 피우며 남자 교생을 성희롱하고 온갖 욕설을 주고받는 것은 분명 불편한 일이다. 다만 출판만화 시절, 그리고 현재 다양한 웹툰 플랫폼에서 이런 작품이 없었다고 할 수 있나? 물론 쟤도 저러는 데 왜 나는 안돼요? 라는 물타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이러한 장르가 줄 수 있는 이 작품만의 장점이 분명 있고, 단순히 '비도덕적'이란 이유로 덮어버리는 것은 잘못되지 않았느냐는 말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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