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신간만화리뷰] 듣도 보도 못한 털 상생 로맨스, 털업!
손유경 2019.11.12

털...


미모의 기준을 가르는 얇디얇은 털 한 올. 자꾸만 나는 털, 자꾸만 빠지는 털. 사람을 괴롭히는 털의 종류는 참 다양할 터다.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인구는 몇이나 될까? 제모로부터 자유로운 여자는 (거의) 없다.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탈모인구 천 만 시대‘ 제목의 기사가 쏟아진다. 어느 부위의 털은 레이저 등 장비까지 동원해 작살(?)을 내고, 또 다른 부위의 털은 모종을 옮겨 심듯 심혈을 기울인 수술까지 감행한다.


그렇다... 털. 한 글자가 안겨주는 공포는 좀비 스릴러물보다 크다. 털이 많고 적음으로 인한 슬픔은 여느 커플의 이별 이야기가 주는 그것보다 깊다. 이 웹툰의 소재가, 참으로 탁월하게 느껴졌던 이유다. 



버프툰에 연재중인 <털업>. 털 나는 여고생과 털 빠지는 남고생이 원수 같은 털로 엮이는 기상천외한 털 상생 로맨스물이다. 장르는 코믹, 학원물. 코믹물답게, 작가의 개그 연출력이 스토리 곳곳에 녹아있다. 털로 인해 공포에 떨어본 이들, 슬퍼봤던 이들의 마음은 물론 배꼽까지 사로잡을 명작이 아닐까. (이 작품이 연재 플랫폼의 공모전 1등 수상작이라는 사실은 필자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근거일 뿐이다.)



캐릭터 소개로 넘어가보자. 쾌활하고, 예의바르며, 공부까지 잘하는 고등학교 3학년, 고향연.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온 그녀의 일상을 깨트린 건 바로 턱수염. 거친 털이 보드랍고 매끈하던 턱을 뒤덮기 시작한 것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야성적인 턱수염에 향연은 언제 어디서든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하는 처지가 된다.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터놓을 수 없었던 탓일까, 발랄했던 소녀는 수북해진 털로 인해 성격까지 괴팍해진다. 그 어떤 시술로도 사리지지 않는 징한 턱수염에 유일한 해결책은 면도뿐이었다.



그녀의 학교에는 또 다른 종류의 ‘털’로 고생하는 한 남자가 있다. 바로 전교 2등 이태백이다. 그 또한 가족, 성적, 친구 등 모든 방면에서 충만한 유년시절을 거쳐 왔지만, 중학교 3학년 예상치 못했던 인생의 고비가 시작된다. 학교 폭력, 아버지의 사업 부도는 약과(?)랄까. 그에게 닥친 비극은 한 움큼씩 빠지기 시작한 머리 털이다. 이 때문에, 태백은 열심히 공부해 부자가 되는 것이 목표다. 대머리가 되어버린 열아홉 소년에게는 가난보다도 ‘모발’이 공부의 원동력이다. 이런 두 캐릭터가 전교 등수로 엮여 있는 설정이 설득력을 지니는 지점이다.


‘우당탕탕’ 서로가 부딪히는 로맨스 첫 만남의 클리셰로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엮인다. 학교 복도에서 부딪힌 두 남녀. 그러나 마냥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부딪힌 순간, 둘은 각자 털의 존재와 부재의 가리개인 마스크와 가발을 신경 쓴다. 향연의 마스크가 살짝 벗겨질 듯하는 순간, 타들어가는 그녀의 심정이 필자에게는, 느껴졌다. 이후, 씩- 씩- 거리며 집으로 향하는 향연의 뒷모습이 특히 애잔했다.



또 재밌었던건, 바닥에 떨어진 물건의 정체다. 둘을 엮기 시작한 충돌씬에서 활용된 건, 로맨스 물의 핵심 아이템인 ‘책’이 아니라 ‘발모제’다. 부딪히며 태백에게서 떨어진 대머리 태백의 발모제다. 그러나, 향연은 이를 자신의 면도크림으로 착각해 급히 주워 달아난다. 집에 도착해 턱에 발모제를 바르기까지 한다. 그래서 수염이 더 나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물건의 정체를 깨닫게 된다. 풋풋한 열아홉 남녀의 관계를 ‘발모제’가 잇는 웹툰이라니... 바람직(?)하다.


아무튼 발모제로 인해, 두 사람의 사이는 전교 등수로 맺어진 라이벌 구도에서 로맨스 구도로 전환된다. 가난한 탈모인 태백에게 비싼 발모제는 하루 빨리 되찾아야 하는 물건이기에, 태백은 향연을 좇는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어느 날, 발모제를 되찾기 위해 태백은 향연과 함께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 습한 날씨 탓인지 태백의 가발이 스르르 벗겨지고, 이어 향연의 마스크까지 벗겨지고 만다. 


이후 두 주인공은 피부 접촉 사고로 서로가 생각지도 못한 털 상생관계임을 깨닫게 된다.  이 웹툰의 포인트는 개성있는 캐릭터 설정과 둘의 관계에 있다. 여자와 턱수염이 짝지어져 탄생한 향연의 캐릭터와 대머리와 고등학생이 연결되어 구축된 태백의 캐릭터. 그 둘이 서로 가발과 마스크라는 가리개없이 생활하기 위해서는 두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시간이 필요한 사이. 듣도 보도 못한 그런 털 상생 관계다.



대머리 태백에 두근거리기 시작한 향연과, 수염 난 향연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 태백. 현재 15화까지 연재된 웹툰 <털업>에서는 코믹 삼각 로맨스가 막 시동을 막 걸고 있다. 태백을 짝사랑하는 여자 캐릭터 '허솔'의 등장으로 코믹한 긴장감이 더해진다. 태백과 향연의 가까운 사이를 질투한 허솔은 향연의 약점을 잡아 괴롭히려 든다. ‘털’있는 독자라면 향연과 태백의 이야기를 늦지 않게 감상하길 추천한다.  


향연과 태백을 포함한 제모인과 탈모인들이 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세상을 바라며, 다함께 털업.

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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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년간 우리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시간을 20년으로 늘려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사람들의 삶도 바뀌었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는 아나바다 운동이 지나가고, 웰빙이 지난 자리에 가성비와 소확행이 찾아왔다. ‘좋은 삶, 건강한 삶’을 지향하던 사람들은 이제 가격대비 성능이 좋은 것, 그리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소비의 방향을 옮기고 있다.
<2019 만화평론 공모(기성부문) 수상작 : 우수상(지정평론)> 생활툰의 진화, 보편인류로서의 독자를 찾아내다
이재민
2019.11.05
최근 몇년간 가장 주목할만한 생활툰은 단연 <아기 낳는 만화>다. 하지만 <아기 낳는 만화>의 등장을 이해하려면 생활툰의 등장과 역사에 대한 흐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존 출판만화 시장과 웹툰 시장을 가장 명확하게 구분하는 장르가 바로 생활툰이기 때문이다. 1998년에는 스노우캣(권윤주)의 <스노우캣>, 2001년에는 ‘성게군’으로 유명한 정철연의 <마린블루스>, 2002년에는 <파페포포>와 같은 작품들이 카페 등 커뮤니티에 연재되며 많은 공감을 얻었다.
<2019 만화평론 공모(기성부문) 수상작 : 우수상(자유평론)> <오늘의 순정망화>로 보는 ‘순정만화’라는 레토릭
조경숙
2019.11.05
사람들은 왜 웃을까. 몇몇 철학자들은 이 질문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다. 프로이트, 베르그송 등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철학자들도 ‘웃음’에 대해 연구했다. 이들은 도대체 웃음은 무엇이며, 사람들은 언제, 왜 웃게 되는지를 연구했다. 이들의 논의를 다 따라가지는 못했지만, 그중에서도 ‘웃음은 사회적인 것이다’라는 주장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다.
<2019 만화평론 공모(기성부문) 수상작 : 우수상(지정평론)> 이 시대의 ‘인싸 지침서’, <여신강림>
조경숙
2019.11.05
2018년은 탈코르셋의 목소리가 뜨거웠던 해였다. 메이크업을 선보이던 뷰티 유튜버들이 맨얼굴로 탈코를 잇따라 선언하고, 탈코르셋을 주제로 한 만화 <탈코일기>가 무려 2억원의 펀딩을 경신하면서 그에 질세라 2019년에는 메이크업, 성형수술, 다이어트 등에 관한 만화가 대형 포털에도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꾸밈노동을 멈추자는 목소리가 전방위에 외쳐질 때, 꾸밈은 꾸밀 자유에 의한 것이라는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게 터져 나왔다.
<2019 만화평론 공모(기성부문) 수상작 : 가작(자유평론)> <좀비딸>, 장르 전형의 빈 틈을 노리는 초장르적 침투성에 관하여
정병욱
2019.11.05
좀비 콘텐츠로 최초의 대중적 성공을 거둔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9) 이후 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그 사이 좀비물은 좀비를 단순히 ‘산 자’와 ‘죽은 자’로 구분하는 공포물에서 벗어나 다양한 스펙트럼의 세계관과 장르로 진화해왔다. 범람하는 좀비물 홍수 속에서 또 하나의 물방울이 된 웹툰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이하 <좀비딸>)이 앞서 나온 수많은 좀비물과 다른 차별점이 있을지 의심부터 하게 하는 대목이다.
<2019 만화평론 공모(기성부문) 수상작 : 가작(지정평론)> 나비의 꿈: 중력을 거스르는 낭만의 날갯짓
정병욱
2019.11.05
좋은 작품은 작가가 그 모든 것을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제목에 이미 내용과 긴밀하게 연결된 다중 의미와 관점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조지훈의 시 「승무」 속 첫 번째 연과 마지막 연을 맺는 구절을 제목으로 빌려온 웹툰 <나빌레라>가 그렇다. 승무를 추는 승려의 모습을 묘사한 '나비로다.'라는 뜻의 우리말이 우아하게 담긴 이 시구 '나빌레라'에는, 그것이 '나비일까?' 의심하는 조심스러운 추측과 '나비로구나!' 깨닫는 확신이 공존한다.
<2019 만화평론 공모(기성부문) 수상작 : 가작(자유평론)> 심해수, 바다라는 유기적 소우주 생태계의 재건
임재환
2019.11.05
노미영 작화, 이경탁 스토리의 <심해수>는 2018년 3월부터 월간 투믹스에 연재되고 있는 웹툰으로 파괴된 지구 생태계 속에서 살아남은 인류와 인류를 생기적 목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심해수의 종간(種間) 대립을 그린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작품이다. 인간이 모든 만물을 지배하고 통제하던 시대가 끝난 미래세계에 인간은 심연의 심해수 공격에 위협받고 살아가는 차상위 먹이사슬 단계로 강등되었다.
<2019 만화평론 공모(기성부문) 수상작 : 가작(지정평론)> 통합예술에 관한 비평적 과제를 던진 풍자만화 <아티스트>
임재환
2019.11.05
마영신 작가의 웹툰 <아티스트(2019)>는 자본주의 사회의 예술가들을 다룬 현실적 리포트로 문화예술계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문화권력’의 폭력성에 대한 풍자만화이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제도 안에서 아티스트들이 갖는 사회적 지위와 여러 양상을 작품의 소재로 활용하고 자본적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며 갈등하는 이 시대 예술인들의 행태를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작품 전개의 기승전결에 따른 극중 인물의 설정과 캐릭터의 성격창조를 통하여 사회적 부정과 문화예술계의 비리를 파헤친 풍자성과 해학성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