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우수만화리뷰] 존재의 조건-<올해의 미숙>
한기호 2019.11.13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 <창세기> 2:24

  


인류 지혜의 보고(寶庫)인 성서는 인간의 실존 조건을 이렇게 밝힌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젠더의 문제, 남자가 문장의 주체라는 논란 등은 중요하지 않다. 러시아 민속학자 프로프에 따르면 명사적 부분이 아닌 동사적 측면이 이야기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핵심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요점은 남자와 부모와 아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떠나’ ‘합하여’ ‘이룬다’는 동사적 측면에 있다. 


따라서 성서가 말하는 인간 실존의 조건은 세 단계이다. 그가 누구이든 의존하던 대상을 ‘떠나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이다. 그리고 다른 협조자와 ‘합하는’ 단계가 두 번째이다. 끝으로 둘이 하나를 ‘이루는’ 것이 세 번째이다. 인간은 본질상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상호 모순의 존재임을 한 문장 안에 함축한 명문이다. 


<올해의 미숙>은 여성 주인공의 성장기를 그리는 작품으로 읽기 쉽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한 인간의 실존에 관한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 본질상 독립적이며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어떻게 그러한 모순의 상황을 수용하며 존재할 수 있는가를 담담하게 그리는 작품이다. 이제 그 전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미숙’이 가장 떠나고 싶었던 첫 번째 대상은 그의 이름이었을 것 같다. 그것은 선천적인 질병이나 장애처럼 그를 뒤따른다. ‘미숙아’라는 조롱 섞인 호칭은 주인공을 시종일관 주눅 들게 만들고 또래집단으로부터 소외시키는 치명상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결말에 이르도록 자신의 이름을 바꾸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주인공 자신이 이름이 주는 굴레에 얽매인 존재가 아님을 알려주는 실마리이다. 이 작품이 단순히 이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근거이기도 하다. 만일 이름이 주인공의 운명을 사로잡은 굴레였다면 그는 사주를 바꿀 수 없는 대신 이름만은 바꾸었을 것이다. ‘미숙’은 아버지가 키우던 개의 이름은 바꿀지언정 자신의 이름은 바꾸지 않는다. 그것은 이 작품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그의 이름에 제한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중요한 것은 명사가 아니다. 


‘미숙’은 그의 언니로부터 떠난다. 언니는 어린 시절 그의 전부였고 부모와는 다른 의지의 대상이었다. 자신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주는 대상의 결함을 발견하는 일은 자신이 성장하고 성숙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완벽한 보호자였던 언니는 아버지에게 시 쓰는 일로 인정받지 못하고 아버지의 폭력에 정당하게 저항하지 못하며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는 것으로 분노를 억압한 채 살아간다. 작품의 프롤로그에서 이미 언니는 더 이상 주인공의 의지의 대상이 아님이 드러난다. 오히려 언니가 동생인 주인공을 의지하고 있다. 존재의 일차적 조건이 ‘떠나는’ 행위에 있다고 볼 때 주인공의 일차적 떠남의 대상은 그의 언니이다. 미숙은 언니를 떠났으나 언니는 끝까지 미숙을 떠나지 못한다. 


‘미숙’은 친구 ‘재이’로부터 떠난다. 언니와의 일화와 마찬가지로 제법 긴 분량이 친구 재이와의 만남과 헤어짐, 재회와 교감, 최종적인 결별 등으로 구성된다. 둘이 교감하는 일련의 장면들은 연인과의 그것처럼 애틋하다. 주인공은 감정이 성숙해가는 사춘기에 이성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하지 않고 동성 친구와 깊은 감정의 교감을 체험한다. 언니에 대한 의존 상태에서 벗어난 주인공이 한동안 친구에게 감정적으로 깊이 매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친구가 자신을 수단으로 삼는 일종의 배신행위를 함으로써 둘은 결별하게 되는데 이것은 주인공이 학교를 떠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친구와의 결별이 학교를 떠나는 행위와 연결되는 것을 보면 이 작품에서 친구와 학교는 등가적 관계를 갖는다. ‘재이’와 학교는 ‘미숙’에게 있어 같은 의미를 가진다. 자신을 성숙하게 만들고 교감의 대상이 된 친구 또는 학교가 결국은 자신을 배신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미숙’은 그들을 떠난다. 이것은 작품 속에서만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동일하다. 친구와 학교는 자신이 궁극적으로 의지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존재론적으로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 떠나야할 대상일 뿐이다. 물론 현실 세계의 인간들은 독립적 존재로서보다는 사회적 동물로서 친구와 학교 사회를 쉽게 떠나지 못한다는 차이가 있다. 


‘미숙’은 가족으로부터 떠난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모로부터 경제적, 심정적,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 세계를 둘러볼 때 그의 떠남은 사회적으로도 전달하는 바가 크다. ‘미숙’은 가족으로부터 떠나 독립적인 삶을 개척한다. 그가 가족으로부터 떠난다는 사실은 관습의 굴레에서도 떠난다는 것과 유사하다.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치르고 컨테이너 박스 형태의 열악한 사무실에 취직을 하고 작은 빌라에서 살아가고 숙제처럼 남자친구와 섹스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관습적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정규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기업에 취직하려 하고 좋은 아파트에서 살고자 한다. 


어린 시절의 의지 대상인 언니로부터 떠나고, 마음을 나눈 친구로부터 떠나고, 자신의 미래를 보장해줄 수도 있는 학교로부터 떠나는 주인공의 ‘떠남’은 주변 인물들의 ‘떠나지 못함’과 비교된다. ‘여보’나 ‘자기’나 ‘당신’으로 부르는 대상이 아닌 ‘선배’라고 부르는 남편과 살아가는 주인공의 어머니는 폭력과 무능력을 감수하면서도 그 남편이 죽을 때까지 곁을 떠나지 못한다. 모든 것에서 초연한 듯 보였던 주인공의 언니는 허벅지를 꼬집어가면서 아버지의 영향력에서 떠나지 못하고 결국은 병까지도 유전적으로 물려받는다.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의 유전이라는 상징성은 마땅히 떠나야할 대상에게서 떠나지 못하는 인간들이 감수해야할 업보처럼 읽힌다. 


‘미숙’은 일련의 대상으로부터 성실하고 꾸준히 ‘떠난다’. 그렇다면 그가 ‘합하여’ ‘이루는’ 대상은 누구 또는 무엇인가가 다음 논의의 대상이 될 것이다. 얼핏 그가 만나는 남자친구가 ‘합하는’ 대상이 된다거나 그가 만들고자 하는 가정이 궁극적으로 ‘이루는’ 대상이 된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처음 말한 바와 같이 명사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동사적인 부분이다. 그가 누구와 합하고 누구와 이루는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과연 합하고 이루는 행위를 끝까지 수행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숙’은 합하고 이루는 행위를 지속하는 존재이다. 작품 안에서 그는 자기 자신과 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 어린 시절의 미숙했던 자신을 떠난 미숙은 ‘무소유’에 맞은 상처를 안은 채 더 성숙한 자신과 합하게 된다. 언니와 친구에게 의존했던 나약한 자신을 떠난 미숙은 독립적인 힘을 가진 자신과 합하게 된다. 독립적 자아로 합일한 존재이기에 컨테이너 수준의 사무실을 개척의 대상으로 보고 능동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독립적이고 의지적인 자아로 합일한 존재이기에 남자친구와 능동적인 섹스를 할 수 있다(미숙이 수동적인 섹스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중요한 요소이다).


<올해의 미숙>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주인공 미숙의 삶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인간 실존의 기본적 조건은 자신이 속했던 집단, 자신이 의지했던 대상으로부터 ‘떠나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떠나지 못하는 인간은 홀로 설 수 없다. 절대적 의지의 대상으로부터 홀연히 떠난 인간만이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고, 진정한 자아와 대면할 수 있게 된다. 진정한 자신을 만나지 못한 인간들은 미숙의 아버지처럼 끝없는 실패와 절망과 좌절만을 반복하다가 비참하고 외롭게 죽어갈 뿐이다. 


인간은 궁극적 실재인 자아와 만나고 합일해야만 참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올해의 미숙>이 가진 상징성이자 미덕이다. 끝까지 사랑을 베풀지 못한 무능한 아버지로부터 미숙이 직접 데려온 개 ‘절미’는 작품의 말미에 똥을 먹지 않는 개가 된다. ‘올해의 미숙’은 이제 미래에 더 성숙할 일만 남았다.  <끝> 


<올해의 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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