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우수만화리뷰] 우리가 잊고 있던 해학, <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임재환 2019.11.20

키크니, <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arte, 2019.






“2년 만에 이 글 보고 웃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창작자를 밝히지 않은 채, 올라온 단 두 컷의 만화에 달린 댓글이다. 게시된 두 개의 이미지 가운데 첫 컷에는 ‘다 커서 여동생이랑 머리채 잡고 싸웠는데 엄마가 말리는 거 그려주세요’ 라는 누군가의 요구가 글자로 적혀있고, 그 밑에는 성인 자매가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중에 무표정한 엄마가 태연하게 딸의 머리카락을 헤어드라이기로 ‘말리는’ 만화 컷이 그려져 있다. 허를 찔린 독자가 만화가의 ‘언어유희’와 ‘재치’에 감탄하고 오래 간만에 웃음을 준 만화에 남긴 반응이었다.


“이게 진짜 유머지!” 라고 쓴 또 다른 독자의 댓글에 우리가 잊고 있었던 ‘해학성’이라는 만화의 진수를 새삼스럽게 상기하게 된다. 독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풍자와 해학으로 재치있게 그려내는 키크니(@keykney) 작가는 올해로 9년 차 일러스트레이터이다. 늘 주어진 글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야 했던 ‘일러스트레이터’가 자유로운 창작의 탈출구로 독자의 요구와 주문을 다른 이의 제약없이 창의적으로 해석하고 거침없이 해학을 담아 그려내는 ‘일러스트레이터미네이터’가 되었다. 작가가 만들어낸 신조어 ‘일러스트레이터 + 터미네이터’라는 지칭은 무척이나 거침없이 상상하는 인물이자 작가의 이상향, 또는 거울이미지로 해석된다. 2018년 7월 13일 작가는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의 원형이 된 독자요구에 따른 작가의 한 컷 만화를 작가의 인스타그램에 처음으로 연재를 시작한다. 작가는 “댓글로 아무 말이나 달아주세요.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라는 댓글을 남기고, 작품을 즐겨찾는 독자들과 꾸준하게 소통하며 1년 반이 흘렀다. 작가는 그 사이 단행본을 두 권이나 낸 주목받는 만화작가이자, 36만 5천 명(2019.11.20 기준)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루엔서가 되었다.



독자의 이야기를 만화로 꾸며내는 일은 웹툰의 1세대로 꼽히는 강풀 작가의 <일상다반사>를 연상시킨다. 웹이라는 공간에서 독자와 가깝게 소통하고 만화라는 매체의 강점을 살린 소통형 작품의 시초로 꼽을 수 있는데, 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과 비교하자면 강풀의 <일상다반사>는 독자들이 경험하거나 꾸며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독자 제보형’ 작품이다. 독자들의 엉뚱하고 생생한 일화는 강풀의 강점인 서사적 연출을 통해 더욱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재현된다. 반면에, 키크니는 ‘독자 주문형’ 작품을 그린다. 독자는 A라는 조건의 문장을 작가에게 요청했지만, 이 문장은 키크니 작가가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음소절의 자원이 되기도 하고, 작화와 더불어 의미를 갖는 한 쌍의 대립항이자 텍스트로 활용되기도 한다. 키크니의 만화는 세태를 꼬집는 날카로운 풍자화이기도 하고, 언어유희가 가득한 유머러스하고 재치있는 카툰이기도 하다. 또한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부모님이나 그리운 이를 떠올리게 만드는 감동적인 만화이다. 


키크니는 유머와 위트로 만화의 해학성을 살리는 작가이다. 유머와 위트에는 약간의 의미상 차이가 있는데, 유머는 성격적이고 기질적인 반면에, 위트는 지적인 점이 다르다. 유머는 독자의 습관적인 기대를 유희적으로 깨뜨리고 벌어지는 약점, 실수, 부족 등을 공감하고 인정하는 능력이고, 위트는 서로 다른 사물에서 유사점을 찾아내어 이를 관계화 시키는 지적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물들 간의 모순과 무감정의 표정, 인물 간 관계의 불균형은 독자로 하여금 ‘골계미(滑稽美)’의 미적 심상을 갖게 하는 장치가 된다. 베르그송(Bergson)이 웃음의 성립 요건으로 제시한 ‘비소성(非笑性)’과 일맥상통한다.


키크니는 문학적 수사법을 즐겨 사용하는 작가이다. 하나의 상황에 대조적인 상태의 인물들을 배치하여 강조하는 ‘대조법(antithesis)’과 똑같이 발음되고 표기되지만, 다른 뜻을 가진 두 개의 단어를 대치하는 ‘언어유희(pun)’는 키크니의 작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작품에서 싸움을 ‘말린다’는 독자의 주문에 작가는 머리를 ‘말린다’라고 해석하여 연출하는 다소 엉뚱한 언어유희가 해학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유아에게 성인심리의 대입이라던가, 애완견ㆍ애완묘의 의인법은 애완동물에 친숙한 독자의 공감을 얻는 기저로 작동한다. 비틀즈 앨범 자켓의 이미지처럼, 익숙한 이미지의 차용과 전작 만화 컷을 하나의 아이콘으로 활용하여 후속 컷에서 다시 사용하는 패러디 형태도 등장한다.


키크니는 독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SNS 작가이다. 주문제작 만화를 표방하는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의 성공은 작가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제일 큰 역할을 하였겠지만, 그간 클라이언트의 의도와 주문에 맞춰 작품을 제작해왔던 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인기의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는 수동적인 감상에서 나아가 적극적인 매개체가 되어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에 작가의 작품을 퍼나르기도 하고, SNS라는 매체의 특성을 살려 다른 이를 태그로 소환하여 본인이 감상한 작품을 공유하고 공감한다.


독자의 주문을 한 컷으로 그려내는 키크니 작가의 작화방식은 만화의 장르 중 ‘카툰’으로 분류 할 수 있다. 재치있는 아이디어를 한 컷에서 한 두 페이지 분량으로 그려내는 만화를 지칭하는 카툰은 풍자성이 강조된 정치사회 만평(political cartoon)과 해학성이 강조된 유머카툰(humor cartoon)으로 나눌 수 있다. 공격적인 풍자만평이 신문에 연재되면서 널리 알려진 반면, 관용적 성격을 지닌 유머카툰은 상대적으로 대중과 만날 기회가 적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SNS 플랫폼의 이미지 공유 서비스는 단순히 촬영된 사진을 공유하는 기능에서 나아가 짧은 몇 컷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카드 뉴스’와 드라마나 영화의 명장면을 자막과 함께 제공하는 ‘씬 스틸컷’, 스크롤 방식의 웹툰과 구분되는 슬라이딩 방식의 ‘SNS 연재만화’ 등 다양한 이미지 제공 서비스를 파생시켰다. 


칸트(I. Kant)는 웃음에 대하여, “무엇인가 기대하고 긴장해 있을 때, 예상 밖의 결과에 긴장이 풀려 우스꽝스럽게 느낀 감정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5G, 4차 산업혁명과 같은 현대의 기술변화와 빠른 환경변화 속에서 속도에 지쳐가는 대중에게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카툰 ‘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은 연민과 공감이라는 독특한 해학을 제공하며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과시가 넘치는 SNS 공간에서 낮은 곳을 지향하고 겸손히 자신을 낮출 줄 아는 키크니의 카툰이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랑을 받고 독자들을 위로하며 공감받기를 바래본다. 




■ 키크니 작가의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keyk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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