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신간만화소개]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심지하 2019.12.05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국어 교과서에서 익히 보았을 이상화 시인의 시와 같은 제목의 이 웹툰은 제1회 NC 버프툰 글로벌 웹툰 스타 오디션 수상작이라는 이력을 가진 웹툰이다. 강렬한 붉은색 바탕의 썸네일은 여타 다른 웹툰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화풍을 보여주는데, 탱화(천이나 비단에 부처나 보살의 그림을 그려 액자나 족자를 만들어서 거는 불교의 불화(佛畫)의 한 유형, 출처 위키백과)풍 그림체에서 느껴지듯 해당 웹툰은 불교적 세계관을 차용한 웹툰이다. 



불교적 세계관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인 윤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이 윤회를 이야기하며 장을 연다. 이야기는 꿈으로 시작된다. 기묘한 꿈에서 스님과 소년을 만난 이권례씨. 스님은 이권례씨에게 해송이란 소년을 소개하며 그를 데려가 돌봐주길 부탁한다. 과거에 큰 죄를 지었으나 스님과 함께한 긴 수행 끝에 마침내 속죄를 끝냈다는 소년 해송. 아리송한 꿈을 꾼 이권례씨는 자주 가던 절의 스님께 꿈에 관해 묻고, 스님은 '꿈속의 그 아이는 권례님의 아이로 저승에서 이승으로 돌아온 겁니다.' 라고 일러준다. 스님께서 주신 부처상이 인도해준 아이, 해승. 세상에 어디 소중하지 않은 아이가 있을 리 없지만 스님은 '첫째 아이는 꿈에서 나온 '해송'이란 이름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 이야기는 이런 권고(로 보이는 경고)를 무시하며 시작된다. 꿈 이야기를 듣고 남자아이가 태어날 것이라며 기뻐하는 시어머니와 가족들. 그러나 우리가 예상하듯 태어난 아이는 여자다.

여자아이로 태어난 첫째는 스님이 주셨던 '해송'이 아닌 숙이라는 이름으로 자라고, 해송이란 이름은 뒤이어 태어난 남자 동생에게 주어진다. 두 남매와 가족들의 이야기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작화는 얼핏 보기에 단순하고 정적으로 보인다. 선이 많지도 않고 화려하기는커녕 옛날 시골 풍경(작중 배경은 한국전쟁 이후의 전주이다.)은 단조롭고 예스러운 느낌을 주지만 탱화풍의 강렬한 색감과 컷마다 담긴 은유와 상징은 독자를 끌어당긴다. 스토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종교와 여성 서사는 어떻게 함께 갈 수 있을까. 이에 관한 대답은 지금 연재 중인 작품들과 앞으로 연재될 작품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종교와 여성 서사를 함께 끌고 가려는 노력은 다양한 곳에서 보인다. 창작자들의 자유 연재 사이트인 <딜리헙>에서 연재 중인 <극락왕생>이 그렇고, 크리스천 웹툰 사이트인 <에끌툰>에서 완결된 <비혼주의자 마리아>가 그렇다. 반드시 종교가 메인이 아니라도 웹툰 스토리 전개에 영향을 준 작품으로 <그녀의 심청>도 있을 것이다. 근래 웹툰을 비롯하여 다양한 출판, 미디어에서 대두하고 있는 '여성 서사'를 '종교적인 관점'에서는 어떻게 이끌어갈 수 있을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역시 이러한 답을 가진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인 숙이(해송)는 엄마와 함께 어릴 때부터 절에 다녔다. '사람은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가거나 평생 굶주리거나 아니면 짐승으로 다시 태어나지.' 정을 줬던 닭 뽀뽀가 할머니의 손에 죽었을 때, 숙이를 위로해준 어머니의 말이다. 숙이가 잉태되었을 때도, 정을 주었던 뽀뽀가 죽었을 때도, 숙이의 상처와 고통 곁에는 모두 신앙이 함께하고 있다. 그러나 숙이를 위로해주었던 신앙은 어느새 숙이의 목을 조르게 된다. 이렇게 태어난 것이 모두 과거의 업보라면, 삶의 고통이 모두 과거의 죄 때문이라면 지금 현재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현재란 그저 과거의 죄업을 갚기 위한 것뿐일까? 과거에 죄를 지었으니 현재가 고통스러운 건 당연한 일인 것일까?



매번 이름을 헷갈리지만 다정한 어머니, 언제나 무관심한 아버지, 동생만을 챙기는 가부장적인 할머니와 집안의 사랑을 자연스레 독차지하는 동생으로 이뤄진 가정에만 있던 숙이는 학교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며 자신의 처지에 대해 다시금 알아가게 된다. 당연한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며,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당연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를 알아가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만큼 잔인하지만 그럼에도 숙이는, 독자들은 함께 나아간다.


여성서사란 무엇일까



벡델테스트라는 것이 있다. 미디어 내 여성차별을 지적하기 위해 고안된 것인데, 조건은 아래와 같다.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를 최소 2명 포함할 것
서로 이야기를 나눌 것
남성에 대한 것 이외에 다른 대화를 나눌 것


물론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것만으로 여성 서사다, 아니다를 나누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적어도 이조차 통과하지 못한 미디어 콘텐츠들을 떠올려본다면 아직은 유효한 테스트이긴 하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어떨까. 숙이를 제외한 가족들은 숙이의 남동생, 해송이를 너무나 사랑하고 애지중지하지만 주인공이 아니다. 숙이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그 집의 가장인 아버지일 테지만 숙이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할머니의 언어폭력과 차별이며 그런 숙이를 지탱해주는 것은 어머니이다. 또한 그러한 가족 내 권력관계를 교묘히 이용하여 숙이를 착취하는 남동생만큼이나 숙이를 괴롭게 하는 건, 숙이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사는 것처럼 보이는 숙이의 친구, 지민이다. 숙이와 달리 집에서 아낌없이 사랑을 받으며 칭찬과 애정으로 가득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부유하고 예쁜 지민이. 그리고 숙이와 친하고 그림에 재능과 뜻이 있었으나 집안 형편과 오빠의 학업을 위해 공장으로 쫓겨난 지민이까지. 모두 여성이다. 가장 첫 화부터 이름이 나온 숙이 어머니, 이권례씨를 비롯해 모두 이름을 가졌으며 서로 남성에 대한 것 이외에 다른 대화를 나눈다. 여성으로서 자신이 겪은 일과 앞으로 겪게 될 일들, 그리고 서로에 대해서. 그들은 여성이기 때문에 괴롭지만 여성이란 이름으로 연대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잘 짜여진 여성서사 웹툰이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알기 때문에 먹먹하고, 잘 짜였기에 독자의 숨통을 조이지만 그럼에도 볼 수밖에 없는 웹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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