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우수만화리뷰] 리얼리즘 만화가 최규석의 유년시절 마주보기, 『대한민국 원주민』
임재환 2019.12.16




△ 최규석, 『대한민국 원주민』, 창비, 2008.


‘100도씨’의 뜨거운 가슴과 ‘송곳’같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지옥’같은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리얼리즘 만화가 최규석의 유년시절을 마주해 본다.

 

1. 추억이 아닌 기억을 기록하다.

 

<대한민국 원주민>은 주간지 『한겨레21』에 607호(2006.4. 27.)부터 655호(2007. 4. 12.) 까지 연재되었던 동명의 작품을 엮은 단행본이다. 1977년 경남 창원 출신 최규석의 가족에 얽힌 자전적 이야기로 작가의 유년시절을 중심으로 치부라 여길 수 있는 가족들의 민낯까지 고스란히 담겨있다. 가족들의 증언과 친했던 친지들과 주변 인물들이 취재원이 되어 당시의 이야기를 과장 않고 솔직담백하게 기술하고 묘사한다.

 

작가의 가족사를 통해 바라본 대한민국 현대사, <대한민국 원주민> 속에는 장남의 학업을 위해 어린 나이에 공장에 가야했던 장녀의 희생과 남편을 대신하여 돈을 벌려고 나서야 했던 어머니, 집에 TV가 없어서 다른 집의 창문을 기웃거려 TV를 보던 근대의 생생한 현장이 담겨있다. 이제 성인이 된 작가는 흐린 추억이 되어 생생한 감정이 기억나지 않으나, 마음 한켠에 자리 잡은 유년의 자아와 마주할 때, 이내 추스르지 못한 감정에 작가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연출된다.

 

주어진 환경과 경제적 여건에 맞춰 사느라 결핍을 느끼거나 욕망도 부리지 못했다는 최규석 작가는 본인의 소싯적 이야기를 마치 다른 이들의 이야기마냥 객관적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다. 흔히 추억이 아름다운 이유는 괴롭거나 아픈 기억은 망각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어렸을 적 행복했던 기억을 적어낼 게 없었다는 셋째 누나의 말처럼 작품 속에는 당시의 아픈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추억이라고 다 아름다울 수 없는 이유이다.

 

 

2. 도시화 과정과 ‘원주민’

 

작품 표지에는 아버지와 인디언이 좌우로 배치되어 있고,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가족은 아직 도시화되지 않은 자연인의 상태로 순수성을 상실하지 않은 여느 농촌 가족의 모습이다. 그들이 겪은 다양한 일화들은 현대사에 남을 만큼 극적이지는 않지만, 땀 내음 풍기며 치열하게 살아왔던 대한민국 가족사이자 개인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마치 ‘설국열차’에서 다양한 계급의 등장과 같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회적 목표를 가지고 다양한 문화를 소비하며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대한민국 원주민>에 등장하는 사회적 군상의 모습도 도시와 시골, 시골 중에서도 읍내와 촌의 ‘구분’이 등장한다.

 

도시생활에서 첫 등교날, 야박한 선생의 타박으로 그간 농촌에서의 행동습관을 부정당하고, 집으로 돌아와 “촌으로 돌아가자”면서 엄마를 붙잡고 우는 어린 막내 아이의 모습은 갑작스러운 도시화에 적응하지 못한 원주민의 순수함이 담겨있다. 그런 막내도 케익의 달콤함 만큼이나 달달하고, 하늘거리는 잠옷만큼이나 부드러운 도시의 문명에 익숙해져 갔음을 작가는 고백하고 있다.

 

실제 작가가 살던 마을은 댐 공사로 인해 수몰되었고, 그곳에 살고 있던 이들은 외곽지역으로 이주하여 더 이상 마을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정직하게 살아왔던 부모는 땅에서 일군 수확물에서 고향의 향수가 느껴지는지 자투리땅을 찾아 농작물을 길러보지만, 도시는 그들에게 조금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장면으로 작품은 끝을 맺는다.

 

 

3. 관찰자로서의 시선

 

작품에 나오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 시절 여느 아버지와 같이, 가정을 돌보기보다는 노름이나 술자리를 즐겼다. 머리가 명석했으나, 시골을 떠나지 못하고 빈농으로 살아가다 공사장을 전전하던 아버지와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계상황에 내몰려 머리에 다라를 이고 가가호호 수산물을 팔러 다니며 고생한 어머니가 계셨다. 아버지가 귀갓길에 술에 취해 흥얼거리는 노래가 들려 올 때면, 자식들은 또 어떤 사단이 날까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큰형과 막내인 작가 사이에는 4명의 누나가 있었는데, 그들은 각자 주어진 여건에 맞춰 10대의 나이에 공장으로 가야했고 남자 형제의 학업에 도움이 되어야 했다.

누구에게는 일상적이었던 도시의 서구문화는 유교적ㆍ가부장적 농촌문화 속에서 살아가던 작가에게는 이질적이었다. 농촌지역의 지역문화와 도시생활에서의 거대한 문화적 간극은 작가가 문화를 관찰하고, 그 구조를 파악하는 인류학자처럼 ‘관찰자로서의 시선’을 갖게 하는 데 일조했으리라 추정해본다. 도시빈민, 취약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하여 도시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력은 그렇게 길러지고 키워졌을 것이다. 우리 시대 비정규직의 노동자 권리에 관한 『송곳』, 광주 민주화 항쟁을 그린 『100℃』, 작가의 대학시절 자취방을 배경으로 한 『습지생태보고서』에 나타난 작가의 관점은 안정된 권리를 갖지 못한 이들, 권력 앞에 맞선 소시민들, 불안정한 미래를 가진 청춘들의 관점이 그러하다.

 

작중에는 작가가 직접 부모님과 가족을 취재하는 모습이 연출되어 이야기의 생생함을 더한다. 작화 사이에 연필로 담긴 데생과 글줄로 형제들의 근황을 전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에 기초한 영화 한편을 보고 실제 인물들의 근황을 듣는 것마냥 반갑기만 하다. 최근 최규석은 자신의 단편만화 <사랑은 단백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던 <돼지의 왕>,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춰 네이버에서 웹툰 <지옥>을 연재 중에 있다.

 

시대의 그늘을 외면하지 않는 작가, 그 깊은 어두움 속의 형태를 거친 흑연으로 그릴 줄 아는 작가, 최규석 <지옥>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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