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신간만화소개]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 약하면 먹히고 강하면 먹는다는 우리 사회의 초상
임하빈 2019.12.17





생존 아닌 공존

‘좀비물’이라고 하면 주인공이 어떻게 생존하는가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주인공들은 어딘가에 안전한 곳이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이동하고, 그 이동하는 동안의 전쟁과 온갖 생존 버라이어티가 이야기의 주된 내용이 된다. 생존자들은 똘똘 뭉쳐 연대감을 형성하고, 그러다 누군가 좀비가 되면 눈물을 머금고 총을 겨눈다. 좀비가 된 자는 이미 죽은 목숨이므로 살아 움직이지만 죽여야 한다는 딜레마가 보편적이었다. 그런데 생존보다 공존에 방점이 찍혀 있는 좀비물이 등장했다. 전환의 깃발을 들고 선두에 나선 작품은 이윤창 작가의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이하 <좀비딸>)이었다. 이윤창 작가는 좀비는 인류의 위협이 되므로 말살해야 한다는 세계관을 비틀고 좀비도 같이 살아갈 수 있다는 도전장을 내밀었다. 더 이상 예전의 딸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소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이 유일한 옵션은 아니어도 되지 않느냐는 상냥한 목소리로 말이다.


좀비가 되지 않은 인간만이 생존하여 새로운 인류를 시작할 것이라는 세계관은 미역의효능 작가를 통해 또 새롭게 변형된다. <아 지갑 놓고 나왔다>로 이름을 알린 미역의효능 작가의 신작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이하 <닭위대>)는 제목이나 그림체를 통해서는 좀처럼 알아채기 힘들지만 명확히 좀비물이다. <좀비딸>은 좀비가 된 딸을 다시금 ‘교육’하면서 공존하려는 이야기라면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도 여전히 약자인 사람들의 생존기다. 우리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면 남녀노소 모두 힘이 세지고 똑같이 잔인해진다는 편리한 설정 덕에 주인공들의 생존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닭위대>에 등장하는 좀비들은 감염 전과 동일한 지능으로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일상생활을 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인육을 먹는다는 것. <닭위대>에서 생존자들은 자신의 살점을 떼어 가려고 언제 달려들지 모르는 누군가를 늘 의심하며 좀비와 공존해야 한다.

 


공존 아닌 약육강식

무작정 달려드는 좀비들보다 지성과 사회적 지위를 갖춘 좀비들은 더욱 위험하고 소름끼친다. 좀비들은 택배원으로 위장하여 1인가구 여성들을 먹어 허기를 채우고, 먹을 사람이 마땅치 않으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자 좀비나 노인 좀비를 먹는다. 우리가 익히 아는 좀비처럼 이로 살을 뜯어먹지도 않는다. 식성에 따라 굽거나 끓여서 조미료까지 쳐 먹는다. 시장에는 인육 코너가 생겼고 ‘싱싱한 30대 남자 고기’를 판다는 판촉 행사가 진행 중이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판타지적 상상 아래에서도 여전히 약자들이 가장 먼저 무너지고 남은 사람들은 돈벌이를 한다.


<닭위대>가 기존의 좀비물과 다른 점은 좀비의 머리를 가격하며 생존해나가는 액션의 화끈함에 중점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좀비는 사람인가 시체인가 하는 윤리적인 고민도 차치했다. 정말 우리사회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다면 가장 먼저 사라질 집단은 무엇인가? 그것은 과연 자연스러운 일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닭위대>는 천재 닭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늙고 힘 없는 노인이 자살하는 것은 슬프지만 말릴 수는 없는 일이라는 “죽음 몇 조각에 대한 독백”은 웹툰의 전체의 알싸한 분위기를 내뿜는다. 그러나 자살을 앞둔 노인이 좀비를 피해 도망온 심연이라는 여자 덕에 죽음을 미루고, 둘의 교류와 연대는 아저씨 좀비를 무찌르게 한다. 아직 왜 닭이 의외로 위대한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힘 없는 노인과 여자, 닭과 고양이가 함께 “적당히”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던져두었다. 과연 약하면 먹히고 강하면 먹는다는 잔인한 사회 공식 속에서도 생존이 아닌 공존이 가능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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