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세대공감, BL 만화로 뭉친 여고생과 할머니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쓰루타니 가오리 지음/ 현승희 옮김/ 북폴리오
김하림 2020.01.17



새롭게 뜨는 과거 콘텐츠 열풍과 ‘세대공감’이라는 숙제 
최근 서점에서는 세대를 주제로 한 서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대 관련 책 중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에게 선물한 책으로 유명세를 탄 <90년대생이 온다>을 시작으로 90년대생의 소비 트렌드와 라이프 스타일, 재테크 등 관련 책들이 출간되었다. 이러한 특정 세대를 언급한 서적의 특징은 해당 세대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 및 관련 산업 종사자와 기성세대를 위한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각 세대들의 성향과 취향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정작 필수불가결하게 발생하는 사회현상인 세대차이의 해결책을 제안하는 책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현실 파악에 대한 논점은 강하나, 그 이후 각 세대를 이어주는 방안은 부재한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최근 레트로 열풍에 대해 부모와 자녀가 고전 오락 게임이나 딱지치기와 같은 놀이를 함께 즐기며, 로봇 태권브이 장난감을 아빠가 사서 아들과 함께 즐기는 영상을 최근 뉴스 영상을 통해 본 적이 있다.
한 뉴스에 의하면 레트로 열풍은 부모 세대에게는 추억을 어린 자녀세대에게는 새로운 체험을 선사한다는 점에 방점을 찍어 전달하였다. 그 밖에 20~30대 연령층에서 유행하고 있는 아이템은 LP판과 턴테이블이다. 90년대 CD와 디지털 음원에 밀려놨던 LP판과 턴테이블이 최근 찾는 이들이 증가했다는 LP제작사 관계자의 뉴스 인터뷰를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 레트로 열풍이 세대공감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BL만화로 이어진 우정
앞서 언급한 의문점에 대한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준 만화가 있다. 쓰루타니 가오니 작가의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는 일본 대형 출판사인 카도카와에서 발행한 장편 만화로 국내에서는 출판사 북폴리오를 통해 정식 발행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일본의 각종 만화 관련 상을 휩쓴 다관왕 작품이기도 하다. ‘이 만화가 대단해(このマンガがすごい!)’ 2019년 여성편 1위를 시작으로 ‘내 만화대(俺マン大賞)’ 2018년도 2위 선정, ‘Bros코믹어워드(ブロスコミックアワード)’ 2018년 대상 수상, 제 22회 ‘문화청 미디어예술제(文化庁メディア芸術祭)’ 만화 부문 신인상 수상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우수만화도서’로 지정된 작품이기도 하다. 

△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단행본

이 작품의 매력은 신선한 소재에서 먼저 찾을 수 있다. 여고생과 70대 중반의 할머니가 우연히 BL만화를 통해 친구가 된다는 스토리이다. 10대 여고생과 70대 여성과의 만남이라니, 50살 넘은 나이차, 일본 연호를 빌리면 할머니는 쇼와(昭和)이고 여고생은 헤이세이(平成)로 세대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떨어진 바람에 시대차이라고 할 법하다. 그야말로 할머니와 손녀의 만남인 셈이다. 사회적·물리적 거리가 가깝지 않던 이 둘이 점차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담았다는 점에서는 유사 스토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는 그 밖에 이색적인 요소가 추가되었다. 바로 BL만화라는 문화코드이다. 아무리 서브컬처 역사가 오래된 일본이라고 해도 아직까지 만화, 게임, 피규어 등 오타쿠 문화로 분류되는 콘텐츠에 대해서는 마이너적인 성향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 중 BL 즉, ‘Boys Love’으로 표기되는 일명 남성 동성 간의 교제를 담은 만화가 여고생과 할머니를 이어주는 매개체라니 매우 신선하다.
여고생인 우라라는 다소 무뚜뚝하고 숫기가 없는 소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친구는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소꿉친구였던 츠무구가 유일하다. 같은 반 동성 친구와 수다도 떨고 같이 점심도 먹고 싶지만 실해에 옮기기에는 서툰 10대 소녀이다. 75살 할머니인 유키씨는 3년 전 남편을 먼저 보내고 하나 뿐인 딸은 해외 거주하고 있어서 혼자 살고 있다. 유키씨는 오랜만에 들린 서점에서 우연히 펼쳐 본 BL장르 만화의 예쁜 그림체에 반해 책을 구매하게 되는데, 이때 서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던 우라라가 마침 카운터를 맡게 되면서 이 둘의 첫만남은 시작된다. 이들의 인연은 유키씨가 고른 BL만화 [너만 바라보고 싶어]의 3권 구매를 위해 서점을 다시 찾았을 이어진다. 
한 달에 두 번 병원을 가고 정기적으로 십자말풀이를 하며, 소일거리로 서예교실을 운영하는 유키씨는 언제나 같은 일상에 재미를 못느끼던 차에 만난 BL만화 덕분에 생기를 얻는다. 일본에서는 BL 콘텐츠를 좋아하는 여성을 동인녀 혹은 부녀자라고 칭하고 있다. 물론 언론매체를 통해 인식된 부정적인 이미지가 통상적으로 자리 잡힌 상태이다. 오타쿠에 대해서 음침하고 사교성이 다소 떨어지며 만화와 게임에 빠져있는 부류라는 일반화된 성향(1990년 중반 이후 오타쿠에 대해 긍정적으로 정의한 경우도 있다)에 대한 정의처럼 부녀자의 경우도 꽃미남 둘이 같이 있으면 서로 사귀는 관계라고 망상을 즐겨 한다는 식의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여고생 우라라는 서브컬쳐인 BL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인식해서인지 BL만화를 혼자서만 향유했지만 언제나 공유할 수 있는 유키씨 같은 친구가 절실했고, BL만화에 첫입문한 유키씨의 경우는 동세대 친구에게서 관련 정보를 얻기 어렵던 차에 우라라 학생과의 만남은 서로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인 것이다. 


△ BL만화를 통해 공감을 만들어가는 할머니와 여고생

편견 없이 바라 본 작가의 따뜻한 시선 


이 작품을 읽다보면 고독한 노인이 젊은이와 만남을 통해 삶의 의욕을 얻는다는 기존의 정형화된 스토리와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유키씨는 친구도 삶의 의욕이 없지도 않으며 해외 떨어져 사는 딸 내외와도 가깝게 지내고 있다. 우라라도 동성 친구가 없을 뿐 본인을 잘 이해하는 동성 친구인 츠무구가 있다. 또한 우라라는 집단 괴롭힘을 당하거나 가정이 불행하거나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다. 유사 소재 작품에 비해 지극히 극적요소가 적지만, 마치 인간극장을 보는 것과 같은 사람 사는 맛을 느낄 수 있다. 백팩 지퍼 올리는 것을 잊은 채로 걸어가던 우라라나 유키 할머니의 늘어진 손등 주름살을 잡아당기며 놀고 있는 어린 소녀의 모습에서 한 번 쯤 겪어봤을만 한 어릴 적 경험이 겹치면서 그리운 감정들이 몰려온다. 누구나 경험한 적 있지만 잊고 있었던 단편적인 감정들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독자에게 선사하는 선물이라 할 수 있다. 

△ 가방 지퍼를 닫는 것을 잊은 우라라와 유키 할머니의 살을 늘리며 놀고 있는 지인의 손녀

우라라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이혼한 아빠와는 정기적으로 만나서 영화를 보거나 외식을 하는 것이 전부다. 우라라의 진로를 걱정하는 잔소리가 심한 아빠와 우라라의 선택을 존중하는 느긋한 성격의 엄마를 두고 있다. 이혼 부모를 둔 여고생이라 하면 반항을 하거나, 힘들어 하는 모습으로 묘사된 기존 작품들에 비해 우라라의 스토리는 평범하다.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10대 청소년으로 그려지고 있다. 
작가 쓰루타니 작가는 편견 없이 여고생인 우라라와 할머니인 유키씨를 바라보고 있다. 다양한 가족형태를 보여줌으로서, 도리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던 이혼가정이나 독거노인에 대해 갖고 있던 일방적 이미지를 무너트리고, 만들어진 이미지에 현혹된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더불어 이 작품이 빠져드는 순간, 독자에게 유키씨와 우라의 특별한 우정이 선망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세대공감 콘텐츠의 발굴과 공론의 장
문화콘텐츠야말로 세대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주요 매개체라는 점을 <툇마루에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에서 알 수 있었다. 콘텐츠 입문을 위한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입문자들을 위한 교육과 더불어 같이 즐길 수 있는 온오프라인 공론의 장이 마련되길 바란다. 물론 하드웨어적 구축과 더불어 세대 간에 서로 공유할 수 있는 TVN의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나 일흔 살 노인과 20대 청년이 발레 통한 우정을 그린 HUN 작가의 <나빌레라>와 같은 좋은 작품이 창작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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