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싸움독학」 - 일진물이라는 새 시대의 웹툰, 이제 처절한 투쟁마저 비즈니스가 된다.
「싸움독학」 글 박태준, 그림 김정현 / 네이버웹툰
김한영 2020.01.20



「싸움독학」 - 일진물이라는 새 시대의 웹툰, 이제 처절한 투쟁마저 비즈니스가 된다. 

술자리에서 얘기를 나누다보면 학창시절에 주먹깨나 썼단 사람은 있는데 맞았단 사람은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스무 살부터 황혼을 준비하는 일흔 넘은 노인까지 현재가 어떻든 다들 그 시절에는 알아주는 주먹이었다. 그것은 처음으로 권력의 단맛과 쓴맛을 피부로 느끼게 한 ‘말죽거리 잔혹사’를 견딘 훈장인 것이다.
폭력성과 선정성. 박석환 평론가는 코믹스계 만화의 특징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1) 다소 비약이 있을 수 있는 주장이지만, 오늘날 명작이라고 평가받는 코믹스 중에 폭력성과 선정성을 배제한 작품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묻는다면 부정할 수 없는 주장이다.

 현 웹툰에서 그 두 가지를 탁월하게 이용하는 작가를 꼽는다면 가장 먼저 박태준 작가를 언급하고 싶다. 금요일의 「외모지상주의」 성공 이후, 화요일 「인생존망」, 일요일 「싸움독학」까지 모두 Top 5에 들면서 시장은 박태준 월드를 명징했다. 실제 모델을 본 따 만든 8등신 미형 캐릭터의 선정적인 복장과 자세로 독자의 이목을 끌고, 거친 선과 왜곡으로 악인캐릭터의 공포, 폭력을 강조한다. 내용적인 측면에선 조리돌림 당하던 나약한 주인공이 특별한 계기로 힘을 얻어 폭력으로 가해자를 응징하고 모두에게 인정받는 구조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물론 이 몇 줄이 박태준 작가론의 고유성이라 볼 수 없다. 이미 90년대 말, 일본 코믹스계 만화들은 앞서 말한 폭력성과 선정성이란 외피 속에 ‘이지메-혈통(혹은 재능)발견-물리적 복수-인정’이라는 플롯을 사용해왔다. 그러나 이는 「나루토」, 「이누야사」, 「원피스」 등 판타지 배틀물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박태준의 작품들이 속하는 ‘학원 격투물’ 장르에서는 이런 구조를 사용하지 않았다. 학원 격투물의 주인공은 이미 서열에서 정점 혹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존재로 시작하기 때문에 주인공이 이지메 피해자로 그려지지 않아 앞서 말한 구조에서 벗어난다. 일본에서 학원 격투물은 ‘경파물’이라고 부르는데 경파(硬派)는 “(여자와 인연이 멀고, 정의를 즐겨 주장하는) 완력·폭력을 주로 쓰는 불량배”2) 라는 뜻으로 주인공의 폭력은 약자를 괴롭히는 힘이 아닌 오히려 같은 학원 불량배들끼리 각자의 낭만과 정의를 관철시키려는 싸움의 현장을 그린다.

 국내 학원 격투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학원 격투물은 「진짜 사나이」,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을 시작으로 「짱」이 흥행하면서 유행했다고 평한다. 박인하 평론가는 「짱」은 폭력의 쾌감을 보여주지만 노골적인 쾌감에 의도적 거리두기를 한다고 말했다. 타 학교 학생의 폭행으로 1차적 쾌감을 부여하지만 주인공인 현 상태의 응징으로 카타르시스적 2차적 쾌감을 만든다.3)  즉 「짱」 역시 비행청소년 사이에서 영웅과 반영웅의 대립구도를 결구하여 경파물의 속성을 그대로 따른다.

  과연 박태준의 작품들은 학원 격투물이라 볼 수 있을까? 「외모지상주의」의 경우, 4대 크루가 등장하면서 「짱」처럼 영웅과 반영웅의 대립구도를 구축했지만, 연재초기를 생각해보면 아닌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조로, 피해자(자칭 루저) 주인공은 우연히 특별한 힘을 얻어 가해자와 맞서 싸우는 판타지 배틀물의 속성을 더 닮았다. 「인생존망」, 「싸움독학」 역시 일진이 과거로 회귀하는 내용이나, 아무도 모르는 싸움비기를 배우는 내용으로 역시 판타지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는 박태준의 작품들을 판타지 배틀물이라기 보다 학원 격투물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 이는 학원 내에서 벌어지는 폭행 사건이라는 표상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학원 격투물이라 볼 수 없는, 이 지점에서 독자들은 박태준의 작품들을 ‘학원 격투물’이 아닌 ‘일진 웹툰’ 혹은 ‘일진 만화’라고 부르고 있다.

  ‘장르란 명확하게 정의된 본질과 의미를 지닌 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도리어 움직이는 과녁이다.’4) 라는 배리 랭포드의 말처럼 장르는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장르가 관습의 집합체고 독자에게 하나의 표상을 떠올리게 하는 약속 관계라는 건 분명하지만 장르는 변하고 다양한 장르와 컨벤션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그렇기에 기존의 학원물과 일진물의 차이를 밝혀내야할 필요가 있다.

  아직 우리가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일진물은 학술적으로 연구되지 않은 장르이다. 시장에 비해 아카데미가 뒤쳐진 상황이다. 네이버에 ‘일진웹툰’으로 검색하면 「프리드로우」, 「외모지상주의」, 「연애혁명」, 「일진의 크기」, 「최강전설 강해효」, 「폭풍의 전학생」, 「소녀더와일즈」, 「패션왕」, 「윈드브레이커」, 「연놈」 등이 추천으로 나온다. 이 추천에 의하면 반드시 격투물이 아니어도 코미디, 스포츠, 로맨스 역시 일진물로 분류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르면 일진물은 학원 격투물보다 상위인 학원물의 대체인 것으로 판단된다. 제한된 지면에서 일진물의 장르 개념을 설명하기엔 아직 연구가 부족하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바로 앞서 말한 박태준 작가가 일진장르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어떤 일진물도 박태준 작가만큼 대중적 영향력을 미치기 못했기 때문이다.



1) 박석환, 「코믹스 만화의 세계」, 살림, 2015, p30

2) 네이버 일본어 사전“硬派”, https://ja.dict.naver.com/entry/jk/JK000000029217.nhn

3) 박인하, 「박인하의 즐거운 만화가게」, 시공사, 2002, pp.121-123

4) 배리 랭포드, 「영화 장르 헐리우드와 그 너머」. 한나래, 2010, p67



 「싸움독학」은 박태준 글&콘티, 김정현 그림으로 박태준 작가주의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찐따’인 호빈은 ‘일진’인 빡고에게 매일 괴롭힘을 당한다. 빡고는 작중 유튜브를 상징하는 ‘뉴투브’의 유명 ‘뉴투버’로 호빈을 괴롭히는 콘텐츠로 채널을 운영해간다. 호빈은 빡고의 완력과 뉴투브 구독자를 부러워한다. 어느 날, 호빈은 빡고의 오른팔이자 같은 반 급우인 ‘찍새’와 싸우게 되었는데 그 현장이 우연히 뉴투브에 업로드 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호빈은 찍새와 같이 가짜로 싸우는 콘텐츠를 제작하며 본격적인 뉴투버 활동을 시작한다. 빡고는 그런 호빈과 찍새를 못마땅해 하며 둘을 폭행한다. 호빈은 그런 빡고에 대항하기 위해 방법을 찾던 중, 우연히 뉴투브에서 ‘ehrgkrTkdna’ 이라는 구독자 0명의 채널을 발견하는데 그 채널은 싸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콘텐츠였다. 호빈은 영상을 보고 ‘안 아프게 맞는 법’을 배운 후, 빡고를 이기면서 뉴투버로서 성장하기 시작한다.
 본 작품은 9화만에 다른 일진물인 「약한영웅」을 누르고 일요일 웹툰 2위를 차지했다. 평점을 보면 1화에서 8.88로 시작했지만 2화가 되자 9.74가 되었고 9화에서는 9.90이 되었다. 1화에서 일진물에 대한 염려와 부정적이었던 베스트 댓글과는 달리 2화가 되자 “일진 웹툰이든 뭐든 개재밌음.”, “박태준 작가의 일진물은 다르다.”라고 평가로 바뀐다. 「외모지상주의」와 똑같은 현상으로 박태준 작가의 대중을 캐치하는 촉감에 놀랄 따름이다

「외모지상주의」가 폭력+외모를 묶고 「인생존망」이 폭력+회귀를 묶었다면 「싸움독학」에 들어갈 키워드는 무엇인가. 그 답안지엔 ‘유튜브’로 적고 싶다. 기존의 학원 격투물에서 짱(여전히 이 단어를 쓰는지는 모르겠지만)이 된다는 것은 학교, 지역구의 입소문으로 만들어진 ‘카더라’ 서열의 정점을 뜻한다. 「약한영웅」의 경우, ‘셔틀패치’라는 설정을 만들어 이 입소문의 공신력과 당위성을 보충한다. 그러나 「싸움독학」은 그 서열의 공신력을 뉴투브 구독자들이 만든다. 싸움의 현장이 뉴투브에 라이브로 송출되면서 실시간 시청자들이 현장을 관람하고 그들이 랭킹을 매기는 것이다.

 학폭의 피해자가 스스로 싸움을 익혀 가해자와 싸워나가는 내용은 이미 모리 코우지의 「홀리랜드」라는 작품이 있다. 호빈처럼 「홀리랜드」의 주인공 카미시로 유우는 이지메에 시달리다 히키코모리로 지낸다. 유우는 우연히 복싱 교본을 구매하게 되고 스트레이트만 매일 5,000번을 연습한다. 그러다 삶의 의지를 느낀 우유는 밤거리의 불량배들과 싸우면서 ‘불량배 사냥꾼’이라는 이명을 얻게 된다. 호빈에게 ‘안 아프게 맞는 법’이 있듯, 유우에겐 ‘스트레이트’가 첫 번째 무기였다. 주변 인물 관계를 보면 우선 호빈을 응원하는 찍새처럼 유우에겐 카네다 신이치가 있다. 호빈의 재능을 알아보고 조언해주는 같은 반 급우인 MMA 유망주 김문성처럼 유우에겐 전직 복서인 ‘노상의 카리스마’ 이자와 마사키가 있다. 그리고 호빈이 좋아하는 여자, 최보미에겐 김문성과 친한 친구관계라는 설정이 있는데 「홀리랜드」에선 이자와 마이라는 캐릭터가 마사키와 남매관계로 나와 주인공의 열등감을 자극한다.

 「싸움독학」만의 고유성은 그래서 유튜브가 된다. 이 작품은 싸움의 승자와 패자의 결과가 뉴투브 구독자로 드러난다. 호빈은 빡고의 실체를 폭로하는 ‘저격방송’ 콘텐츠로 싸움을 걸고 빡고를 이기면서 빡고의 뉴투브 채널 구독자를, 그의 수익을 빼앗아온다. 승자는 싸움 서열이 올라가고, 동시에 누튜브를 통해 유명인사가 된다. 그리고 그것이 수익으로 연결된다. 뉴투브는 10대 청소년들에게 자본주의의 희망을 달콤하게 속삭인다. 유우가 싸움을 시작한 계기는 가정, 학교, 사회에서 자신이 지워지는 존재의 위기 속의 발현된 자구책이다. 그러나 호빈은 돈 때문이다. 어머니가 계속 편찮은 것도, 교실 권력에서 최하위에 있는 것도 돈이 없기 때문이다. 1화 제목이 ‘개나소나 뉴투브야’인 것처럼 뉴투브 세상은 가진 게 없어도 참신한 아이디어로 열심히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가장 공평한 세상인 것이다. 그래서 호빈은 빡고와의 1차전에서 이긴 후 여타 학원 격투물과 달리, 전리품처럼 어머니의 병원비와 명품 져지라는 물질적 보상을 받는다.

 「외모지상주의」에 등장하는 ‘4대 크루’는 작중 대기업 그룹인 HNH에서 지하경제 사업을 목적으로 만든 미성년자 조직폭력배들이다. 이들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자금을 모으고 고등학생들을 폭력으로 제압하는 일진회를 조직한다. 「인생존망」에서 피해자인 김진우는 고등학교 졸업 후 삼수생으로 지내고 가해자이자 일진인 장안철은 프로 MMA 선수가 되어 성공가도를 걷는다. 하물며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는 성인이 되어 노동자와 고용주의 관계로 지속된다. 작가의 세상에서는 학폭으로 얼룩진 권력관계가 자본의 독점으로까지 이어져 사회적 성공을 의미한다.

 「홀리랜드」에서는 ‘노상의 카리스마’ 마사키의 중재로 1:1 대결 결과에 승복하는 나름의 규칙이 존재한다. 돌아올 수 없는 폭력을 지양하며 거리에서 인정받기 위해 싸우는 이 세계에서 “거리는 너희를 인정해주지 않을 거야.”라는 선고는 가장 무서운 처벌이다. 그러나 「싸움독학」은 그 모든 순간이 “짜잔! 촬영 중이었습니다!”라는 대사로 버라이어티 쇼가 된다. 마치 종합편성방송처럼 폭행은 격투기 경기가 되고, 허락되지 않은 누군가의 사생활은 관찰 예능이 된다. 배금주의로 얼룩진 세계관은 모든 것이 허락되기 때문에 법이 무색해진다. 따라서 기존 학원 격투물에 비해 이 세계는 배경을 학원으로 하고 있지만 서열의 정점에 있는 인물은 경찰도 손을 쓸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학원 격투물의 「홀리랜드」는 폭력의 선을 명확히 긋고, 그것을 벗어난 자에게 경찰이라는 공권력의 힘으로 가하지만, 일진물의 「싸움독학」은 돈을 위해서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공권력이 마비된 세계를 그린다.

얼마 전 초등학생 사이에서 엘사, 휴거라는 별명으로 급우를 놀린다는 기사를 보았다. 임대아파트(LH)에 사는 사람과 휴먼시아 거주자라는 뜻이었다. 어린이가 이미 소득과 주거의 관계를 이해하고, 자기들끼리 계층화 시키는 것이다. 일진물의 대표라는 박태준의 작품 역시 이분화알레고리가 담겨 있다. 학폭의 원인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부족으로 묘사하여 그 능력을 돈으로 수치화 시킨다. 돈이 될 수 있다면 더 잔인하게, 더 야하게, 더 자극적이게. 돈은 곧 권력과 신분을 상징하기 때문에 배금주의 앞에 독자들 역시 모든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비평가의 역할은 여기서 시작해야한다. 시장이 보여준 변화에 대해 비평은 어떻게 답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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