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동심을 지켜라!
「요츠바랑!」 아즈마 키요히코 지음 / 대원씨아이(주)
손유진 2020.01.23



동심을 지켜라!


  「요츠바랑!」(아즈마 키요히코 작)은 외국에서 온 아이와 그를 입양한 아버지가 겪는 일상을 그려낸 만화이다. 이웃집의 세 자매와 그들의 어머니, 동네 주민들까지 아이의 일상에 녹아들어 선뜻 그에게 마음을 내어준다. 아이의 이름은 ‘요츠바’로 네잎클로버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이름과 마찬가지로 요츠바는 아이로서의 행복한 일상을 즐기고 있다. 그렇다면 요츠바의 행복한 일상에 동반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가능케하는 것은 누구일까?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공동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요츠바는 동네를 모험하거나 캠핑을 하거나 별자리를 관찰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어른들의 도움에 의해 성립한다. 이를 통해 요츠바는 자라난다. 요츠바의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요츠바를 만났음에도 그 나름의 교육 철학을 가지고 요츠바가 행복하고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지도한다. 요츠바가 도토리를 줍고 춤을 추고 비오는 날 물장구를 치며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것은 아버지가 이에 동참하여 그를 즐겁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요츠바가 어려서 겪게 되는 착각들을 즉각 바로잡지 않는다. 요츠바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여유롭게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요츠바를 교육할 때 그는 어른의 언어를 강요하지 않는다. 요츠바가 거짓말을 해서 혼을 내어야 하는 상황이 됐을 때도 그는 거짓말이 왜 나쁜지 훈계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요츠바의 시각에서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다. 요츠바의 아버지인 ‘코이와이’는 이렇듯 단지 요츠바를 자유롭게 풀어 놓기 때문이 아니라 요츠바를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하며 그의 발걸음에 맞추어 같이 걷기 때문에 좋은 양육자이다.

 이상적인 양육자의 상과 코이와이를 비교해보자. 이상적인 양육자는 첫째로 자녀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 아동이 억지로 환경에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아동이 스스로 적응하게끔 도와야 한다. 두번째로 가벼운 인사나 의사 표현 등의 사회적 기술을 익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아이의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서 아이에게 관계에 있어 적절한 인삿말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녀가 편안하게 여기는 단체 활동을 찾아주어야 한다.1)   그렇다면 코이와이는 이에 따라 행동하고 있을까? 우선 코이와이와 요츠바가 1화에서 마을로 이사를 왔을 때 요츠바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마을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이웃들을 만나보고 집 주변 구조를 살피는 것이었다. 또한 이웃집 사람들과 만나면서 교류 관계를 든든히 하였는데 이는 코이와이가 아이를 적정선에서 자유롭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요츠바는 마을 사람들과 갖가지 상황에서 부딪히는데, 그때 마다 코이와이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지도한다. 가령 어른에게 신세를 진다면 감사를 표시해야 하고, 밭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노고가 많으십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 좋다고 가르치며, 혹은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하거나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지도한다. 마지막으로 코이와이는 이웃들이 요츠바와 잘 놀도록 같이 참여하거나 축제 등 커뮤니티 행사에 요츠바를 데려가 공동체 생활을 익히도록 하고 있다.



1)<소아불안#3 불안을 겪는 아동에게 양육자가 할 수 있는 것>, 위캐닝 마음엔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981726&memberNo=22869745&vType=VERTICAL

 요츠바와 함께 하는 것은 비단 코이와이 뿐만은 아니다. 코이와이의 친구인 ‘점보’는 요츠바의 삼촌 격 노릇을 하며 요츠바가 캠핑을 가거나 낚시를 갈 때 앞장서 인솔하며 어떤 방식으로 놀이를 즐겨야 하는지 설명해주고 함께 어울린다. 그는 요츠바가 100원짜리로 꽃을 사려고 할 때는 거대한 꽃다발을 안겨주고, 매미를 채집하러 갔을 때는 요츠바의 엉뚱한 행동에도 화내지 않고 요츠바가 가장 거대한 매미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코이와이에게 엄격한 면이 있다면 점보는 요츠바의 플레이 메이트이자 제 2의 보호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요츠바의 이웃집에 사는 에나, 후카, 아사기는 청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요츠바를 이해하며 요츠바에게 즐거운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에나는 가장 어린 초등학생으로, 요츠바의 눈높이에서 동심을 지켜주고 또래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가르쳐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곰인형을 가지고 놀거나 종이컵 전화기를 만들고 라디오 체조에 동행하는 식이다.

 「요츠바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순박하며 호의적이다. 그러한 속성은 아이인 요츠바 앞에서 특히 잘 드러나고 있다. 요츠바가 사는 동네가 작은 마을인만큼 이웃 간의 결속력이 좋아서도 있겠지만, 작가가 그려내고자 한 것은 그 너머의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아이에게 친절하다는 것이 공동체에 있어서 어떠한 의미인지 우선 고찰하여야 한다. 성장기에 놓인 아이들은 대체로 시끄럽고, 충동적이다. 그들은 공공장소에 소리지르고 뛰어다니며 떼를 쓰거나 호기심으로 물건을 망가뜨린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윽박지르고 사회에서 제거하려고 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아이들이 어엿한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 거치는 과정이 성장기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들을 존중하는 것이 곧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동에 대한 존중은 좋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약자를 존중하고 숨기려 하지 않는 정서적, 제도적 기반이 확장되어서 시민들에 대한 사회의 태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요츠바의 행동양상은 실제 어린아이와 많은 부분 일치한다. 어린이를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행동하는 로봇처럼 표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요츠바는 벽에 낙서를 하거나 아빠의 간식을 참지 못하고 먹어버린다. 무엇이 옳고 그른 지에 대한 판단도 모호할뿐더러 그것을 인지하더라도 실행할 수 있는 인내심과 의지가 아직 발달하지 못했다. 또한 요츠바는 자신만의 놀이나 규칙을 만들어 낸다. 그는 “알았다”를 “알았빠”라고 발음하며 재미있어 하거나 갑자기 모든 단어를 반의어로 바꾸어 말하기도 한다. 이는 누구나 어렸을 때 해봄직한 일이다. 예를 들어 보도블럭의 빨간 색 부분을 따라 걸어야 한다는 규칙을 만들어 실행하는 식이다. 미대륙 쪽에서는 ‘상상의 친구(imaginary friend)’라는 단어가 존재할 정도로 아이들의 상상력, 그들 나름의 몰입과 몰두를 존중해주고 있다. 소소하게는 메뉴판의 음식 사진을 보고 침을 흘린다든가 사물이 고장난 것을 ‘죽었다’고 인식하는 모습 또한 어린이에 대한 세밀한 관찰에서 나온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각종 매체에서 어린 아이들은 귀엽고 인형 같지만 동시에 어른들에게 성가시지 않을 정도로 의젓하게 묘사된다. 예를 들어 한국 드라마에서 어린이는 엄마를 생각하며 떼쓰지 않고 소리를 지르거나 뛰어다니는 일도 드물다. 그러나 그들은 혀 짧은 소리를 내고 천진하며 순수하게 묘사된다. 아이를 돌보기 간편하고 귀여운 존재로만 인식하는 것이다. 심지어 일본 매체에서 어린이들은 성적 대상으로까지 표현된다.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모두 어린이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대상화를 통해 어린이라는 개념을 표백해버리는 사회의 사고 양상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요츠바랑!」의 세계 속 이상적인 공동체의 묘사는 어떠한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에서도 어린이들은 ‘민폐’를 끼치는 존재이다. (민폐를 끼치는 것이 일본에서 제일 커다란 악덕 중 하나라는 것을 고려하면 일본 사회가 얼마나 어린이의 습성을 무시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뛰어다녀서도 안되고 타인에게 말을 걸어서도 안된다. 「요츠바랑!」에서도 요츠바가 도쿄역 개찰구에개 헤맸을 때 뒤에서 눈치를 주고 혀를 차는 어른이 있었던걸 보면 요츠바가 살고 있는 공동체 밖에서 요츠바의 어린이로서의 행동양상은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어린이에게 야박한 사회에 대한 안티 테제로서 요츠바 마을은 상상된다. 도쿄 같은 도회지가 아닌 작은 마을을 「요츠바랑!」의 배경으로 선택한 것은 커뮤니티가 아이들에게 끈끈한 애정과 친밀감을 느끼도록 설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마을의 많은 사람들은 요츠바를 알고 있고 그에게 친숙하게 다가간다. 요츠바가 필요한 것을 이루어 주기 위해 노력하거나 아이가 다가갔을 때 말동무를 해주고 아이의 상상력을 충족시켜 주기도 한다. 작가가 이러한 이상적인 사회를 설계한 까닭은 소수자에 대한 존중이 필요함을 알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물론 다수의 독자들은 「요츠바랑!」이 ‘힐링’ 장르라고 생각하지만 그 너머에는 어린이와 어떻게 더불어 살아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상과 지침이 담겨 있다.


<요츠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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