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도박이라는 역설과 현실에 대한 환유, <텍사스 홀덤>
「텍사스 홀덤」 onesound 지음 / CJ ENM, 네이버웹툰
윤지혜 2020.01.23

도박이라는 역설과 현실에 대한 환유 - 원사운드의 「텍사스 홀덤」


 오늘날 ‘웹툰을 보는 수단’이라고 하면 보통, 검색 포털 사이트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웹툰 문화가 정착되던 초기에 야후,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 검색 포털 사이트들은 이용자 유입을 위해 웹툰 작가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현재 검색 포털 사이트는 웹툰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대표적인 진입 경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웹툰이 지금의 모습처럼 자리 잡은 배경은 훨씬 다양했다. PC통신에서 만화가 서비스되기도 했고 만화 웹진이 생겨나 웹툰을 공급하기도 했다. 디시인사이드, 웃긴대학 등 커뮤니티에서 인기를 얻은 아마추어 작가들이 주목받기도 했으며 각종 개인 홈페이지나 기업의 홈페이지에서 연재되는 경우들도 많았다.

 원사운드는 포털사이트가 웹툰 서비스의 주요한 플랫폼이 되기 이전, 이처럼 웹툰이 다양한 공간에서 실험적으로 소비되었던 시기부터 활동해온 작가이다. 원사운드가 웹툰 작가로서 처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MMORPG인 <바람의 나라> 홈페이지에서 2002년 연재한 「조랑이의 바람일기」를 연재하면서부터였다. 「조랑이의 바람일기」는 작가가 게임인 <바람의 나라>를 하면서 겪은 일들을 극화한, 일종의 게임판 일상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단행본으로 출간될 정도로 당시로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후에는 또 다른 MMORPG <마비노기>의 홈페이지에서 「마비노기 스토리즈」를 연재했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게임에 관련된 정보를 전문으로 다루는 웹사이트 ‘디스이즈게임’에서 게임 리뷰 만화를 연재하는, 게임 업계에서는 잔뼈가 굵은 작가라 하겠다.



 그의 대부분의 저작이 게임 일상툰, 게임 리뷰 만화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텍사스 홀덤」의 연재는 꽤나 특이해 보이는 사건일지도 모른다. 연출 방식의 상이함은 차치하고, 단순하다는 말로도 모자라 보이는 작화는 일상툰, 리뷰 만화에 어울려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사운드는 이미 여러 만화에서 경제적인 연출력과 준수한 서사 구성을 보여준 적 있는 것에 더해, 「텍사스 홀덤」에서는 인물과 인물이 처한 상황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로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물론 텍사스 홀덤이 카드 ‘게임’으로 분류된다는 공통점은 덤이다.

 사실 「텍사스 홀덤」은 네이버 시리즈에서 서비스되기 전에 디스이즈게임에서 2012년 3월 27일부터 2017년 9월 14일까지 연재된 바 있다. 다만 네이버 시리즈에서의 새 연재에서는 기존에 흑백이던 작품을 컬러로 바꾸고 컷 배치도 스마트 폰의 환경에 맞게 변환했으며, 개그장르였던 부분이나 시대적 변화에 맞지 않는 부분, 극의 진행에서 살리지 못했거나 주제를 드러내는 데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은 대폭 삭제하거나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중 핵심을 차지하는 중요한 부분, 특히 주요인물인 기수와 그를 둘러싼 포커 플레이어들이 처해 있는 상황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그들의 선택과 행동과 같은, 주제와 맞닿아 있는 지점들은 오히려 강화되었다.

 「텍사스 홀덤」의 주인물인 기수는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이다. 좋아하는 일이고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선택한 직업인데, 월급은 적고 직업 특성상 생명력은 짧다. 기수의 어머니가 쓰러지고 돈이 필요해지자 같은 프로게이머 동료가 영선을 소개해 주고, 그녀는 기수에게 텍사스 홀덤을 하는 프로 갬블러가 되기를 제안한다. 기수는 영선과 함께 호주로 떠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훈련을 이어간 결과 필리핀 세부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프로게이머는 예나 지금이나 세간에서 안정적이라고 인정되는 직업은 아니다. 대회에서 1등을 자주 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면 큰 돈을 벌기 어려운 직업이고, 미래는 불투명한데 성적의 압박은 강하다. 성공하기 위해서 이른 나이부터 많은 연습을 소화하고 강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어야 하지만 본인의 자리를 지키기는 힘들고,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퇴해야 하는 반면 은퇴 이후 사회에 재적응 하는 것은 어렵다.

 이런 프로게이머의 모습은 일견 오늘날의 청년 세대가 가지고 있는 딜레마와 비슷해 보인다. 죽어라 입시 준비해서 대학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고 취준생 시기를 힘겹게 지나 어떻게든 취직해보지만 물가 대비 월급은 적고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이미 오래 전에 의미 없는 단어가 되었다. 말하자면 프로그래머가 되기로 한 과거의 선택이 옳은 것이었을까를 고민하는 기수의 모습은 오늘날 청년세대의 모습과 닮았다. 무한대의 노력이 한없이 적은 확률의 성공을 위해 소모되는 시대. 의미 모를 패배를 반복해야 하는 현실에서 기수가 시도한 것은 ‘텍사스 홀덤’, 즉 포커 게임이었다.



 갬블(Gamble), 즉 어떤 사건이나 행위를 예측하고 그에 따라 돈을 거는 행위를 우리는 흔히 도박, 노름이라고 한다. 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터무니없이 낮은 일에 승부를 걸고 전복을 바라는 일을 비유적으로 ‘도박’이라고 하기도 한다. 즉 도박은 ‘어쩌면 나에게 좋은 일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행운을 바라는 마음에서 시도된다.

 그러나 「텍사스 홀덤」에서 행운은 불행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그려진다. 영선과 함께 기수를 스카우트했던 갑영은 사람답다는 것은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것을 통제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 그것을 위해 인물들은 가능한 수를 공부하고 훈련하며 연습한다. 보통 요행을 바라고 시도하는 ‘도박’을 연구하고 훈련한다는 아이러니는 기묘한 역전관계를 만들어 낸다. 현실의 삶은 불안하고 불확실한 반면, 게임판 위는 명징한 세계다.

 정해진 규칙 위에서 뒤집힌 카드에 따라 승률이 계산되는 텍사스 홀덤의 세계는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문제들을 게임판 위에서 상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물론 「텍사스 홀덤」에서는 게임판 위에서도 현실과 닮은 부분들을 상당히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기수가 초반에 빅스택이 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기수는 숏스택이 빅스택에 비해 판을 키우기가 어렵고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범위가 감소하므로 숏스택으로 빅스택을 이기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이런 생각은 ‘금수저’, ‘조물주 위에 갓물주’라는 말이 유행하는 한국사회의 현주소와 닮아있다. 이처럼 「텍사스 홀덤」은 게임판 위의 세계를 현실 세계에 대입함으로써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삶이라는 ‘도박’을 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텍사스 홀덤」이 결국 패배 혹은 승리만을 말하는 작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핸드에 좋은 패만 들어올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수는 핸드가 좋으냐 나쁘냐가 승패를 좌우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결국 삶의 자세가 중요했음을 깨닫는 과정이 손에 땀을 쥐는 게임의 흐름과 중첩되며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그럼에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는가, 스스로가 끝까지 좋은 자세였는가를 묻는 기수의 독백은 여운을 남긴다.



 프로게이머로서의 자신의 자산을 살려 갬블러로서 인생의 한 순간을 보내야 했던 기수의 선택은 독자에 따라서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한국은 대부분의 도박이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고, 도박을 하는 것은 불성실한 삶의 태도를 가진 것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도박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소유였던 재화가 오가는 것이라는 점에서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텍사스 홀덤」이 현실에 대한 일종의 환유라고 할 때, 기수를 비롯한 작중의 프로 갬블러들은 확실한 행복을 잡기 위해 욜로족, 파이어족 등 다양한 삶의 형태를 시도하는 오늘날의 청년 세대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매력적인 이 작품에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포커에 대해 완전 무지하다면 만화를 이해하기에 좀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 시리즈에서 연재하면서 전작에 비해 설명을 추가하고 완급을 조절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지만 만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포커의 족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 하이카드, 원페어, 투페어, 트리플, 스트레이트, 플러시, 풀하우스와 포카드 등 어떤 카드 조합의 가치가 높은지 파악할 수 있어야 작중 인물들의 게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보겠다고 앞으로 필요할지 어떨지 모를 포커 용어들을 외우고 공부하려 애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게임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인물들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텍사스 홀덤」이 보여주고 싶어 하는 주제에 자연스럽게 가 닿을 수 있다. 혹시 그렇지 못하더라도, 속속들이 드러나는 인물들의 과거사와 홀덤 경기의 긴장감이 속도감 있게 몰아치는 후반부의 재미만으로도 이 작품은 즐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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