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옛날 만화 한 편 어때요?
<이(李)씨네집 이야기> 글ㆍ그림 황미나, (주)서울문화사, 나인
조아라 2020.02.18



옛날 만화 한 편 어때요? 

1.
 나는 지금 ‘옛날’ 만화를 하나 추천하려 한다. 얼마나 옛날 만화냐 하냐면 1999년에 출판된, 말 그대로 “세기말” 만화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무려 1980~90년대. 몇 년 전 TvN에서 방영된 「응답하라 1988」 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대충 어떤 시대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제목은 「이씨네 집 이야기(李씨네 집 이야기)」. 한국 만화계의 대모라 불리는 황미나 만화가의 작품이다. 제목 자체도 가족드라마 느낌이 물씬 나지만, 심지어 이(李)자는 한문으로 써 있다. 정말이지 더 할 나위 없는 옛날 만화이다.


△ 「이씨네 집 이야기」 표지. 李(이) 라는 한문을 모르면 제목조차 읽을 수 없다. (4권 완결)

2.
 사실 옛날 만화는 쉽사리 추천하지 못하는 편이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손가락 하나로 휙휙 내리면서 볼 수 있는 ‘웹툰’에 비해 불편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위 ‘촌스럽기’ 때문이다. 여기서 촌스럽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먼저, 등장인물의 외양이 촌스럽다. 마치 개그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는 과한 헤어스타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하기도 한다. 등장인물이 입고 있는 옷차림도 현대의 유행에 한참 뒤쳐져 있다. 순정 만화풍의 눈은 과도하게 반짝거린다. 연출도 진부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등장인물이 ‘쌩~’ 하는 글자와 함께 과장된 몸집으로 줄행랑치는 장면이 그렇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사용되어 왔던 만화적 연출이지만, 요즈음에는 많이 쓰지 않는다. 등장인물이 사용하는 단어도 어쩐지 고루하다. 차라리 사극에서처럼 완전히 고어(古語)를 쓰면 그 시대 언어려니 할 테다. 하지만 이 만화에 나오는 ‘재취자리’ 라든가 ‘흠 있는 놈’, ‘노랭이’ 같은 미묘하게 낡은 표현은 은근하게 거슬린다.

3.
 그런데 시대가 흥미롭게 흘러갔다. 복고가 열풍이고, 그것을 재해석한 뉴트로가 대세라고들 한다. 몇 년 전 높은 시청률을 보여준 「응답하라 1988」의 시청률은 다름 아닌 40대와 10대가 견인했다고 한다. 1988년을 몸소 겪은 40대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10대는 왜 80년대 이야기에 열광했을까? 물론 혜리, 박보검, 류준열 같은 인기 배우들의 열연이 큰 몫을 했겠지만, 드라마가 새로운 것을 원하는 젊은 세대의 수요를 잘 반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젊은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직접 겪어보지 못한 ‘옛날 것’이 오히려 ‘새로운 것’이고, 시쳇말로 힙(Hip)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지금이야 말로 ‘옛날 만화’를 추천하기 딱 좋은 때다.

4.
 「이씨네 집 이야기」는 제목에서 잘 설명해 주듯이 이 씨 성을 가진 가족을 배경으로 한 만화이다. 장교 출신의 퇴역 군인이며 매우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중심으로 7남매와 그들의 배우자, 그리고 그들의 자녀까지 그야말로 대가족의 이야기이다. 보통 이렇게 대가족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둘 중 하나이기 마련이다. ‘따뜻한 가족의 정’이라든가 ‘가족의 소중함’ 같은 수식어와 함께 주말 가족드라마 풍의 이야기가 되거나, ‘좌충우돌’, ‘왁자지껄’ 등의 수식어와 함께 시트콤 풍의 이야기가 되거나. 둘 다 뻔하고 뻔한 시선의 감상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만화를 이렇게 구태의연한 시선에서 벗어나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차라리 ‘지금과 다른 것’ 그리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은 무엇인지에 흥미를 느끼면서 감상하면 어떨까? 이 만화를 감상하는 시점이 현재, 2020년이고, 이 만화의 배경은 1980~90년대라는 것을 감안해서 말이다. 이 만화는 당시 대한민국의 중산층을 제법 잘 그리고 있으므로, 이러한 방식의 감상을 하기에 적격이다.

5.
 확실히 그 때는 2020년도의 지금과 달랐다.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마당에 장독대가 있는 ‘단독주택’에서 사는 대가족이라는 설정 자체가 신선했다. 아파트나 빌라 같은 고층 건물이 아니라, 마치 ‘아기 공룡 둘리’의 ‘고길동’이 살 것 같은 단독주택에 증조할머니까지 4대 가족이 와글와글 모여서 사는 것이 생경했다.



△ 「아기공룡 둘리」의 고길동 집(왼쪽)과 「이씨네 집 이야기」의 이씨네 집(오른쪽)

 결혼하면 장남은 당연히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당시의 디테일을 약간 첨가해서- 차남부터는 1년 정도 합가 후 분가가 당연시 되어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성(姓)과 본관이 모두 같으면 법적으로 결혼이 금지한다는 ‘동성동본금혼’ 조항이 있었던 시대이기 때문에, 같은 전주 이(李)씨인 셋째 아들 커플이 좌절하는 에피소드도 지금 생각하면 흥미로운 부분이다.

6.
 꼭 이렇게 굵직하게 다른 부분이 아니더라도 지금과 사뭇 다른, 소소한 차이점을 발견하는 것 또한 시쳇말로 “깨알 재미”이다. 작품을 읽다 보면 그 때는 군대가 3년이었으며, 대학교 입학시험 합격 여부를 알기 위해서는 직접 그 대학교에 가서 합격자 명단을 확인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웨딩카의 와이퍼에 매달려 있는 흰 장갑이나, 사무실에 즐비한 뚱뚱한 CRT 모니터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특히 작품을 읽는 내내 자연스레 등장하는 담배와 재떨이가 색다르다. 2020년 지금은, 담배는 물론이요 사극의 곰방대까지 모자이크 처리하지만, 작품 내 세상은 회사 사무실에서도, 방 안이나 거실에서도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우는 시대이다. 심지어 임산부나 어린 아이를 앞에 두고도 자연스레 담배를 피운다. 독자인 나는 ‘임산부 앞에서 저렇게 담배 피우면 안 되지! 간접흡연이잖아!’ 하며 안절부절못하는데, 정작 만화 속의 임산부는 이를 조금도 불쾌해 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이 묘한 긴장감을 준다.

7.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구나’하고 공감할 때 느낄 수 있다. 30년 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에피소드는 미묘하게 지금과 닮았다. 예를 들어 이 만화의 첫 에피소드인 ‘엄마, 아빠는 맞벌이’가 특히 그렇다. 이 에피소드는 어린 준호의 시선으로 ‘워킹맘’과 ‘황혼육아’를 그려내고 있다.



△ 분가해서 살고 있는 둘째 아들 ‘세영’ 부부는 아침마다 부모님께 아들 ‘준호’를 맡기고 출근한다.

 물론, 현재와 그 때가 완전히 똑 같다는 것은 아니다. 그 때와 달리 외벌이만으로 가정을 건사하기가 힘들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제는 더 이상 여자에게 주부의 역할만을 강조하는 시대는 분명히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벌이를 위해서는 조부모의 육아가 필요하다는 점과(극중에서는 조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큰며느리가 육아를 함께 담당한다.) 육아와 커리어 사이에서 갈등하는 쪽은 아직도 여자 쪽이 많다는 점은 이 에피소드에 공감하게 한다.




△ 초등학교 선생님이자 둘째 며느리인 ‘고윤주’는 다른 가족들에게 전업 주부의 역할을 강요받는다.

8.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일차원적인 감상법이 너무 얕게 느껴진다면, 작품 내 가족 구성원의 불평등한 구조에 집중한 감상을 하기를 추천한다.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화목한 이씨네 집’은 특정 가족 구성원의 희생과 착취를 대가로 한다.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가부장적’이고, 젊은 날 다소 화려한 여성 편력이 있던 평범한 아버지이지만,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고압적’이고 ‘부도덕한’ 아버지일 뿐이다. 등장인물인 세라는 장녀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받으며, 막내아들 세진의 의견은 매번 묵살 당한다. 그리고 작품 내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며느리는 시어머니에 의해 ‘다스려져야’ 하는 존재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나는 ‘가족의 정’을 느끼게 해준다는 식의 달달한 측면에서 이 만화를 감상하기를 추천하고 싶지 않다. ‘화목한 대가족’으로 포장된 이면이 너무 씁쓸하기 때문이다. 입체적인 감상을 원한다면 차라리 이러한 비판적인 관점을 추천하고 싶다.

9.
 현재와 과거를 비교하며 가볍게 감상하든, 가족 간 착취 구조에 집중하여 무겁게 감상하든 이 만화가 추천할만한 작품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지금과 다른 것은 달라서 신선하고,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긴 시간 동안 한결같다는 점이 흥미롭다. 1980~90년대에 대한 향수에 젖고 싶거나, 겪어보지 못한 옛날이 궁금하다면, 그리고 아련하고 반짝거리는 순정만화풍의 눈매가 그립다면 이 만화 「이씨네 집 이야기」를 읽어보기를 추천1)한다.



1) 현재는 절판되어 e-book으로 구매 또는 대여해서 감상이 가능하다.




<이씨네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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