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개그 만화의 변천사 읽어내기: 『아즈망가 대왕』
<아즈망가 대왕> 글ㆍ그림 Azuma Kiyohiko, 대원씨아이(주)
손유진 2020.02.19




개그 만화의 변천사 읽어내기: 『아즈망가 대왕』

 ‘아즈망가 대왕’은 고등학생들이 겪는 일상을 코믹스럽게 풀어낸 4컷 만화로, 당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그 포맷은 많은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 ‘아즈망가 대왕’의 특별한 점은 시사물에만 주로 쓰이던 4컷 형식에 미소녀(모에1))와 코믹적 요소를 도입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에는 작품을 해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으며 모에가 직접적으로 작품에 개입하지도 않는다. 두가지 요소 중에는 코믹적 요소에 작가가 비중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작화와 개그의 퀄리티 또한 특출난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세련됨의 척도가 달라짐으로 인해 작가 아즈마 키요히코는 개정판을 출판하게 된다. 무엇이 그가 원고를 수정하게 만들었는지 안다면 우리는 만화계의 변천을 조금씩 들여다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우선 그전에 우리는 작가 데뷔 이전의 아즈마 키요히코의 작품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인 작가의 만화적 코드는 기성 출판 만화의 그것과 비교하는 것이 추후 개장판을 수정하는 작가의 태도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동인 작품은 기존에 존재하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을 2차 창작자의 방식대로 재해석하여 내놓는 것이다. 주로 만화의 형태로 출판되는데, 보통은 캐릭터 성격의 일부를 극대화하여 작은 에피소드를 만드는 식의 내용을 띤다. 그래서 아즈마의 초기 동인 작업들은 극단적인 개그들을 보여준다. 캐릭터가 코믹한 얼굴로 화를 내거나, 슬랩스틱을 하기도 하고 캐릭터들의 과장된 성격의 속성을 나눠서(소심, 다혈질, 친절 등) 서로 받아 치게 만든다. 이러한 경향은 ‘아즈망가 대왕’에서도 이어지지만 그 극단성이 정제된다. 캐릭터들은 현실적인 공간에서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게 된다. 또한 슬랩스틱의 경우, ‘아즈망가 대왕’에서는 상상 속에서만 몸개그를 벌이는 등 소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아즈마 키요히코는 장르와 출판 형식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를 바꾸는데 능숙한 작가이며, 이것이 그가 ‘아즈망가 대왕’의 신장판을 출판하게 된 계기이다.



1) 일본 만화 또는 애니메이션 계에서 주로 쓰이는 속어 내지는 문화적코드로, 특정한 대상에 대한 열광, 혹은 화자가 열광하는 대상의 기호화된 매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실제 회화에서는 여러가지 뜻으로 사용되는 폭넓은 말로 정확한 정의는 어렵다. - 나무위키

 신장판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리얼리즘과 개그의 밸런스이다. ‘아즈망가 대왕’ 구판에서는 만화적 허용 하에 일어나는 비일상적인 액션이 많이 보였다. 예를 들어 주인공 중 한 명인 ‘토모’는 가장 신장판과의 갭이 큰 캐릭터인데, 구판에서는 다른 인물들에게 ‘춉’(손날을 이용해 가볍게 때리는 행위)을 날리는 등 적극적인 개그를 펼친다. 그러나 신장판에서는 그런 요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다소 옅어지고 현실적인 모습, 그러니까 비일상적인 행동이 아닌 주로 말 재주를 통해 독자를 웃기는 캐릭터로 변모한다. 신장판에서 추가된 장면인 <가족>편에서 ‘토모’는 아버지에 대한 질문을 받는데 그는 아버지에 대해 자신과 똑 같은 뻗친 단발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그래도 가족이라고 외친다. 구판이라면 과장된 표정과 행동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설명을 하며 웃음을 이끌어 냈을 터이지만 2010년대로 넘어가면서 엽기 개그 열풍이 많이 사그라들면서 이러한 변화가 나타났다.


 그러나 리얼리즘의 비중이 더 커졌다고 해서 ‘아즈망가 대왕’에서 비현실성이 많이 약화된 것은 아니다. 이것은 바로 ‘슈르’ 개그의 유행 때문이다. ‘슈르(sur)’란 프랑스어를 일본어로 음차한 것으로, 무언가를 넘어선다는 뜻이다. 초현실주의(surrealism)를 다소 일상적인 의미로 해석하여 현실에서 이해하기 힘든 언행을 가리킨다. 이러한 슈르 개그는 90년대 유행했던 ‘작렬’ 개그와 대비되는 면에서 비현실성을 갖는다. 작렬 개그가 행동의 과잉에서 비현실성을 얻는다면 슈르 개그는 언행의 불가해성이 비현실성을 갖는다. 한국어로 뉘앙스를 살린다면 ‘4차원 개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신장판에서 따로 추가된 ‘보습’ 파트 중 <얌전합니다> 편에서 ‘토모’는 갑자기 기린 탈을 쓰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구판에서 인물들이 ‘엽기’적인 모습으로 웃음을 얻었다면 신장판에서는 ‘4차원’적인 모습이 그 역할을 대체한다. 그 외에도 일상적인 장면에서 캐릭터들이 ‘슈르’한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토모’와 그의 친구 ‘오사카’는 거북이를 뒤집으며 노는데 거기서 ‘오사카’가 할 말이 생겼는데 나중에 말하겠다고 하더니 거북이를 다 뒤집은 후에 거북이에는 세균이 많다는 말을 한다. 과장된 행동을 하지 않고도 웃음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런 슈르 개그가 구판에서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등장인물 중 13세 천재 고등학생으로 등장하는 ‘치요’의 아버지로 그려지는 ‘치요 아빠’라는 캐릭터는 등장인물들의 꿈속에서만 나타나며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일상 장르 캐릭터의 아버지가 고양이로 나오는 것만으로도 큰 소격효과가 나타나는데 거기에 더해 그는 “마하 속력”으로 날아다니고 “뛰어난 방탄 효과”를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불가해함이 슈르 개그의 전신이다. ‘슈르’ 개그는 ‘작렬’ 개그와 템포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신장판의 개그는 ‘슈르’ 개그로 전환되면서 그 템포가 느려졌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신장판이 나오던 시기 작가가 같이 연재하던 ‘요츠바랑’의 개그 스타일과도 비슷하다.



 신장판으로 수정이 개진되었지만 ‘아즈망가 대왕’의 전체적인 작품 분위기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는데, 본디 이야기의 중심 축이 여섯명의 주인공이며 그들의 성격이 거의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즈망가 대왕’이 특유의 분위기를 갖게 된 데에는 개성 있는 캐릭터들간의 조화가 가장 큰 역할을 하였다. ‘아즈망가 대왕’에는 총 여섯명의 주인공이 있는데, 거칠게 나누자면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쪽과 태클을 거는 쪽이 있다. 또한 여섯명 중 세명은 ‘바보 시스터즈’라고 불리며 주로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쪽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서 바보 시스터즈에 속하지 않은 인물들의 임팩트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각 캐릭터에는 큰 역할 이외에도 한 키워드로 정리될 수 있는 큰 속성을 가지고 있다. ‘치요’는 천재 어린이, ‘사카키’는 조용하고 엉뚱한 동물 애호가, ‘요미’는 사납지만 사실 여린 마음을 가진 모범생이라는 식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어떤 캐릭터들끼리 만나느냐에 따라 소통 양상 또한 달라지며 그것이 ‘아즈망가 대왕’이 주는 웃음의 큰 축이 된다. 예를 들어 모범생 타입인 ‘요미’와 트러블 메이커인 ‘토모’는 작중에서 가장 잦게 등장하는 콤비로, ‘토모’가 일부러 ‘요미’를 도발하면 평소에는 차분한 ‘요미’가 흥분하며 웃긴 반응을 보이는 게 주 패턴이다. 인물이 누구와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변하는 ‘케미’ 또한 작품의 감상 포인트이다.



 ‘아즈망가 대왕’의 굿즈(캐릭터 상품) 또한 개그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즈망가 대왕’의 굿즈를 아카이빙한 서적인 ‘오사카 만박’에서는 굿즈들이 작품의 분위기를 충분히 반영하도록 의도적인 설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코멘트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예를 들어 작중에서 유명한 개그를 미니 피규어로 조형화해서 굿즈로 내놓은 경우가 있다. ‘치요’가 ‘오사카’의 꿈속에서 양갈래 머리를 이용해 날아다니는 장면을 차용하여 나는 모습의 ‘치요’ 피규어를 만들었는데, 이 피규어가 키링 제품임을 고려해 조형 각도를 실제로 나는 모습처럼 조정했다는 첨언이 있다. 또한 레고와 비슷한 피규어 제품도 등장했는데 인물 피규어와 같이 들어있는 부품들은 작중에서 웃음의 키워드인 ‘meme’(어떤 웃긴 장면이나 말이 유명해져 다른 개그에도 영향을 주는 것)의 요소이다. 이 요소들을 구매자들이 갖고 놀게 함으로써 작품 밖에서도 개그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굿즈들의 목적이다. 이처럼 작품의 개그를 굿즈로 구현하려는 노력 또한 ‘아즈망가 대왕’의 개그 스타일을 계승하고 있다.

 ‘아즈망가 대왕’은 근 20년 이상을 꾸준히 사랑받으며 많은 작품의 영감이 되고 패러디 대상으로 애용되기도 하였다. 이는 그만큼 ‘아즈망가 대왕’이 하이엔드 개그를 표방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개그 장르에 대한 분석은 매우 어렵다. 웃음이란 가장 직관적이고 설명하기 난해한 감정의 영역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즈망가 대왕’이 매우 정교한 계획으로 웃음을 유발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한 계획을 해체하는 것은 어쩌면 마술의 트릭을 밝혀내는 것과 같이 허무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구성요소들을 알면 감상이 용이하고 즐거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즈망가 대왕’ 속 숨겨진 코드들을 통해 다른 종류의 재미를 찾을 수 있었다면 본 리뷰는 어느정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즈망가 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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