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보편적이면서 특별한 ‘가족’이라는 이름, <도령의 가족>
<도령의 가족> 글 미울, 그림 BV / 카카오 페이지
윤지혜 2020.02.19

보편적이면서 특별한 ‘가족’이라는 이름, <도령의 가족>


가족이라는 서사의 힘

 ‘가족’이라는 것처럼 삶에서 미묘한 관계가 있을까? 가족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인가 하면, 일종의 집단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공적인 면도 있음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렵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모두에게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오랜 시간을 알아 온 사람들이지만 때로는 전혀 모르는 얼굴들을 하고 있기도 한다. 우리는 가족 안에서 가족에 의해 온갖 사건과 감정을 겪는다.

 가족이라는 소재가 풍기는 독특한 매력 때문인지, 오랜 시간동안 다양한 매체에서 ‘가족’에 대한 서사는 꾸준히 생산되어 왔다. 우리는 이미 오랜 시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생산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향유해왔지만, 여전히 그 이야기들은 흥미롭고 우리의 관심을 끄는 데가 있다. 웬만하면 누구나가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쉬운 점도 큰 매력이겠지만, 그 무엇보다 밀접하고 친밀한 인간관계라는 점에서 발생하는 사랑, 질투, 애틋함, 배신감 등 여러 풍부한 감정들이 흥미로운 서사를 만들기 위한 양념이 된다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괜히 몇몇 드라마에서 가족을 서사에 중심에 두고 그들 사이에 발생하는 출생의 비밀, 친족 간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부모에게 절연을 외치는 자녀와 배신감에 치를 떠는 부모 등 자극적인 소재로 극단적인 감정선을 이끌어내겠는가.

 미울, BV작가가 연재한 웹툰 <도령의 가족> 역시 가족을 서사의 중심에 두고 있지만, 이 작품은 자극적인 이야깃거리 없이 잔잔하다. 작화는 깔끔하고 수려하지만 특별히 화려하거나 별나게 눈에 띄지 않고, 작중의 서사도 어찌 보면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되레 심심하지 않고 마음이 끌린다. 소박하고 평범한 이야기를 궁금하게 하는 <도령의 가족>의 매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인물의 성격과 가족 관계에 대한 섬세한 표현력

 <도령의 가족>에서 도령과 그 가족은 흔한 듯 하면서도 요즘으로서는 좀 별나다고 할 만한 구성이다. 외동으로 자라 외로웠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을 낳기로 했던 엄마의 결심에 따라, 부모 슬하에 자녀가 딸 셋 아들 셋으로 총 여섯 명이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가족은 방송국 아나운서로 바삐 살고 있는 장녀와 대학교 기숙사에서 거주하고 있는 차남, 그리고 건강에 문제가 생겨 제주도에 가 있게 된 엄마와 그런 엄마를 돌보기 위해 함께 떠난 아빠 외의 나머지 가족이 한 집에서 살고 있다. 형제자매가 두 셋만 있어도 집 안에서는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데, 도령에게는 형과 누나만 다섯이다. 함께 살고 있는 것은 도령을 포함해 넷이지만, 그 안에서도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둘째 재령의 상견례를 겸해서 부모님은 제주도에서 집으로 잠깐 돌아오기도 하고, 장녀 화령과 차남 보령도 한 번씩 집에 들른다. 안 그래도 복작복작한 가정에 장남 재령의 절친한 친구 도욱까지 가세해서 숟가락을 얹는다.

 다양한 인물이 서사의 중심에서 맴도는 만큼, 인물 간의 관계는 복잡하다. 장녀 화령은 바쁜 일상의 와중에도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에 가끔 해결사를 자처하고, 장남이자 둘째인 재령은 결혼 준비하랴 동생들을 신경 쓰랴 머리가 복잡하다. 셋째 보령은 눈치도 좋고 분위기 메이커지만 친밀한 관계는 어렵다. 넷째 미령은 어린 동생들을 잘 돌보고 싶지만 일과 과거의 애정사로 인해 뜻대로 잘 되지 않음이 괴롭다. 고등학생인 다섯째 세령은 부모님의 부재와 형제자매들에게 아직 어린 취급을 받는 것에 불만이 있다. 초등학생인 막내 도령은 아직은 좀 더 관심이 필요하지만 바쁜 형제자매들을 생각할 때 쉽게 표현하기 어렵다. 이러한 각자의 사정이 서로 충돌하고 맞물리면서 갈등이 발생한다.

 여기서 이 작품의 묘미라 할 수 있는 점이 드러나는데, 바로 인물들의 상황과 내면을 표현하는 섬세함이다. 인물들의 상황이나 내면을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대사나 독백으로 표현해 내는 부분들도 있지만, <도령의 가족>에서는 그와 함께 다양한 비언어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미간의 미묘한 찌푸림이나 순간적으로 퍼지는 입가의 미소, 대화의 여백에서 잠깐 생각에 잠기며 대답을 망설이는 표정 같은 것이 상황과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인물의 내면이나 심리상태를 샅샅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관심이 없는 문제를 대할 때 머리카락을 만지거나 하는 버릇도 세심하게 표현했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함에도,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성격 형성을 구체적으로 했기에 가능한 섬세함이다. 
 
 인물의 성격과 그에 따른 가족 간의 관계에 대한 섬세한 표현은, <도령의 가족>이 천천한 호흡으로 연출되는 작품이지만 그것을 느리거나 지루하다고 느껴지지 않게끔 한다. 그러면서도 낭비되는 컷도 거의 없기 때문에, 인물의 내면 상태는 풍부하게 표현하면서 그 표현 방식이 절제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깔끔하고 수려한 작화로 인해 인물의 표정을 식별하기 쉬운 점도 풍부한 인물 성격 표현에 크게 한 몫을 하고 있다.



순한 맛의 출생의 비밀


 <도령의 가족>의 대부분의 사건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일이다. 누구나 결혼을 앞둔 재령처럼 자신의 일과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오고가면서 복잡한 결혼 준비에 피로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고, 미령의 경우처럼 옛날 오래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반쯤 스토커처럼 집착하면서 자신은 피해자처럼 구는 일은 연애하다 보면 한번 쯤 겪을 수도 있는 일이다. 자신이 직접 겪지 않더라도 가족이나 친구의 경험, 혹은 친구의 친구나 인터넷에 떠도는 경험담 같은 것에서도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세령의 경우처럼 가족이 자신만 빼놓고 중요한 일을 의논하는 것에서 오는 소외감, 소중하게 돌봐 온 가족이 더 이상 돌봄에 감사하지 않음에서 오는 허무감 역시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일이다. 이러한 사실적인 작중 사건들이 섬세한 인물 성격 표현과 맞물려 누구나 공감이 갈 법한 서사를 보여준다.


 그러나 <도령의 가족>의 가장 핵심적인 서사는 숨겨져 있는 비밀에 있다. 바로 도령의 ‘진짜’ 가족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도령이 유난히 늦둥이인 점이나 막내인 도령을 대하는 화령의 시선이 미묘한 점, 재령의 친구 도욱이 도령에게만 유난히 장난과 시비를 건다는 점 등에서 작품 전체를 통해 이미 암시되어 있다. 도령의 출생의 비밀은 재령이 그 미묘한 점들을 우연히 눈치 채게 되면서 자세히 다뤄진다. 흥미로운 점은 <도령의 가족>에서 도령이 누구에게서 태어났는가 하는 점은 작품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인물들에게 도령의 출생의 비밀을 캐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게 그려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진실을 알고 있었던 보령이나 미령이 스스로 입을 다물게 된 것이나, 진실을 알게 된 재령이 자신만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에는 놀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실을 수면 위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모두가 큰 반발 없이, 당연하다는 듯 도령의 출생의 비밀을 조용히 묻어둔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 출생의 비밀이 소중한 가족과 관계되어 있는 것이기에 보호하기 위함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미 ‘도령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출생의 비밀은 서사에서 갈등을 고조시키기에 적당한 소재이지만 <도령의 가족>에서는 이마저도 잔잔하게, 서로가 이미 끈끈한 가족임을 확인하는 선에서 마무리된다. 각종 음모가 섞인 자극적인 출생의 비밀이 ‘매운 맛’이라면, <도령의 가족>의 출생의 비밀은 ‘순한 맛’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이 비일상적인 사건마저도 이제까지 이해하지 못했던 가족의 감정에 공감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빛나는 순간


 일상적인 삶은 매일 매일이 반복적이다. 매일 하는 일은 똑같고, 매일 보는 얼굴들도 비슷비슷하다. 나름 정이 든 얼굴들이라도 일상에서 늘 보는 얼굴이란 때론 지긋지긋하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리 긴밀하게 맺어진 관계라 할지라도, 반복되는 삶 속에서 점점 덜 중요해지고 권태롭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모습들이 통상적인 삶의 모습으로 느껴진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란 거기서 거기이기 마련이니까.


 <도령의 가족>은 세심한 일상의 재구성과 통상적인 관계 속에서의 미묘함을 포착하는 감성으로 별 것 아닌 것으로도 서운하고 감동하게 되는 삶의 소소한 장면들을 세심하게 그려낸다. 밋밋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 발견해 해는 빛나는 장면들은 이 작품을 자꾸 흐뭇하게 보고 자꾸 곱씹고 싶어지게 한다. 가슴을 쥐어뜯을 만큼 슬프지 않아도 눈물이 찔끔 날 만큼 깔깔거리며 웃을 만한 개그 없이도 재미를 주는, 잔잔하게 일렁거리는 삶의 순간들을 세심히 투사해 내는 강물 같은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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