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학습 만화의 가면을 쓴 ‘짤’의 향연 : 야밤의 공대생 만화
<야밤의 공대생 만화> 저자 맹기완 / 출판사 뿌리와이파리
조아라 2020.03.16



학습 만화의 가면을 쓴 ‘짤’의 향연 : 야밤의 공대생 만화

1.
 학습 만화는 재미가 없다. 아무리 인기 캐릭터를 가져다 쓰고, 개그적인 요소를 가미한다고 하더라도, 학습 만화는 여전히 재미가 없다. 관심 있는 분야는 좀 나을까 하여, '와인'이라든지, '커피'에 관한 학습만화를 읽어 보았지만, 그마저도 재미가 없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학습만화는 어떠한 형태로든 '지식'을 전달해야 하는 만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달하려는 그 '지식'은 어렵거나 재미가 없거나, 둘 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만화로 지식을 전달하면 지루한 줄글보다야 거부감이 덜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선생님이 수업을 한들, 쉬는 시간보다 좋을 수는 없다.

2.
 그렇다고 학습 만화를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다. 애당초 학습만화의 일차적인 목적은 '재미'가 아니다. 따라서 재미가 좀 덜하다고 해도 '지식의 전달'이라는 그 고유의 기능을 충실히 잘 해내는 이상 학습만화의 가치는 크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실제로 '먼 나라 이웃나라'나 'Why?' 시리즈처럼 잘 만들어진 학습만화는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학습만화들은 지식을 비교적 덜 지루하게 습득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특정 지식에 대한 입문서 역할을 성실히 해 주고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재미’의 측면에서만 보았을 때, 학습만화가 다른 만화보다 재미가 없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아무리 친근한 캐릭터를 동원해서 쉽게 설명을 한고 하더라도, 지식의 전달해야한다는 의무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3.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학습만화가 ‘지식’을 전달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잠시 내려놓으면 어떨까? 학습만화가 재미없는 이유가 ‘지식’을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 때문이라면 그 의무에서 좀 자유로워지자는 말이다. ‘지식의 전달’이라는 의무는 구색만 맞출 정도로만, 즉 ’학습 만화‘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을 정도로 조금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재미로 가득 채우면, 학습 만화도 일반 만화처럼 재미있지 않을까?

4.
 「야밤의 공대생 만화(이하 야공만)」라는 만화가 바로 그런 만화이다. 「야공만」은 제목의 '공대생'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과학과 관련된 만화이다. 더 정확히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과학자와 수학자들의 일화를 다룬 만화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재미없는 위인전이 연상되겠지만 예단은 금물이다. 이 만화는 매우1)  웃기고 재미있다. 얼마나 재미있느냐 하면 일반 만화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만화는 '재미'라는 요소를 위하여 많은 요소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1)사실 표준어로는 야공만의 재미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꿀잼’(‘꿀재미’의 준말로, 매우 재미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등의 시쳇말이나 적당한 비속어를 사용하여 표현하는 것이 야공만의 분위기에 적합하나 이 글의 성격이상 시쳇말이나 비속어의 사용은 최대한 지양하였다.



5.
 이 만화에서 제일 먼저 포기한 것은 어려운 과학적·수학적 지식이다. 그게 뭐 대단한 것이냐 생각할 수도 있다. 엄밀히 말해 「야공만」은 과학적 지식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들의 에피소드를 다루기 때문에 ‘과학적 지식’ 그 자체는 별로 필요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종류의 책에서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과학적 지식이 전혀 없으면 언급된 과학적 업적이 왜 대단한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야공만」은 과학적 지식 없이도 과학자의 천재성을 충분히 알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곳곳에 배치하여 이러한 점을 극복한다. 예를 들어 <위대한 수학자 오일러> 편의 경우 오일러가 25세 나이에 교수가 되었으며, 시각장애인이 된 이후에도 초인적인 기억력과 암산 능력으로 일주일에 한편씩 논문을 썼다는 일화를 소개함으로써, 업적에 대한 이해 없이도 오일러의 위대함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 <위대한 수학자 오일러> 편 중. 수학적 지식이 없어도 오일러의 위대함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6.
 사실 이렇게 ‘과학적 지식’을 포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야공만」이 과학자의 ‘주요한’ 업적을 전달하는 데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공만」은 ‘주요한 업적’보다는 ‘재미있는 에피소드’에 집중하는 방식을 택했다. 세종대왕2)을 예로 들자면 이런 식이다. 세종대왕의 업적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당연히 '훈민정음 창제'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에게 ‘훈민정음 창제’라는 업적은 그다지 흥미로운 사건이 아니다. 차라리 세종대왕은 고기를 매우 좋아했다는 사실을 부각하며 ‘수랏상에 고기반찬이 없으면 쳐다보지도 않았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뉴턴의 경우 ‘만유인력의 법칙’ 발견했다는 주요 업적 대신에 라이프니츠와의 미적분학에 대한 우선권 분쟁이나 화폐 위조범을 검거한 일화를 다룬다. 그 편이 훨씬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 <미적분의 아버지는 누구인가?>편(왼쪽)과 <영국의 은화를 지켜라!>편(오른쪽) 에 등장하는 뉴턴. 「야공만」에서 머리 위에 사과가 있는 캐릭터는 전부 다 뉴턴이다.



2) 세종대왕은 「야공만」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누구나 아는 위인으로서 세종대왕을 예로 들었다.



7.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작품이 재미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밈(meme)을 패러디하여 적재적소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슨이 처음 언급한 밈의 본 뜻은 ‘어떤 생각, 행동, 또는 양식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문화 속에서 전달되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근래에는 ‘인터넷에서 널리 유행하는 컨텐츠(주로 이미지)’를 가리키는 뜻으로도 쓰인다. ‘유행하는 말=유행어’ 라면 ‘유행하는 자투리 이미지 = 밈’ 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더욱더 친근한 말로 비슷한 뜻의 ‘짤’이나 ‘짤방’ 이라는 단어가 쓰이기도 한다(이하 ‘짤’로 통일).

8.
 보통의 경우 패러디 짤의 사용은 양날의 검과 같다. 작품에 사용된 짤을 이미 알고 있는 독자는 짤을 통해 상황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이로써 그 재미는 배가 된다. 반면에 그 짤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짤이란, 감상의 맥을 끊어버리는 생뚱맞은 그림일 뿐이다. 흥미롭게도 「야공만」은 이러한 짤사용의 딜레마를 물량공세로 해결한다. 짤을 과도하다 싶을 만큼 많이 사용함으로써, 어느 컷이 짤을 패러디한 컷인지 구분이 안 되는 지경까지 독자를 몰아간다. 덕분에 독자는 아는 짤은 재미있게, 모르는 짤도 거슬리지 않고 넘어갈 수 있게 된다.


한 편에 등장한 패러디 짤들

9.
 더불어 패러디 짤의 사용은 독자로 하여금 작화에 대한 관용을 베풀게 한다. 「야공만」의 작화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꼭 필요한 것만 그린, 매우 합리적인 작화’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것도 좋게 표현한 것이고, 작화 수준만 놓고 보자면 그다지 뛰어나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의외로 작화가 거슬렸던 적은 없었다. 익숙한 짤을 패러디하면 독자들이 자동으로 원본 짤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즉, 어느 짤을 패러디 한 것인지 알아볼 수만 있으면 독자들에게 작화는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10.
 패러디 짤과 더불어 「야공만」의 재미를 증폭하는 장치는 컷별로 달리는 ‘댓글’이다. 댓글도 작품의 일부인가 하는 원론적인 논란을 차치한다면, 「야공만」의 댓글은 때때로 패러디 짤의 원본을 알려주거나 사용된 짤에 걸맞은 개그로 받아치면서 작품의 재미를 더욱 풍성하게 해 준다. 또한 독자는 댓글을 이용해 질문을 하기도, 등장한 과학자에 대한 보충 설명을 덧붙이기도하며, 작가는 이에 댓글로 답하면서 바람직한 소통이 이어진다. 그래서인지 「야공만」의 경우에는 책으로 출판될 때 댓글도 함께 수록되었다.



△ 출판된 「야공만」의 <문이과 마스터 빌 게이츠> 편. 컷의 오른편에는 당시 독자들이 남겼던 댓글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11.
 이렇듯 「야공만」은 ‘재미’에 방해되는 요소는 대폭 축소하거나 과감하게 포기했다. 대신에 재미를 배가시킬 수 있는 짤이나 댓글은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굉장히 영리한 선택과 집중을 한 셈이다. 다시 말하지만 「야공만」은 정말 재미있는 만화이다. 다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나의 글쓰기 실력으로는 표준어만 사용하여 「야공만」의 재미를 다 표현하기 힘들다. 그런고로 마지막 문장에는 시쳇말을 좀 사용해야겠다.
‘과알못3) 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더 이상 문송할4) 필요 없는 핵꿀잼5) 만화, 그게 바로 「야공만」이다.’



<야밤의 공대생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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