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죽음’의 카운트다운, 그것이 주는 의미
<100일 뒤 죽는 악어> 저자 키쿠치 유우키 / 일본 소학관
김하림 2020.04.08


‘죽음’의 카운트다운, 그것이 주는 의미

<100일 뒤 죽는 악어> 저자. 키쿠치 유우키/ 일본 소학관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원칙과 더불어 외출시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가 기본 에티켓이 되어버린 2020년 봄을 지내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현실이 되어버린 나날들이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코로나 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이 약 2%(4월 5일 기준)로 낮은 수치이지만, 결국 ‘죽음’이라는 그림자에서 안전하지 않은 현재이다.

일본에서 현재 가장 핫한 만화 : 100일 뒤 죽는 악어
 이 시점에 ‘죽음’에 대해 색다르게 접근한 일본 웹툰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작가로 활동 중인 키쿠치 유우키 작가의 ‘100일 뒤 죽는 악어’(원제: 100日後に死ぬワニ)이다. 본 작품은 작가 본인 트위터에 오후 7시에 매일 업데이트한 4컷 만화이다.




△ <그림1> ‘100일 후 죽는 악어’ 단행본 표지/ 일본 소학관


 작품명처럼 100일 동안 연재하였는데, 그 기간은 2019년 12월 12일부터 올해인 2020년 3월 20일까지 정확히 100회를 맞이하며 종결하였다. 이 작품은 트위터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화제몰이를 하게 되었고 더욱이 일본 지상파 정보 채널의 문화 기획 코너에서 소개되면서 그 인기는 대중화된 작품이다. ‘100일 뒤에 죽는 악어’는 작품 완결 전에 일본 메이저 출판사 소학관과 출판계약이 성사되어 단행본 출시 계획을 발표하였다. 그 밖에 굿즈 발매부터 애니메이션 영화화, 일본 메이저 뮤지션의 뮤직비디오 콜라보레이션 작업에서 3월 말에는 게임화까지 2차 부가사업에 있어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물론 이러한 발 빠름이 일부 독자들 사이에서 상업주의에 물들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으나, 이 작품에 대한 화제성은 현재진행형이다.

일상툰이 ‘죽음’을 만날 때

 ‘100일 뒤 죽는 악어’는 의인화된 수컷 악어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회생활을 하는 현대의 평범한 사회인이다. 그에게는 생쥐인 친구가 있고, 연모하는 아르바이트 암컷 악어 선배를 갖고 있다. 연재가 시작된 일자와 4컷 만화 속의 시간은 동일하게 흘러간다. 예를 들면, 연재일인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과 1월 1일 신년에 해당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식으로, 마치 악어의 그림일기를 보는 듯하다. 이 작품은 친구와 함께 게임을 하고 라면을 먹고 벚꽃 구경을 가는 등 특별하지 않지만 익숙한 우리들을 삶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일상툰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일본에서 인기를 얻은 이유는 이것만이 아니다. 바로 세로읽기 방식의 4컷 만화의 첫 번째 칸과 마지막 칸을 넘어선 여백에 각각의 카운트다운이 존재한다. 첫 번째 컷 위에는 ‘연재가 시작된 회차’를 표기하였고, 마지막 칸 아래에는 ‘죽음까지 남은 일자’가 적혀 있다. 본 작품의 제목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 <그림2> 4컷의 첫째 컷 상단은 연재 회차일수 표기이며, 하단은 악어가 죽는 날까지 남은 일자 정보


  평범한 악어군의 하루하루를 담은 이야기지만, 악어의 죽음까지의 디데이(D-Day)로 여겨지는 순간, 그저 재미로 읽었던 4컷 만화가 순간 삶의 무게를 담은 심오한 주제로 탈바꿈하게 된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악어의 일상이 곧 끝이 난다는 그 사실에 삶의 가치와 무게가 달리 보이게 된다. <죽음은 무엇인가>의 저자 셸리 케이건은 ‘죽음은 보편 타당한 진리로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유일한 진리가 죽음’이라 했다. 모두가 겪지만 그 실체를 알지 못한 ‘죽음’이 있기에 역설적으로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의지를 갖게 된 것이 인간인 것이다.
‘100일 뒤 죽는 악어’의 주인공인 악어는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지리멸렬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도 매일 매시간 열심히 사려고 하는 이들에게도 또는 삶을 포기하려 하는 이들에게도 평범할 수 있는 삶이 주는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하나 더.

 본 작품의 시점은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가지만, 죽음의 카운트다운을 인지하는 순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교차되게 된다. 짐 캐리가 주연이었던 영화 ‘트루먼 쇼’(The Truman show, 1998년)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시점이 바로 이 작품에서도 느껴진다. 영화 속 주인공인 미국 중상층 남성인 트루먼의 인생이 그를 제외한 이들에게 방영되고 있던 하나의 쇼라는 설정, ‘100일 뒤 죽는 악어’에서 악어의 인생의 끝인 죽음으로 끝내버릴 것 같은 작가 키우치 유우키와 그를 지켜보는 독자의 관계가 호환되는 것은 왜일까.

※ 작가 키우티 유우키 트위터 계정(일본) : https://twitter.com/yuukikikuchi
※ 100일 뒤 죽는 악어 공식사이트(일본) : https://100wani.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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