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재벌의 침대는 별이 다섯 개 : <재벌과의 인터뷰> 리뷰
<재벌과의 인터뷰> 작가 우다
조아라 2020.04.21



재벌의 침대는 별이 다섯 개 : <재벌과의 인터뷰> 리뷰

1.
 남자 하나 잘 만나서 신분이 상승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진부하다고 말하는 것조차 진부하다. 게다가 그 신데렐라 스토리에 등장하는 여자주인공(이하 여주)이 씩씩한 캔디 스타일이고, 남자주인공(이하 남주)이 재벌 2세라면 진부하다 못해 지겹다. 하지만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신데렐라 템플릿을 이용한 작품들이 지겨울 정도로 많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이러한 클리셰가 시쳇말로 ‘잘 먹힌다는’ 말이다.

2.
 신데렐라 스토리가 여전히 대세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신데렐라 스토리는 구시대의 산물이며, 여주의 모습은 페미니즘으로의 흐름에 따라 주체적인 성격, 일명 걸크러쉬로 변화되어 왔다며 반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로맨스’ 장르에서 신데렐라 스토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씩씩하기만 한 캔디 스타일의 여주가 퇴조하고, 능력 있고 주체적인 여주가 대세가 되었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남주는 여전히 재력과 외모를 두루 갖춘 ‘알파남’으로서의 면모를 잃어서는 안 된다. 왕자가 아니라면 최소한 여주를 만난 이후 장군이 되는 ‘온달’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도 지질하고 앞으로도 지질할 것이 분명하며 가진 것 하나 없는 남주와 이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는, 최소한 로맨스 장르에서는 거의 없다. 그리고 여주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여주의 신분은 대부분 남주와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에 의해서 상승된다.

3.
 다만 정통 신데렐라 스토리만으로는 곤란하다. 독자는 인물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누가 신데렐라고, 누가 새언니들이며, 누가 왕자님인지 대번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합리한 대우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는 답답한 캐릭터라면 현실의 독자는 작품에 매력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신데렐라 템플릿을 이용하려면 작품만의 차별화 전략, 즉 필살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유미의 세포들>처럼 다양한 세포들을 사용해 주인공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거나, <좋아하면 울리는>처럼 비현실적인 앱(App)을 이용하여 참신할 갈등을 생산하거나, 혹은 <여신강림>처럼 작화가 두드러지는 경우가 그 예이다.

4.
 그리고 오늘 소개하려는 우다 작가의 <재벌과의 인터뷰(이하 잽터뷰)>는 기존의 신데렐라 스토리를 ‘유쾌하게 비트는’ 전략을 필살기로 사용하고 있다. 즉, 큰 흐름에서는 제 자신도 신데렐라 스토리를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으면서, 세세한 부분에서는 신데렐라 스토리에 딴지를 거는 구성을 취하는 것이다. 게다가 딴지를 거는 과정에서는 작가 특유의 ‘개그’가 화수분처럼 나온다. 덕분에 독자는 재벌 2세와 평범한 여자의 만남을 다룬 이 작품이 매우 ‘참신하다’고 느끼게 된다.

5.
 「잽터뷰」의 장르를 규정하자면 ‘로맨틱 코미디’1)라고 할 수 있다. 남주 ‘양서준’은 소위 재벌 2세인 태양그룹의 상무이고, 여주 ‘지은’은 집안의 빚을 갚으며 평범하게 살고 있는 웹소설 작가이다. 절대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이 둘은 스웨덴의 인적이 드문 곳에서 자유 트래킹을 하던 중 한 셸터에서 만난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폭풍우로 지은이 양서준을 구해주게 되면서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설정만 놓고 보면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지만, 이 작품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존의 로맨스 코미디 전형을 교묘하게 빗겨가고는 한다.


1) 8화에서 작가가 직접 본 작품이 로맨틱 코미디라고 언급하였다.


6.
 예를 들어 여주와 남주의 이미지가 그렇다. <잽터뷰>에서는 남주인 양서준은 연약하게, 여주인 지은은 건장하게 묘사된다. 양서준의 눈가에는 항상 그윽한 음영이 들어가 아련한 분위기가 연출되며 심지어 얼굴형도 양서준이 더 가녀리다.

△ 양서준과 지은이 스웨덴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 수건을 돌리고 있는 근육질의 여성이 지은이다. 지은은 작품 내내 팔근육이 다부진 여성으로 등장한다.



 사실 로맨스 만화에서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성격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이 바뀐 것이 사실이다. 현실에서의 여성상과 남성상이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변화가 더딘 부분이 ‘작화’이다. 남주는 말라서 옷태가 잘 나는 동시에, 최소한 여주가 의지할만한 체격은 충족해야 한다. 만약 여주에게 건강미가 있다면 가슴이나 엉덩이 부분에만 살집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잽터뷰>에서는 이러한 고리타분한 설정을 과장되지 않게 뒤틀어 표현하였다. 양서준은 키도 크고 허우대도 좋은 편이지만 온실 속에서 자라서, 왜인지 모르게 연약한 느낌을 가진다. 지은은 운동을 좋아하는 여성이 가질법한 근육 정도를 가지고 있다.



△ 지은(왼쪽)과 양서준(오른쪽). 체격을 코믹하게 과장하지 않고도 특유의 분위기를 잘 표현 하였다.



7.
 이렇게 외향적인 전형을 비트는 작화는 주인공 외에 다른 등장인물에게도 해당된다. 예를 들어 양서준의 비서 ‘유능’이 그렇다. 특히 유능은 이름 그대로 유능한 비서인데, 체격이 매우 작다. 작품에서는 유능이 작다는 것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다른 등장인물과 함께 있는 컷에서 유능이 키가 매우 작은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필자의 경우 전문직 비서가 꼭 키가 커야한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는데에도 불구하고, 유능이 등장하는 컷들이 왜인지 모르게 생경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이힐을 신은 늘씬한 여자 비서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깨닫고 나니 <잽터뷰>의 유능이라는 비서가 다른 작품에서의 비서와 사뭇 다른 점이 보였다. 사실, 비서라는 직업은 전문직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신하’나 ‘하인’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많은 작품에서 마치 ‘충성심’이 비서의 최고 덕목인 양 묘사되고는 한다. 그에 반해 유능은 양서준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 본인의 출세와 안위를 위해서 일할 뿐이며 속으로는 상사인 양서준에 대한 욕도 대차게 한다. 하지만 충성심이 없어도 유능은 양서준의 성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양서준이 성공이 본인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 능력있는 비서인 유능은 체격이 작은 사람으로 나오며, 낮은 구두를 즐겨 신는다.


8.
 양서준의 여동생 ‘양서정’도 전형적인 공식에서 변주된 인물 중에 하나이다. 물론 오빠와 후계자 다툼을 벌이는 능력 있는 재벌 2세 캐릭터는 드물지 않다. 하지만 양서정과 같이 ‘남주 같은’ 외양을 가진 재벌 2세는 드물다. 일례로 JTBC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에 나오는 ‘강사라’ 캐릭터와 비교해 볼 수 있다. 강사라와 양서정은 둘 다 능력있는 재벌 2세이고, 손위 남자 형제와 회사에서의 알력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외양은 확연히 다르다. 이는 어쩌면 능력 있는 ‘여성’이라면 외양도 ‘여성적’으로 완벽할 것이라는 편견에 대한 딴지일지도 모른다. 




△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의 강사라(왼쪽)와 「잽터뷰」의 양서정(오른쪽) 소개 컷. 양서정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가운데)에서 ‘여동생’이라고 확실하게 못 박지 않았다면,
독자들은 양서정을 남동생으로 착각했을 것이다.(강사라 그림 출처: 「뷰티 인사이드」공식 홈페이지)


9.
 사실 <잽터뷰>가 이렇게 신데렐라 스토리를 마음껏 비틀 수 있는 이유는 재벌 2세 스토리가 시쳇말로 ‘오글거린다’는 것을 처음부터 인정하기 때문이다. 재벌 2세가 등장하는 작품이 현실과 동떨어진 민망한 설정과 대사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은 작품 내 지은이가 쓴 소설 「재벌의 침대는 별이 다섯 개(이하 재별다)」에 잘 표현되어 있다.



△ 드라마화된 지은의 웹소설 광고 포스터. 아뜨린느는 지은의 필명이다.



즉, 작가는 작품 내 작품인 「재별다」를 통해서

 ‘재벌 2세가 등장하는 작품의 이러이러한 면이 조롱거리라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러한 고리타분한 작품과 사뭇 다를 것이다’

라는 것을 은연중에 어필하는 셈이다.

10
실제로 위에 언급된 외향적인 변주 외에도 <잽터뷰>는 기존 신데렐라 스토리의 클리셰에 크고 작은 이의를 제기한다. 그리고 독자는 작품이 제기한 이의에 동의함으로써 작품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매력은 독자로 하여금 ‘1화만 봐도 지은과 양서준의 해피엔딩이 예상 되는’ 이 작품의 다음 회차를 궁금하게 만든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독자들 중에는, 미리보기를 결재하며 매주 목요일을 기다리는 필자가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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