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프리드로우>- ‘착한 일진’이라는 나르시시즘적 판타지아
<프리드로우> 저자 전선욱 / 네이버웹툰
김한영 2020.04.29



<프리드로우>- ‘착한 일진’이라는 나르시시즘적 판타지아

  지난 2019 네이버 웹툰 Summer Internship 채용 PD전형에 네이버 웹툰의 장르를 ‘나만의 기준으로 정리’하라는 문항이 출제됐다. 네이버가 지금의 장르로는 월간 이용자 수 6000만 명1) 이라는 빅데이터를 감당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실제 본 연재에서 다뤘던 작품들을 살펴보면 <싸움독학>, <인생존망>, <약한영웅>은 액션으로 구분되어 있다. 액션이라는 장르가 “물리적 폭력으로 갈등을 만들고 해결하는 구조”라고 가정할 때, 위의 세 작품은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외모지상주의>가 액션이 아닌 드라마에 있는 것을 보고 의아했다. 4대 크루를 통합하기 위해 주인공 박형석은 열심히 주먹을 휘두르고 있지 않은데. 게다가 이번에 다룰 <프리드로우>라는 작품도 장르 구분이 ‘드라마’로 되어 있다. 작품의 초반부를 살펴보자. 중학교 시절 잘나가는 일진이었던 주인공 한태성은 고등학교에 진학 후 일진생활을 그만 두지만, 어설픈 일진들이 자신을 ‘찐따’ 취급하자 폭력으로 ‘참교육’ 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네이버는 ‘드라마’로 분류시켰는데 본 작이 “한태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다양한 청춘들의 스펙타클한 학원 시트콤 드라마”2) 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으로 추측해본다.

  <프리드로우>는 2013년 11월 01일에 첫 연재를 한 작품으로 스토리 장르의 1위이자 일진물의 상징인 <외모지상주의>(2014.11.20.)보다 약 1년 정도 더 일찍 연재를 시작한 작품으로, 네이버 일진물의 효시이다. 현재 네이버 토요일 웹툰 3위이며 연재 초기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검색어 1위를 할 정도로 2014년도 웹툰계를 주름잡았다. 하지만 언론의 주목은 없었다. 이를테면 <외모지상주의>보다는 덜 자극적이기 때문에 굳이 언론의 먹잇감은 아녔다. [한태성의 일진과외]편에서 주인공 한태성이 “세상에는 착한 일진과 나쁜 일진들이 있어.”라고 말했을 때도, <여중생 A>에서 이 부분을 비판했을 때도 어른들의 관심은 오직 <외모지상주의>의 폭력성과 선정성이었고 <프리드로우>는 KS 규격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프리드로우>는 정말 영민한 작품이다. <외모지상주의>가 우둔하다고 할 정도로 <프리드로우>는 ‘일진=인싸=좋은 것’이라는 알레고리를 소위 ‘어른들의 감시’를 피해서 교묘하게 집어넣는다. 김선호 평론가는 일진 만화와 조폭 영화가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두 장르의 골자가 폭력과 서열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며 차이는 아이와 어른이라는 행위자밖에 없다고 한다.3) 완전히 동의하진 않지만 일진 장르가 조폭 장르와 유사하단 점은 분명 주요하다.
김경욱 평론가는 조폭 영화가 <친구>이후 코미디 행보를 걷는 트렌드에 주목했다. 폭력의 위험과 현실의 잔혹함을 감추기 위해 조폭물은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연출해 면죄부를 받는 것이다. 리얼리티는 사라지고 웃음을 만들어내는데 모든 노력을 집중한다. 코미디라는 장르를 통해 조폭이 학교를 가고, 말단 공무원과 결혼하고, 절에 들어가 깨달음을 얻는 부조리한 상황을 만든다. 이후 사회 제도를 무너뜨리는 ‘나쁜 조폭’과 그것을 지키는,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좋은 조폭’이라는 이분법을 만들어낸다. 궁극적으로 영화라는 검증장치로 조폭을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 이분법이 가능한 전제는 코미디라는 점이다. 조폭은 지나치게 순진하고 우스꽝스럽다. 조직폭력배라는 존재의 의의는 폭력이다. 폭력이 없이는 그들을 조폭이라 불리지 않는다. 조폭 장르는 이를 가리기 위해 제 기능을 못하는 사회시스템과 사회구성원을 등장시킨다. 미모의 영어선생은 교장의 음란한 손길을 뿌리치지만 가슴이 드러나는 의상으로 몸매를 과시하고(<두사부일체>) 스님들은 조폭을 제압하는 과거를 품고 있다.(<달마야 놀자>), 또한 교사는 조폭보다 학생들에게 더 폭력적이고(<신라의 달밤>), 남편은 평균이하의 어리숙한 모습으로 아내에게 잡혀 산다.(<조폭마누라>) 코미디라는 장르에 녹아 조폭의 폭력은 무질서를 바로세우는 장치로 등장해 조폭의 폭력을 폭력으로 보이지 않도록 은폐시킨다.




1) 박현익, 네이버, '신의탑'으로 포문 열었다… 글로벌 애니메이션 시장에 출사표, 조선비즈, 2020.04.02

2)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597447&weekday=sat 2020.04.01. 확인

3) 김선호, 위대한 부활 2020 ~<아르세니아의 마법사>가 웹툰으로 넘어오다, 디지털만화규장각, 2020.04.09

4) 김경욱,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 영화의 나르시시즘」, 책세상, 2002,  


  <프리드로우> 역시 시트콤이라는 이름으로 무질서와 혼돈을 만든다. 일진이 찐따 취급을 당하고, 공부만 하던 학생이 갑자기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특채로 선발되고, 학기 중 웹툰 외주 알바로 1,000만원을 벌어 단체로 해외여행을 떠나고, 고작 웹툰 응모를 막으려고 도심 속에서 오토바이 추격전을 벌인다거나, 미국에서 고등학생이 갱단과 싸우는 등의 상황의 구경거리를 전시한다. 물론 그 모든 행위의 주동자는 일진이다.
  이 모든 판타지를 실현시키도록 만드는 존재가 구하린이다. 그는 중학교 시절 일진생활을 했지만 과거를 뉘우치고 고등학교 진학 후, 막나가지만 비(非)일진 생활을 지향한다. 주인공일행의 무대인 만화부의 설립자이자 부장으로 본교의 교장이 그의 할아버지이다. 교장은 손녀에게 꼼짝 못하며 오히려 손녀를 훈계하는 학생 주임 선생에게 하고 싶은 대로 놔두라고 주의를 준다. 주인공 역시 구하린을 따르고 있어 구하린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고, 시킬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이다. 프리드로우는 가정과 공권력을 의도적으로 배제시키고, 교권을 학생보다 아래로 격하시켜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학생들의 판타지 세계를 구현한다.
  구하린은 그 판타지 세계의 새로운 절서인 것이다. 앞서 다룬 네 작품들의 일진은 부르주아 계층으로서 학생들을 착취해 부의 축적시키는 구조를 권력으로 보여주지만, 부모도 없이 혼자 지내는 구하린의 자본수단은 철저히 감춰져있다. ‘그냥’ 모든 것이 가능한 구하린은 신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구하린은 일진들과 (과거 일진이지만 청산한) 자신들의 구분하는 기준으로 ‘윤리’를 드러낸다. 이 윤리가 앞서 한태성이 말한 ‘착한 일진’과 ‘나쁜 일진’의 기준이다.


  그 윤리라는 선은 여성을 거쳐야만 수면 위로 드러난다. 여성이미지 재현 방식에서 <프리드로우>의 여성은 악녀(지다예, 현아영, 백도화)와 미녀(구하린, 이민지, 강주희, 권라희)로 등장한다. 악녀는 미녀의 인기를 시샘하기에 미녀의 남자를 유혹하거나 루머를 퍼뜨리고, 급기야 일진들을 선동하거나 청부업자를 고용해 물리적인 폭행을 지시한다. 주인공 남성은 악녀의 하수인과 싸우고 미녀는 악녀의 화장과 웃음 뒤에 숨은 추악한 인성을 만천하에 공개해 응징한다. 여기서 구하린은 비록 자신이 (과거) 일진이지만 악녀는 일진보다 추악한 존재라 낙인찍는다.   미녀의 경우 끊임없이 악당 남성들에게 성추행을 당하며 미를 평가받는다. 추행 당하지 않은 여성이 없을 정도로 추행은 캐릭터 등장 후 자기소개 시간이다. 주인공 남성과 악당 남성의 차이는 성추행 여부로 구분된다. 미녀가 성추행을 당했을 때 이를 지켜주거나 대신 복수해주는 이가 주인공 남성이고, 과거 성추행의 트라우마를 주인공 남성이 치유해주는 서사를 통해 사랑을 완성 시킨다.

  주역 캐릭터인 만화부의 남성들 (한태성. 임재익, 김동환)은 각각에 상응 되는 미녀들 (이민지, 강주희, 구하린)을 성추행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폭력을 행한다. 그런데 그 폭력의 근원이 일진이다. 이민지가 성추행, 납치당한 [인천 원정대]편에서 이민지를 구하기 위해 한태성은 학교와 경찰에 알리지 않고 과거 일진생활을 한 친구와 함께 인봉공고 일진들과 싸웠다.  게임 마니아인 임재익의 경우, 강주희를 괴롭히는 세 번의 시련을 겪는다. 강주희가 일본 야쿠자들에게 잡혀 AV 비디오 데뷔를 협박당했을 때 일본의 불량 학생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수학여행에서 급우 박은혁이 강주희를 술자리에 강제로 앉혀 술을 강권했을 때는 한태성의 일진들에게 싸움을 배워 박은혁을 응징한다. 마지막으로 전 남자친구인 강승현이 연예인으로 데뷔한 강주희를 스캔들로 괴롭히려하자 임재익은 한태성과 힘을 합쳐 강승현네 일진연합과 싸웠다. 김동환도 아직 진행중이지만 김영곤이 구하린에게 불순한 의도로 접근하고 희롱하자, 한태성 외 일진들에게 김영곤과 싸워서 이기는 법을 배운다.


  성추행당하는 여성을 지키기 위해 남성은 굳이 다시 일진이 되거나 일진의 힘을 전수 받아야 한다. 공권력에 도움을 구하거나 무술을 배우는 것이 아닌(하물며 권투 기술 역시 선수가 아닌 일진에게 배운다.) 이들은 일진들의 생리를 몸에 익힘으로써 여성을 지키는 힘을 얻는다. 한태성에게 수련 받은 임재익은 어느 순간 괴롭다며 담배를 태우고, 일진을 싫어한다던 모범생 이민지는 일진 수업을 받더니 악녀들과 싸우는 힘을 얻고 <일진 중엔 착한 일진과 나쁜 일진이 있지>라는 웹툰을 그린다. 일진은 여성을 존중하고 지키는 착한 일진과 여성을 함부로 대하고, 루머를 생산하고 험담하는 나쁜 일진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예쁜 구하린과 데이트하는 한 남성 캐릭터는 다른 남성들이 구하린을 쳐다보자 “마치 스포츠카를 타는 기분이야!!”5) 라고 생각한다. 여성을 스포츠카와 동일시하는 연출은 여성을 욕망의 대상으로 도구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프리드로우>가 네이버 토요일 웹툰 3위인 사실은 남성독자만으로는 불가능한 성적이다. 즉, 여성들이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반복을 여성들이 거부감 없이 수용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카메라의 시선이 남성화 되어 있어 여성관객은 남성화 된 시선으로 남성 주인공에게 이입한다고 했던 로라 멀비6) 말처럼 <프리드로우>가 남성 작가의 연출과 남성 중인공인 한태성의 시선에 고정되어 여성 독자들이 남성화 된 것일까? 그러나 이런 주장은 장봉남이라는 캐릭터 앞에 완전히 부정된다.
  장봉남은 구하린과 이민지를 납치한 악당이었으나, ‘알고 보니 게이’라는 설정으로 한태성에게 반해 그를 돕는 조력자로 바뀐다. 장봉남은 후에 이민지를 유혹하는 남자를 처리해준다며 그 남자를 추행한다. 그런데 이 부분은 다른 캐릭터의 이성애보다 꽤나 자세하게 묘사된다. 장봉남이 자신의 성기를 해당 남성의 엉덩이에 비비는 등의 성희롱을 반복적으로 묘사하고 이성애자인 남성이 처음에는 거부하다 마침내 동성애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결말을 내린다.


  당시 댓글은 BL물을 연상케 하는 내용으로 가득했고 작가는 122화 [꿩먹고 알먹고 계획]편에서 독자들이 보내온 폭발적인 열광을 자랑하듯 BL팬픽들을 공개했다. 로라 멀비의 말과 달리 여성 역시도 적극적으로 범죄에 희생당하는 여성과 여성을 구하는 멋진 언니 일진과 일진 남친의 이야기를 수용하는 것이다. 왜냐면 “일진은 싸움과 힘, 패션과 리더쉽, 외모 이 모든 요소에서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다.”7)


5) 324화 [슈퍼헤비급 동까(1)
6) 쇼히니 초두리, 「페미니즘 영화이론」, 앨피, 2012
7) 135화 [한태성의 일진 과외 (2)] 

  사람이 사람을 때리면 안 되는 것인데 <프리드로우>에는 남자가 여자를 때리면 안 된다는 구시대적이고 가부장적인 생각이 깊이 심어져 있다. 일진이 일진일 수밖에 없는 근본 행위가 악녀를 처단하고 여성을 구하기 위해서는 묵인 되는 것이다. <프리드로우>가 <외모지상주의>보다 영민하다고 말한 것은 노골적인 시각적 판타지를 제공하는 <외모지상주의>와 다르게 이 작품은 여성 독자가 남성 일진에게 면죄부를 발급하도록 하고 남성 독자는 여성이 인정한 착한 일진을 동경하게 만들게 한다는 점이다.

  구하린의 경우, 악녀들이 구하린을 공격하는 약점은 과거 그가 일진이었다는 점인데 작품은 과거를 캐내는 이를 악녀로 만들어 잘못된 행위로 묘사한다. 오늘날 모 유명인들의 학교폭력이 연신 터져 나오는 현상과 반대된 행보인 것이다.  한태성의 경우, 습관적으로 후회한다고 말한 ‘중학교 시절’에 그에게 폭행당했던 정동혁을 보자, 작가는 4달이라는 긴 시간동안 한태성이 일진시절을 후회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과거를 반성하고 사죄하는 한태성의 모습을 기대했지만 독자들은 정동혁이 백도화라는 여성을 성추행했기 때문에 그가 한태성에게 맞을 만 했다고 받아들였다. 여성에게 인정받은 남성만이 착한 일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유일하게 이민지의 부모만이 등장한 것도 민지의 부모가 ‘착한 일진’ 한태성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오해가 있을 수 있어 밝히는 건, 작품 속 표현의 자유에 대해 무한한 긍정을 표한다. 일진 장르가 범람하는 것도 좋고 더 나아 한국 대표하는 웹툰 장르가 되어도 좋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표현이 청소년에게 잘못된 생각을 주입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신경 쓰지 않는다. 외려 그런 주장은 청소년 문제의 책임을 웹툰으로 전가시키는 것이라 본다. 많은 독자들이 선택했다는 것은 그 작품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지점을 관통했다는 의미이다. 왜 하필 일진의 비행이 코미디로 미화되어 많은 독자들이 이를 통쾌하게 여기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강성률 평론가는 비평가의 역할이 역사라는 궤도에 작품을 올리는 일을 하는 것이라 말한다. 기획물로 연재하고 있는 필자의 글은 일진 장르라는 한 시대의 주류를 어떻게 기억해야하는지에 대한 추적이다. 이번 글을 통해 많은 여성 비평가들이 일진 장르물을 페미니즘적 시선에서 해석해주었으면 한다. 그 부탁은 외피에 드러나는 선정성, 폭력성에만 한정하는 것이 아닌 여성이 일진 장르를 보도록 어떻게 소구하는지, 나아가 여성이 주체적으로 일진 장르를 어떻게 수용하는지와 같은 구조적인 접근이다.
  지난 글들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필자 역시 남성이라는 생물적, 사회적 한계로 일진 장르를 계급 격차, 남성성의 과시 정도로 해석해왔다. 스스로 여성을 배제한 해석을 하지 않았는지 반성한다. 네이버 웹툰을 대표한다는 의미는 여성 역시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는 것이고, 일진 장르가 비단 남성 전유물이 아니라는 의미다.
방황하는 10대에게 꿈을 주고 싶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을 보고 자란 많은 독자들이 꿈을 품었으면 좋겠다. 대신 그 방황하는 10대들이 과오를 망각하고 왜곡하기보다 직시하는 것이 선행되길 바란다. 물론 현실은 끼 많은 일진이 당당히 연예인을 하고 있지만.



8)  김미나, 웹툰 ‘프리드로우(freedraw)’ 작가 전선욱씨 “방황하는 10대에 꿈을 주고 싶어요”, 국민일보, 201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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