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치어머니 입장에서 본 쌍갑포차
<쌍갑포차> 작가 배혜수
조아라 2020.06.17



치어머니 입장에서 본 쌍갑포차 

1.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 네이버 웹툰 「치즈인더트랩(이하 치인트)」이 드라마화 되는 과정에서 ‘치어머니’라는 말이 등장했다. ‘치인트’와 ‘시어머니’의 합성어인 이 말은 원작 웹툰의 팬들이 드라마 캐스팅 과정에 과도하게 참견하는 것이 흡사 시어머니 같다며 생겨난 조롱조의 신조어였다. 특히 남자 주인공인 ‘유정’역에 싱크로율(synchro率)1)이 높은 박해진 배우가 캐스팅되면서,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고조되었고, 결과적으로 여자 주인공인 ‘홍설’역에 치어머니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치어머니들은 드라마 방영 전까지 김고은 배우의 이미지가 홍설에 맞지 않는다며 우려하였고, 드라마 방영 중에는 유정의 비율이 줄어들어 스토리의 개연성이 사라졌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 우여곡절 끝에 완료된 「치인트」 캐스팅. 만화가 드라마화 되는 경우에는 원작의 인물과 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의 싱크로율이 이슈가 된다.
(출처: TvN 치즈인더트랩 공식 사이트)

2.
 이렇듯 치어머니는 과한 팬문화를 조롱하는 다분히 부정적인 신조어였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치어머니들의 심정이 백분 이해가 간다. 만화는 소설이나 역사서와 다르기 때문이다. 소설이나 역사서는 ‘글’이다. 아무리 세세하게 묘사해도 머릿속에서 이미지화 하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그러므로 같은 글을 읽는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읽는 사람에 따라 떠올리는 이미지는 각각 다를 것이다. 실체가 없는 상상속의 이미지는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인인줄 알았던 인물이 악인으로 밝혀진다면, 머릿속에 있는 인물의 이미지도 그에 맞게 바뀔 것이다. 따라서 소설이나 역사서가 드라마화·영화화가 될 때는 싱크로율에 대한 압박감이 덜 하다. 내가 상상해왔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배우가 캐스팅 되더라도 큰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배우의 연기력이 출중하다면 내 상상속의 이미지가 그 배우로 대체되어 버리기도 한다. 이를테면 ‘장희빈’의 이미지를 상상할 때, 많은 사람들이 장희빈을 연기했던 배우를 먼저 떠올리고는 하는 것이다.

3.
 하지만 만화는 다르다. 이미 ‘그림’이라는 실체가 버젓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날아라 슈퍼보드」의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을 생각해 보라고 하면, 모든 독자들이 같은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그래서 만화를 드라마화 할 경우에는 -적어도 원작 만화의 팬들에게는- 싱크로율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모든 독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고정된 이미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는 배우는 불편한 이질감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이질감은 배우의 연기력으로 커버하기도 힘들다. 예를 들어 「닥터 프로스트」가 드라마화 될 때에 그랬다. 날렵한 백발의 프로스트 교수와 송창의 배우 사이의 괴리감은 출중한 연기력으로도 좁히지 못하였다.

4.
 이러한 이유로 나는 좋아하는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를 섣불리 보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쌍갑포차> 가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결국 지금까지 단 한 편도 시청하지 못했다. 과연 드라마에서 <쌍갑포차>의 매력이 잘 표현되었을지 불안했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가 꼭 원작의 매력을 고스란히 재현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원작 웹툰의 팬덤을 시청자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원작의 매력을 어느 정도 포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원작 팬들이 양보하고 싶지 않은 매력 요소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쌍갑포차>의 원작 팬으로서 나는 다음과 같은 매력을 놓치고 싶지 않다.

5. 사연을 돋보이게 하는 음식
 <쌍갑포차>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에는 그승2)의 관리자인 ‘월주’가 운영하는 포장마차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쌍갑포차는 그승, 즉 꿈속에서 등장인물에게 사연 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억눌렸던 본심도 꿈속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표출되는 것처럼, 등장인물들은 쌍갑포차에서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는다. 특히 쌍갑포차에서는 갑과 을의 구분이 없는데, 쌍갑포차라는 말 자체가 ‘쌍’방간에 ‘갑’인 포장마차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심야식당이나 식객처럼 식당이나 음식이 주연급인 것은 아니다. 각 에피소드의 제목이기도 한 이러한 음식은 마치 잔잔한 코러스처럼 주인공의 사연을 돋보이게 해 준다. 그래서 나는 드라마에서도 ‘음식’이라는 매력이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 코러스가 없는 노래는 어쩐지 허전하기 때문이다.


△ ‘돼지고기와 숯불구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쌍갑포차.

6. 얽히고설킨 인연과 선(善)의 힘

 <쌍갑포차>를 감상하는 또 다른 묘미는 등장인물간의 얽히고설킨 인연들이다. 매 에피소드는 독립적인 스토리로 진행되지만, 각 등장인물들은 긴밀하게 얽혀있다. 예를 들어 ‘돼지고기 숯불구이’ 에피소드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오미란’이 ‘박속낙지탕’ 편에 조연으로 재등장하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박속낙지탕’에 이름만 언급되었던 ‘김수오’ 하사는, 다음 에피소드인 ‘생굴’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등장인물들 간의 숨은 인연을 촘촘하게 그려내는 방식은 작품 감상에 재미를 더한다. 독자는 스쳐 지나가는 인연을 포착해 내기도 하며, 새로운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이 사람이 언젠가 다시 등장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쌍갑포차>가 이러한 거미줄 같은 인연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선한 것의 힘인 것 같다. 즉, 나의 선행은 인연의 끈을 타고 언젠가 나에게, 그리고 내 후손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장치는 ‘박속낙지탕’ 에피소드에 잘 나타나 있다. 젊었을 적 ‘이끝순’을 살뜰히 보살폈던 ‘김월례’의 선행은 돌고 돌아 후에 손자 ‘최민수’의 목숨을 살리게 된다.
 사실 이러한 권선징악 구도는 자칫 구태의연해 지거나 지루해 질 수도 있다. 그러나 <쌍갑포차>는 선행의 결과가 곧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몇 단계의 인연을 거쳐서야 돌아오도록 장치함으로써, 권선징악적 구도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당장이야 선한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결국은 수많은 인연을 거쳐 나에게 돌아오고야 만다고 그럴듯하게 독자를 설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독자는 선한 것이 결국은 승리하는 서사에서 비롯하는 감동을 통해 선명한 위로를 받게 된다.


△ 착한 것이 강하다는 주제의식은 ‘수라상’편의 마지막에 ‘방나희’의 연설을 통해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어쩌면 저승과 신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이러한 권선징악적 주제는 피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것을 촘촘하게 얽힌 인연을 통해 세련되게 풀어내느냐, 일차원적으로 유치하게 풀어내느냐는 작품의 역량에 달렸다. 그래서 나는 <쌍갑포차>의 인연이라는 주제가 드라마에서도 잘 드러났으면 한다. 그리고 시청자들도 내가 받았던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

7. 범상치 않은 글귀
 <쌍갑포차>의 댓글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배해수 작가의 나이를 궁금해 한다. 현대 사회의 밈(meme)을 제법 잘 활용하는 것으로 보면 젊은 작가인 것 같은데,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옛날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구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쌍갑포차> 인물들의 대사는 예사롭지 않다. 제법 긴 인생을 살아낸 사람이 쓴 것처럼 세월이 느껴지는데도, 낡은 느낌은 들지 않은 글귀이다. .



△ 쌍갑포차 특유의 잔잔한 대사는 독자에게 위로가 된다.


 웹툰을 각본삼아 그대로 재현하자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등장인물의 어조조차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무모한 욕심인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최소한, 진중했던 인물의 대사가 방정맞고 새털처럼 가벼워져버린 광경은 보고 싶지 않다. 그것을 목격하는 일은 여간 곤욕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8.

 이상이 치어머니같은 원작 팬의 입장에서 <쌍갑포차> 드라마에 바라는 점이다. 어쩌면, 위에 언급한 모든 것이 원작 팬의 도 넘은 희망사항인지도 모른다. 드라마라는 다른 매체로 변환되는 상황에서 웹툰의 매력을 잃지 말아 달라 조르는 것이 가당찮은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좋아했던 부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험은 적잖이 괴롭다. 내가 좋아하는 웹툰의 가장 아름다웠던 감상이 오염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1) 원작 웹툰의 인물과, 그 인물을 연기할 배우의 닮은 정도. 국립국어원에서는 ‘일치율’로 쓸 것을 권고하고 있다.
2)  작품에서 창조된 꿈의 세계. 이승, 저승, 그승은 작품 내 삼세계를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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