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1928년 경성의 낭만과 역사적 비극의 사이에서, <경성야상곡>
<경성야상곡> 작가 김라무
윤지혜 2020.06.23



1928년 경성의 낭만과 역사적 비극의 사이에서, <경성야상곡>


일제강점기의 ‘신분 바꾸기’

  신분은 다르지만 똑같이 생긴 얼굴로 인해 서로의 위치를 바꾼다는 서사는 이제 흔하다면 흔할 것이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 「왕자와 거지」에서는 우연히 만나게 된 똑같은 얼굴의 왕자와 거지가 잠깐 서로의 신분을 바꿨다가, 거지는 호화롭게만 보이는 왕자의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왕자는 서민의 삶이 얼마나 힘겨운지를 알게 되어 원래의 신분으로 돌아간 뒤 선정을 베풀게 된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는 이와 유사하게 고귀한 왕의 신분과 비천한 광대가 신분이 바뀐다. 다만 「왕자와 거지」와 달리 선정을 베풀고 백성과 가신들의 지지를 받게 되는 것은 왕의 대역인 광대였다.

  이처럼 ‘신분 바꾸기’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변주되며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왔다. 특히 신분의 역전을 통해 전혀 교류할 방도가 없던 양극단의 인물들이 섞이고 교차함을 통해 사회의 여러 가지 단면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유효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경성야상곡>은 일제강점기의 한가운데를 배경으로 극단적으로 다른 두 인물의 ‘신분 바꾸기’를 통해 그 시대의 민족의 수난과 비극을 다채롭게 보여줌으로써 오늘날의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주고 있다.


1928년 경성이라고 하는 시・공간

  이 작품은 시대적 배경을 1928년 경성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시대와 장소를 얼버무리지 않고 정확하게 전제한다는 것은 시대적 배경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런데 경성에서의 1928년이라는 시기를 선택했다는 것은 생각해 볼만한 지점이다. <경성야상곡>이 실제 역사의 큰 틀을 따라간다고 한다면, 1928년은 일제의 강점이 시작된 지는 20여 년쯤 되어 젊은 층에서는 ‘일제가 침탈하지 않은 조선’을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가 꽤 생겨났을 때이다. 1910년대에는 일제가 조선의 민족성을 강력하게 억압하고 탄압하는 것이 주요 정책이었던 반면,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일제는 학교 설립과 조선어 교육 허용, 조선어 신문 발행 허가하여 조선의 저항의식을 달래는 한편, 경찰 기관과 인원을 대폭 증가시키고 치안 유지법을 제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또 다른 방식의 억압을 가하고 있었다. 또한 일본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조선 민중에 대한 수탈과 황국신민화 정책이 극심해지게 되는 1930~1940년대를 눈앞에 둔 시기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1928년 경성이라고 하는 시・공간은 복잡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일제 식민지를 경험하고 있었다.

  <경성야상곡>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주요 배경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작품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특히 작중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이 1920년대부터 일제에 의해 이뤄져 왔던 경성의 문화주택지 형성이다. 1920년대 들어서 경성은 급격한 인구의 증가를 맞는다. 일본인의 조선 이주를 장려했던 탓도 있지만, 주요한 원인은 1910년대부터 이뤄진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 수탈에 따른 농민들의 대거 이주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농사를 짓던 땅을 빼앗기고 살길이 막막해진 농민들은 고향을 버리고 그나마 일자리가 있는 경성으로 모여들었다. 인구가 늘어나자 땅은 점점 비싸졌고, 조선의 하층민들은 외곽 지역으로 밀려나 빈민가나 묘지 인근에 토막을 짓고 살았다. 그러나 시가지의 거주구역이 포화상태에 다다르기 시작하자 경성의 외곽지역은 조용하고 공기가 맑으며, 녹지가 풍부하면서도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다는 이유로 선호되며 문화주택지로 개발되었다. 주로 논, 밭, 산, 공동묘지나 빈민들의 주거지가 주요한 타겟이 되었다. 경성의 문화주택지 개발은 1928년 개정된 치안유지법과 맞물려, 일제의 조선인에 대한 핍박과 수탈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한편, 작중 주요 인물인 영(마유미)과 희의 운명을 뒤흔드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인물의 내적 갈등을 고조시키기 위한 연출의 일환으로 역사적 사료를 활용하기도 한다. 희와 신분을 바꾼 영은 학교에 갔다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본어 교재에서 일장기를 찬양하는 것을 보고 어떤 신분으로도 조선에 대한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없음에 절망한다. 이처럼 <경성야상곡>은 역사적 사건을 작중에 적절하게 활용하여 시대적 분위기를 극적으로 전달하고 인물들의 내적 갈등을 풍부하게 연출함으로써 더욱 시대적 상황에 몰입할 수 있게끔 한다.


경성을 살아가는 다채로운 인물들

 <경성야상곡>의 인물들은 단순하지 않다. 애초에 서사의 중심에 있는,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흡사한 외모로 인해 ‘신분 바꾸기’를 하게 되는 영과 희는 처해 있는 입장도 성격도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 영은 친일파 권력자인 아버지의 딸로 아버지가 일본인의 환심을 사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으며, 희는 빈민촌의 아이로 그 날 그 날의 끼니가 걱정이다. 영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조선인으로서의 민족의식을 억압당하는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희는 배불리 먹고 신식 복식을 하고 글자를 배워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을 꿈꾼다. 각자 현실과 이상이 다른 상황에서, 영과 희는 영의 조작으로 인해 신분이 바뀐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영은 빈민촌의 조선인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으며 일제의 억압이 도처에 널리 퍼져 있음을 알게 되고, 희는 가족과 빈민촌의 이웃이 그리운 한편 영과 바뀐 것이 들켜 처분당할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이처럼 인물들의 신분 바꾸기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과 맞물리며 인물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복잡다단하게 한다.

 영과 희가 바뀌는 사건을 통해 원래라면 알 수 없었던 사실들을 알게 되고, 주변 인물들과의 교류도 달라진다. 영과 희의 주변에는 다양한 성격과 상황에 처해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영은 친일파 아버지와 함께 살 때는 알지 못했던 빈민촌 주민들의 삶을 알게 되면서 독립운동을 하다 고문으로 죽게 된 갑년의 동료들을 만난다. 그들을 만나게 되면서 앞날의 희망을 가지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빈민촌 사람들과 힘을 모은다. 그러나 그 사실이 친일파인 영의 아버지 귀에 들어가면서 1928년 개정된 치안유지법을 핑계로 문화주택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빈민촌 사람들은 학살당한다. 반대로 희는 ‘마유미’로서의 삶을 대신 살면서 저택의 고용인들과 가까이 한다. 영이라면 하지 않았을 일이다. 특히 희는 사야꼬를 가까이하면서, 일제가 일본인의 조선 이주를 장려하며 생긴 조선의 일본 빈민층을 목도하게 된다. 빈민촌 시절, 일본인에게 ‘조선 거지’라고 불렸던 열패감을 거부하고 싶어 하는 희의 눈앞에 ‘일본 거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경성야상곡>은 영과 희가 신분을 바꾸면서 다양한 인물들을 접하게 하고 그들을 통해 당대가 가지는 다양한 결을 보여준다. <경성야상곡>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는 큰 틀에 기대어 서사를 이끌어가고는 있지만, 영과 희가 단순한 입장과 성격을 가진 인물이 아닌 것에 더해, 이처럼 다양한 특성과 사연을 가진 인물들과 얽히면서 그야말로 사건이 어디로 튈지 모르게 된다. 특히 최근의 연재에서 영의 집에서 일어난 영과 희의 충돌은 앞으로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기대하게 한다.

경성의 낭만과 역사적 비극 사이에서

  <경성야상곡>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웹툰 가운데서도 장점이 많은 작품이다. 일단 ‘야상곡’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웹툰은 일제강점기 근대화의 와중에서 느낄 수 있었던 낭만적인 분위기를 내세우고 있다. 영과 희, 그리고 히로시라는 청춘남녀의 감정의 소용돌이가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어떤 결과를 맞게 될지 흥미를 자아내는 측면이 있다. 당시의 카페나 양장점의 화려한 모습이나, 알폰스 무하 스타일의 장식적인 컷 연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여 눈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경성야상곡>의 강점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조성한 분위기 속에서 가능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녹여내려 했다는 점에 있다. 인물과 시대 사이의 상호 긴밀한 관계를 통해 그 시대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경성야상곡>의 인물들이 앞으로 겪어 나갈 사건들과 그 속에서 인물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앞으로 더 흥미진진해질 <경성야상곡>을 기대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신경 쓰이는 점 한 가지를 굳이 꼽자면, 이 작품이 역사적 사실과 사료를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부분이다. <경성야상곡>은 작중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다양한 사료를 사용하고 있다. 다만 그 사료가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28년이라는 시대적 상황에 완전히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일제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 정책은 시기에 따라 변화해 왔으며, 그에 따라 조선의 역사적 상황과 사회적 분위기는 달라졌다. 역사적 사실에 크게 기대어 있는 <경성야상곡>과 같은 작품의 경우 역사적 사료의 적용 방식을 치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괴리가 일어나기 쉬울 수 있다는 것은 항상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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